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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야기

이여발 묘

조선시대 무관인 이여발(李汝發 · 1621~1683)

자는 군실(君實), 시호는 정익(貞翼), 본관은 한산(韓山)이다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 의배(義培)의 손자로서 조선 효종 2년(1651) 무과에 급제

비변랑(備邊郞), 도총사를 거쳐 숙천(肅川)부사로 선정을 베풀어 거사비(去思碑)가 세워졌다

충청병마절도사를 거쳐 회령(會寧)부사에 보직되어 가선대부 위계에 오르고 한흥군(韓興君)에 봉해졌는데

회령은 북방의 거진(巨鎭)으로서 야인(野人)들과 서로 무역하는 시장이 있어

야인상인들이 오는 정원도 없고 체류하는 기한도 없어서 우리의 피해가 많았다

이때 이여발이 부임하여 상인의 출입인원을 320명 이내, 체류일수를 20일 이내로 규정하여 피해를 줄였다

현종 때 병공조참판에 특진했으며 평안도병마절도사로 나가 성을 수축하고

군사들에게 사예(射藝)를 연습시키는 한편 병기를 준비하여 북방 수비에 만전을 기하였다

어영대장, 한성부 좌,우윤을 역임하고 숙종 때 지중추부사(知中樞府事)에 이르러 사망하였다

 

 

이여발의 묘

1,345㎡의 면적으로

2002년 2월 4일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50호로 지정되었다

 

 

 

 

이여발 묘

호석이 없는 봉분 앞에 비석과 상석이 배치되어 있으며

좌우에 망주석이 세워져 있고 그 앞에 문인석 한 쌍이 있다

 

 

 

 

이여발 묘

비석과 상석 그리고 망주석 한 쌍이 있다

 

 

 

 

이여발 묘

 

 

 

 

이여발 묘

 

 

 

 

이여발 묘 비석과 상석

향로석과 고석은 옛 것인데 상석은 새로 만든 듯하다

 

 

 

 

이여발 비석

한흥군 이공 휘 여발 지묘

정부인 경주이씨 부좌

 

 

 

 

좌측 문인석과 망주석

 

 

 

 

좌측 문인석

문인석의 코가 깨져 있다

 

 

 

 

좌측 망주석

세호가 양각되어 있다

 

 

 

 

우측 문인석과 망주석

 

 

 

 

우측 망주석

 

 

 

 

우측 문인석

역시 코가 깨져 있다

 

 

 

 

좌측 문인석의 깨진 코

 

 

 

 

이여발 묘 안내판

이여발은 효종 2년(1651) 무과에 급제하여

비변랑, 숙천부사, 충청병마절도사를 거쳐 회령부사를 역임하고 한흥군에 봉해졌다

현종 대에는 병조 및 공조참판과 어영대장, 한성 좌,우윤을 역임하였으며

숙종 대에는 지중추부사에 올랐다

숙종 9년(1683) 6월에 사망하여 인천시 서구 신현동 문중 묘지에 안장하였다가

1703년 현 위치로 이장하였다

분묘는 호석이 없는 봉분 앞에 비석과 상석이 배치되어 있으며

좌우에 망주석이 세워져 있고 그 앞에 문인석 한 쌍이 있다

분묘 앞 10여 미터 아래 신도비가 있다

 

 

 

 

이여발 신도비

조선국 자헌대부 지중추부사 겸 오위도총부 도총관 한흥군 증시정익 이공 신도명 병서

*

숭정대부 행이조판서 겸 지경연사 홍문관제학 박세당 지음

대광보국숭록대부 판중추부사 유상윤 글씨

통정대부 이조참의 지제교 윤덕준 전서

 

 

 

 

선조인 한산 사람 문효공 곡은 고려 말에 찬성사를 지냈고

호는 가정으로 색(穡)을 낳았다

색은 한산부원군으로 봉해졌으며 호는 목은(牧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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