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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야기

북한산(북한산성입구~대서문~태고사~북한산장~진달래능선)

몇 주 전부터 가려던 북한산에 들었다

언제 어느 때 가도 좋은 곳이다

 

 

북한산성입구 버스정류장

시점이다

 

 

 

 

북한산 들머리

세계 유명 브랜드 등산용품점들이 줄지어 있다

 

 

 

 

백운대 · 대서문 갈림길

 

 

 

 

대서문으로 오르는 길이다

 

 

 

 

대서문(大西門)

북한산성 성문 16곳 중 가장 낮은 지점에 위치한다

1712년(숙종 38) 숙종이 북한산성에 행차했을 때 이 대서문을 통해 성내로 들어갔다

지금의 문루는 1958년에 복원한 것으로 북한산성 문루 중 가장 오래되었다

문루에 배수시설로 용머리 모양의 누혈(漏穴)을 성문 앞뒤로 두었다

 

 

 

 

문루 바깥쪽 담장은 아직 복구되지 않은 듯하다

 

 

 

 

2006년 3월부터 추진된 북한산성지구 이주 및 정비사업으로 민가는 모두 철거되었는데

아직 남아 있는 이 집은 무슨 용도로 쓰이는지 모르겠다

 

 

 

 

천하대장군 · 지하여장군

장승은 마을 어귀에 세우는데 이곳이 언덕을 넘는 곳이라 세운 듯하다

언덕을 넘으면 무량사가 있다

 

 

 

 

무량사(無量寺 · 경기도 전통사찰 1호)

고종의 후궁인 순빈 엄씨와의 인연으로 사찰의 역사가 시작됐다

순빈은 지금의 무량사 자리에 산신각을 짓고 약사불좌상과 산신탱화를 모신 뒤 백일기도를 올려 아들을 낳았다고 한다

이 아들이 바로 영친왕 이은이다

이런 이유로 순빈의 원당이 되었으며 일반인에게는 백일기도를 올리면 소원을 들어주는 사찰로 알려졌다

지금 약사불좌상과 산신탱화는 약사전에 모셔져 있다

북한산성의 방어를 위하여 승병을 주둔 시켰던 승영사찰은 아니지만

1900년 전후에 제작된 약사불좌상과 산신탱화가 모셔져 있어 경기도 전통사찰 1호로 지정되었다

 

 

 

 

북한동마을 제일산장이 있던 곳이다

2006년 시작된 북한산성지구 이전 및 정비사업을 통해 철거 및 정비한 곳으로

예전의 모습과  현재의 모습 사진을 비교해 전시해 놓았다

 

 

 

 

북한동역사관

과거 북한산성 안 가장 큰 창고인 하창이 있었던 곳으로

북한산국립공원 · 북한산성의 역사 · 북한산성의 구조 등의 글과 사진이 전시되어 있다

 

 

 

 

물이 맑고 풍부해진 계곡을 끼고 걷는다

 

 

 

 

북한산국립공원 멸종위기식물원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멸종위기식물이 살고 있는 국립공원은 멸종위기식물들을 보전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장소다

 

 

 

 

북한동 향나무

일반적으로 향나무는 옆으로 자라거나 심한 굴곡을 가지는데

이곳 향나무는 곧게 자라고 있어 여느 향나무와 외형에서 뚜렷이 구별된다

향으로 사용하기 위해 나무에 상처를 입히면 마을에 큰 탈이 난다는 믿음이 전해온다

*

나무 높이 7m · 둘레 2.3m · 나이 350년 · 지정일자 1982. 10. 15

보리사 앞 계곡 위에 있다

 

 

 

 

보리사 앞 쉼터

 

 

 

 

보리사 대웅전

 

 

 

 

용왕상

보리사를 지나 선봉암으로 오르는 길에 있다

 

 

 

 

범종각 · 선봉암 야외법당

선봉사는 등산로 가까이 있는 조용한 가람이다

 

 

 

 

거북암

등산로에 있어 자판기가 있다

 

 

 

 

법용사 대웅전

등산로에서 오른쪽으로 잠시 올라야 한다

 

 

 

 

보덕굴 · 보덕화상 안내문

법용사에 걸려 있다

 

 

 

 

중성문(中城門)

북한산 노적봉과 증취봉 사이 협곡에 쌓은 중성(重城)에 설치된 성문이다

이곳에 이르는 지형이 비교적 평탄해 적의 공격에 취약한 구역이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적의 공격을 이중으로 방어할 수 있는 차단성인 중성을 쌓았다

 

 

 

 

암문(暗門 시구문)

중성문 옆의 암반에 폭 2.1m · 높이 1.8m 규모의 작은 암문이 숨겨져 있다

이 암문은 원래 이름이 없었으나 성 안에서 생긴 시신이 중성문을 통과하지 못하고 이 문을 통해 나간다고 시구문(屍口門)아라 불렀다

 

 

 

 

중성문 옆을 흐르는 계곡에는 수문이 있었으나 현재는 남아있지 않다

예전 수문은 V자 계곡에 있었다

 

 

 

 

중성문 사진(1907년)

1907년 자료 사진을 보니 중성문과 시구문 옆 큰 바위를 깎아 만든 계단 옆이 수문터다

 

 

 

 

중성문 문루 옆 큰 바위를 깎아 만든 계단이다

 

 

 

 

옛 수문터

큰 바위를 깎아 만든 계단 옆인데 흔적도 없다

 

 

 

 

옛 수문터

왼쪽  깎아 만든 계단과 오른쪽 무너진 성벽 사이에 있었다

 

 

 

 

노적교

노적사 들머린데 몇 달 전에 다녀와 오늘은 지나친다

 

 

 

 

명판바위

 

 

 

 

명판바위

글씨를 자세히 보았으나 앝게 새겨져 있어 알아볼 수 없다

 

 

 

 

부황사 · 대남문 방향안내판

 

 

 

 

산영루(山映樓)

태고사 계곡과 중흥사 계곡이 합수되는 지점 연못가에 있으며 산그림자가 수면 위에 비치는 곳이라 하여 산영루라 이름붙였다

산영루의 시초는 고려시대 때 중흥사와 연관된 누각으로 추정된다

 

 

 

 

북한산 선정비군

이곳의 비석은 북한산성 관리의 최고 책임자가 재임할 당시의 선정과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선정비로 현재 26기 정도 남아 있다

이들 선정비의 건립 시기는 모두 19세기이다

 

 

 

 

북한승도절목(北漢僧徒節目)

아랫쪽 사각 틀의 암각문은 1855년(철종 6)에 새겨진 북한승도절목으로 모두 325자이다

명문에는 승병대장인 총섭을 임명할 때 예상되는 폐단을 없애기 위한 규칙 3가지를 제시해 놓았다

이를 통해 승영사찰이 피폐하여 승도가 흩어지고 있었던 사실과 그 원인이 총섭의 부적절한 임명에서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이때를 전후하여 산성 밖의 승려가 총섭에 임용되기 시작한 것과 불공정한 임용을 막기 위하여 다수결 비밀투표를 요구했던 사실도 파악할 수 있다

 

 

 

 

총융사김공문근청덕선정비(總戎使金公汶根淸德善政碑)

남아 있는 선정비 26기 중 하나다

 

 

 

 

산영루(山映樓)

태고사 계곡과 중흥사 계곡이 합수되는 지점 연못 앞에서 봤다

 

 

 

 

김성근(金聲根) 각자

김성근(1835~1919)은 조선 말기 문신 · 서예가로 본관은 안동 · 자는 중원(仲遠) · 호는 해사(海士) · 판서 온순(蘊淳)의 아들이다

1862년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910년 일제의 국권침탈 때 일제에 의하여 자작이 수여되었다

*

태고사 계곡과 중흥사 계곡이 합수되는 지점 연못 건너에 있다

 

 

 

 

산영루 계곡

산영루 아래 태고사 계곡과 중흥사 계곡이 합수되는 지점 연못 계곡에서 이동식을 했다

발을 담그니 차가운 물로 이내 저려왔다

 

 

 

 

용학사 대웅전 · 5층탑

용학사는 산영루와 북한산 선정비군이 있는 위쪽에 자리한 사찰로 대웅전보다는 야외 법당의 규모가 커 보였다

*

주 등산로 왼쪽 윗쪽에 있다

 

 

 

 

복원 중인 중흥사로 오르는 길이다

 

 

 

 

중흥사 대웅전

북한산성 내의 승영사찰 11곳 · 암자 2곳 · 승병 350여 명을 관리하고 지휘하던 승군사령부가 있던 사찰이다

정확한 창건 연대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고려시대인 1103년(숙종 8)에 주조된 금고(金鼓)와 1344년(충혜왕 5)에 만들어진 향로(보물 제311호)에

중흥사라는 명문이 있어 12세기 초 이전에 사찰이 이미 세워져 있었음을 말해준다

 

 

 

 

대남문 · 북한산대피소 방향안내판

왼쪽 태고사 방향으로 오른다

 

 

 

 

태고사 대웅전 · 비각

고려 말기의 대표적인 선승이자 왕사 · 국사를 지낸 태고 보우(太古 普愚 1301~1382)가 창건한 사찰이다

보우는 중흥사를 중창하고 그 동편에 암자를 지어 5년간 머물렀는데, 이 암자가 바로 지금의 태고사다

고려 멸망 이후 거의 폐허가 되었으나, 북한산성 축조와 함께 승병이 주둔하는 승영사찰로 1713년에 중창되었다

대웅전 오른쪽에는 보우의 행적을 기록한 원증국사탑비(보물 제611호)의 비각이다

 

 

 

 

고양 태고사 원증국사탑

고려 후기 승려인 원증국사 보우의 사리탑이다

보우의 법호는 태고(太古)이며, 왕사 · 국사를 거쳐 82세로 입적하자 이곳에 사리탑을 세우고 탑 이름을 보월승공(寶月昇空)이라 하여 영골(靈骨)을 모셨다

사리는 이곳만이 아니라 양산사 · 사나사 · 청송사 등에 나누어 봉안하였다

 

 

 

 

봉성암으로 오르는 길이다

 

 

 

 

봉성암

봉성암은 기도 · 수행 · 정진 도량이니 출입을 삼가해 달란다. 더구나 개조심하란다

안 들어가고 백운대 방향으로 간다

 

 

 

 

용암사지 · 엠포르산장

엠포르산장은 1968년부터 엠포르산악회에서 지은 북한산 두 번째 산장이다

 

 

 

 

용암사 터(龍巌寺址)

용암사(龍巌寺)는 북한산성 내에 있는 승영사찰 가운데 하나이다

1711년(숙종 37) 북한산성을 쌓을 때 전국에서 승병이 동원되었는데 이때 승병이 머물 사찰 11곳과 암자 2곳을 새로 짓거나 고쳐 지었다

이 승영사찰의 승병은 산성이 완성된 후에 삼군문의 군사시설을 보조하여 산성의 수비를 맡았다

승영사찰은 갑오개혁(1894) 때 승병이 강제로 해산되어 쇠락해졌으며 한국전쟁 당시에 대부분 파괴되었다

현재는 북한산대피소 자리를 비롯한 4곳에 축대시설이 남아 있고 북한산대피소 옆에는 석탑 지지대 1개 · 옥개석 2개 · 탑신석 1개가 남아있다

 

 

 

 

용암샘

엠포르산악회에서 만든 샘이다

한 땐 이곳에서 김장도 담그고 야간등반시 달빛 목욕도 했었다

*

예전 용암샘 내부로 들어가 샘물을 다 퍼내고 내부를 깨끗이 청소했던 기억이 있다

요즘 그렇게 하는 사람이 없어 마실 수 없게 된 것 같다

깨끗이 청소하고 관리하면 음용적합 판정을 받을 수 있을 듯하다

 

 

 

 

북한산대피소

예전 1970년대 공화산악회와 대한산악연맹이 전국에 35개의 산장을 세울 때 세워진 산장으로

관리인이 있던 2층 건물 산장이었는데 국립공원관리공단이 설립된 후, 유인산장에서 무인대피소로 바뀌었다

 

 

 

 

용암문(龍暗門)

대동문 북쪽에 있는 암문으로 산성이 축조된 숙종37년(1711)에 세워졌다

용암봉 아래에 있어 용암봉 암문이라고도 부르며 우이동으로 통하는 관문이다

암문은 일반 성문과는 달리 은밀한 곳에 만들어 전쟁 때에는 비밀통로로 사용하였다

산꾼들 사이에선 일명 북한산 냉장고라 불린다

 

 

 

 

용암문에서 성벽을 따라 대동문으로 간다

 

 

 

 

만경대 · 인수봉

북한산은 만경대 릿지, 인수봉 바위와 어울어진 백운대가 있어 행복하다

 

 

 

 

만경대 · 인수봉을 보고 다시 성벽을 따라간다

 

 

 

 

노적봉 · 만경대 · 인수봉

성벽이 손가락처럼 가늘게 돌고있는 끝에서 봤다

*

이곳에서 산객을 만났는데 술을 마시냐며 막걸리를 권한다

마시긴 하지만 산에선 안 마신다 하니 국립공원 내 음주금지 때문에 그러는 줄 알고

국립공원공단에 문의해 봤는데 9월 3일부터 시행이라며 괜찮다며 마시란다

성의가 고마워 한 잔 받아 마셨다

나도 커피와 견과류를 주고 참외도 받아 먹었다

짧은 20분간의 만남이다

 

 

 

 

동장대(東將臺)

북한산 동쪽에 있는 장대로 1712년(숙종 38)에 지어졌다

장대는 장군의 지휘소로 북한산성에는 동장대 외에 남장대 · 북장대가 있었다. 현재는 동장대만 남아 있다

동장대는 최고 지휘관이 사용하던 곳으로 장대 중에서도 가장 중요시되었다

 

 

 

 

동장대(東將臺)

장대의 평면은 정방형이며 중층 구조로, 아래 층은 벽 없이 트여 있어서 지휘하기에 편리하도록 했으며, 위층은 창으로 막아 방을 만들어 사용했다

장대의 구성이나 모습은 수원 화성의 서장대와 거의 같다

이 장대는 소실되었던 것을 1996년 복원한 것이다

 

 

 

 

명문바위

바위 윗쪽 사각 틀 안에 명문이 있으나 알아볼 수 없다

동장대에서 대동문으로 가는 길에 있다

 

 

 

 

동장대 · 노적봉 · 만경대 · 인수봉

 

 

 

 

불암산 방향

 

 

 

 

아차산 · 망우산 방향

 

 

 

 

대동문(大東門)

북한산성 동쪽에 있는 성문으로 산성이 축성된 1711년(숙종 37)에 지어졌다

문의 형식과 모습은 대남문이나 대성문과 같다. 그러나 홍예문은 이 문이 가장 크다

문루는 소실되었던 것을 1993년에 새로 복원하였는데 이때 홍예문 상부의 여장도 함께 복원하였다

 

 

 

 

대동문을 나와 진달래능선을 탄 후 두 번째 갈림길이다

첫 번째는 아카데미하우스고 이곳은 우이동 갈림길이다

 

 

 

 

뽀뽀바위

아빠 볼에 뽀뽀하는 아들 같다

영봉 마루금 뒤로 도봉산 마루금이 보인다

 

 

 

 

영봉

도봉산 오봉에서 만장봉 마루금이 옆으로 보인다

 

 

 

 

용암봉(716m) · 만장대(799.5m) · 백운대(836.5m) · 인수봉(810.5m)

안 보이던 백운대가 살짝 보인다

 

 

 

 

백련사 갈림길이다

 

 

 

 

아차산

롯데월드타워가 오른쪽으로 보인다

 

 

 

 

백련사

1930년 이은순 여사가 창건한 사찰로, 경내 여사의 추모비가 있다

 

 

 

 

심산 김창숙(心山 金昌淑) 선생 묘

경북 성주 출신으로 독립운동가 · 교육자 · 을사오적 처형요구

광복 후 이승만 정권에 항거 · 부정선거 규탄 · 성균관대학교 창립 초대학장 역임 ·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받았다

 

 

 

 

대동천

 

 

 

 

백련사 버스정류장

마침점이다

 

 

 

 

GPS로 확인하니

걸은거리 12.4km, 소요시간 7시간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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