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길이야기

인천 부평동, 산곡동

「희망천(希望泉)」과 「부남천리(富南泉里)」 빗돌을 만나러 간다

두 개의 빗돌이 가깝게 있기에 근처 삼릉줄사택과 부영공원을 연계했다

 

 

만월산 약사사 입구

 

 

 

 

만월산 약사사(滿月山藥師寺) 일주문

고려가 건국될 때 왕명으로 만월산 아래 「건국사」로 창건했으나 항상 100여 명의 스님들이 수행 정진한다하여 백인사로 바뀌었다

그후 배불정책으로 제9대 성종때 폐쇄되었던 것을 금강산 유점사에서 수행하시던  보월스님께서 약사암이라 명칭하고

그 뒤를 이어 인천 해광사 월승스님께서 중창하여 화엄종 대본산 약사사로 오늘에 이르렀다

 

 

 

 

약사사 송덕비

일주문 옆 만월산 기슭에 있다

 

 

 

 

만월산 배수지공원

만월산이 오른쪽에 있

 

 

 

 

인천가족공원 · 부평농장 갈림길이다

 

 

 

 

인천가족공원

인천시립승화원이 있는 공동묘지 들머리다

 

 

 

 

부평사거리

앞산이 한남정맥인 동암산이다

오른쪽 길로 간다

 

 

 

 

원통이고개

인천지하철 동수역에서 부평삼거리역에 이르는 길로 인천상륙작전 후 첫 대규모 교전이 일어난 곳이다

인천 상륙 3일째인 9월 17일 아침 6시경, 북한군 보병부대와 인민군 전차 6대는 경인국도를 따라 부평쪽에서 인천 방향으로 행군하고 있었다

그들은 고개 위 산속에 있는 미 해병대 진지를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전차 위에서 식사를 하거나 떠들고 웃으며 행군했다

북한군 마지막 전차가 원통이고개를 직각으로 굽은 큰 길을 꺾어 돌려고 하는 순간

미군의 공격으로 전차는 전부 파괴되고 인민군 보병 250명 가운데 200명이 사살되었다

 

 

 

 

희망천마을 입구

 

 

 

 

희망천(希望泉) 빗돌

빗돌에 1970년 11월 29일과 추진위원들의 이름이 적혀있다

 

 

 

 

희망천(希望泉) 빗돌

희망천의 뜻을 알려고 희망천 작은도서관과 같이 있는 희망천경로당을 찾았으나 코로나19로 닫혀있었다

마을 상점 몇 곳에서 알아봤지만 아시는 분이 없다

 

 

 

 

호명사

일제시대 때에 창건된 절로 원통이고개에서 동수역 방향 왼쪽에 있다

 

 

 

 

부일여자중학교

 

 

 

 

그림책 도서관

함께하는 사랑밭 그림책도서관 1호점이다

별도의 이용료는 없지만 도서관 운영을 위해 북카페에서 음료나 책을 구입해 달란다

 

 

 

 

부남천마을 빗돌

보이는 면엔 부남천마을 · 안쪽엔 富南泉里(부남천리)라 써있다

 

 

 

 

富南泉里(부남천리) 빗돌

희망천(希望泉)과 같이 샘 천(泉)자를 썼다

 

 

 

 

인천성동학교

청각 및 언어장애 교육기관으로 1955년 정규순 선생에 의해 설립되었다

유치원과정(0세부터) · 초등학교 · 중 · 고등학교 과정이 개설되어 있다

 

 

 

 

삼릉줄사택으로 들어가는 골목에 붉은 기를 단 집들이 많다

백색기는 점만 보는 집이고 적색기는 굿만 전문적으로 하는 집이다

물론 두 가지 일을 모두 하는 집에선 두 기를 함께 단다

 

 

 

 

부평2동 삼릉줄사택(미쓰비시사택)

지금의 부평2동 일대를 「홍중(弘中 히로나까)사택」이라 불렀다

일제 강점기 부평공원 자리에 「홍중」이란 군수공장이 있었고 종업원 사택이 부평2동에 수십 채 있었기에 그렇게 불렀다

이후 히로나까 공장이 미쓰비시(三菱)로 바뀌면서 사택 이름도 미쓰비시사택 혹은 삼릉사택으로 바뀌었다

*

오른쪽엔 재개발로 건축 골조가 올라가고 있다

 

 

 

 

삼릉줄사택 천사요양보호센터

 

 

 

 

미씨비시 줄사택

87채의 사택이 줄처럼 늘어서 있는 모양 때문에 흔히 줄사택으로 불렸다

 

 

 

 

대부분 재개발로 철거한 상태인 것 같다

 

 

 

 

붉은 페인트로 「철거」라 써있다

 

 

 

 

삼릉줄사택 철거 중 취득한 현장유적을 공개하니 보고 가라는 알림판이다

 

 

 

 

삼릉줄사택을 나오며 돌아 봤다

 

 

 

 

부평감리교회

1940년 설립된 교회다

 

 

 

 

다다구미(多田組)

예전 원통천 복개변 개울가 일대를 흔히 「다다구미」라고 불렀다

조병창 공사 하청업체 다다구미의 현장사무소가 있었기 때문이다

광복 후 현장사무소가 철수하면서 이곳은 빈터로 남아 있었다가 무허가 판잣집들이 다닥다닥 붓어살기 시작했다

1960년대 초 마을 이름을 「평화촌」이라고 명명했는데 널리 사용되지 못했다

 

 

 

 

벚꽃잎은 바람에 날리고 계양산은 멀리서 손짓한다

부평공원사거리에서 본 부영로다

 

 

 

 

애스컴(ASCOM24)

1939년 설립된 일본육군조병창(造兵廠)이 왼쪽에 있었고

일본 항복 후 미 24군단 예하부대 제24군수지원사령부(약칭 애스컴)이 있었던 곳이다

 

 

 

 

남부고가교

부평역과 연결되는 철길이 왼쪽에 있다

 

 

 

 

부평역으로 가는 철로다

 

 

 

 

애스컴(ASCOM24)

1939년 일제는 부평벌에 일본육군조병창(造兵廠)을 건설했다

이곳에선 월간 소총 4천 정 · 총검 2만 정 · 소총탄환 70만 발 · 포탄 3만 발 · 군도 2천 자루 · 차량 200량 등을 생산했다

일제가 패망할 때까지 이곳에서는 선박 250척 · 무전기 200조 · 심지어 잠수정가지 만들어 냈다

당시 이 조병창에서는 수천 명을 헤아리는 군인과 군속들이 종사했다

1945년 일본 항복 후 미 24군단 예하부대 제24군수지원사령부(약칭 애스컴)이 접수했다

*

평화공원을 조성하자는 글과 리본들이 걸려있다

 

 

 

 

부평대중음악둘레길 리본 · 애스컴 게이트1 안내판

1955년 미 8군사령부가 일본에서 서울 용산으로 이전한 후 미국 해병대는 애스컴지역에 인천보충소와 지원사령부를 설치하였고

한국으로 들어오는 미군들은 이곳에서 2, 3개월 정도 머물다가 동두천 · 송탄 · 평택 등에 있는 부대로 자대배치 받았기에

1960년대 애스컴 주변엔 악단이 연주하는 클럽이 용산보다 많았다

1950년대 김시스터즈 등 초창기 미8군 가수들과 연예인 등은 거의 이곳을 거쳤으며

1960년대 최희준 · 한명숙 · 패티김 · 신중현 · 이시스터즈 · 장미화 등 미8군의 인기스타들은 빠짐없이 찾아왔다

애스컴에서 시작된 한국 대중음악 여명기였다

 

 

 

 

은행나무가 들려주는 부평 풍물 이야기

애스컴 울타리 벽에 붙어 있는 음악이야기다

 

 

 

 

애스컴 내부

부영공원에서 봤다

 

 

 

 

부영공원(富榮公園) 야구장

2002년에 만들어진 공원으로 주한미군의 군영인 캠프마켓으로 쓰였던 영향으로 야구경기가 자주 열렸다

*

우성아파트 · 현대아파트가 보인다

 

 

 

 

우성4차아파트

야구장 · 축구장 사잇길이다

 

 

 

 

부영공원(富榮公園) 축구장

프리상뜨와 경남아너스빌아파트가 보인다

 

 

 

 

부영공원(富榮公園) 축구장

 

 

 

 

주한미군 군수지원사령부(애스컴)

80년 만에 반환된 미군 기지는 부평구민의 의견을 최대한 수렴해서 활용 방안을 찾는다

그러나 주목적은 문화 · 예술 분야에 특화된 공원을 만들겠다고 한다

*

담 너머로 본 애스컴이다

 

 

 

 

애스컴 내부

 

 

 

 

부영공원

아직 꾸며지지 않은 공원으로 철마산 자락이 조금 보인다

 

 

 

 

산곡초등학교 · 프리상뜨아파트

 

 

 

 

맹꽁이서식지 안내판

 

 

 

 

총재빌딩 · 경남아너스빌아파트

 

 

 

 

산곡초등학교 · 프리상뜨아파트

 한남정맥인 철마산이 뒤로 조금 보인다

 

 

 

 

부영텃밭

매년 추첨으로 분양된다

 

 

 

 

부영텃밭 운영규칙

부영공원을 외곽으로 한 바퀴 돌고 걷기를 마쳤다

 

 

 

 

GPS로 확인하니

걸은 거리 10.3km, 소요시간 3시간 33분

'길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천 중앙공원  (0) 2020.04.25
인천역~동인천역  (0) 2020.04.18
양평나루께축제공원~정근옹주 묘  (0) 2020.02.01
양평 정근옹주 묘  (0) 2020.02.01
경춘선숲길  (0) 2020.0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