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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야기

김포 장릉

김포 장릉(章陵 사적 제202호)

조선 제16대 인조(仁祖)의 아버지인 원종(元宗 1580~1619)과 인헌왕후(仁獻王后) 구씨(具氏 1578~1626)의 능이다

원종은 선조의 다섯째 아들로 태어나 1587년 정원군(定遠君)으로 책봉되었으며, 광해군 11년(1619)에 40세로 돌아가셨다

그의 맏아들인 인조가 1623년 왕위에 오르자 대원군으로 추존되었다가

인조 10년(1632)에 대왕(大王)으로 추존되었고, 원종의 시호(諡號)를 받게 되었다

인헌왕후는 능안부원군 구사맹의 딸로 1590년 13세에 혼인하여 연주군부인(連珠郡夫人)에 봉하여졌고

인조 4년(1626)에 49세로 돌아가셨다

인조가 왕위에 오른 후 부부인(府夫人)에 봉해지고, 원종과 함께 왕후로 추존되었다

장릉은 왕과 왕비의 능이 나란히 자리한 쌍릉을 이루고 있으며 문무석과 호석을 세웠는데 난간석은 없다

*

519년의 역사를 지닌 조선은 조상에 대한 존경과 숭모를 매우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유교를 통치이념으로 삼았기에 42기 능이 모두 잘 보존되었다
조선왕족의 무덤은 모두 112기에 이르며 이 가운데 왕과 왕비의 무덤인 능이 42기
왕세자와 왕세자비 또는 왕의 사친의 무덤인 원이 13기, 그 외의 왕족의 무덤인 묘가 64기이다
42기의 능 가운데 북한에 있는 제릉(태조 원비 신의황후의 능) 후릉(정종과 정인왕후 능)을 제외한 40기의 능이 남한에 있다

 

 

조선왕릉
2009년 6월 30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이미 올라있는 석굴암·불국사 · 해인사 장경판전 · 종묘 · 창덕궁 · 수원 화성 · 경주 역사유적지구

고창 · 화순 · 강화고인돌 유적과 제주 화산섬 · 용암동굴 등 모두 9건의 세계유산을 가지게 되었다

 

 

 

 

관리사무소

 

 

 

 

연지

 

 

 

 

장릉 홍살문

왕릉의 들머리임을 알리는 건축적 장치로 이곳을 지날 때 몸과 마음가짐을 엄숙히 하고

여기 모셔진 분들에게 경건한 예를 갖추라는 뜻으로 세워진 것이다

홍전문(紅箭門)이라고도 한다

*

계단식 참도가 앞에 있다

 

 

 

 

판위(版位)

헌관이 제례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곳으로 이곳에서 절을 4배 한다

배위(拜位)라고도 한다

 

 

 

 

정자각 (丁字閣)

정자각은 왕릉에서 제향을 지내는 건물로 침전이라고도 한다

정자각은 제향 음식을 차려 놓는 정전과 제례를 올리는 배위청이 합쳐져 있는데

건물 위에서 내려다본 모양이 丁(정) 자와 같아 정자각이라 불렀다

왕릉에는 왕과 왕비를 함께 모신 경우에도 정자각은 하나를 세우고 제향을 함께 지냈다

대한제국 때는 침전 안에 집 모양 장식인 당가를 설치하면서 건물의 규모를 늘려 건물 모양이 '一(일)'자형으로 바뀌었다

 

 

 

 

수복방(守僕房)

능에서 화재나 부정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지키는 수복이 근무하는 곳이다

 

 

 

 

인헌왕후 육경원 비석 받침돌
육경원 조성 당시의 비석 받침돌이 출토되어 보존하고 있다

 

 

 

 

장릉 비각(章陵 碑閣)

왕릉에 모신 왕과 왕비의 생애와 업적을 적은 비석인 신도비나 표석을 보호하기 위해 세운 건물이다

보통은 정면 1칸의 작은 건물이지만 비석 수가 늘어나면 칸 수를 늘려 짓기도 했다

 

 

 

 

장릉 표
조선국 원종대왕 장릉 인헌왕후 부좌 (朝鮮國 宗大王 王后祔左)

 

 

 

 

육경원(毓慶園) 비석 받침돌

추존된 원종의 비 인헌왕후 구씨가 인조 4년 1월 14일(成年) 승하전 인조 즉위년에 연주군부인에서

종실대군의 처에 해당하는 연주군부인(蓮珠府夫人)으로 올리고 궁호(宮號)를 계운궁(啓運宮)으로 받은 후

4년만에 49세로 승하하여 동년 3월 15일(成年) 원호(園號)를 육경원이라 하였다

 

 

 

 

장릉(章陵) / 사적 제202호

조선 16대 인조의 아버지인 원종과 인헌왕후 구씨의 능침 전경
1626년 인헌왕후가 세상을 뜨자 김포 성산 언덕에 안장하고 원호를 육경원이라 했다
이듬 해(인조 5년) 양주 곡촌리에 있던 원종의 홍경원을 이곳으로 천장하여 쌍릉으로 조성 후 홍경원으로 합하여 부르다
인조10년에 원종으로 추존 · 장릉으로 높이고 석물도 왕릉제로 고쳐 세웠다

 

 

 

 

장릉(章陵) / 사적 제202호

왕과 왕비의 능이 나란히 자리한 쌍릉을 이루고 있으며 문무석과 호석을 세웠는데 난간석은 없다

 

 

 

 

정자각 내부

 

 

 

 

산책로

 

 

 

 

소나무 숲

 

 

 

 

소나무 숲

 

 

 

 

해가 잘 들어오지 못하는 숲이다

 

 

 

 

저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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