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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야기

흥천사

흥천사(興天寺)는 1397년 정릉의 원찰(願刹)로 태조 이성계가 정성을 들여 건립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성계는 강씨 사망 후 직접 정릉 옆에 작은 암자를 짓고 행차를 조석으로 바쳤으며, 정릉의 아침 재 올리는 종소리를 듣고서야 수라를 들었다고 한다

정릉이 옮겨간 후에도 흥천사는 왕실사찰로 명맥을 유지하다 1510년(중종 5) 유생들이 일으킨 화재로 소실되었다

그 후 정릉 이장 당시 이 근처로 옮겨 온 스님들에 의해 법맥을 이어오다, 정릉이 복권되면서 신흥사(新興寺)로 개칭하고 지금의 위치에 가람을 지었다

1865년(고종 2) 흥선대원군 등의 시주를 받아 대방과 요사채를 짓고 이름을 다시 흥천사로 고쳤다

 

 

정릉(貞陵)과 흥천사(興天寺) 안내판

 

 

 

 

북악산로 터널

정릉에서 흥천사로 가는 길이다

 

 

 

 

흥천사 안내판

터널 안에 있는 안내판이다

 

 

 

 

흥천사(興天寺)

조선 태조의 비인 신덕고황후(神德高皇后) 강씨의 명복을 빌고 "온 세상을 흥하게 하겠다"는 원력으로 창건된 사찰로서 정릉의 능침사찰이다

*

대방(大房 큰방)이 가운데 있고 종각이 오른쪽 앞에 있다

 

 

 

 

흥천사 대방(大房 큰방) / 국가등록문화재 제583호 1865년(고종2)

흥천사 대방은 흥선대원군의 발원으로 1865년에 중창되었으며, 염불과 수행을 목적으로 한 공간과 승방 부엌 등의 부속 공간이 함께 있는 복합 건축물이다

불교건축에서 대방은 대중방의 의미이며, 사찰 내 스님들이 한 공간에서 좌선 · 설법 · 공양 등을 함께 할 수 있는 규모가 큰 공간이다

주불전인 극락보전 전면에 위치한 대방은 H자 형태의 독특한 평면 구조이다

대방의 규모는 몸채가 8칸 반이고, 전후면 2칸의 대보칸이 있으며, 후면 좌우측에 각각 도리칸 2칸 · 보칸 2칸의 누각(익루)이 있다

평면 구성은 중앙에 정면 4칸 · 측면 2칸의 큰 공간을 배치하고, 전후면 1/2칸 규모의 툇마루가 있어 개방감이 돋보이며, 우측과 후면에 승방이 있다

대방은 조선시대 말, 염불 수행과 다목적 공간의 필요에 따라 사찰의 여러 기능을 통합 수용하여

실용성과 합리성을 추구했던 그 시대의 특징이 잘 나타내는 건축물로써 건축사적 · 불교사적 의미가 있는 19세기 말 대표적인 불교건축물이다

지금의 흥천사 대방은 대한불교 조계종 제3교구 본사 신흥사 조실이신 설악산 무산 대종사 스님의 증명하에

불사도감 금곡정념 스님 주지 정관 스님의 원력으로 복원되었다

대방의 건립 시기는 사중에 보관 중인 현판 기문(京畿右道楊州牧地三角山興天寺寮舍重創記文)을 근거로 고종 2년에 중창된 것으로 판단한다

 

 

 

 

대방 주련 안내판

 

 

 

 

옥정루(玉井樓)

대방 오른쪽 누각(익루)에 걸려 있다

 

 

 

 

흥천사(興天寺)

대방에 걸려 있다

 

 

 

 

흥천사(興天寺)

대방에 걸려 있다

 

 

 

 

서선실(西禪室)

대방 만세루 옆면에 걸려 있다

 

 

 

 

종각(鐘閣)

이성계가 아침마다 종소리를 들었던 흥천사 대종(보물 제1460호)은 동대문(흥인문)을 거쳐 광화문 종루로 옮겼다가

일제 강점기에 창경궁으로 옮겼으며 지금은 국립중앙박물관 수장고에 있다

 

 

 

 

종각(鐘閣) 현판

 

 

 

 

참선 공간인 듯 출입금지 공간이다

 

 

 

 

흥천사 극락보전(興天寺 極樂寶殿) /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66호 · 1853년(철종4)
극락보전은 서방 극락세계에서 설법하고 있는 아미타불을 봉안한 법당으로 1853년에 구봉 계장(九峰啓壯) 스님이 건축하였다
규모는 정면 3칸 · 측면 3칸이며,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면서 장식을 겸하는 공포가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놓인 다포양식 건물이다
돌층계를 정면에 두고 기둥은 창방과 평방으로 결구하고 기둥 사이에도 전 · 후면에는 각 2구 · 측면에는 각 1구의 공간포를 두었다
정면 3칸에는 꽃살 창호를 달고 좌 · 우 뒷면은 판벽이며 내부바닥은 우물마루이고 천장은 가운데 우물천정을 두었다
문에는 화려한 꽃무늬가 조각되어 있고 가운데 두 기둥 위에 돌출 되어있는 용머리 장식이 특징이다
이 극락보전의 구조와 형태는 조선시대 말기의 전형적인 건축양식을 보여주는 것으로
19세기 사찰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는 화려한 목조 건축으로 뛰어난 건축 기술을 보여 주고 있는데
서울에서는 희귀한 사찰 건축이므로 매우 귀중하게 평가받고 있다

 

 

 

 

극락보전(極樂寶殿) 현판

 

 

 

 

극락보전(極樂寶殿)

서방 극락세계에서 설법하고 있는 아미타불을 봉안한 법당이다

 

 

 

 

흥천사 극락보전 신중도(왼쪽)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407호 · 흥천사 천룡도(가운데)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408호
신중도는 1885년 책임 화승 대허체훈(大虛體訓) · 보조 화승 긍법(肯法)이 그렸다
이들이 만세루에 봉안한 신중도(1890년 作)도 그린 것으로 추정한다

*

1898년 용담(蓉潭)이 초본을 그렸다. 신중도 가운데 천룡도 형식은 그 예가 많지 않다고 한다

 

 

 

 

극락보전(極樂寶殿) 탱화(幀畵)

왼쪽 그림은 조각 조각을 붙인 것 같다

 

 

 

 

극락보전 주련

 

 

 

 

용화전(龍華殿)
장차 용화세계에서 성불하여 중생을 교화하시게 될 미래의 부처님이신 미륵불을 모신 법당입니다

 

 

 

 

용화전(龍華殿) 현판

 

 

 

 

북극전(北極殿)

용화전 현판 옆에 있다

 

 

 

 

용화전 미륵불(龍華殿 彌勒佛)
장차 용화세계에서 성불하여 중생을 교화하시게 될 미래의 부처님이신 미륵불이다

 

 

 

 

흥천사 명부전(興天寺 冥府殿) /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67호 · 1855년(철종6)

명부전은 지옥에서 고통받는 중생을 구제해 주는 지장보살을 모신 법당으로 철종 6년(1855)에 순기 스님이 세웠으며, 고종 31년(1894)에 중수되었다
정면 3칸 · 측면 2칸 규모의 단층 목조건물로서 좌우에 풍판을 달았으며, 맞배지붕집이다
내부에는 살미첨차가 판형(版型)으로 운봉(雲峰)을 조각하였다
기둥 위에는 밖으로 용머리를 모양 있게 장식하였고, 안으로 용꼬리를 새겨 놓아 건물의 격을 높이고 있다

명부전은 옛 목조건물의 전통을 이어 받았으면서도 단순하고 소박하게 장엄된 법당으로, 조선 후기 사찰건축의 전형적인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명부전(冥府殿) 현판

 

 

 

 

지장보살

지옥에서 고통받는 중생을 구제해 주는 지장보살을 모신 명부전 안에는

지장보살상을 중심으로 무독귀왕 · 도명존자 · 시왕 · 판관 · 인왕상 등이 모셔져 있으며
그 뒷면 벽에는 지장보살의 모습이 담긴 불화와 시왕(十王)을 그린 불화가 걸려 있다
명부전에 모신 지장보살은 안락한 정토세계로 이끌어 주는 아미타부처를 가까이 모시는 협시보살이기도 하다

 

 

 

 

미륵불상

 

 

 

 

독성각 · 칠성각 · 산신각으로 가는 길이다

 

 

 

 

종무실

산신각으로 가며 봤다

 

 

 

 

산신각(山神閣)

개보수 중이다

 

 

 

 

독성각(獨聖閣)

일제강점기인 1933년 재건했다

 

 

 

 

흥천사(興天寺) 빗돌

삼각선원 · 느티나무 어린이집을 지나 후문 앞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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