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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야기

충주 미륵대원지

충주 미륵대원지(忠州 彌勒大院址 사적 제317호)

이 절터는 동쪽으로 하늘재 · 서쪽으로 지릅재 사이의 분지에 위치하고 있고

삼국시대 이래 조선시대까지 남북의 중요한 길목에 위치하고 있어
불교 사찰의 역할 뿐 아니라 군사 · 경제적으로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1970년대 말부터 3차례에 걸쳐 절터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는데

彌勒堂(미륵당) · 彌勒堂草(미륵당초) 등 글자가 새겨진 기와가 출토되었고

지금도 이 일대가 미륵리로 불리고 있어 석굴사원의 이름은 미륵대원으로 추정되고 있다
또한 사역내에 석불 · 석탑 · 당간지주 · 돌거북 등 많은 유물이 남아 있어 고려시대 화려했던 절의 모습을 전하고 있다
특히 석불을 둘러싼 「ㄷ」형 석실은 경주 석굴암의 조영의사를 따른 것으로

원래 조각상들이 끼워져 있었으나 몽고 침입시 절이 불타면서 파손된 것으로 추정된다

 

 

 

미륵대원지 주차장

시점이다

 

 

 

 

미륵세계사로 가는 길

 

 

 

 

충주 미륵세계사 대웅전(大雄殿) · 안심당(安心堂)

신라 마의태자가 창건했다는 설화가 전해져 내려오는 미륵도량이다
몽골의 침략과 임진왜란 등으로 소실과 복원이 반복되다가 1936년 큰 수해로 폐사되었다

1950년대 말 중창을 발원하며 건립한 도량으로 1961년 법주사 말사로도 등록했다

 

 

 

 

대웅전(大雄殿)

 

 

 

 

안심당(安心堂)

요사채이다

 

 

 

 

안심당(安心堂) 편액

 

 

 

 

공기돌 바위

자연적인 바위에 약간의 인공(人工)이 가미되었으며

바위의 생긴 모양이 거북이와 비슷하여 거북바위라 불리워지고 있으며

정상 부분에 좁은 폭으로 길게 홈을 파서 그 홈을 따라 바위 밑 부분까지 물이 잘 빠지도록 되어 있다

바위 위에 올려져 있는 직경 1m 가량의 둥근돌(공기돌)은

고구려 평원왕 때의 온달장군이 신라군과 싸우기 위하여 이 지역에 주둔하고 있을 때

이 공기돌로 힘자랑을 하였다 하여 온달장군 공기돌이라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목불(木佛)

공기돌 바위 주위에 불상이 여럿 있는데

이 목불은 둥근 공기돌이 아래로 구르지 않게 받치고 있는 듯하다

 

 

 

 

산신각(山神閣)

풍경이 매달려 있다

 

 

 

 

산신각(山神閣) 편액

 

 

 

 

산신상(山神像)

산신각 왼편에 있다

 

 

 

 

연못

산신각 앞에 있다

 

 

 

 

초석(礎石)

미륵세계사와 미륵대원지 사이 계곡을 건너는 다리 앞에 있다

 

 

 

 

충주 미륵리 오층석탑 / 보물 제95호

높이 5m의 오층석탑으로, 그 자리에 있던 바위로 받침돌과 기단을 만든 후 초층탑신석을 올려 놓았다

바위 안쪽을 파내어 만든 기단 면석 한 면이 직각을 이루지 못하고 일그러져 있는 점이 흥미롭다

 

 

 

 

충주 미륵리 오층석탑 / 보물 제95호

일반적인 탑의 모습과 비교할 때, 옥개석 너비가 탑신석에 비해 아주 좁고 낙수면의 기울기가 심하며

각 층의 체감율도 고르지 못해 투박하고 둔중한 느낌을 주고 있다

 

 

 

 

충주 미륵대원지 사각석등 /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315호

이 석등은 전형적인 양식에서 벗어나 특이한 결구 수법을 보여주는 석등으로

특히 석주형 화사석은 고려시대에 건립된 일부 석등에서만 채용된 기법으로 고려 수도인 개성 일대에서 확인되고 있다

개성에서 멀리 떨어진 중주지역에 4각석등이 세워졌다는 것은

석등양식이 지방으로 전파되는 과정을 이해하는데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특히 고려시대 절터에 통일신라시대에 유행한 팔각석등과 고려시대의 사각석등이 함께 세워져 있음은

통일신라문화와 고려문화가 공존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자료이다

 

 

 

 

충주 미륵대원지 석등 / 충청북도 유형문화제 제19호
전형적인 팔각석등으로 균형이 잘 잡힌 우수한 석등이다

하대석은 4각형이며 윗 부분에 연꽃을 새겼다

간주석은 아무런 무늬가 없는 팔각형의 돌기둥으로 상대석에는 앙련(仰蓮)을 조각하였다

그 위에 등을 설치했던 팔각형의 화사석(火舍石)이 있는데 4면에 화창(火窓)이 있고

화사석 위에는 팔각의 옥개석을 두고 그 위에 꽃봉오리 모양의 보주를 조각하였다

 

 

 

 

충주 미륵리 오층석탑 / 보물 제95호

충주 미륵대원지 사각석등이 옆에 있다

 

 

 

 

충주 미륵리 석조여래입상 / 보물 제96호

충주 미륵대원지 석굴의 본존불(으뜸가는 부처라는 뜻으로 석가모니불)이다

높이가 10.6m에 이르는 큰 불상으로 석굴(石窟)은 「Π」형이며

벽면에는 석굴암과 같이 조각상이 화려하게 장식되었을 것으로 짐작되나

화재로 인해 부조상의 일부만 남아 있어 원형을 확인하기 어렵다

*

전설에 따르면 신라의 마지막 왕인 경순왕의 왕자 마의태자가

나라의 멸망을 비통하게 여기며 이곳까지 와서 불상을 만들고 개골산(금강산)으로 들어갔으며

그 여동생은 제천 덕주사 마애여래입상(보물 제406호)을 만들었다고 한다

 

 

 

 

충주 미륵리 석조여래입상 / 보물 제96호

여래상의 얼굴과 손은 비교적 공을 들여 조각하였으나 다른 부위는 간략하게 조각하여 돌기둥을 보는 듯하다

얼굴은 상대적으로 입체적인 편인데 눈은 감고 있는 듯하며 눈썹은 반원형을 그리면서 코로 이어진다

머리는 나발과 팔각형의 보개로 표현되어 있으며, 보개 모서리에는 풍령을 고정하기 위해 철심을 박았다

양손은 가슴 앞에 두었는데 왼손에는 보주로 보이는 원형 지물(持物)을 들고 있다

하반신은 거의 돌기둥처럼 보이며 발은 반쯤 표현되었고 대좌는 복련좌이다

 

 

 

 

충주 미륵리 석조여래입상 / 보물 제96호

보개에서 대좌에 이르기까지 사용된 돌은 총 6매이다

절터를 발굴할 당시 출토된 기와 중에 彌勒(미륵)이 다수 찍혀 있는 것으로 볼 때

부처의 명칭은 미륵으로 생각되나 왼손에 보주를 들고 있는 미륵상은 전례가 없어 단정하기 어렵다

이 석불은 10m가 넘는 불상이지만 얼굴이나 손 부분만 강조하고

나머지는 간략하게 표현하는 등 고려 전기 거대 불상에서 보이는 특징을 보여 준다

 

 

 

 

제단

석조여래입상 앞에 있다

 

 

 

 

법당 석벽

법당의 규모는 면적 80.454㎡ · 길이 9.8m · 너비 10.75m · 높이가 10.6m의 석굴 형식으로

석불입상을 가운데 봉안하고 측면과 후면 석벽은 감실(龕室)처럼 만들어 작은 불상들을 부조하여 장식하였다

상부에는 목조건물을 지어 천장을 만들었던것으로 짐작된다

 

 

 

 

석상 부조

 

 

 

 

초석 · 석불 · 석수

어디에 있던 석물인지 법당 옆에 있다

 

 

 

 

박쥐봉

충주 미륵대원지 석등 · 충주 미륵리 오층석탑 너머로 보인다

 

 

 

 

충주 미륵대원지 석등 · 충주 미륵리 오층석탑

앞쪽 박쥐봉 · 용암봉 사이 닷돈재를 넘으면 덕주사가 있다

 

 

 

 

 

자연으로 돌아가는 나무

 

 

 

 

 

충주 미륵리 석조여래입상 · 충주 미륵리 오층석탑

폐사지 석물들이 앞에 있다

 

 

 

 

폐사지 석물

충주 미륵대원지 석조귀부가 아래로 보인다

 

 

 

 

충주 미륵대원지 석조귀부 /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69호
사찰의 남북 종축선에서 약간 왼쪽(동쪽)에 위치하여 북향하고 있으며

길이 605cm · 높이 180cm로 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거북모양 받침이다

앞쪽의 발은 비교적 사실적으로 표현하였으나 형식화 되었다

 

 

 

 

충주 미륵대원지 석조귀부 /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69호

귀갑문(龜甲文)은 생략하였으며 왼쪽 어깨 부분에 작은 거북 두 마리가 기어 올라가는 형태를 양각하였다

귀부의 등 가운데에 비좌가 있으나 비를 세울 수 있는 정도는 아니며

수차례 발굴조사에서 비석 조각조차 찾지 못했음을 볼 때 원래 비는 존재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탄항산

충주 미륵대원지 뒷산이다

 

 

 

 

충주 미륵대원지 당간지주

당간지주는 깃발(幢)을 매다는 장대(竿)를 고정하기 위한 장치로 보통 사찰 입구에 세워 신성한 지역임을 나타낸다

현재 지주와 간대(竿臺)로 보이는 석재가 남아 있는데 간대 윗 면에는 2중의 원각선을 양각하였다

지주는 아랫부분이 결실되어 전체 크기를 알 수 없으나 윗부분 바깥면에 6엽 연화문을 양각한 것은 희귀한 예이다

통일신라시대보다 상대적으로 폭이 넓고 높이가 낮은 고려시대 양식적 특징을 보여준다

 

 

 

 

충주 미륵대원지(忠州 彌勒大院址 사적 제317호)

 

 

 

 

충주 미륵대원지 안내도

*

2024. 05.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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