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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야기

강화향교

강화향교(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34호)는 고려 인종 5년(1127) 내가면 고천리에 세워졌다
그 후 여러 차례 옮겨지고 복원되었는데, 지금 있는 위치는 영조 7년(1731) 유수 유척기(兪拓基)가 옮긴 것이다
남아 있는 건물로는 제사 공간인 대성전과 동무 · 서무, 교육 공간인 명륜당을 비롯해 여러 부속 건물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 · 노비 · 책 등을 지원 받아 제사와 교육의 기능을 담당했으나
갑오개혁이후 교육 기능은 사라지고 제사의 기능만 남게 되었다

홍살문
하마비(下馬碑)가 앞에 있다

 

 

유수 민진원 공덕비 · 유수 이용희 기적비 · 전교 윤태선 · 전교 유진국 · 전교 이서성 공적비
향교 외삼문 옆에 있다

 

 

민진원 공덕비(閔鎭遠功德碑)
1863년(철종 14) 건립된 비로 전체 높이 122cm · 비신 높이 98cm · 폭이 41cm · 두께가 28cm이다
행유수민공진원적덕휼민영세불망비공륜상세민유적표(行留守閔公鎭遠積德恤民永世不忘碑公輪常稅民有積)라고
비 앞면에 새겨져 민진원의 공덕을 기리고 있다
이 비는 1706년 강화유수로 있을 때 세금을 삭감해주고, 선두포 둑을 쌓는 등 짧은 시간에 많은 치적을 남겨 그 공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것이다

 

 

유수 이용희 중수문묘기적비(留守李公容熙重修文廟紀績碑)
이용희가 강화유수로 부임하여 3개월의 공사기간을 거쳐 문묘를 보수해 놓으니
“몇 길의 담장과 삼문(三門)의 사표(師表)가 혁혁하게 사람들의 이목을 비쳤다”고 했다
이용희는 조선 후기의 무신으로 자는 공습(公習), 호는 기원(淇園)이다
이용희는 1876년 강화도조약체결 당시에는 김병학(金炳學) · 홍순목(洪淳穆) · 양헌수(梁憲洙) 등과 함께
조정에서 개국을 반대하는 보수적 쇄국척화론을 고수하기도 했다
이 비는 1869년 그가 진무사로 강화에 있을 때 문묘를 중수한 공적을 기려 유생들이 세운 것이다
비의 전체 높이 158cm · 폭 45cm · 두께 22cm로 1870년에 제작되었다

 

 

외삼문

 

 

중문

 

 

동재(東齋)

 

 

동재(東齋) 편액

 

 

서재(西齋)

 

 

서재(西齋) 편액

 

 

중문
내삼문 앞에서 봤다

 

 

내삼문
대성전으로 드는 문이다

 

 

대성전(大成殿)
5성(五聖), 우리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대성전(大成殿) 현판

 

 

대성위(大聖位 · 공자)
5성(五聖) · 우리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아성공(亞聖公 · 맹자) · 종성공(宗聖公 · 증자)
문충공 정몽주(文忠公 鄭夢周) · 문정공 김인후(文正公 金麟厚) · 문헌공 정여창(文獻公 鄭汝昌) 등
우리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가 좌우에 봉안되어 있다

 

 

복성공(復聖公 · 증자) · 술성공(述聖公 · 자사)
문성공 안유(文成公 安裕) · 문원공 김장생(文元公 金長生) · 문경공 김집(文敬公 金集) · 문성공 이이(文成公 李珥) 등
우리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가 좌우에 봉안되어 있다

 

 

동무(東廡)

 

 

동무(東廡) 편액

 

 

서무(西廡)

 

 

서무(西廡) 편액

 

 

내삼문
대성전 앞에서 봤다

 

 

명륜당(明倫堂)

 

 

명륜당(明倫堂) 편액

 

 

하마비
예전에 쓰던 빗돌이다

 

 

유구(遺構)
예전 건물의 주춧돌 · 구들고래 등이 있다

 

 

구들고래
명륜당 뒤편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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