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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야기

종로구 창신동

동묘시장에서 약속이 있어 가까운 종로구 창신동을 걸었다

 

 

동묘앞 8번출구

시점이다

 

 

 

 

3대(代) 손바늘질 / since 1955

KBS · SBS · MBN ·  동아일보 ·  문화일보 ·  매일경제 등 매스컴에 소개되었다

 

 

 

 

백남준기념관

현대 예술가 백남준(白南準 1932~2006)의 삶과 예술을 기억하는 집이다

1932년 서울 종로에서 태어난 백남준은 1950년에 한국을 떠나 일본 · 독일 · 미국을 기반으로 활동하다가 2006년 미국에서 타계했다

그는 글로벌 유목민으로서 세계 각지를 누비며 살았지만, 한국에서 보낸 시간을 자신의 예술적 모태이자 사상적 기원으로 여겼다

*

서울시는 2015년 창신 · 숭인 도시재생 선도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지역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해

백남준이 1937년부터 1950년까지의 성장기를 보낸 창신동 197번지 일대 집터에 위치한 한옥을 매입했고, 이를 백남준기념관으로 조성했다

서울시립미술관이 조성과 운영을 맡아 기념관 건물의 리모델링과 콘텐츠 기획을 진행했으며

2016년 7월에 백남준기념관 조성사업의 출발을 알리는 발대식을 갖고, 2017년 3월에 개관했다

 

 

 

 

백남준 이야기 / 내일, 세상은 아름다울 것이다

백남준의 생각들을 공유함으로써 그의 삶과 예술에 대해 더욱 친근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기획된 스토리텔링 시리즈다

백남준 연구자를 비롯해 작가의 가족 · 친구 · 동료 예술가 등의 다양한 참가자가 구성해 나가는 서사를 선보인다

*

1984년 백남준의 한국 방문을 출발점으로 삼아 그의 예술 세계와 어린 시절 무의식 사이의 연결고리를 찾는다

백남준의 읽었던 책 · 들었던 음악 · 학창시절의 흔적 · 그가 남긴 드로잉과 메모 · 지인의 회고 등을 토대로 그의 예술세계의 원천을 탐구한다

 

 

 

 

백남준 버츄얼뮤지엄

백남준의 무한대 ∞ 시공간을 구현한 가상박물관이자 기념관의 활동자료에 대한 지속가능한 아카이브 기능을 수행하는 데이터뱅크다

6개의 멀티스크린패널과 백남준의 대표적 오브제인 아날로그 TV의 조합으로 이루어졌으며, 백남준에 대한 기본 정보와 관련 자료를 탐색할 수 있다

 

 

 

 

백남준의 방

백남준의 세계가 그의 유년 시절 · 지역성 · 아시아 문화의 전통과 맺고 있는 관계를 탐구하고자 별도로 편성된 복합설치 공간이다

백남준과 관련된 독특한 오브제들로 채워진 방에서 펼쳐지는 백남준의 말과 글은 현재 우리를 그의 시간에 더욱 가까이 데려갈 것이다

 

 

 

 

창신동 족발골목

 

 

 

 

이서진의 맛집

서울특별시 종로구 족발 / 보쌈 부분 1위 · 송가인이 극찬한 튀김족발 & 보쌈 안내가 있다

 

 

 

 

창신동 매운족발 본점

1980년 개업 후 2대째 운영중인 족발 전문식당이다

 

 

 

 

창신동 매운족발 본점

미니족발로 점심을 했다

 

 

 

 

서울의 밤

막걸리 판매점이다

 

 

 

 

창신동 봉제공장 골목

 

 

 

 

창신동라디오 덤으로 가는 길이다

 

 

 

 

창신동라디오 덤

 

 

 

 

창신동라디오 덤

나는 창신동에 살고 있다

 

 

 

 

서울성곽 낙산길

중앙성결교회 · 성터교회가 보인다

 

 

 

 

남산

롯데스카이파크 · 중앙성결교회가 보인다 

 

 

 

 

남산

두산타워빌딩 ·  롯데스카이파크가 보인다

 

 

 

 

매봉산

삼전솔하임 · 두산타워빌딩이 보인다

 

 

 

 

두산아파트 ·  삼전솔하임 보인다

 

 

 

 

고양이

안양암으로 가는 길이다

 

 

 

 

창신5길로 가는 골목이다

 

 

 

 

김광석 집터

김광석은 1964년 1월 22일 대구 중구 대봉동에서 태어났다
1969년 5살 때 서울 장충동으로 이사 온 그는 초등학교 2학년 때 창신동으로 이사했다

1996년 유명을 달리한 김광석의 유해는 서초동 수안사에 안치되었다가 아들을 가까운 곳에서 봉양하고 싶다는 모친의 뜻에 따라
창신동 안양암으로 옮겨져 음력 기일인 매년 11월 15일 그곳에서 추도식이 열렸다
이후 2009년 노원구 상계동의 청광사로 위패가 옮겨졌다

*

보라색 차양막이 있는 집이다

 

 

 

 

삼각산 안양암(三角山 安養庵 등록번호 제1-12호)

1889년(고종 26) 이성월(李性月) 스님이 창건했다

안양은 극락에 가기 위해 사람들이 거쳐야 하는 곳이 바로 「안양」이다

전통사찰 안양암의 최대 자랑은 조선시대 후기의 전각과 불화 · 불상 · 공예품 등이

고스란히 보존된 도심의 독보적인 귀중한 사찰로서 원형 그대로 남아 있는 사찰이다

화재로 소실된 산신각터 · 독성각터 · 강당터 · 종각터 · 사무실터 등은 복원정비사업으로 2022년부터 진행중이다

*

한국불교미술관의 별관으로 석감마애관음보살상 · 대웅전 아미타후불도 · 아미타괘불 · 지장시괘불 등

유형문화재와 문화재자료 18건 1560점을 소장하고 있다

 

 

 

 

안양암 마애관음보살좌상(安養庵 磨崖觀音菩薩坐像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122호)

바위 절벽에 관음전이라는 폭이 좁은 전실건물(前室建物)을 세우고 이 안에 앝은 부조로 감실을 마련한 후 관음보살좌상을 새겼는데

이는 전형적인 마애보살좌상이라 할 수 있다

 

 

 

 

안양암 뒷산이다

 

 

 

 

미니슈퍼

봉제공장이 옆에 있다

 

 

 

 

산마루놀이터

창신 · 숭인 도시재생지역 누리공간 사업의 일환으로 조성된 놀이터로 기존의 획일화된 놀이터에서 탈피

봉제산업의 메카인 창신동의 지역적 의미를 되살린 골무 모양의 건축물에 새로운 개념을 넣은 창의적인 놀이공간이다

정글집 · 모래놀이터 · 향토놀이터가 있다

 

 

 

 

창신동 돌산마을

창신동 낙산 줄기는 암석의 품질이 좋아 일제강점기 때 채석장으로 사용되었다

당시 일제가 경성을 대표할 서양 건축양식의 대형 건축물을 짓기 시작하면서 접근성이 좋은 이곳에서 화강암을 채취하였다

옛 서울역 · 한국은행 본점 · 옛 서울시청 · 조선총독부 건물이 창신동에서 채취한 화강암으로 지어졌다

해방 이후 채석장 사용은 중단되었고 1960년대 무렵 폐쇄된 채석장 자리에 사람들이 하나 둘 자리를 잡아 지금과 같은 마을을 이뤘다

 

 

 

 

창신동 텃밭

 

 

 

 

창신소통공작소

 

 

 

 

서울성곽 낙산길

 

 

 

 

남산

산마루놀이터 너머로 보인다

 

 

 

 

만물슈퍼

 

 

 

 

종로종합사회복지관

영화 「건축학개론」에서 정릉독서실로 나왔다

 

 

 

 

창신11길

 

 

 

 

고향땅 여기서 얼마나 되나

제주 1150리 · 광주 680리 · 대전 360 · 부산 830리 등이 새겨져 있다

*

창신쌈지마당에 있다

 

 

 

 

창신3동 절벽

 

 

 

 

카페 낙타

통일동산에 있는 채석장 전망대 카페다

 

 

 

 

창창찬청(蒼蒼餐廳)

전망이 좋은 중국식당이다

 

 

 

 

낙산길

 

 

 

 

창신동 안내지도

낙산삼거리 버스정류장에 있다

 

 

 

 

비우당(庇雨堂)
비우당은 「비를 가리는 집」이라는 뜻으로 조선시대 실학자인 지봉 이수광(芝峯 李睟光 1563~1628)이 살던 곳이다
낙산 동쪽 상산(商山)의 한 줄기인 지봉 아래 있었는데 이수광의 호 지봉이 여기에서 나왔다
원래는 창신동 쌍룡2차아파트 자리에 있었는데 서울시에서 낙산공원을 조성하면서 이곳에 복원하였다
조선 초기의 청백리로 명성이 높은 유관(柳寬 이수광의 외5대조)이 살았는데
지붕이 새자 손수 우산을 받치고 살면서 부인에게 "우산 없는 집은 어떻게 견딜꼬?"라 농담을 하였다는
유재상의 우산 유상수산(柳相手傘)이라는 고사가 생겼다

이곳은 외손인 이수광 집안으로 상속되었는데 그 집이 임진왜란 때 소실되자 이수광이 새로 짓고 그 이름을 비우당이라 하였다

「동원비우당기(東園 庇雨堂記)에 이러한 사연을 자세히 적었다

이수광은 비우당에 살면서 이 일대의 여덟 곳을 「비우당 팔경」이라 하고 시를 읊었다

동지세류(東池細流)에서 흥인문 바깥의 못가에 핀 버들이 봄바람에 버들개지 날리고 꾀꼬리가 지저귀는 모습을 노래하였으며

북령소송(北嶺蔬松)에서는 북악의 산마루가 낮에도 늘 어둑한데 푸른 솔 그림자가 집에 드리운 것을 보고 동량(棟梁)으로 쓰이지 못함을 안타까워하였고

타락청운(駝駱晴雲)에서는 아침마다 누운 채 낙산의 구름을 마주하면서 한가한 구름처럼 살고 싶다고 하였다

아차모우(峨嵯暮雨)에서는 아차산에서부터 벌판을 지나 불어오는 저녁비를 노래하였다

전계세족(前溪洗足)에서는 비가 오고 나면 벌판을 지나 불어오는 저녁비를 노래하였다

후포채지(後圃採芝)에서는 지봉과 상산의 이름에 맞추어 상산사호(商山四皓)처럼 살고 싶다 하였다

암동심화(巖洞尋花)에서는 복사꽃 핀 골짜기에서 나비를 따라 꽃을 찾아가는 풍류를 말하였고

산정대월(山亭待月)에서는 맑은 달밤 정자에 올라 술잔을 잡는 흥취를 말하였다

*

비우당이 있던 곳은 조선시대 자지동(紫芝洞)이라 불렀다

단종의 비 정순왕후(定順王后) 송씨(宋氏)가 폐위되어 영월로 간 단종을 기다리면서 이곳에 와서 빨래를 하였는데 그 위쪽에 거북바위가 있었다

정순왕후가 단종이 거북이를 타고 승천하는 꿈을 꾸었는데 아침에 보니 이 바위가 나타났다는 전설도 전한다

 

 

 

 

자주동샘

단종이 영월로 유배되고 궁에서 쫓겨난 단종비 정순왕후 송씨는 정업원에 머물면서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옷감에 물들이는 일을 했다

샘물 주변과 낙산 기슭에는 자지초(옷이나 손에 닿기만 해도 보라색 물이 들여지던 약초)가 지천에 있어

화강암 바위 밑에서 흘러나오는 샘물에 비단을 빨면 자주색 물이 들었다

이 샘물을 「자주우물」 · 「자주동샘」이라 했고

정순왕후가 염색된 옷감을 말리던 바위에는 자지동천(紫芝洞泉)이라고 새겨져 있다

 

 

 

 

자지동천(紫芝洞泉)

정순왕후 송씨는 이곳 자주동샘에서 염색한 비단으로 만든 댕기 · 저고리깃 · 고름 · 끝동 등을 시장에 내다 팔아 생계를 유지하며

이웃 여성들의 도움을 받아 82세까지 살았다

조정의 눈을 피해 정순왕후에게 먹을 것을 건네주고자 여성들만 드나들 수 있는 시장을 조직하기도 했던

평범한 이웃 여성들의 위대한 연대의 힘이 이곳에서 펼쳐졌다

 

 

 

 

여담재(예전 원각사)
단종의 넋을 천도하는 사찰이었는데 땅이 시유지인 관계로 사찰은 나가고

서울여성의 역사를 연구 · 기록하고, 전시 · 교육을 통해 성평등 문화를 확산하기 위해

 2020년 11월 서울시가 설립한 공간인데 2023년 문을 닫었다

 

 

 

 

여담재 현판

 

 

 

 

서울 여담재

비우당 옆이다

 

 

 

 

보문사로 내려가는 길이다

 

 

 

 

보문사

재건축 중이다

*

보문역에서 걷기를 마쳤다

 

 

 

 

걸은거리 5.4km · 소요시간 4시간 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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