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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야기

심훈문학길

심훈은 경기도 시흥군 북면 노량진리 검은돌집(현 서울 동작구 흑석동)에서 1901년 태여났다

소설 〈상록수〉 · 시 〈고향이 그리워도〉 · 영화 〈먼동이 틀 때〉를 직접 원작 · 각색 · 주연 · 감독한 영화인이자 독립운동가였다

그는 3 · 1운동에 참여하여 투옥과 함께 퇴학당한 후 중국으로 망명하여 수학하다가 1923년 귀국했다

*

심훈문학길은 용양봉저정 앞 한강변에서 효사정으로 이어지는 길에 있다

 

 

심훈 상

효사정 아랫쪽에 있다

 

 

 

 

동작구 출생 문학가 심훈 · 인생 전반부 · 중반부 · 후반부 안내판

 

 

 

 

동작구 출생 문학가 심훈 안내판

심훈은 경기도 시흥군 북면 노량진리 검은돌집(현 서울 동작구 흑석동)에서 1901년 태여났다

또한 그는 인생의 상당부분을 이곳 흑석동에서 살았다

심훈이 태여난 곳은 천주교 흑석동성당 자리로 흑석동성당에는 「심훈생가 터」표석이 있다

1930년 3 · 1만세운동 11주년을 기념해서 지은 항일 저항문학인 시집〈그날이 오면〉에는 고향 흑석리를 그리워하는 시 〈고향이 그리워도〉가 실려있다

 

 

 

 

심훈의 인생 - 전반부

심훈의 탄생과 성장 / 1901 ~ 1919

1901년 9월 12일, 심훈은 경기도 시흥군 북면 노량진리 검은돌집(현 서울 동작구 흑석동)에서

아버지 심상정과 어머니 해평 윤씨 사이에서 3남 1녀 중 막내로 출생하였으며, 본명은 심대섭, 호는 해풍(海風)이다

아버지 심상정은 은로보통학교 교장과 신북면장을 역임했고, 외조부 윤현구는 조선말 3대 문장가인 윤희구의 막내로 시, 문, 화에 능했다

큰형 심우섭은 희문의숙 1회 졸업생으로,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의 기자와 경성방송국 과장을 역임하였다

작은형 심명섭은 동경 청신학원을 졸업했고, 심훈의 미완성 소설 〈불사조〉를 완성하고, 시집 〈그날이 오면〉을 발간하였다

*

3 · 1운동 참여와 수감 / 1919

1915년, 심훈은 서울 교동보통학교 졸업 후 경성고등보통학교(현 경기고)에 입학하고, 1917년 3월 왕족 이해영과 결혼하였으며

학교에서 일본 수학선생의 민족차별에 대한 항거로 시험 때 백지를 내어 과목 낙제로 유급되기도 하였다

1919년, 심훈은 경성고등보통학교 4학년 때 3 · 1운동에 참가하여 3월 5일 투옥되었다가 11월에 출감하였으며

이 때 〈감옥에서 어머님께 올리는 글월〉을 썼는데 이 편지는 문인으로서의 심훈의 민족의식을 나타낸 첫 작품이기도 하다

 

 

 

 

심훈의 인생 - 중반부

좌절과 극복 / 1920~1924

1920년, 중국으로 망명 유학길을 떠나, 여러 우국지사들과 수개월간 교우하며

1921년 북경에서 상해 · 남경 등을 거쳐 항주의 지강대학에 입학, 수학하기도 하였다

특히 심훈은 우당 이회영의 집에서 2개월여를 지냈는데, 이회영은 1930년대 초반까지 국내 및 만주와 중국본토 등지에서 독립운동을 한 대표적인 사람이다

민족주의와 학구열이 왕성한 19세의 심훈과

인격과 학식을 갖추고 민족독립운동을 위하여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 53세의 완숙한 경지에 달한 이회영과의 만남은

훗날 심훈이 민족적 애국주의 시와 농민소설을 집필하는데 중요한 사상적 토양이 되었으리라 보인다

*

문학인 그리고 영화인

1923년, 중국에서 지강대학을 중퇴하고 귀국 후 동아일보, 조선일보 기자와 학예부장을 역임하였다

이 시기에 이해영과 이혼하고 〈미인의 한(恨)〉이란 외국 장편소설의 후반부를 번안하여 연재하였고

영화 〈장한몽(長恨夢)〉 주역인 이수일 역의 후반부를 대역하기도 하였다

1926년에는 최초의 영화소설〈탈춤〉을 동아일보에서 34회에 걸쳐 연재를 하였다

1927년 마침내 영화 〈먼동이 틀 때〉를 직접 원작 · 각색 · 감독하여 단성사에 개봉하였는데

이 영화는 당시 〈아리랑〉에 이어 한국영화 개척기의 또 하나의 명작이라 일컬어졌다

〈먼동이 틀 때〉는 매우 사실적이고도 인물의 묘사가 극명하여 무성영화시대 한국영화의 대표적인 작품의 하나로 꼽힌다

심훈은 수많은 시나리오와 영화평론을 많이 남겼지만 직접 감독한 작품은 아쉽게도 〈먼동이 틀 때〉 한 편에 그쳤다

 

 

 

 

심훈의 인생 - 후반부

영화저널가 그리고 희망의 빛 / 1928~1931

1927년 봄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 일활촬영소에서 영화를 공부하다가 6개월만에 귀국하여

일제의 검열이라는 제한적인 글쓰기가 형성되어가는 암울한 분위기에서도 심훈은 1928년 기자로 입사하여 여러 편의 영화논평을 작성한다

당진, 농촌에서 희망을 찾다 / 1932~1936

1932년 일제의 탄압으로 부모님이 살고 있던 당진으로 이사하여 창작활동에 전념하였으며

봄의 서곡 〈영원의 미소〉(1933)을 발표하고, 〈직녀성〉(1934)을 조선일보에 연재하여

그 고료로 부곡리에 집을 지어 필경사(筆耕舍)라 불렀으며, 농촌생활의 어려움을 통해 희망을 찾는 노력을 하였다

심훈 선생은 1936년 8월 16일 베를린올림픽 마라톤에서 손기정 선생의 우승에 감격하여 〈오오, 조선의 남아여!〉라는 즉흥시로 마지막 글을 남겼다

이후 상록수 출판 관계로 상경했다가, 당시 전국적으로 퍼진 장티푸스에 걸려 9월 16일 36세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심훈의 시 「그날이 오면」  빗돌

심훈 상 아래 쪽에 있다

 

 

 

 

심훈 가계도

1901년 9월 12일, 경기도 시흥군 북면 흑석리(현 서울 동작구 흑석동)에서 아버지 심상정과 어머니 해평윤씨 사이에서 3남 1녀 중 막내로 출생하였다

본명은 심대섭 · 호는 해풍(海風)이다

 

 

 

 

심훈의 탄생과 성장 / 1901~1918 · 3 · 1운동 참여와 수감 / 1919 · 좌절과 극복 / 1920~1924

문학인 그리고 영화인 / 1925~1927 · 영화저널가 그리고 희망의 빛 / 1928~1931 · 당진, 농촌에서 희망을 찾다 / 1932~1936

 

 

 

 

심훈의 탄생과 성장 / 1901~1918

본명 심대섭(沈大燮) ·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 · 소설가 · 시인 · 언론인 · 영화인으로

1926년 동아일보에 영화소설 「탈춤」을 연재할 때부터 쓰기 시작한 필명이 훈(熏)이다

*

심대섭의 성장 이야기

일본인 선생의 모욕적 언사에 반항하기 위해 수학 시험에 백지를 냄으로써 과목낙제로 유급 당함

당시 급우로 외사촌인 동요작곡가 윤극영과 교육자 조재호 · 박열과 박헌영이 있다

 

 

 

 

1901년 9월 12일

경기도 시흥군 북면 흑석리 / 검은돌(현 서울 동작구 흑석동) 출생

호는 삼준 · 삼보 · 금강생(金剛生) · 해풍(海風) · 백랑(白浪) 등이 있다

*

1915년

서울 교동보통학교 졸업 · 경성고등보통학교(현 경기고) 입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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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7년

왕족 이해영과 결혼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옛 경기고등학교)

재학 시절 심훈과 당시 급우로 외사촌인 동요작곡가 윤극영 · 박열 · 박헌영이 있다

 

 

 

 

3 · 1운동 참여와 수감 / 1919

경성고등보통학교(현 경기고등학교) 3학년 재학시

3 · 1운동에 참여로 3월 5일 붙잡혀 8개월간 서대문형무소에 투옥되었고 학교로부터 퇴학을 당했다

투옥 중 「어머님께 올리는 글월」을 지었다

 

 

 

 

좌절과 극복 / 1920~1924

1920년 국문학자 이희승에게서 한글 맞춤법을 배웠다

*

1920년 중국으로 망명하여 중국에 있는 동안 우당 이회영 · 단재 신채호 · 석오 이동녕 · 성재 이시형 등과의 교류를 통해 많은 감회를 받았으며

엄항섭 · 유우상 · 정진국 등 임시정부의 청년들과도 가깝게 지냈다

시 「박군의 얼굴」의 박헌영과도 상해에서 조우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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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 항주 지강대학 국문학과 입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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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 중국에서 귀국후 「극문회(劇文會)」 조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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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4년 이회영과 이혼 · 동아일보 사회부 기자로 입사하였다

 

 

 

 

문학인 그리고 영화인 / 1925~1927

1925년 영화 〈장한몽(長恨夢)〉 주역인 이수일 역의 후반부에 출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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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에는 최초의 영화소설〈탈춤〉을 동아일보에 연재 · 필면 훈(熏)을 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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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 철필구락부 사건으로 동아일보사 퇴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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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 4월 29일 순종(융의황제)의 국장이 준비되고 있는 돈화문 앞에서 「통곡 속에서」를 지었고

5월 16일자 시대일보에 발표하였다

*

1927년 일본유학 · 영화수업을 받았다

귀국 후 영화 〈먼동이 틀 때〉를 직접 원작 · 집필 · 각색 · 주연 · 감독으로 제작하여(제작사 계림영화협회)

10월 26일 단성사에서 개봉하였다

 

 

 

 

영화저널가 그리고 희망의 빛 / 1928~1931

1928년 조선일보사 입사 · 1930년 안정옥과 혼인 · 1930년 3월 1일 「그날이 오면」 집필

1930년 장편소설 「동방의 애인」 · 「불사조」를 조선일보에 연재(검열에 걸려 중단)

1931년 조선일보를 사직하고 경성방송국 문예담당으로 잠시 들어갔다가 사상문제로 퇴직했다

*

그날이 오면

심훈 선생의 대표적인 시로 선생이 1932년 시집을 발행하려고 하였지만

일제는 비위에 거슬리는 내용을 빨간색으로 표시하였고 '삭제' 도장을 찍어 출판 허가를 하지 않았다

 

 

 

 

당진, 농촌에서 희망을 찾다 / 1932~1936

1932년

부모님이 살고 계신 충청남도 당진으로 낙향

시집 「그날이 오면」 출간하려다 검열로 인해 무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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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3년

장편소설 「영원의 미소」(7월 10일부터) 조선중앙일보에 연재

8월 조선중앙일보 학예부장으로 취직하여 상경하였으나, 다시 당진으로 이사

1934년

장편소설「직녀성」 조선중앙일보에 연재

당진에 「필경사(筆耕舍)」 자택을 설계 건축하였다

*

1935년 8월

장편소설 「상록수」 동아일보에 당선 · 이때 받은 상금 일부를 야학당에 후원하였다

*

1936년 1월

단편소설 「황공의 최후」 [신동아]에 발표했다

*

1936년 8월

「오오, 조선의 남아여!」 발표

*

1936년 9월

장티푸스로 인해 36세로 사망

 

 

 

 

심훈의 글

필경 · 오오, 조선의 남아여! · 상록수 · 감옥에서 어머님께 올린 글월 · 첫눈 · 조선의 영웅 등이 있다

 

 

 

 

필경 / 1930. 7

 

 

 

 

오오, 조선의 남아여! / 1936. 8. 10 새벽 신문호의 뒷장에 쓴 절필

 

 

 

 

상록수

 

 

 

 

감옥에서 어머님께 올린 글월 / 1919. 8. 29

1919년, 심훈은 경성고등보통학교 4학년 때 3 · 1운동에 참가하여 3월 5일 투옥되었다가 11월에 출감하였으며

이 때 〈감옥에서 어머님께 올린 글월〉을 썼는데 이 편지는 문인으로서의 심훈의 민족의식을 나타낸 첫 작품이기도 하다

 

 

 

 

부곡리 공동경작회의 모습 사진

조선의 영웅

살살 입살발림만 하고 턱 밑의 먼지만 톡톡 털고 앉은 백 명의 이론가, 천 명의 예술가보다도 우리에게는 단 한 사람의 농촌 청년이 소중하다

시래기죽을 먹고 겨우내 「가갸거겨」를 가르치는 것을 천직이나 의무로 여기는 순진한 계몽운동자는, 조선의 영웅이다

 

 

 

 

통곡 속에서 / 1926. 4. 29

 

 

 

 

그날이 오면 / 1930. 3. 1

 

 

 

 

어린이 날 / 1929. 5. 5 어린이날에

 

 

 

 

야구 / 1929. 6. 10

 

 

 

 

야구 · 어린이 날 · 거리의 봄 · 그날이 오면 · 통곡 속에서 · 눈밤 등이 있다

 

 

 

 

심훈의 어릴적 사진 · 심훈의 조카

 

 

 

 

서울 검은돌집 사랑 앞에서

심훈은 왼쪽 세번째이다

 

 

 

 

심훈과 조카

 

 

 

 

판결문 / 1919. 11. 6 경성지방법원

1919년 3 · 1만세운동으로 체포되어 재판을 받은 심훈 선생의 판결문이다

*

심훈씨 영면(沈熏氏 永眠)

1936년 그의 죽음을 다룬 신문기사인데 요즘 문체와 상당히 다르다

 

 

 

 

1927년 영화 「먼동이 틀때」의 한 장면

*

1930년 시 「그날이 오면」 검열본

 

 

 

 

단장이수(斷腸二首)

그날이 오면 심훈

 

 

 

 

효사정 문학공원 안내판

 

 

 

 

효사정 문학공원

 

 

 

 

심훈 생가 터 빗돌

명수대성당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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