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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야기

외씨버선길 2길(슬로시티길)

외씨버선길은 경상북도 청송군의 주왕산국립공원부터

영양군 · 봉화군과 강원도 영월군의 관풍헌까지 4개 지역 총 길이 240km를 연결하는 문화생태탐방로다

「외씨버선」은 조지훈 시인의 「승무」에서 따온 말로 「오이씨처럼 볼이 조봇하고 갸름하여 맵씨가 있는 버선」이라는 의미이다

*

외씨버선길 2길(슬로시티길)은 소헌공원을 시점으로

청송재래시장 · 송소고택 · 중평솔밭 · 소망의 돌탑 · 청송한지체험장까지 총거리 11.5km · 소요시간 4~5시간의 길이다

 

 

청송성당 성모자상

외씨버선길 2길을 걷기 전 베나르님과 기도를 올렸다

 

 

 

 

용전천변 주차장

오늘도 이곳에 주차하고 2길을 떠났다

 

 

 

 

찬경루(讚慶樓)

소헌공원이 1길 마침점 · 2길 시점이다

 

 

 

 

윌리엄 텔의 사과 형상

용전천변 공원이다

 

 

 

 

느티나무 보호수

나무 높이 11m · 가슴높이 지름 102cm · 가슴높이 둘레 322cm · 나이 232년 · 지정일자 1981년 7월 3일

 

 

 

 

왕버들 보호수

옛날 300년 전 조선중기 용전천 강가 마을에 살던 남녀가 따뜻한 봄날이면 왕버들이 자라는 강가에서 몰래 사랑을 키우며 장래를 기약하였으나

신분의 차이로 사랑을 이루지 못한 한이 왕버들로 다시 환생하였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으며

두 그루의 왕버들이 마치 한 나무처럼 보이는 것은 못 다 이룬 사랑을 다시 꽃피우고자 하는 애절함이 서려있는 왕버들로

최근 연인들의 사랑을 확인하고 기약하는 장소로 알려지고 있다

*

나이 300년 · 지정일자 2013년 7월 11일

 

 

 

 

왕버들 · 현비암

전설에 따르면 이곳 현비암 아래 용전천에는 오랜 세월 공덕을 쌓은 용이 하늘로 치솟아 오를 때에

이른 새벽 빨래하러 왔던 한 아낙이 이 모습을 보고 놀라 고함을 지르는 대신 용이 하늘로 잘 올라가도록 기도를 하였다고 한다

이에 고마움을 느낀 용이 하늘로 올라갔다가 도로 내려와 이곳에서 사람들을 잘 보살펴 주었다고 한다

이에 처음 이 바위는 마치 용이 날아가는 모양이라 하여 용비암(龍飛岩)이라 불리었고

뒷날 이 바위의 기운으로 조선 제4대 세종대왕의 비인 소헌왕후가 탄생하였다 하여 나타날 현(顯)을 써서 현비암(顯妃岩)으로도 불리게 되었는데

소헌왕후가 매우 어질다 하여 지금은 어질 현(賢)의 현비암(賢妃岩)으로 부르고 있다

 

 

 

 

현비암(賢妃岩)

조선 왕비 중 가장 어질었다는 소헌왕후는 청송심씨인데 슬하에 8명의 왕자와 2명의 공주를 두었으며

그 후손들이 조선왕조의 기틀을 형성하고 500년 왕조를 유지하였다

그 뒤에도 이 바위의 기운으로 조선 제13대 명종의 비인 인순왕후 · 제20대 경종의 비인 단의왕후 등

두 사람의 왕비가 더 나왔다

 

 

 

 

월막교

역시 사과 형상이 있다

 

 

 

 

용전천

월막교를 건너며 내려다 봤다

외씨버선길 2길 초반은 강변따라 걷기다

 

 

 

 

국제슬로시티 청송 안내판

월막교를 건너 돌아 봤다

 

 

 

 

청송읍

방광산 품안에 있다

 

 

 

 

용전천 벚나무 길

벚나무와 금계국이 핀 강변을 따라 걷는다

생태탐방로로 운이 좋으면 수달을 볼 수도 있다고 써있다

 

 

 

 

외씨버선길 안내판

강변을 따라 걷다 산으로 드는 시점이다

 

 

 

 

좁은 언덕 길로 오르자 큰 느티나무가 반긴다

 

 

 

청송읍

언덕을 올라서 돌아 봤다

 

 

 

 

벽절정( 碧節亭 ·  청송군 향토 유형문화유산 제6호)

임진왜란 당시 도산울산전투에서 의병을 일으켜 왜군과 싸우다 순절한 벽절 심청 선생의 푸른 절개를 추앙하기 위해 세워진 정자이다

최초 건립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1592년 임진란 전후가 될 것으로 짐작이 되며

국난 등으로 그동안 몇 차례 소실되었다가 1919년에 다시 지금의 장소로 옮겨 중건하였다

건물은 정면 4칸 · 측면 2칸의 정자 1동과 관리사 1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원래 정자 주변에 소나무 9그루를 심어 구송정(九松亭)이라 불리워지기도 하였으며

선조 임금께서는 도산에서 순절하신 선생의 충의정신을 높이 평가하여 호를 벽절이라 내려 주었다고 임진일기가 전하고 있다

 

 

 

 

고향숲 빗돌

벽절정 뒤로 돌아 오르면 별동산 산책로가 나온다

 

 

 

 

가풀막재 안내

근동의 농민들이 수확한 농산물을 이고 지고 청송에 내다 팔기 위해

이 재를 넘어갈 때면 힘들고 숨이 가빠진다고 해 가풀막이라는 고개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덕천마을로 가는 길

앞 산 아래 마을이 송소고택이 있는 덕천마을이다

 

 

 

 

소슬교

아래로 신흥천이 흐른다

 

 

 

 

청송심씨 본향(靑松沈氏 本鄕) 빗돌

청송심씨 본향 덕천마을 안내비가 옆에 있다

*

이곳 쉼터에서 이동식을 했다

 

 

 

 

덕천길 초가집

이동식 후 덕천마을 돌아 봤다

 

 

 

 

슬로시티 청송 안내판

담장에 붙어 있다

 

 

 

 

마을 터 빗돌

우리마을에는 주로 청송심씨가 많이 사는 마을로 심씨족보상 기록에는 약 서기 1400여 년경부터 살아온 기록이 있으며

1950년경에 이르러 청송심씨의 가호 수가 약 110호, 아산장씨 가호 수가 약 25호, 기타 성이 약 10호가 되고

인구는 약 900여 명 정도가 되어 파천면에서도 제일 큰 마을이었다

1960~70년대에 산업의 발달로 젊은 세대들이 약 200여 명 이상 서울 · 대구 · 부산 · 기타 등지로 직업을 찾아 떠났다

*

빗돌에 있는 내용 일부다

 

 

 

 

느티나무

창실고택으로 들어가는 들머리다

 

 

 

 

창실고택(昌室古宅 청송군 향토문화유산 제19호)

1917년 지어진 심시택(沈時澤)의 살림집이다

심시택은 청송 심부자로 알려진 송소 심호택의 친동생으로 송소고택에서 분가하면서 건립하였다

건물형태는 ㅡ자형 안채 · 행랑이 연결된   자형 사랑채 · 부속채로 구성되었으며

각각의 독립된 건물을 연결하여 전체적으로는 튼ㅁ자형 배치형태를 보인다

이 건물은 경북 북부지방 반가(班家 양반의 집)의 건축양식 및 생활상을 재조명해 볼 수 있는  사료적 가치를 지닌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요동제사로 오르는 길이다

 

 

 

 

덕천마을 큰내이야기길 안내판

덕천마을 송소고택으로 가는 길이다

 

 

 

 

송소고택(松韶古宅 국가지정 중요 민속자료 제250호)

조선 영조 때 만석의 부를 누린 심처대(沈處大)의 7세손 송소 심호택(沈琥澤)이

호박골에서 조상의 본거지인 덕천마을로 옮겨오면서 지은 99칸의 저택으로 1880년 경에 건립되었다

2003년부터 고택체험 시설로 개방하였으며

2011년에는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체험형 숙박부분 최고의 상인 '2011년도 한국관광의 별'을 수상했다

현존하는 99칸 전통 한옥 중에서도 보존 관리 상태가 뛰어나며

조선시대 12대 만석꾼인 경주 최부자와 함께 9대에 걸쳐 무려 250여 년간 만석의 부를 누렸던 영남 대부호로

한때 전국적인 명성을 떨쳤던 대표적인 고택이며 청송 심부자(沈富者)가 살았던 집이다

 

 

 

 

송소고택

청송심씨는 전통의 명문가로 시조는 심홍부이고, 고려 충렬왕 때 문림랑으로 위위시승을 지냈다

청송심씨 시조 심홍부의 증손인 심덕부와 심원부 형제부터 계보가 크게 둘로 나뉘어졌다

형 심덕부는 이성계를 도와 조선을 세운 공으로 회군공신에 추록되어 가문의 영달을 연 인물이다

반면에 심원부는 이성계 역성혁명에 반대하며 두문동에 들어가 두문불출하며 불사이군의 절개를 지켰다

이때부터 청송심씨는 경파(京派)와 향파(鄕派)로 나뉘게 되었다

심덕부의 후손을 가리켜 경파 · 청송을 중심으로 영남 일대에 퍼져 사는 심원부의 자손을 일컬어 향파라 부른다

 

 

 

 

신처대의 11세손인 집 주인

송소고택과 고택체험에 대해 들어보았다

 

 

 

 

송정고택(松庭古宅 경상북도 문화재 자료 제631호)

1914년 지어진 송정 심상광(松庭 沈相光)의 살림집이다

심상광은 조선 후기 만석꾼이었던 송소 심호택의 차남으로, 안동 도산서원장 · 안동 병산서원장 · 청송향교 전교를 지낸 인물이다

큰집인 송소고택과는 연접해 있으며 안채 · 사랑채 · 별채가 각각 독립되어 있으나 이들을 연결하여 전체적으로는 'ㅁ'자 배치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건물 바깥쪽에는 큰 대문이 있고, 그 대문을 중심으로 전면에는 넓은 정원이 조성되어 있다

그리고 안채로 들어가는 곳에 다시 작은 대문이 설치되어 있으며 안채와 사랑채 사이에는 책방과 고방이 연결되어 있다

송정고택은 조선 후기 상류사회의 전통가옥의 형태를 잘 간직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 받고 있다

 

 

 

 

경의재로 가는 숲이다

 

 

 

 

경의재(敬義齋)

청송심씨 시조 심홍부(沈洪孚)의 3세손(증손)이며

향파(鄕派)의 시조인 악은(岳隱) 심원부(沈元符)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청송심씨 집안의 재실로

1982년 준공된 건물과 잘 손질된 경내와 조경 덕분에 깔끔한 모습이다

청송군 파천면 덕천리에 자리하고 있다

 

 

 

 

덕천교를 건너 용전천을 따라 중평리로 가는 길이다

 

 

 

 

중평리(중들) 빗돌

이곳 정자에서 다시 이동식을 했다

 

 

 

 

중평교

용전천 파천면 방향이다

 

 

 

 

사양서원(泗陽書院 청송군 유형문화유산 제23호)

중평교를 건너 중평솔밭야영장에서 오른쪽으로 걷다 당진영덕고속도로 교각 밑에서 왼쪽 길로 들어서면 있다

 

 

 

 

사양서원(泗陽書院)

고려 개국공신 신숭겸의 12세손인 문정공 신현을 주벽으로 그의 아들 문훤공 신용희와 고려말 학자 운곡 원천석을 봉안하고 있다

원래 기호지방의 사림에서 계룡산 아래에 화해사를 건립하여 신현과 신용희 · 정몽주의 위패를 봉안하였는데

1945년 8 · 15 광복 이후 농지개혁으로 인하여 그 사당이 사라지게 되어 신현 · 신용희의 위패를 옮겨와 배향하면서 이 서원을 만들게 된 것이다

1966년 이 서원의 현판을 달면서 원천석을 추가로 배향하고 이곳 지세를 따라 원호(院號)를 사양서원이라 정하고 편액은 옛 그대로 화해사라 하였다

 

 

 

 

용전천 징검다리

사양서원에서 다시 되돌아나와 용전천을 왼쪽으로 따라 걸으면 파천면사무소로 건너는 징검다리가 나온다

*

이 징검다리를 걷널 때 빗방울이 떨어졌다

우천시 객주에 연락하여 건널 수 있는지를 확인하여야 한다 

 

 

 

 

징검다리를 건너 다시 왼쪽 둑길이다

 

 

 

 

중들

용전천변 호밀밭이다

 

 

 

 

신기리느티나무 2km 안내판

용전천을 따라 걷다 이젠 산길을 오른다

 

 

 

 

산길을 오르다 만난 풍뎅이다

 

 

 

 

소망의 돌탑

큰 소원은 안 들어주니 조그마한 소원을 빌어보되

어른들은 원하는 게 너무 많아서 소원들어주는 행정 일손이 모자라기 때문에

단순한 아이들의 소원을 더 잘 들어준다고 함

안내판에 있는 글이다

*

빗방울이 제법 굵어진다

 

 

 

 

비를 피한 집

비가 제법 많이 와 처마 밑에서 잠시 피해 가기로 했다

잠시 후 아주머니가 얼굴을 내민다

잠시 비를 피해 가겠노라고 하니 이리 오라신다

그러곤 커피를 내오신다

잠시 차를 마시는 동안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외씨버선길 2길과 3길 갈림길이다

 

 

 

 

청송 신기리 느티나무(천연기념물 제192호)

1660년 경 인동장씨의 입향조가 심었다고 전해지는데 봄에 나뭇잎이 어느 쪽에서 먼저 나오느냐에 따라 한 해의 풍흉을 점쳤다고 전한다

당산목으로 지금까지 보호되어 왔으며 정월 보름 때에는 온 마을 주민들이 모여서 동제를 지낸다고 한다

 

 

 

 

청송 신기리 느티나무(천연기념물 제192호)

저렇게 속이 비면 얼마나 아플까?

역시 금줄이 쳐있다

*

나무 높이 13.9m · 수관 폭 24m · 가슴높이 둘레 7.59m

 

 

 

 

효부각(孝婦閣)

효부 박씨는 통정밀양 박상복의 딸로 17세에 평해인 황기억의 부인이 되었다

시집온 지 얼마 후 시아버지가 병환으로 음식을 전혀 드시지 못하자 자기의 젖을 짜서 목숨을 연명시키고

시아버지의 병환을 낫게 해달라고 명산대천에 축원하였더니 한 노인이 현몽하기를

"시아버지의 병은 상여집 대들보 밑의 뱀이 특효이니 사로잡아 봉양하면 완쾌될 것이고

뱀에 물리더라도 남쪽 길가에 가면 좋은 약이 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날이 밝기를 기다려 상여집에 가보니 과연 대들보에 큰 뱀이 있어 사로잡으려다 손이 물려

피가 옷소매를 적시었으나 사로잡아 시아버지께 봉양하였더니 완쾌되었으며

뱀에 물린 상처를 치료하기 위하여 남쪽 길가로 가보니 미역과 같은 이상한 풀들이 있어서 가져다 바르니 뱀의 독이 빠지고 손도 완치되었다 한다

이를 들은 모든 사람들이 부인의 효성에 신이 감동한 처사라 하여 조정에서 상을 내리고 비각을 건립하였다

청송군 파천면 신기리 647에 있다

 

 

 

 

담포정(澹圃亭)

황광혁이라는 이가 있었다

어느 날 한 어부가 큰 자라를 잡아 나뭇가지에 달아 놓은 것을 보게 된 그는 측은한 마음에 자라를 사서 살려 주었다

자라는 물 위를 떠가며 세 번 돌아보고는 사라졌다

그날 밤 그의 꿈에 한 소년이 나타나 말한다

넓은 갯가에 「황아무개 소유의 토지」라고 쓴 표목을 많이 세워두라

이상히 여기면서도 그는 소년의 말을 따랐다

이튿날 마을에는 큰비가 내렸다. 모든 것이 쓸려 내려갔으나 그가 세운 표목만은 온전히 서있었다

그 자리를 논과 밭으로 개간해 씨 뿌리고 추수하니 늘 풍년이었다

그곳이 파천면 신기리(新基里)다

중태산 자락에서 발원한 신기천이 신기리를 관통해 용전천과 만나는 합류점의 남쪽에 본 마을인 새터가 자리한다

평해황씨 황광혁이 자라를 살리고 얻게 된 천변의 땅이다

이후 후손들은 70~80여 호를 이루며 번성하게 되는데 선조의 선행으로 얻은 땅에 그 뜻을 기려 세운 것이 담포정이다

담포란, 담박한 밭이다. 욕심이 없고 깨끗한 마음으로 얻은 터전을 뜻한다

*

평해황씨(平海黃氏) 황일성(黃一聖)이 선조를 추숭하고

후진을 양성하기 위하여 1880년에 건립한 서당이었으나 일제강점기 때 정자로 바꾸고 이름을 담포정이라 하였다

 

 

 

 

담포정을 관리하시는 하명(河明)씨

담포정의 이전과 건립에 대해 말씀해 주셨다

건립 기금은 종친회에서 9천만원 · 군에서 8천만원을 지원해 담포정을 짓고 조금 남은 돈은 묘소를 돌봐드렸다고 하신다

평해황씨 31대손으로 종친회장도 하셨다

 

 

 

 

고려 성균관 생원 유허비

고려성균생원증봉익대부 밀직사진성이공석유허비

(高麗成均生員贈奉翊大夫 密直使眞城李公碩遺墟碑)

*

신기1리버스정류장 앞에 있다

 

 

 

 

청송한지마을 아치

한지공장과 체험공방이 차려져 있어 사전 접수하면 체험활동을 할 수 있다

 

 

 

 

가람공방

7대를 이어온 이자성 한지장(경상북도 무형문화재)이 한지를 전통재래기법으로 제작하고 있다

*

코로나19로 문을 닫았다

 

 

 

 

한지제작과정 안내판

내부로 들어가 보니 이곳만 열려 있었다

 

 

 

 

청송교육원 교직원 사택

1947년 개교하여 1998년 폐교한 송강초등학교가 있던 자리다

 

 

 

 

시기리 버스정류장

걷기 마침점이다

*

진보 청송 간 버스를 타고 청송으로 간다

버스는 자주 다닌다

 

 

 

 

청송전통시장

청송장은 4일과 9일에 열리는데 마침 24일이다

송편과 쑥인절미를 이동식으로 샀다

 

 

 

 

청송전통시장

안내서에는 사과와 고추 등이 많이 거래된다고 하나 철이 아니라 채소와 옷가지만 놓여 있어 한산한 느낌이다

 

 

 

 

청송전통시장

버스에서 내려 용전천변 주차장으로 가면서 들렸다

 

 

 

 

용전천변

주차하기 좋고, 깨끗한 화장실이 있어 더욱 좋은 곳이다

 

 

 

 

웰빙하우스

2009년 경북 식품박람회 향토요리 경연대회 대상 수상

2010년 제3회 춘천 향토음식 전국요리경연대회 동상 수상한 음식점이다

*

외씨버선길 2길은 비교적 짧은 길이라 걷기를 마치고 이곳에서 조금 늦은 점심을 했다

 

 

 

 

달기약수터 상탕

점심식사 후 약숫물을 뜨러 왔다

 

 

 

 

진보버스정류장

점심식사 후 내일 걸을 외씨버선길 3길의 버스 시간을 알려고 들렸다

 

 

 

 

진보성당

청송성당 공소에서 2005년 7월 15일 본당으로 승격되었다

*

코로나19로 성당 미사는 없어 성당 안에서 대송을 바쳤다

 

 

 

 

진보 게르마늄 사우나

씻어도 씻어도 매끌거리는 물과 시설 또한 깨끗하다

요금 4천원 · 게다가 일요일인데 한산하기까지 하다

이곳에서 2길의 땀을 씻었다

3길을 걷고 난 뒤에도 역시 이곳에서 샤워했다

적극 추천한다

*

(2020, 05, 24)

 

 

 

 

GPS로 확인하니

걸은거리 14.5km, 소요시간 6시간 10분

(2020, 05,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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