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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야기

경춘선숲길

경춘선은 1937년 7월, 경성부 성동역과 춘천역을 잇는 노선 확정 · 1939년 7월 개통하였다

경춘선은 누구에게는 삶의 애환이 담긴 길이었고 또 누군가에는 낭만과 사랑이 깃들어 있는 추억의 길이었다

하지만, 지역주민들은 기찻길로 인해 소음과 이웃이 단절되는 불편도 많았다

이러한 경춘선이 72년간의 운행을 마치고 2010년 폐선되었으나 쓰레기, 불법주차 등으로 다시 몸살을 앓게 되었다

서울시는 방치되어 있던 경춘선 철길을 주민 여러분께 돌려드리고자

철로변 풍경과 추억을 느낄 수 있고 길과 사람을 잇는 「경춘선숲길」로 만들기로 결정하고

2013년 10월 착공하여 1단계(2015년) · 2단계(2016년) · 2017년 11월, 3단계 구간을 마무리하여 전 구간을 개원하였다

경춘선이 과거 단절되고 외면 받던 지역이었다면 이제는 지역과 주민을 연결하는 소통과 화합의 장이 되었으며 사람들이 찾아오는 활력의 장소가 되었다

*

경춘선숲길은 3개 구간, 총 길이 6.3km로 월계동 녹천중학교에서 담터마을까지다

폐철길을 이용해 공원길을 조성했다는 점에서 연남동 「경의선숲길」과 비교하기도 한다

*

이번엔 태릉을 가기 위한 걷기로 화랑대역에서 시작해 갈매역에서 마쳤다

 

 

화랑대역 3번출구

시점이다

 

 

 

 

새 조형물

옛 경춘선이 오가던 철로 변이다

 

 

 

 

나비 조형물

 

 

 

 

경춘선숲길 안내판

육사삼거리로 가는 철길 옆이다

 

 

 

 

노원불빛정원

비밀의 화원 · 불빛정원 · 은하수 정원 등 다양한 구간의 색다른 불빛의 향연이 펼쳐진다

오후 5시 30분 불이 켜진다

*

경춘선숲길 2구간 종점 · 3구간 시점이다

 

 

 

 

혀기1호

1951년부터 1973년 1월까지, 수원~남인천, 수원~여주 구간에서 운행하였던 협궤열차다

 

 

 

 

체코에서 온 T3 전차

전차는 작은 도서관으로 운영한다

앞쪽은 밤이면 불빛이 아름다운 정원이다

 

 

 

 

화랑대역 플랫폼

기차는 〈타임 뮤지엄〉으로 시간에 대해 이야기하는 박물관이다

타임뮤지엄은 시간의 탄생부터 아인슈타인의 시간 · 예술로 승화시킨 중세의 시간 · 현대작가의 눈으로 바라본 시간 등

시간(Time)을 주제로 한 재미있고 독특한 전시공간이다

 

 

 

 

화랑대역 / 등록문화재 제300호

화랑대역은 서울에 남아있는 보기 드문 간이역이다

1939년 건립되어 현존하는 간이역으로 건립 당시의 원형을 비교적 잘 유지하고 있어서 근대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가 크다

건립 당시 역명은 「태릉역」이었으나, 육군사관학교가 이전해 온 후, 1958년 화랑대역으로 바뀌었다

경춘선은 경춘철도주식회사에서 건립한 사설 철도이다

조선총독부가 강원도청을 철도가 이미 설치되어 있는 철원으로 이전하려 하자

이에 반발한 춘천의 부자들이 사재를 털어 서울에서 춘천까지 연결하는 철도를 만든 것이다

화랑대역은 성동역(지금 제기역 근처)에서 춘천역까지 연결되었던 경춘선 노선 중에서 서울에 위치한 마지막 간이역이다

철근콘크리트 구조의 역사 건물은 역무실과 대합실로 구성된 단순한 공간구조를 보여준다

비대칭 박공지붕이 특징적이며, 기차역사 정면과 철로변 쪽으로 나있는 출입구에 각각 포치(porch)를 두었다

 

 

 

 

93.5km 이야기

대망의 경성~춘천 간을 연결하는 총 길이 93.5km의 경춘철도의 개통 이야기다

 

 

 

 

화랑대역 마지막 역장 권재희 역장의 동영상

 

 

 

 

역장의 눈물

화랑대역 마지막 역장 권재희 역장이 사용하신 물품이다

 

 

 

 

화랑대역 상량묵서명

龍飛 檀紀 四二八二年 八月 十三日 乙亥 午時 立柱 上樑 應天上之三光 備人間之五福 鳳舞

(용비 단기 사천이백팔십이년 팔월 십삼일 을해 오시 입주 상량 응천상지삼광 비인간지오복 봉무)

용비(용이 날고 · 재액을 방지하는 의미) 단기 사천이백팔십이년 팔월 십삼일 을해 오시(단기 4282년 8월 13일(음력 7월 19일 오전 11시~오후 1시)

입주 상량(기둥을 세우고 대들보를 올리니)

응천상지삼광 비인간지오복(하늘에 계시는 세 빛 / 해와 달과 별 · 일원성신)은 응감하시어, 이 집의 인간들이 오복을 받게 하옵서소)

봉무(봉황이 춤추네 · 재액방지문)

*

1939년 준공 때의 것은 아니며 1946년 5월 국유화한 후 지붕공사를 할 때 올린 상량문으로 추정된다

광복 후에 일시적으로 사용하던 단기로 일시가 기록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히로시마항(広島港) 열차

 

 

 

 

노원기차마을

스위스의 아름다운 풍광을 배경으로 다양한 스토리를 가진 각종 디오라마와 철도가 결합된 동적 미니어처 전시관이다

미니어처 기차 · 자동차 · 자전거 등 전시관 내 각종 디오라마를 버튼을 이용해 직접 움직여 보고

스위스의 주요 랜드마크 건물들을 관찰해 보는 체험을 통해 스위스의 도시와 자연 · 기차의 작동원리 등을 보고 배울 수 있는 공간이다

 

 

 

 

지(智) · 인(仁) · 용(勇) 기념탑

육사 기념관이 있고 육사 졸업생 이름을 새긴 동판이 탑 1층 바깥에 있다

 

 

 

 

육군사관학교 옆이다

 

 

 

 

육군사관학교

 

 

 

 

버즘나무 길이다

 

 

 

 

경춘선숲길 옆 하천이다

 

 

 

 

태릉골프장

 

 

 

 

태릉 정문

 

 

 

 

조선왕릉 세계유산 빗돌

 

 

 

 

서울 태릉 · 강릉 안내판

 

 

 

 

조선왕릉전시관

국장 절차 · 조선 왕릉의 건설 방법 · 부장품 · 조선왕릉에 담긴 역사와 문화 · 산릉 제례를 포함한 왕릉 관리 등 상세한 사항과

왕과 왕비가 사망한 후 왕릉에 묻히기까지 국장 절차가 전시되어 있다

 

 

 

 

문석인(文石人) / 조선 18세기

무덤 앞에 세우던 돌 조각상으로 무덤 주인을 보좌하는 문인의 모습으로, 머리에는 금관을 쓰고 조복을 입고 있다

섬세한 조각 수법으로 얼굴에는 살아 있는 듯한 미소 띤 표정과 가지런한 수염을 표현했으며, 옷에는 입체적이고 정밀한 문양을 새겨 넣었다

장조(사도세자)의 생모 영빈 이씨의 무덤인 수경원과 장조의 융릉에 있는 석물과 견줄만큼 수준이 높고 규모도 매우 크다

이로 보아 18세기 중후반 왕실 중요 인물의 무덤에 두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옛 완친왕 묘 석물 · 신도비(舊 完親王 墓 石物 · 神道碑)

조선 26대 왕이자 대한제국 초대 황제인 고종과 영보당 귀인 이씨의 아들 완친왕(1869~1880)의 옛 무덤에 있던 석물이다

완친왕은 고종의 첫째 아들로 1868년(고종 5)에 태어나 9세에 완화군에 봉해졌고 1880년(고종 17)에 천연두를 앓아 1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대한제국 선포 후 1907년(융희 1)에 완친왕으로 추봉되었다

묘는 처음에 양주 남쪽 월곡(지금의 서울 성북구 하월곡동)에 만들어졌다가 광복 후 도시화 개발로 경기도 고양시 서삼릉으로 옮겨졌다

문석인은 미소를 짓고 있으며, 머리에 금관을 쓰고 조복을 입었다

장명등과 망주석은 모두 사각형 받침돌에 구름 모양의 다리가 장식되어 있다

무덤의 주인과 제작 연대가 알려진 왕실 무덤 석물의 드문 예로 형식적이고 화려한 19세기 후반 무덤 석물의 특징을 잘 보여 준다

 

 

 

 

완친왕 신도비(完親王 神道碑)

완친왕의 생애를 기록하여 무덤에 세웠던 신도비이다

묘비 제목은 '왕자 완화군 증시 효헌공 신도비(王子 完和君 贈諡 孝憲公 神道碑)'로 완화군은 왕친왕이 세상을 떠날 당시의 봉호이고 · 효헌은 시호이다

전서체로 쓴 제목은 조경호의 글씨이고, 비문은 조성하가 지었으며, 글씨는 이재면이 썼다

비문에는 완화군이 사망하여 3월 9일에 왕성 동쪽 월곡에 무덤을 만들었다는 내용과

완화군이 효성스럽고 자질이 탁월했으나 일찍 죽어 왕실에서 매우 슬퍼하였음이 기록되어 있다

곳곳에 남아 있는 총탄 흔적은 한국전쟁 때 생김 것으로 추정한다

 

 

 

 

도깨비상 빗돌

 

 

 

 

금천교(禁川橋)

속세와 성역의 경계 역활을 하는 다리다

 

 

 

 

홍살문(紅箭門)

신성한 장소를 보호하는 구실을 하며 주로 사당이나 관아 · 향교 · 서원 · 왕릉 등에 세웠다

대개 붉은 칠을 한 둥근 기둥 두 개 위에 가로대를 놓고 화살 모양의 나무살을 가로대 위에 꽂으며 가운데에는 태극 문양과 삼지창 장식을 하였다

 

 

 

 

판위(板位)

왕이 능이 있는 구역에 들어서면서 경건한 마음으로 기다리는 공간이다

 

 

 

 

향로(香路) · 어로(御路)

향로는 제향을 지낼 때 제관이 향과 축문을 들고 가는 길 · 어로는 왕이 제향을 올릴 때 다니는 길이다

 

 

 

 

정자각(丁字閣)

왕릉에서 제향을 지내는 건물로 침전이라고도 한다

정자각은 제향 음식을 차려 놓는 정전과 제례를 올리는 배위청이 합쳐져 있는데 건물 위에서 내려다본 모양이 丁(정) 자와 같아 정자각이라 불렀다

왕릉에는 왕과 왕비를 함께 모신 경우에도 정자각은 하나를 세우고 제향을 함께 지냈다

대한제국 때는 침전 안에 집 모양 장식인 당가를 설치하면서 건물의 규모를 늘려, 건물 모양이 '一(일)'자형으로 바뀌었다

 

 

 

 

봉분

정자각을 통해 보인다

 

 

 

 

진설도(陳設圖) · 기신제(忌晨祭) 순서 사진

 

 

 

 

신계(神階) · 어계(御階)

월대(月臺)는 궁궐의 정전 · 향교와 같은 주요 건물 앞에 설치하는 기단이다

 

 

 

 

홍살문 · 어로(御路) · 향로(香路)

 

 

 

 

신교(神橋) · 신로(神路)

정자각 뒤에서 능상으로 향하는 왕의 혼을 위한 길이다

 

 

 

 

비각

왕릉에 모신 왕과 왕비의 생애와 업적을 적은 비석인 신도비나 표석을 보호하기 위해 세운 건물이다

보통은 정면 1칸의 작은 건물이지만 비석 수가 늘어나면 칸 수를 늘려 짓기도 했다

 

 

 

 

조선국문정왕후태릉 표석(朝鮮國文定王后泰陵 表石)

문정왕후 윤씨(1501~1565)는 파산부원군 윤지임의 딸로 1515년 중종의 두 번재 왕비인 장경왕후가 세상을 떠나자

1517년(중종 12)에 왕비로 책봉되었고, 중종과의 사이에서 명종 등 1남 4녀를 낳았다

1545년 아들 명종이 인종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르자 8년간 수렴천정을 하였다

수렴청정이 끝난 후에도 계속 문정왕후의 외척들이 정사를 좌우하였다

문정왕후는 또 불교에 관심을 두어 과거를 통해 승려를 뽑는 승과를 부활시키는 등 불교를 크게 후원하였다

65세의 나이로 창덕궁 소덕당에서 세상을 떠났다

*

태릉의 표석은 영조 29년(1753)에 조성하였다

표석 앞면은 홍계희(洪啓禧)의 필체이며, 뒷면의 비문은 낙풍군 이무(洛豊君 李楙)가 썼다

 

 

 

 

수복방

능을 지키는 수복들이 머무르는 건물이다

*

맞은편 수라간은 아직 복원되지 않았다

 

 

 

 

예감(叡感)

제향을 지낼 때 사용한 축문을 태우는 곳이다

 

 

 

 

소나무 숲

태릉 왼쪽에 위치한 소나무 숲길은 총 연장 340m로 평지에 자리하고 정취가 있는 소나무 숲이다

소나무는 나무 중 유일한 십장생으로 영원성을 상징한다

또한 대표적인 장수식물이며 나무 자체가 그윽한 자태를 지녀 능역 주변에 심었다

*

태릉으로 오르는 길로 통제구역이다

 

 

 

 

태릉 곡장

태릉 뒤쪽에 살짝 올라선 부분이 보인다. 그 앞쪽에 능묘를 만든다고 한다

 

 

 

 

태릉 봉분

원래 문정왕후는 남편 중종의 능인 정릉을 현재의 서울 강남으로 옮기고 자신이 세상을 떠난 후 그 곁에 같이 묻히기를 원했다

그러나 옮긴 정릉이 비가 오면 침수 피해를 입는 일이 잦아 문정왕후가 세상을 떠난 후 그곳에 능을 쓸 수 없어 현재의 자리에 능을 조성했다

태릉 봉분에는 병풍석과 난간석을 둘렀다

 

 

 

 

장명등(長明燈)

어두운 사후세계를 밝힌다는 뜻의 석등이다

 

 

 

 

석상(혼유석)

왕의 혼이 노니는 곳이다

 

 

 

 

병풍석(屛風石)

방위에 맞게 십이지신상(十二支神像)과 글자를 함께 새겼다

 

 

 

 

망주석(望柱石)

멀리서도 능임을 알 수 있게 봉분 좌우에 세우는 돌기둥이다

 

 

 

 

망주석 귀이

귓불에 귀고리 구멍이 있다

세호(細虎)가 새겨지기 전에 새겼던 문양이다

세호는 왕릉이나 고관대작 무덤 앞에 세우는 망주석에 새겨 넣는 동물 문양이다

새겨지는 동물은 상상 속의 동물로 나쁜 액운을 막아주고 잡귀를 쫒아내는 역할을 한다

일반적으로 두 개의 기둥 중 하나는 올라가는 형상, 다른 하나는 대개 내려가는 형상을 새긴다

 

 

 

 

석호(石虎)

왕릉을 지키는 호랑이 모양의 석물이다

 

 

 

 

석양(石羊)

왕릉을 지키는 양 모양의 석물이다

 

 

 

 

문석인 · 무석인 · 석마

석마는 문석인과 무석인 뒤나 옆에 있는 말 모양의 석물이다

 

 

 

 

문석인(文石人)

관복을 입고 왕을 보좌하는 문인 모습의 석물이다

문석인과 무석인 등의 석물은 다른 능에 비해 크기가 장대한 조선 중기의 특징을 보인다

 

 

 

 

무석인(武石人)

갑옷을 입고 왕을 호위하는 무인 모습의 석물이다

 

 

 

 

정자각(丁字閣)

능 앞에서 봤다

 

 

 

 

능의 부장품들을 묻었던 곳 같다

 

 

 

 

경춘선 숲길

태릉을 보고 다시 왔다

 

 

 

 

자전거길과 만나는 곳이다

이곳 벤치에서 다시 이동식을 했다

 

 

 

 

경춘선숲길 종점

아파트 공사로 경춘선 자전거 길은 막혔다

마침점인 갈매역으로 가기 위해 우회했다

 

 

 

 

경춘선숲길 안내도

 

 

 

 

갈매역으로 가며 돌아 봤다

 

 

 

 

갈매동 재개발지역

갈매역으로 가는 길인데 재개발로 거의 모든 건물이 비어 있다

 

 

 

 

금강주류

 

 

 

 

갈매제일교회

갈매역 앞에 있다

 

 

 

 

건설 중인 아파트단지

 

 

 

 

갈매역

마침점이다

 

 

 

 

걸은 거리 8.3km · 소요시간 4시간 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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