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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야기

강화나들길1코스(심도역사문화길)

강화나들길은 우리나라 역사의 집약체이며 생생한 역사의 현장인 이 땅에

선조가 심어놓은 학문과 역사의 지혜를 마음으로 새기고 몸으로 느끼며 걷는 도보여행길이다

*

「심도역사문화길」로 불리는 강화나들길1코스는 

지붕없는 박물관인 강화의 주요 문화유적지를 돌아 보는 코스로 총거리 18km · 소요시간 6시간이다

 

 

강화버스터미널

강화나들길1코스 시점이다

 

 

 

 

강화도행렬도

1849년 6월 헌종의 왕위를 계승하게 될 강화도령 변(조선 25대 철종)을 모시러 오는 행렬을 그린 역사기록화로

현재 조선미술박물관(평양)에 소장되어 있으며 강화도 전경을 세밀하게 보여주는 귀중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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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버스터미널에서 남문 방향으로 가다보면 성곽이 있다

그곳이 나들길1코스 · 5코스가 나뉘는 지점인데 그곳에 있다

 

 

 

 

강화군청

나들길은 수협사거리에서 강화우체국을 끼고 언덕을 오르는 길이지만 오랜만에 강화군청을 만나러 들렸다

 

 

 

 

망한루(望漢樓 · 동문)

한양을 바라본다는 뜻으로 망한루라 지었다

고려가 몽골의 제2차 침입에 대비해 고종 19년 (1232) 고려궁지를 중심으로 둘러싼 강화산성의 동문이다

 

 

 

 

강화나들길 안내목

동문에서 언덕을 올라 왼쪽으로 성공회강화성당으로 가는 길이다

 

 

 

 

성공회강화성당(사적  제424호)

1893년 갑곶이 나루터(성 니콜라회당)에서 선교를 시작한 강화성당은 1897년 조선왕실 해군사관학교(통제영학당)의 영국인 교관(Callwell 대위)으로부터

관사와 대지 3천여 평을 매입하여 성바우로회당이라 축복함으로서 선교본부를 강화성내로 이전하였다

이를 계기로 조마가(제3대주교 · M. N Trollope) 신부와 김희준(초대 한인 사제)교우 등은 선교본부라는 이름에 걸맞는 성당을 건축하고

이를 고요한(초대 주교 · C. J. Corfe)주교가 1900년 11월 15일 성베드로와 바우로의 성당으로 축성하였다

 

 

 

 

용흥궁 외전

정면 6간 · 팔작지붕의 사랑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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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회강화성당에서 용흥궁으로 내려오는 길이 생겼다

 

 

 

 

심도직물 기념물(굴뚝 · 직조기)

1947년부터 2005년까지 운영됐던 국내 굴지의 섬유회사로 1960~70년대에 직원 1,200명 정도였고 거쳐간 사람들 수만해도 1만 명이 넘었다고 한다

주 생산품으로 커텐지 · 카페트 특히 웸부리넥타이로 유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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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도직물이 자리 잡았던 곳에 용흥동공원을 조성하였고 30미터에 달했던 거대한 굴뚝 끝부분을 따로 남겨 심도직물을 기념하고 있다

 

 

 

 

선원 김상용 순의비

조선 인조 때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종묘를 모시고 강화도로 피란했으나 청군이 이곳마저 함락하자

남문루 위에 화약을 쌓아놓고 불을 붙여 순국한 선원 김상용선생의 위국충절을 기리기 위해 정조 때 유수로 부임한 공의 7대손 김매순이 건립한 비다

당초 순절비는 구 남문지에 있던 것을 1976년 강화중요국방유적복원화사업의 일환으로

현 위치로 비각을 옮겨 세우던 중 숙종 26년(1700)에 당시 강화유수인 선생의 종증손 김창집이 세운 구비가 발견되어 신 · 구비를 나란히 세웠다

 

 

 

 

숙종 인현왕후 가례도감의궤

마켓 그림도 강화도 답다

 

 

 

 

강화문학관

1층에는 강화의 자랑스러운 문화전통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문학전시관이 마련되어 있고

2층에는 오늘의 문학관이 있도록 계기를 마련해준 고(故) 조경희 선생의 문학 세계와 생애를 전해주는 기념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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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포스팅한 곳이고 오늘은 들릴 곳이 많아 그냥 패스다

용흥궁공원에 있다

 

 

 

 

진무영순교성지(鎭撫營殉敎聖址)

진무영은 숙종 26년(1700)에 해상 방어를 위해 설치된 군영이며 동시에 천주교 신자들의 처형지이기도 하다

이곳에서는 1866년 5월 22일 최인서 · 장치선 · 박순집 · 조삼봉의 부친 등이 순교하였다

특히 최인서와 장치선은 병인박해로 성직자 12명 중 3명과 신자 10,000여 명이 처형되자 생존 성직자 중 한 분인 리델 신부를 배로 천진으로 탈출시키고

서양 배를 불러다가 신교(信敎)의 자유 · 남은 교우들을 구출 · 성교(聖敎 천주교) 전파 등의 목적으로 상해까지 다녀왔다는 죄로 처형되었는데

그들은 자신의 목숨을 내놓으면서까지 성직자의 보호와 전교의 자유 그리고 복음 전파를 위해 노력하는 삶을 살다가, 마침내 순교의 월계관을 받았다

 

 

 

 

승평문(昇平門)

고려는 고종 19년(1232) 몽고의 침략에 대항하기 위하여 최우의 권유로 도읍을 송도에서 천혜의 요새인 강화도로 옮겼다

이때 옮겨진 도읍터가 고려궁지로 원종 11년(1270) 개성으로 환도할 때까지 38년간 사용되었다

고려궁지의 정문이다

 

 

 

 

은행나무 보호수

나무 높이 25m · 둘레 7.5m · 나이 688년 · 지정일자 1982. 10. 15

 

 

 

 

강화향교(江華鄕校 인천시 유형문화재 제34호)

고려 인종 5년(1147) 내가면 고천리(고읍)에서 창건되었다 전한다

고종 19년(1232) 갑곶리(먹절)로 옮겼다가 고종 46년(1259) 서도면 볼음도로 옮겼고, 조선 인조 2년(1624)에는 유수 심열이 송악산 기슭으로 옮겼으며

조선 인조 7년(1629)에 유수 이안눌이 위패를 모시고 명륜당을 세우는 등 비로서 완전한 체제를 갖추어 학궁(學宮)이라 하였다 한다

현종 14년(1673) 유수 민시중이 남산골로 옮겼으나 영조 7년(1731) 유수 유적기가 지금의 위치로 옮겼다

 

 

 

 

은수물약수터

아래쪽은 빨래터다

 

 

 

 

강화여자중학교 야외교실

 

 

 

 

서문 · 북문 방향안내판

강화여자중학교를 지나 숲길을 잠시 걸으면 이정표가 있다

북문 방향으로 간다

 

 

 

 

진송루(鎭松樓 · 북문)

고려 고종 19년(1232) 도읍을 옮기고 궁궐을 지을 때 도성도 함께 쌓았는데

개성의 성곽과 비슷하게 내성 · 중성 · 외성으로 이루어졌으며 내성에 해당하는 것이 지금의 강화산성이다

원래는 흙으로 쌓았으나 숙종 3년(1677)에 현재와 같은 석성을 이루었다

성의 길이는 7,122m · 4개의 대문 · 4개의 암문 · 2개의 수문 · 2개의 성문장청(城門將廳)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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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 계단이 북장대로 오르는 성곽길이다

 

 

 

 

강화산성

북장대로 오르는 성곽길로 나들길15코스(고려궁 성곽길)과 같은 길이다

 

 

 

 

염하강(鹽河江)

강화와 김포사이를 흐르고 있는 이 강은 보기엔 강물처럼 보이지만 소금 염(鹽)자와 물하(河)자를 쓰며 사실은 강같은 해협(海峽)이다

강화해협 또는 김포강화해협이라고도 하며 좁은 곳의 폭은 200~300m, 넓은 곳은 1km 정도이고, 길이는 약 20km이다

옛날에는 한강으로 가려면 반드시 이곳을 거쳐서 가야하는 전략적 요충지였으며 1950년 한국전쟁부터 2007년까지는 철저히 출입이 금지되고 통제되었었다

그래서 염하강 주변에는 수많은 외세의 침략과 일제 수탈에 맞서 싸웠던 진(津) · 보(堡) · 돈대(墩臺)들이 곳곳에 많이 포진해 있다

*

염하강 건너 유도와 문수산 마루금이 보인다

북장대로 오르며 봤다 

 

 

 

 

북장대지

고려산 · 별립산이 고개만 내밀고 있다

남장대처럼 복원을 기대한다

 

 

 

 

북장대지에 있는 1코스 · 15코스 이정표

15코스는 강화궁 성곽길이다

 

 

 

 

진달래꽃길 · 바위정원 방향안내판

북장대지 바로 밑에 있다

 

 

 

 

강화나들길 1코스 이정표

진달래꽃길을 잠시 걸으면 있다

 

 

 

 

목책이 쳐진 계단을 따라 내려간다

 

 

 

 

강화나들길 안내판

계단을 내려와 오른쪽 길이다

 

 

 

 

강화나들길 안내목

짧은 숲길을 지나 마을로 내려왔다

 

 

 

 

강화나들길 화살표

언덕 위에 대산침례교회가 있다

 

 

 

 

대산침례교회를 지나 언덕을 내려간다

 

 

 

 

경고문

"이 지역 안에 출입하고자 할 때는 전일 부대장의 허가를 받아야 함"이라 써있다

 

 

 

 

나들길 패널

나들길은 반사경으로 보이는 오른쪽 길이다

 

 

 

 

강화나들길 안내목

마을길을 따라 잠시 언덕을 올라 다시 산으로 든다

 

 

 

 

강화나들길 안내목

산 사이 고개에서 왼쪽으로 몇 걸음 내려와 다시 산으로 드는 지점인데 무성한 풀로 안내판이 잘 안보인다

 

 

 

 

산에서 다시 마을길로 나오는 지점인데 예전 벽화가 보여 반갑다 

 

 

 

 

조해루(朝海樓)

강화외성은 1233년 몽골의 침입에 맞서 강화 동쪽 해안 방어를 위해 적북돈대에서부터 초지진까지 쌓은 높이 20척 · 폭 5척 · 길이 23km의 성이다

조해루 · 복파루 · 진해루 · 참경루 · 공조루 · 안해루 등의 문루 6개소 · 암문 6개소 · 수문 17개소를 설치했다고 한다

개경(開京)에서 천도한 정부가 38년간 육지로부터 보급물자를 지원받았던 곳이기도 하다

*

벽화가 있는 마을에서 능가사 방향으로 오다 능가사 앞 삼거리에서 왼쪽으로 잠시 걸으면 연미정이 있는 월곶돈대가 보인다

 

 

 

 

연미정(燕尾亭 · 인천 유형문화재 제24호))

한강이 서해로 흘러들면서 양쪽으로 갈라지는 모습이 제비꼬리와 같다하여 '연미정'이라 하였다

강화 8경의 하나로 손꼽히는 절경을 이루는 곳으로 옛날에는 서해로부터 서울로 가는 배가 이 정자 밑에 닻을 내리고 물때를 기다려 한강으로 들어갔다

건립연대는 정확하지 않지만 고려 고종(1244)이 구재학당(九齋學堂)의 학생들을 이곳에 모아 면학케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정묘호란 때 인조가 청나라와 굴욕적인 형제관계의 강화조약을 맺었던 곳이기도 하다

이후 조선 영조 20년(1744)에 중건되었고, 조선 고종 28년(1891)에 중수한 후 여러차례 보수되었다

 

 

 

 

유도(留島)

1997년 북한 개풍군에서 홍수로 떠내려온 황소를 구출해 키워낸 유도다

 

 

 

 

북한 개풍군 방향

 

 

 

 

월곳리 로터리

연미정에서 이동식 후 다시 갑곶순교성지로 향한다

 

 

 

 

염하강 철책

인도에 붉은 고무관이 있어 궁굼했는데 배수관이다

 

 

 

 

옥림리 안내판

이곳에서 수로 안쪽으로 걷는다

 

 

 

 

옥개방죽

왼쪽 파이프에서 고무관을 따라 흘러온 물이 나온다

 

 

 

 

용정리로 들어간다

수로에 낚시꾼들이 몇 있었다

 

 

 

 

전신주가 늘어서 있는 길로 간다

고려산 · 혈구산 앞쪽에 남산의 강화산성이 보인다

 

 

 

 

논길을 따라 걷다 다시 산으로 들다 뒤돌아봤다

 

 

 

 

예닮카페 철펜스에 핀 꽃이다

 

 

 

 

예닮카페를 지나 진달래밭 길이다

 

 

 

 

강화군 6 · 25참전용사기념공원

 

 

 

 

도로 턱에 나들길 화살표가 희미하게 남아있다

 

 

 

 

갑곶나루 선착장 석축로(인천 기념물 제108호) 빗돌

이곳은 김포시 월곶면 성동리와 강화군 강화읍 갑곶리 사이를 연결하던 나루터이다

세종 때에 최초로 석축로가 축조되었으며 정묘호란 때(1627)에는 인조가 이곳을 건너 강화도로 피신하기도 하였다

이후 약 500여 년간 사용되다가 교통수단의 변화로 1920년 무렵에 나루터가 폐쇄되었으며

1970년 강화대교가 개통되면서 완전히 폐쇄되어 지금은 선착장 석축로만 남아 있다

 

 

 

 

갑곶순교성지 빗돌

미국이 1866년의 제너럴셔먼호 사건을 빌미삼아 1871년 군함을 앞세우고 강화도 해역을 침범한

신미양요(辛未洋擾)가 일어난 후, 대원군은 더욱 심하게 천주교를 박해하게 된다

미국 군함이 물러간 후 고종은 철저하게 천주교인을 잡아 처벌하라는 교서를 내리게 되는데

이때 미국 함대에 왕래했던 박상손(朴常孫) · 우윤집(禹允集) · 최순복(崔順福) 등이 제일 먼저 잡혀 갑곶진두(갑곶나루터)에서 목이 잘려 효수되었다

 

 

 

 

통제영학당 터(인천 기념물 제49호) 빗돌 · 우물 터

통제영학당은 조선 고종 때인 1893년에 설치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해군사관학교로 현재 터만 남았다

개항과 더불어 해양방어의 일환으로 군함의 건조와 구입을 추진하였으나

인재 부족 · 재정궁핍 · 청나라와 일본의 방해 등으로 효과를 거두지 못하자 그에 필요한 인재를 양성하고자 이곳에 건물을 신축하였다

그러나 동학농민전쟁과 청일전쟁 등으로 인해 교육이 순조롭지 못하다가 1896년 5월 영국군 교관들이 귀국하자 폐교되었다

 

 

 

 

신앙의 증거자 박순집(베드로 · 1830~1911) 묘

1830년 10월 9일 서울 남문 밖 전생서(典牲署 · 지금의 용산구 후암동)에서

순교자 박 바오로와 김 아가다 사이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부모의 신앙을 이어받으면서 성장하였다

1839년 기해박해 때, 새남터에서 순교하신 주교와 신부들의 시신을 수습하여 안장한 부친 박 바오로는 아들 박 베드로에게 이 사실을 알려 준다

그리고 1866년 병인박해가 일어나자 그는 박 바오로의 뜻을 이어 가기로 결심한다

그래서 박순지(요한) 등 몇 몇 신자들과 함께 제4대 조선교구장이었던 베르뇌 외 많은 순교자들의 시신을 수습하여 이장하였다

그리고 3월 7일과 9일에 서소문 밖에서 순교한 남종삼(요한)과 최형(베드로) 시신도

신자들과 함께 찾아내어 안전한 곳에 안장하는 등, 순교자들의 시신을 수습하는 데 최선을 다한다

이는 죽음을 각오한 순교자적 고귀한 희생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로써 그는 우리나라 순교 역사의 증거자가 된다

*

천주교 인천교구는 문헌상에 나와 있던 갑곶진두의 정확한 위치를 찾아 그 터를 매입한 후 2000년에 순교성지로 조성하였고

2001년 9월에는 순교자들의 행적을 증언한 박순집의 묘를 이장하였다

 

 

 

 

순교지 성당

창이 없는 검은색의 성당이다

 

 

 

 

구 강화교

구 대교 밑(옛 선착장 자리)는 1951년 1 · 4후퇴 당시 강화향토방위특공대에 의해 부역자의 가족 · 칠십 세가 넘은 할머니

집에서 살림만 하던 부녀자 · 1살 먹은 아기 등 아무 죄도 없는 억울한 인명을 아무 재판 절차도 거치지 않고 무참하게 살상한 장소이다

남 45명 · 부녀자 약 15명이고, 시일은 1951년 1월 6일에서 8일까지라고 한다

그후에 각 해안에서 희생자의 수는 약 300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

구 강화교는 안전진단으로 인해 통행금지다

 

 

 

 

연기우(延基羽 · 미상~1914) 의병장 공적비

연기우는 일명 민우 · 경기도 양주군 구리면 인창리에서 성장하였다

약관에 큰 뜻을 품고 국가의 간성(干城)이 되고자 군에 들어가 강화 진위대 부교로 있다가 1907년 8월 한국군이 일제에 의해 강제 해산 당하자

같은 진위대의 부교인 지흥윤 · 유명규 · 이동휘 · 김동수 등과 강화 전등사에 모여 의병 모집을 밀회하고

의병을 일으켜 강화도에서 여러 차례 일본군을 격파하였으나 증원 받은 일본군 공격에 격퇴 당하고 말았다

그 후 다시 의병을 모아 동한 창의대장이 되어 경기도 연천 · 적성 · 삭녕 · 마전 · 장단 등지에 출몰하여

양주 · 포천 지역의 강기동과 연합하여 일본군 수비대와 경찰을 끊임없이 공격하였다

1907년 12월 결성된 13도 창의대진소에 들어가 서울 진공 작전에 참가하였고

그 후 창의한북대장이 되어 다시 의병을 이끌고 고양 · 연천 · 마전 · 삭녕 · 강화 교동 방면에서 일본군과 치열하게 싸웠고

1910년 구월산 · 지리산 등지에서 유격전을 전개하여 큰 전과를 올렸다

1914년 일본군의 끈질긴 추적으로 체포되어 장렬히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1962년 건국훈장 복장을 추서했으며 동작동 국립현충원 애국지사 묘역 위패실과 서대문 독립공원 독립관에 영현이 모셔져 있다

 

 

 

 

갑곶돈대

1코스 마침점이다

늦은 시간이지만 들어가 본다

 

 

 

 

갑곶돈대

1232년 고려가 강화로 천도한 이후, 1270년까지 몽골과의 줄기찬 항전을 계속하며 강화해협을 지키던 중요한 요새였다

강화의 관문으로 적진을 살필 수 있는 진해루가 있었으며 물살 건너편의 문수산성 서쪽 성문인 취예루를 마주하고 있었다

 

 

 

 

강화나들길2코스 시점

갑곶돈대 매표소 바로 옆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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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청소년수련관버스정류장이 마침점이다

 

 

 

 

GPS로 확인하니

걸은 거리 19.3km, 소요시간 8시간 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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