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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야기

인천둘레길 14코스

인천둘레길은 "단절된 녹지축을 살린다"는 취지로 한남정맥 줄기인 계양산을 시작으로

천마산 · 원적산 · 함봉산 · 만월산 · 만수산 · 관모산 · 문학산 · 연경산 · 노적봉 · 청량산으로 이어지는 S녹지축을 연결하는 코스다

일상에서 자연을 벗 삼아 여가생활을 하고 더불어 우리지역의 자연생태환경과 문화를 알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코스다

*

14코스는 인천역에서 북성포구~화도진공원~만석부두~화수부두를 거쳐 동인천역까지로 전체 거리 8.05km · 소요시간 3시간 39분으로 나와 있다

*

예전 인천둘레길 12코스가 월미도 대성목재 앞에서 북성부두와 만석부두를 거쳐 화수부두까지 이어지는 길이였으니

지금의 14코스는 예전 12코스의 업그레이드판이라 할 수 있다

 

 

인천역

물류로 인해 인천항과 연결되어 있으며 또 인천항은 일제가 여주 이천 지역의 쌀과 소래 남동 등지의 소금을

인천항을 통해 반출하기 위해 1937년부터 수인선을 운행했다

*

인천둘레길 14코스 시점이다

 

 

 

 

새우젓골목

인천 앞바다에서 잡은 새우를 소금에 절여 보관하던 창고와 가게들이 있었던 곳이다

골목에는 건어물가게도 있었으나 부두가 사라지면서 새우젓도 함께 떠나버리고 빈 창고와 가게는 인근 노동자와 도시 빈민들이 들어와 쪽방촌이 되었다

*

인천항 제8부두 출입문 앞에 있다

 

 

 

 

인천상륙작전 상륙지점(적색해안) · 맥아더 길 빗돌

이 지점은 1950년 9월 15일 새벽 유엔군 사령관 맥아더원수가 전함 261척과 상륙군 미해병 제1사단 · 한국해병 제1연대를 진두 지휘하여

역사적인 인천상륙작전을 성공한 3곳(적색해안 · 청색해안 · 녹색해안) 중 한 곳이다

 

 

 

 

북성포구

인천상륙작전 적색해안 안내석 바로 뒤에 있다

 

 

 

 

대한제분 담 왼쪽 바다쪽으로 걷기길이 생겼다

 

 

 

 

걷기길로 올라와 보니 낚시하는 사람들이 있다

 

 

 

 

선창산업

많은 원목들이 쌓여있다

 

 

 

 

선창산업 · 대성목재

 

 

 

 

북성부두(일명 똥마당)

 

 

 

 

북성포구 강화 볼음도회집

 

 

 

 

갈매기 쉼터

 

 

 

 

북성포구 미소횟집

 

 

 

 

북성포구 입구

 

 

 

 

만석동 굴 직판장 1동

만석3차아파트를 지나 큰 길로 나오면 만석동 고가 앞에 있다

예전 굴막이 새롭게 단장했다

 

 

 

 

굴까기 공동작업장 2동

인천국제공항공사의 후원과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동구청의 협력사업으로 조성되었다

 

 

 

 

만석어린이공원

 

 

 

 

동일방직(주) 정헌 서정익 선생 상

만석동 매립지에 들어선 동양방적(지금의 동일방직)은 1934년 10월 1일 종업원 3,000명에 직조기 1,292대로 조업을 시작했다

일설에 의하면 영화배우 도금봉(본명 정금옥)도 이 공장에서 잠시 일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

1978년 유신 말기 여공들이 똥물테러를 당해 세간에 오르내리던 동일방직이다

 

 

 

 

만석동 행정복지센터

 

 

 

 

삼화제분

 

 

 

 

화수아파트

 

 

 

 

현 전당포

골목에서 나와 길을 건넜다

 

 

 

 

화평운교(雲橋)

경인철도가 개통되던 즈음에 7m 정도의 높이로 설치됐다

그 때는 나무다리라 썩지 말라고 검은 염료를 발랐는데 일본인들은 흔히 「흑교」라 불렀다

해마다 가을이면 인천여상에 있던 신사에서 출발한 일본인 축제행렬이 이곳을 지나갔다

이 광경을 보기 위해 구경꾼들이 구름다리 위에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한다

 

 

 

 

황인의원

이북에서 내려와 1958년에 문을 연 인천에서 오래된 병원이다

간판에 「Since 1958」이 붙어있다

 

 

 

 

화평동 냉면거리

화수동은 공장지대였고, 노동자와 대건고 학생 등 주머니는 가볍고 배고픈 사람들이 많았기에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냉면을 생각한 끝에 시중에 파는 냉면사리로 만든 세수대야 냉면이 탄생했다

*

「아저씨 냉면」이 지금은 경인선 복복선 공사로 헐리고 없어진 길 건너편 솜틀집 옆 작은 가게에서 1976년부터 냉면집을 시작했다

냉면거리 중간 쯤에 있다

 

 

 

 

인천극장 (지금의 화수할인마트)

1955년 3월 1일 이민 씨와 김태훈 씨가 연극 전문극장으로 개관했다. 이듬해인 1956년 4월 24일 화재로 전소하였다

1960년대 시민극장에서 인천극장으로 이름을 바꾸고 영업을 해오다 2001년 9월 문을 닫었다

주로 동시상영을 했던 인천 삼류극장이었다

 

 

 

 

대한성냥공장 (지금의 화수자유시장)

대한성냥공장이 이전한 후 40여 년 전부터 시장이 형성되었다

「화수」라는 이름은 붙었지만 옛 인천극장 바로 앞이라 화평동 생활권 시장이다

 

 

 

 

화수자유시장 내부

젊은 주부보다 할머니들이 주로 찾는 시장으로 거의 문 닫은 상태다

 

 

 

 

장면 박사 생가(운석 생가 터)

제2공화국 국무총리를 역임하고 부통령을 지낸 장면 박사가 인천에서 태여나 유년시절과 학창시절을 보낸 생가 터다

 

 

 

 

화도진(花島鎭)

1988년 국립중앙도서관이 소장한 「화도진도」를 토대로 복원했다

복원공사를 할 당시 이 터에는 피난민과 도시빈민의 허름한 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화도진 동헌(花島鎭 東軒)

통상 수령 등이 정무를 집행했던 곳으로 현감 · 수사 · 병사 · 감사가 주재하는 관아의 본 건물이다

 

 

 

 

한·미 수교 100주년기념비

1982년 5월 22일 한 · 미수교 100주년을 기념하여 세워진 것이었으나

1988년 9월 10일 국립중앙도서관이 소장한 화도진도를 토대로 화도진을 복원하고 공원화하면서 주변을 정비하고 그 자리에 다시 세웠다

 

 

 

 

화도진(花島鎭) 빗돌

1986년부터 1988년까지 시행된 화도진 복원사업중 공사 현장에서 출토되어

지금의 위치에 세운 것으로 화도진영 당시(1878~1879)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기계제작소(지금의 두산중공업)

1937년 6월 광산용 기계 생산공장을 조성하면서 괭이부리섬(묘도)을 모두 뭉갠 것으로 보인다

당시에는 육지의 끝 지점이었다

 

 

 

 

인천만석초등학교

 

 

 

 

괭이부리마을 굴막공동작업장

 동구 만석동 9번지는 한국전쟁을 전후로 개항장 인천에 사람들이 몰리면서 부두와 시장

철도역이 있던 만석동 · 인현동 · 북성동 지역에 객지에서 온 사람들이 빈터에 집을 세워 정착했다

소설 《괭이부리말 아이들》의 배경이 된 곳이다

 

 

 

 

괭이부리마을 쪽방촌

 

 

 

 

만석부두 앞에 있는 오래된 건물이다

 

 

 

 

만석다방

만석부두 버스정류장 뒤에 있다

 

 

 

 

만석부두 옆에 작은 조선소

선박을 만드는 중소규모 조선소들이 있고 그 옆으로는 고장난 배를 수리하는 「선박병원」이 있다

만석부두를 감싸고 있는 공장 뒤쪽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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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석부두 굴막

예전 만석동 아낙들이 섬에 나가 굴을 캐와서 껍질을 까던 굴막이 오른쪽 벽에 붙어 있

이젠 더 이상 작업하지 않고 대부분 만석동 고가 밑 굴막으로 이주했다

 

 

 

 

만석부두

조선시대 때는 삼남지방에서 한양으로 올라가는 세곡선들이 모여들어 서울로 향하던 곡물을 만석이나 쌓아 놓았던 곳이라 해서 만석이라는 이름 붙었다

구한말에는 한미수호통상조약을 맺기 위해 화도진으로 가려는 미국의 슈펠트제독이 내렸다

 

출항신고를 관리하는 파출소가 앞에 있다

 

 

 

 

작약도

작은 섬이 작약도로 정상에 무인등대인 「무치섬등대」가 있다

 

 

 

 

계양산

만석포구에서 봤다

 

 

 

 

만석동 2번지

과거 부두노동자 집단숙소로 한국전쟁 피란민들 · 뱃사람 · 부두와 연탄 야적장 부근에서 일하던 짐꾼들이

이 곳에 터를 잡고 새로 집을 짓거나 사택(일본식 건물)에 들어와 삶을 이어갔다

하지만 지금의 만석동 쪽방촌은 자식에게 갖가지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는 곳이 됐으며

영세민의 힘겨운 겨울나기를 이야기할 때 자주 등장하는 곳으로 전락했다

*

역시 이곳도 새롭게 단장했다

 

 

 

 

능소화 길

가로수처럼 높게 능소화가 피어 있다

 

 

 

 

두산인프라코어 앞 쉼터

일제강점기에는 군수공장 「조선기계제작소」였다

상당히 큰 공장으로 공장 끝에서 왼쪽으로 들어서면 「화수부두」가 나온다

 

 

 

 

화수부두 조형

일진전기 앞 화수사거리에 있다

 

 

 

 

화수부두 등대 조형물

 

 

 

 

화수부두

한때 인천 제2의 어항이었던 화수부두는 70년대 초 연안부두가 생기고 어시장이 들어서며 추억의 부두가 되었지만

70년대 만해도 옹진 · 강화도 · 충청도 앞 바다는 물론 연평도 · 백령도 근해에서 잡은 생선의 집하부두였다

 

 

 

 

화수부두 수산물직매장 벽

화수부두에 정박하는 어선의 선주 32명이 직접 잡아 올린 해산물만 판다

철저하게 100% 자연산만 판매한다

 

 

 

 

화수부두 조형물

 

 

 

 

화수부두

6, 70년대 연평도 조기잡이 배를 비롯해 강화도 · 충청도에서 생선을 가득 실은 배들이 드나들던 옛날의 화려했던 모습은 찾을 수 없다

 

 

 

 

화수부두

역시 페인트의 힘으로 새롭게 단장했다

 

 

 

 

남광닻

TV와 사진전 등에 여러 번 나온 곳이다

 

 

 

 

이천전기(지금의 일진전기)

일제강점기 1938년에 설립된 군수공장으로 광복 후 변압기 등을 만드는 이천전기로 재도약했다

1993년 삼성에 인수되었다가 1998년 12월 일진그룹의 자회사로 편입되면서 일진중공업이 되었고, 2002년 일진전기로 다시 사명이 바뀌었다

 

 

 

 

동부센트레빌 · 솔빛마을아파트 사거리

예전 수문통 으로 이곳에서 동인천역 방향으로 간다

 

 

 

 

송현동성당

1956년 7월 25일 개원한 「경기적십자병원」이 있던 자리다

 

 

 

 

수문통로

지금의 화평치안센터와 송현치안센터 사이 약 200m에 「수문통」이라 불린 갯골 수로가 있었다

좌 · 우측 화단에 「송현교」 엄지기둥이 보인다

 

 

 

 

송현교(松峴橋) 엄지기둥

화평치안센터 사거리 양편에 두 개의 표지석이 남아있다

예전에 다리가 있었던 흔적이다

 

 

 

 

동인천역

1897년 3월 22일 경인철도 기공식이 우각현(일명 쇠뿔고개)에서 거행되었는데 그곳이 지금의 「도원역」이고

그 후 1899년 9월 18일 「축현역」이란 이름으로 영업을 시작한 곳이 지금의 동인천역이다

*

1899년 경인철도가 개통할 때는 청과물시장에 축현역이 생겼다

1926년 지금의 자리로 옮기면서 역명이 상인천역 · 다시 1955년 동인천역으로 개명했고 · 1957년에 역사를 새로 준공한 후

1989년 오랫동안 정들었던 역사를 허물고 민자 역사를 지으면서 인천백화점이 자리했다

인천백화점이 운영난에 문을 닫고 「엔조이쇼핑」이 다시 재기를 노렸으나 다시 문을 닫고 지금은 새로 리모델링 중이다

 

 

 

 

GPS로 확인하니

걸은 거리 12.1km, 소요시간 4시간 2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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