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길이야기

하남위례길 4코스(위례둘레길) 2-2

지난 주에 걸은 하남위례길 4코스(위례둘레길)를 이어 걸었다

4코스는 길이가 39.7km로 하루에 걸으려면 주마간산(走馬看山)이 될 것 같아

대중교통이 편리한 남한산성 북문을 기점으로 두 번에 나누어 걷기로 했다

다른 산객들은 하루에도 걷는 길을 두 번에 나누어 걸으니 시간적 여유가 있겠다 싶었는데 막상 걸어보니 이번도 그게 아니었다

*

하남위례길에 대한 하남시 안내글

하남시는 백제의 시조인 온조왕이 최초의 도읍으로 정하였던 하남위례성이 위치했던 곳으로

백제 한성시대 약 500여 년간 도읍이었던 역사적인 고장이다

그래서 옛길을 복원하여 만든, 걷고 싶은 길의 이름을 하남위례길이라 하였다

*

하남위례길 4코스 위례둘레길은 하남 위례성의 궁안 지역을 둘러싼 산을 걸으며

이성산성 · 금암산 · 남한산성 성곽 · 벌봉 · 객산에서 지금의 하남과 옛 백제의 왕도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다

 

 

남한산성 로터리

남한산성 안에는 핵심 간선도로망이었던 봉화로가 남문과 동문을 통해 이어져 있으며

남한산성의 중심지에서 한양도성의 동쪽(지금의 하남시)과 남쪽(송파 · 마천)으로 바로 이어지는 중요 노선들이 남한산성 로터리를 중심으로 연결되어 있다

남한산성에서 동으로 몇 리 · 남으로 몇 리 이렇게 거리를 측정하는 것도 바로 이 로터리를 기준으로 정한다

남한산성 내의 기준점이다

로터리 옆 버스정류장이 시점이다

 

 

 

 

전승문(全勝門 · 북문)

남한산성에는 동 · 서 · 남 · 북 4개의 문이 있는데, 북문은 병자호란 당시 성문을 열고 나가 기습공격을 감행했던 문이다

싸움에 패하지 않고 모두 승리한다는 뜻에서 전승문이라고도 하였다

당시 영의정 김류의 주장에 의해 군사 300여 명이 북문을 열고 나가 청나라 군을 공격하였으나 적의 계략에 빠져 전멸하고 말았다

이를 「법화골전투」라 하는데, 병자호란 당시 남한산성에서 있었던 최대의 전투이자 최대의 참패였다

정조 3년(1779) 성곽을 개보수할 때 성문을 개축하고 이름을 전승문이라 한 것은 그 때의 전투를 잊지말자는 뜻이었을 것이다

선조 때의 기록을 보면 산성내에 동문 · 남문 · 수구문 총 3개의 문이 있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북문은 인조 2년(1624)에 신축된 성문이라고 생각된다

 

 

 

 

지난 번, 북문에서 마쳤기에 다시 북문 옆 성곽을 오른다

 

 

 

 

검단산 · 용마산 · 매봉

가장 가까운 마루금이 객산이 있는 위례둘레길이다

 

 

 

 

북장대터

장대란 지휘와 관측을 위해 군사적 목적으로 지은 누각 건물로 남한산성에는 5개의 장대가 있었다

이곳은 북장대가 있던 곳으로 성의 북쪽에 있다하여 북장대라 불린다

북장대는 인조 2년(1624) 남한산성 수축시 단층 누각으로 지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이 곳에는 수어청에 소속된 5영 중 중영장을 지휘하던 곳이다

남한산성의 장대는 18세기 초에 붕괴되었고, 18세기 중엽에 이르러 남장대와 서장대는 다시 수축하였으나 북장대와 동장대는 다시 수축하지 않았다

한봉성과 연주봉옹성의 축성으로 동장대나 북장대는 상징적 의미만 있을 뿐 군사적 실효성이 없어졌기 때문으로 추정한다

 

 

 

 

남한산성(사적 제57호)

삼국시대 이래로 한강과 더불어 삼국의 패권을 결정 짓는 주요 거점이었으며 백제시대 토성 위에 조선시대 석성으로 축조한 산성이다

수도권 최대의 소나무 군락이 있으며 호국정신을 고취하면서 걸을 수 있는 길이다

 

 

 

 

하남시

왼쪽 금암산, 이성산 · 정면 예봉산 · 오른쪽 객산, 검단산  품에 있다

 

 

 

 

금암산 · 이성산

오늘 걸을 길이다

 

 

 

 

매탄터

서문에서 북동쪽 능선 방향에 있는 이곳은 매탄터(처)로 알려져 있다

이곳의 중간 부분에는 지름 5m · 깊이 1m 정도의 구덩이가 파여 있는데 아마도 이곳에 매장되어 있던 목탄을 태우는 과정에서 생긴 것으로 보인다

소금과 마찬가지로 숯도 산성에서 필요로 하는 중요한 물품 중 하나였는데

「남한지」에는 숯을 묻은 것이 94곳에 24,192석이라 하였고, 천주사 별관에서부터 북장대까지 묻은 위치와 양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롯데월드타워

북한산 · 도봉산 · 불암산 · 아차산 등이 보인다

 

 

 

 

북한산 · 도봉산

아차산 · 일자산이 앞에 있다

 

 

 

 

롯데월드타워

 

 

 

 

롯데월드타워

남산이 뒤에 있다

 

 

 

 

우익문(右翼門 · 서문 · 사적 제57호)

서문은 산성의 북동쪽 모서리 부분의 해발 450m 지점에 위치하며 개구부와 문루로 구성되어 있다

서쪽 사면은 경사가 급해 물자를 이송하기는 어렵지만 광나루나 송파나루 방면에서 산성으로 진입하는 가장 빠른 길이다

서문은 산성의 초축시기부터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정조 3년 개축하여 우익문이라 칭하였다

 

 

 

 

제5암문(연주봉옹성 암문)

암문은 적의 관측이 어려운 곳에 설치한 성문으로 일종의 비밀통로이기 때문에 적에게 쉽게 식별될 수 있는 시설도 설치하지 않았다

이 암문은 연주봉옹성으로 연결되는 통로로 서쪽에는 성벽에서 2m 정도 돌출된 치가 있고 북쪽으로는 직선길이 150m 정도의 연주봉옹성이 연결된다

개구부 외부는 홍예식이고 내부는 평거식이다. 통로의 길이는 5m 정도로 천장은 장대석 5매로 덮어 있다

 

 

 

 

연주봉옹성

옹성은 일반적으로 성문을 보호하기 위해 성문 밖으로 한 겹의 성벽을 더 둘러쌓은 이중의 성벽을 말한다

그러나 남한산성의 옹성은 성벽으로 접근하는 적을 3면에서 입체적으로 공격하고

요충지에 대한 거점 확보를 위해 성벽에 덧대어 설치한 시설물로 다른 성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남한산성에는 모두 5개의 옹성이 있는데 이 옹성은 북서쪽의 요충지인 연주봉을 확보하기 위해 설치하였다

 

 

 

 

연주봉옹성(연주봉 465m)

연주봉에서 바라보면 아차산 북쪽과 남양주 일대 한강이 조망되고

이성산성과 하남시 춘궁동 일대가 특히 잘 보이며 성 내부의 지역도 관측되는 중요한 요충지이다

 

 

 

 

연주봉옹성 포대

근래의 발굴조사 결과, 옹성 끝에서 포대로 추정되는 유구가 확인되어 고증을 통하여 복원하였다

연주봉 옹성이 둘레는 315m이고, 전투 시에 성내로 출입할 수 있도록 옹성과 본성이 만나는 위치에 암문을 설치하였다

 

 

 

 

하남시 전경

연주성옹성에서 봤다

 

 

 

 

남한산성 방향

연주봉옹성에서 봤다

 

 

 

 

금암산으로 가는 길이다

 

 

 

 

이동식을 하는 빅터

 

 

 

 

연리목

뿌리가 다른 두 나무의 줄기가 합쳐져서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연리목을 부부나무 · 사랑나무라고도 부른다

이 나무 앞에서 서로 손을 잡고 기도하면 부부간에 금슬이 좋아지고 남녀 간에는 사랑이 이루어진다고 전해지는 희귀목이다

 

 

 

 

널문이고개(왼쪽) · 항동(項洞 오른쪽) 안내판

널문이는 마을 입구에 성황당이 있었으며, 그곳에 큰 문이 있었다고 한다

이 큰문을 가리키는 '넓은 문'이 널문이로 변해서 불리우게 되었다고 한다

*

항동은 고골에서 남한산성을 오르는 길목(項)에 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또는 이 마을이 산으로 나무하러 다니는 길목에 있는 마을이라 해서 「목도(木道)」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당시 목(木)자를 항(項)자로 고쳤다

 

 

 

 

금암산으로 가는 길이다

 

 

 

 

금암산(322m) 빗돌

남한산성과 이성산성 중간에 위치하는 산이다

바위가 많을 뿐 아니라 그 바위 색깔이 비단색을 띄고 있어 금암산이라 하였다

또한 바위들이 많아 산 아래에서 볼 때 바위가 얼기설기 있는 것처럼 보이고 있어 「얼거산」이라 하기도 한다

 

 

 

 

어미새와 아기새 바위

 

 

 

 

범바위

금암산 주봉 아래 있는 바위로 그 밑에 굴이 있는데 옛날 이 굴에서 호랑이가 살았다 하여 범바위라 부른다

 

 

 

 

덜미재와 황골 안내판

덜미재는 금암산과 이성산성 사이에 있는 춘궁동과 감북동을 오가는 고개고, 항골은 황토골이라고도 하는데 지질이 황토도 많기는 하지만

가을에 이곳 전답의 곡식이 익을 때 경사면이라 아침햇살이 비치면 황금빛으로 아름답게 보여 붙여진 이름이다

 

 

 

 

매장문화재 발굴현장

하남 금암산 고분군 문화재 학술발굴조사 현장이다

조사기간은 2017년 11월 6일부터 2018년 4월 30일까진데 아직 발굴 중이다

 

 

 

 

큰바위 얼굴

바위에 거북 · 새 등의 이름을 붙여놓았는데 형태와 이름이 서로 연상되지 않는 바위들이 많다

 

 

 

 

금암산 고분

삼국시대에서 통일신라시대에 형성된 것으로 보이는 고분으로서

금암산 능선 주변의 돌을 다듬어 쌓아 만든 것으로 29호 정도가 분포하고 있다

 

 

 

 

광암동(廣岩洞)

광암동 일대에는 청동기시대의 고인돌들이 많이 있다

그래서 고인돌의 넓적한 바위 모양을 한문으로 표현하여 광암동이 되었다

 

 

 

 

향여고개로 내려가는 계단이다

 

 

 

 

향여고개

이성산과 금암산 줄기를 넘는 고개이며 춘궁동과 광암동을 오가는 고개로

이 근처에 향교가 있었기 때문에 향교고개로 불리던 것이 향여고개로 변한 것이다

예전엔 이곳에 성황당이 있어 오가던 길손들의 발길을 멈추게 하던 곳이었으나 지금은 도로 확장공사로 자취가 없어졌다

*

길 양쪽에 보리수 나무가 줄지어 있다

 

 

 

 

보리수 열매

 

 

 

 

이성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이다

 

 

 

 

이성산(二聖山 · 209m)

남한산성에서 금암산을 따라 이어진 줄기에 속한 이 산은 이성산성이라 불리우는 석축산성이 있다

전설에 의하면 백제의 왕자 두 사람이 이 산에 거주하였다 하여 칭하여졌다는 설이 있다

발굴조사 결과 삼국시대의 유물이 출토되고 있으며 오래 전부터 백제 도읍지와 관련하여 학계의 주목을 받아오고 있는 산이다

 

 

 

 

장방형 건물지와 8 · 9각 건물지(사적 제422호)

장방형 건물지는 이성산성 정상부에 위치하며 크기는 3,202×788cm · 내부면적은 약 76.5평이다

초석의 면을 다듬지 않고 기둥이 놓이는 윗면만 약간 다듬어 투박한 자연석을 그대로 사용했다

내부에 온돌이나 난방과 관련된 유구가 전혀 없는 것으로 보아 일상생활용 건물이 아니라 창고의 역활을 하는 누각형 건물인 것으로 판단된다

 

 

 

 

이성산성 동문지

한강 주변에 접해있는 여러 성들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곳에 위치해 있으며 군사적으로 중요한 지리적 가치를 지닌 유적이다

 

 

 

 

이성산성 동문지(사적 제422호)

동문의 형태는 요(凹) 모양의 현문식(출입구가 성벽 중간에 있어 드나들 때 사다리 등 특수시설을 이용해야 하는 문)이며

'ㄱ'자 형으로 꺾여있어 적으로부터 공격시 효율적인 방어가 가능하도록 축조되었다

 

 

 

 

이성산성 동문지(사적 제422호)

외벽 안쪽으로는 2차개축 때 형성된 것으로 보이는

문지공석 · 문비고정석과 집수시설 · 배수로 및 두 차례 이상 개축한 것으로 보이는 측벽이 있다

 

 

 

 

이성산성 동문지(사적 제422호)

문비고정석 중앙 하부는 암반층을 굴토하여 집수시설과 배수로를 만들었으며 출수구로 물을 배출시킬 수 있도록 자연스러운 경사로를 만들어 조성하였다

이는 동~서 방향의 경사로 인해 성 내부로 흘러들어온 물을 모아 성 외부로 배출시키기 위한 것이다

 

 

 

 

동문지 쉼터

이곳에서 다시 이동식을 하였다

 

 

 

 

동문지 돌탑

 

 

 

 

거북바위

 

 

 

 

사리고개 석불

 

 

 

 

하남위례교

1987년 12월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개통으로

덕풍골과 이성산성 간의 생태환경 · 생활문화권 · 역사문화탐방로가 30여 년간 단절되었던 것을 2014년 1월 착공 · 10월에 준공하였다

 

 

 

 

서울외곽순환고속도

아차산과 불암산 사이로 북한산이 보인다

 

 

 

 

사랑나무

금암산 연리목과 같은 글이 써있다

 

 

 

 

말바위로 가는 길이다

 

 

 

 

하남 덕풍골 1호 돌방무덤

이 밖에 돌덧널무덤 · 덕풍골 06-1호 돌방무덤 등의 안내판이 있어 주변을 찾아보았으나 보존의 이유로 도로 묻어놓았는지 눈에 띄지 않는다

 

 

 

 

말바위

말바위는 큰 바위를 뜻하는 말이다

그런데 이곳에서 사람들이 떠들면 말소리가 골짜기를 타고 산울림이 되고

그 되울림 소리가 마치 바위가 말을 하는 것처럼 들리어 이 바위를 말바위라 하였다고 한다

 

 

 

 

학유정(鶴遊井)

학유정 약수터 일대는 조선 제2대 정종대왕의 제4왕자 신성군의 묘역이다

세조 6년(1460) 신성군 묘소를 모실 때부터 학이 놀던 깨끗한 우물과 약수가 흘러 학유정이라 부르며 500년 이상 마셔왔다

지난 2010년 덕풍터널 공사로 수맥이 끊겼던 것을 지하 150m에서 수맥을 찾아 다시 공급하게 되었다

 

 

 

 

호랑바위

옛날 정서방이라는 아주 힘센 장사가 이 바위로 호랑이를 잡았다고 한다

영물을 잡은 죄로 관가에 끌려가 곤장을 맞았지만 호랑이 가죽을 바친 덕에 상금도 받았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덕풍골(德豊谷)

옛날부터 이곳을 덕풍골이라 했다

당시 이곳에는 덕봉역이 있었는데 이후 덕봉이 덕풍으로 되었다고 한다

또 다른 말에 의하면 이 덕봉골짜기는 아무리 가물어도 샘물이 마르지 않는 곳이라 한다

이 샘물 때문에 매년 풍년이 든다고 해서 풍요로운 골짜기라 하여 덕풍골이라 불려졌다고도 한다

 

 

 

 

희령군 현록대부 시이정공 신도비(熙寧君 顯祿大夫 謚夷靖公 神道碑)

희령군은 조선 태종의 여섯 째 서자로 숙의 최씨의 소생이다

 

 

 

 

숭이재(崇夷齋)

태종왕자 희령군(熙寧君) 휘(諱) 타(袉)께서는 시호(諡號)가 이정(夷靖)이시라 숭이재라 명하였다

 

 

 

 

도로를 잠시 걷다 다시 덕풍천을 따라간다

 

 

 

 

덕풍1교

4코스를 나누어 걸을 때 처음에 지났던 곳이다

이제 시청 방향으로 간다

 

 

 

 

하남시청 정문 빗돌

시청을 오른쪽에 두고 돌면 버스정류장이 있다

마침점이다

 

 

 

 

GPS로 확인하니

걸은 거리 14.3km, 소요시간 6시간 37분

'길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김포함상공원  (0) 2018.06.16
평화누리길 김포1코스(염화강철책길)  (0) 2018.06.16
인천종주길 3코스  (0) 2018.06.09
하남위례길 4코스(위례둘레길) 2-1  (0) 2018.06.08
인천종주길 2코스  (0) 2018.06.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