본문 바로가기

길이야기

내포보부상촌

내포보부상촌

천백 년의 역사! 향기 가득한 전통문화체험 테마파크로

옛 보부상들이 즐겨 먹던 먹거리와 문화공연 · 체험을 통해

전통문화에 대한 재미와 흥미를 유발하고

내포보부상촌 주변의 자연을 만끽하며 휴식할 수 있는 공간이다

 

 

내포보부상촌 정문

 

 

 

 

저잣거리로 들어가는 길이다

 

 

 

 

전수관

보부상 난전놀이와 같은 전통문화의 발전을 위해

주민들을 대상으로 문화 강좌 등을 제공하는 곳이다

 

 

 

 

어린 포동이

추억의 엿장수와 아이들

 

 

 

 

종합안내도

 

 

 

 

내포상회

오른쪽 저잣거리로 올라간다

 

 

 

 

내포상회

무인 결재 매장 안내판이 있다

 

 

 

 

이바디

밥먹는 데 안내판이 있다

 

 

 

 

30대 포동이

고단한 삶, 쉼을 가지다

 

 

 

 

야외무대

정기 및 상시 공연을 볼 수 있는 야외무대이다

객석 주변으로 보부상을 상징하는 깃발이 게시되어 있다

 

 

 

 

내포보부상촌박물관 계단

 

 

 

 

40대 포동이

규율을 지키며 환난에 공헌하는 보부상

 

 

 

 

60대 포동이

후배 보부상에게 길을 안내하다

 

 

 

 

예산 보부상박물관

내포지역의 지리적 · 문화적 특징, 보부상의 삶과 역사를 담은 박물관이다

내포 지역은 서해안을 따라 발달한 바닷길을 통해 이 지역만의 독특한 문화권을 형성하였다

또한 내륙 깊숙이 들어오는 물길로 포구가 발달하고

대량의 물자 수송이 이루어졌으며 그 주변으로 장시가 발달할 수 있었다

조선시대 오일장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상인 보부상의 삶을 조명하고

유물을 전시 · 수장하기 위해 만들어진 박물관으로 2020년 7월 개관하였다

예산 · 덕산 · 당진 · 면천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보부상 단체인

예덕상무사의  보부상 유품(국가민속문화재 지정)을 관람할 수 있다

 

 

 

 

 1층 상설전시실 / 예산홍보관

내포 이야기 · 보부상 이야기가 전시되어 있다

내포 이야기는 내포의 자연지리적 특수성을 바탕으로 형성된 역사와 문화적 특징

내포 지역의 독특한 생활민속문활를 살펴볼 수 있다

*

보부상 이야기는 보부상의 기원과 역사

상업의 발달과 지방 장시의 활성화로 전국 물자유통망이 갖춰지면서

조직화되기 시작한 보부상의 활동 · 보부상단 조직의 규율과 상부상조의 정신을 이해할 수 있다

 

 

 

 

포구의 고장, 내포

내포 지역은 복잡한 지질 구조와 오랜 침식으로 인하여 매우 복잡한 지형을 이룬 가운데

서쪽 해안 지역은 후빙기의 해수면 상승으로 굴곡이 심한 리아스식 해안을 형성했다

이러한 특성으로 바다가 육지까지 들어오게 되며 자연스럽게 포구가 발달하였다

《택리지》 · 《신증동국여지승람》 등의 지리지에는 내포지방에 있던 포구와 나루가 기록되어 있으며

《증보문헌비고》에도 아산부터 결성까지 내포지역의 포구 44개소에 대한 기록이 보인다

 

 

 

 

보부상 조직의 유래

보부상 중 조직의 유래에 대해서는 조선을 세운 태조와 관련해서 세 가지 설이 전해진다

첫째는 태조가 고려 말 함경도 만호로 있을 때

백달원의 도움을 받았기에 그 은혜를 갚기 위해 각 주군에 임방(任房)을 설치하고

침식 · 질병의 치료, 장례 등을 자유롭게 했다는 것이다

둘째는 태조가 함경도 행상들을 이용하여 새 왕조를 건설하였기에

8도에 상민 단체를 조직케 하였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태조가 즉위한 이후 안변에서 석왕사를 증축할 때 백달원이 동지 80명을 인솔하여

쌀과 자재를 운반하고 삼척군에 있는 5백 나한을 옮겨 모신 공로로

지금의 개성군 발가산에 임방을 설치하여 옥도장을 하사하였다는 것이다

한편 보상의 전국적인 조직을 갖추게 된 것은 고종 13년(1879) 8월에 발포된

「한성부완문(漢城府完文)」에 의해서이다

 

 

 

 

보상 · 부상을 합친 전국단위 상단 형성

17세기 중엽 이후 상업의 발달과 지방 장시의 활성화

그리고 대동법의 시행으로 전국 물자 유통망이 갖추어졌다

장시를 떠돌던 행상들도 조직화되어

18세기 중에는 장시에서 거두는 세금이 지방 군현 재정의 한 축을 이루었고

19세기 후반 자체 조직과 운영체계를 갖추면서 전국 단위의 보부상단을 형성하였다

이후 정부의 보호를 받으며 행상업을 관장하고 상품 유통 세금을 징수하였다

이로 인해 보부상의 지역 조직은 한층 더 강화되었다

 

 

 

 

보부상의 독특한 상업유통문화 / 팔도의 오일장을 무대로 성장

향시는 교역의 장소로 주변의 농민 · 수공업자 · 상인들이

일정한 날짜 및 장소에 모여 물건을 교환하는 곳이었다

상업이 발달하기 전에는 5일마다 소규모 장시가 열리는 정도였는데

가까운 마을이 연결되어 시장을 열다 보니 커다란 지역 시장권이 만들어졌다

그 결과 15세기 말 남부지방에서 먼저 향시가 개설되었고

순조 때는 전국에 1천여 개소가 개설되었다

한편 향시가 발달하며 각 지역의 상업 중심지에서 물품을 구입해

「전국 어디에서나」 장시가 열리는 고을을 찾아 이동하면서 상업활동을 벌인 보부상이 나타났다

이들에 의해 고립되었던 농촌의 장시는 하나의 유통망으로 연계되었으며

생산자와 소비자가 이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보부상

 

 

 

 

유통문화체험관

유통을 주제로 조선시대 장시부터 세계무역의 중심지였던 실크로드

현대까지 아우르는 내용을 체험 전시로 구성하였다

 

 

 

 

투루판(토로번)

타클라마칸 사막의 북쪽에 있는 오아시스 도시국가 투루판은

최고 47.8℃까지 올라가는 중국에서 제일 더운 도시로 「불의 땅」이라 불렸다

 

 

 

 

장날! 보부상 만나러 가는 길

조선 후기 성행했던 장시와 그 중심에 있었던 보부상에 대한 이야기다

조선 후기 전국적으로 퍼져나갔던 장시는 물건을 사고파는 공간 그 이상의 역할을 했다

사람들을 만나거나 이웃의 소식을 듣기도 하고, 정겨운 벗과 술과 음식을 나눴다

또한 놀이와 공연이 펼쳐지기도 했던 장소로써 서민들의 이야기가 담긴 복합적인 문화공간이 되었다

장날이 되면 항상 사람들로 북적였고 그 중심ㅁ에는 보부상들이 있다

예산지역에는 예산 · 덕산 · 당진 · 면천 네 권역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보부상 조직인 예덕상무사가 있으며

현재까지도 보부상의 전통문화 계승을 위해 힘쓰고 있다

조선시대 장시의 모습과 보부상들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당시의 시대상을 엿볼 수 있다

 

 

 

 

한국과 그 이웃나라들 / 이사벨라 버드 비숍

외국인이 바라본 조선의 장시 풍경

 

 

 

 

보부상 미끄럼틀

 

 

 

 

야외무대

 

 

 

 

저잣거리

장시가 열리는 모습을 재현한 공간이다

 

 

 

 

20대 포동이

항아리 값을 흥정하다

 

 

 

 

변소

 

 

 

 

20대 포동이

장신구를 파는 보상 이모를 만나다

 

 

 

 

청년 포동이 보상 이모와 함께 오일장으로

*

2024. 10.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