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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종주이야기 1

제천~주천

제천행 7시 버스는 앞선 차들이 알려주는 도로 정보를 전해 들으며 이리저리 돌아왔으나
소요시간 2시간 반의 두 배가 걸려 12시나 되서 도착했다
기사님 왈 명절 때도 4시간에서 4시간 반이면 왔었는데 올 여름이 역대 최고란다

 

 

제천고등학교
충청남북도의 별칭인 호서지방은 의림지 서쪽에 있는 지방이라는 뜻에서 유래하기에
방향은 많이 벗어나지만 들려볼까 했는데 차 막힘이 간단히 결정해 주었다
황기막국수식당에서 식사를 하며 주민들 대화를 들어보니 말끝을 살짝 올리는 말투가 강원도 사투리에 가깝다

 

 

 

 

명륜회관

 

 

 

 

제천향교
고려 공양왕 1년(1389)에 지어진 제천향교는 원래 마산 서쪽에 있던 것을 선조 23년(1590)에 지금의 자리로 옮겼으나 임진왜란으로 인해 쇠퇴하였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 · 노비 · 책 등을 지급 받아서 학생들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1894) 이후에는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 · 가을 2차례 제사만 지낸다

 

 

 

 

명륜당(明倫堂)
전학후묘의 형태다

 

 

 

 

동재(東齋)

 

 

 

 

서재(西齋)

 

 

 

 

대성전(大成殿)
공자를 비롯하여 여러 성현들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던 곳으로
순종 1년(1907)에 의병장 이강년이 왜군과 싸울 때 불타, 1922년 다시 중수하였다

 

 

 

 

장락동마을회관

 

 

 

 

자두

 

 

 

 

장락사
칠층모전석탑이 앞에 있다

 

 

 

 

장락사 칠층모전석탑 / 보물 459호
통일신라 말기의 탑으로 추정되며 높이 9.1m다
모전이란 말은 회흑색 점판암을 벽돌처럼 잘라 쌓았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한국전쟁 때의 심한 피해로 무너지기 직전에 있었는데, 1967년 해체 복원하였다
이때 지붕돌 위에서 꽃 모양이 새겨진 청동편이 발견되어 상륜부는 청동으로 만들어졌던 것으로 추정된다

 

 

 

 

장락사(長樂寺)

 

 

 

 

대웅전

 

 

 

 

장락사지(長樂寺址)
삼국시대에 창건된 이래 조선 중기까지 존속하다가 17세기경 폐사됐다
창건 이후 다섯 차례에 걸친 중창불사가 이루어졌고
가장 번성했던 때는 고려시대로 조사지역 전체에서 유구가 확인되었으며 유물 또한 가장 많은 양을 차지하고 있다

 

 

 

 

제천시
장락사지 발굴조사의 가장 큰 성과는 제천지역에서 최초로 확인된 삼국시대 불교유적이라는 점과
연화문수막새와 새끼줄무늬 및 직선문이 새겨진 기와 등은 제작 시기가 6세기 후반 경으로 추정되고 있어
고대의 문화 전파 경로와 제천 지역의 고대 역사 연구의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철도 건널목

 

 

 

 

장락역
철길을 지나 고암교차로로 가다 오른쪽에 있다

 

 

 

 

용두산권역 농촌마을 종합개발사업 안내도

 

 

 

 

송한1리삼거리
지실삼거리를 지난 곳으로 오른쪽 길로 들어가면 송학산이 나오고 뒤엔 청룡산이 있다

 

 

 

 

송한2리삼거리
직진하면 오미저수지가 나오는데 주천은 오른쪽 길인 82번지방도로로 가야한다

 

 

 

 

충청도 송학면 · 강원도 주천면 경계
전라도부터 시작해 경상도와 충청도를 거쳐 이제 강원도다

 

 

 

 

금마리 독립만세상
신일리와 금마리 사이인 금마고개에 있다
1919년 4월21일 주천 장날을 기하여 박광훈외 만세주동자들은 사람들을 모으기 시작했고
당시 영월군수 석명전이 부하 2명과 함께 주민에게 만세반대자 명부에 서명할 것을 요구하자
박수창은 이를 완강히 거부하면서 군수 일행을 주민 앞으로 끌고가 만세 연명부에 서명하게 한 후 태극기를 들려 힘차게 만세를 부르도록 했다
이로 인해 69명이 검거되었고 17명이 옥고를 치렀으며, 이 중 탁원근은 옥중에서 숨졌다

 

 

 

 

해바라기 씨받기

 

 

 

 

나래실천

 

 

 

 

주천(酒泉) 빗돌
신일사거리 오른쪽에 있다

 

 

 

 

공덕비 군

 

 

 

 

주천(酒泉 술샘) 빗돌
망산(望山) 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이 샘물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東國輿地勝覽)에 주천이라는 지명으로 전해져 오는 곳이다
옛날에는 이 샘에서 술이 나왔는데 양반이 오면 약주가 나오고 천민이 오면 탁주가 나왔다고 하여
고구려시대 주연현(酒淵縣)에서 통일신라시대 경덕왕때 주천현(酒泉縣)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
전설에 의하면 조선시대 한 천민이 양반 복장을 하고 와서 약주가 나오길 기다렸으나 약주는 나오지 않고 평소와 같이 탁주가 나오자

화가나서 샘터를 부순 이후부터 술샘에서는 술이 나오지 않고 맑고 찬 샘물만 나오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주천(酒泉 술샘)

 

 

 

 

주천강
주천교에서 보니 피서인파가 많다

 

 

 

 

주천강
그리 깊지 않아 아이들 물놀이하기 좋다

 

 

 

 

산장여관
예전엔 걷기여행을 하는 사람들도 가끔 들렸고 한비야 씨도 도보여행 때 이곳 6호실에서 묵고 갔는데
근래엔 도보꾼이 통 없었다며 반기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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