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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야기

북한산(의상능선)

의상능선은 대남문에서 서쪽으로 뻗은 주능선이 문수봉에서 북서방향으로 갈라진 능선으로

문수봉 · 715봉 · 나한봉 · 나월봉 · 증취봉 · 용혈봉 · 용출봉 · 의상봉으로 이어진다

북한산 공룡능선이라 불리울 만큼 암릉이 아름다운 곳이다

*

2개월 전 형제봉능선과 의상능선을 즐기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기 위해 중도에 내려왔기에 다시 찾았다

 

 

백화사 버스정류장

효자부동산 건물을 끼고 백화사 들머리가 있다

 

 

 

 

여기소 터 빗돌

조선 숙종 때 북한산성 축성에 동원된 관리를 만나러 먼 시골에서 온 기생이 뜻을 이루지 못하게 되자

이 못에 몸을 던졌다는 전설에서 너 (汝) · 그 사람(其) · 잠긴 못(沼) 곧 「여기소」라 하였다

 

 

 

 

백화사(白華寺)

일법스님께서 쓰러져가는 백화사를 인수하여 새롭게 만든 도량이다

 

 

 

 

북한산둘레길 10구간 내시묘역길 아치

 

 

 

 

둘레길 · 의상봉 방향안내판

언덕을 오르면 나오는 갈림길에서 오른쪽 의상봉으로 간다

 

 

 

 

의상봉 · 가사당암문 방향안내판

의상봉 1.4km 방향안내판을 따라간다

 

 

 

 

누구의 빗돌인지

가사당암문 갈림길에서 3분 거리다

 

 

 

 

인천 계양산

오른쪽 뒤쪽 삼각형 봉이다

가사당암문 갈림길에서 20여 분 오른 지점이다

 

 

 

 

계양산 · 고봉산

왼쪽 뒤쪽이 계양산 · 오른쪽 뒤쪽이 고봉산이다

왼쪽 앞쪽 C자형 산이 이말산 · 오른쪽 앞이 노고산 자락이다

 

 

 

 

의상봉으로 오르는 철계단이다

 

 

 

 

쌍토끼바위

 

 

 

 

쌍토끼바위

두 마리 토끼가 얼굴을 맞대고 있는 듯하다

 

 

 

 

성랑지(城廊地)

북한산성 안에 둔 성랑 143군데 중 한 곳이 있던 곳이다

성랑은 성곽에 딸린 초소 건물이자 병사 숙소였다

북한산성 성랑 터에서 기와 파편이 다량으로 출토된 것으로 보아 성랑의 지붕에 기와를 얹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데크계단을 올라와 내려다 봤다

 

 

 

 

노고산

뒤로 앵무봉 마루금이 흐른다

 

 

 

 

의상봉(502m) 정상목

정상에는 반쯤 녹은 눈사람이 있다

 

 

 

 

북한산 원효능선

오른쪽 앞 노적가리 모양의 노적봉 뒤로 만경대 그 왼쪽으로 백운대 · 염초봉 · 원효봉이 있다

의상봉에서 가사당암문 방향에 있는 바위에서 이동식을 하며 봤다

 

 

 

 

백운대 · 만경대 · 노적봉

 

 

 

 

국녕사(國寧寺)

이곳은 신라의 의상(義湘)이 참선하던 곳으로 이름이 나 있었다

 이 때문에 절 뒤쪽의 봉우리를 의상봉이라 하였다

숙종 때 북한산성의 축조 · 수비 · 관리에 큰 역할을 담당하였던 승병이 주둔한 승영사찰이었는데

가사당암문의 수축과 방어를 담당하였을 것으로 판단된다

 

 

 

 

용출봉 · 용혈봉

바위에서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이동식을 하고 떠나기 전 만들었다

마침 바람이 불지 않아 좋았다

 

 

 

 

용출봉 · 용혈봉

가사당암문 윗쪽인데 이곳부터는 아이젠 착용 필수다

 

 

 

 

가사당암문

의상봉 · 용출봉 사이의 고갯마루에 위치해 있다

1711년(숙종 37) 북한산성 성곽을 축조하면서 만든 8개 암문 중 하나다

국녕사가 북한산성의 축조 · 수비 · 관리에 큰 역할을 하였고, 가사당암문의 수축과 방어를 담당하였기에 국녕문(國寧門)으로도 불린다

이곳을 지날 때부터 바람이 매서워지기 시작했다

 

 

 

 

의상봉 · 원효봉

뒤로 노고산 · 그 뒤로 앵무봉 마루금이다

 

 

 

 

용출봉(571m) 정상

비봉능선에서 왼쪽 승가봉능선 · 오른쪽 응봉능선이 다가온다다

 

 

 

 

소래산 · 계양산

한강이 앞쪽에 있다

 

 

 

 

의상능선

용혈봉 · 증취봉 · 나월봉 · 나한봉이다

 

 

 

 

용출봉에서 용혈봉으로 가는 철계단이다

 

 

 

 

할미바위

엄지바위라고도 부른다

 

 

 

 

용혈봉(581m)

뒤로 용출봉이 보인다

 

 

 

 

용출봉 · 의상봉

용혈봉 정상에서 보니 할미바위 윗쪽으로 품(品)자 바위도 보인다

 

 

 

 

원효봉 · 염초봉 · 백운대 · 만경대

노적봉이 앞에 있다

 

 

 

 

장군봉 · 나한봉

오른쪽으로 승가봉 · 사모바위 · 비봉 · 관봉 · 향로봉의 비봉능선이 흐른다

 

 

 

 

증취봉(593m)

 

 

 

 

장군봉 · 나한봉

사모바위 · 비봉이 오른쪽에 있다

 

 

 

 

부왕동여장

여장이란 성벽 위에 설치한 낮은 담장으로 적을 관측하고 공격하면서도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었다

여자도 넘을 수 있다고 하여 여장이란 이름을 붙였다는 견해가 있다

북한산성의 여장 중에서 그 원형이 가장 잘 남아있다

 

 

 

 

부왕동암문

나월봉 · 증취봉 사이 고갯마루에 위치한 북한산성 8개 암문 중 하나로

성 밖의 삼천사 쪽에서 성 안쪽 증흥사에 이르는 길목을 통제하기 위해 설치했다

암문은 비상시에 병기나 식량을 반입하는 통로이자, 때로는 구원병의 출입로로 활용된 일종의 비상출입구다

*

지난 번엔 이곳에서 삼천사계곡으로 내려갔는데 이번엔 맞은편인 중흥사지 방향으로 간다

 

 

 

 

부왕사지(扶旺寺址)

부왕사는 북한산성 내에 있는 승영(僧營)사찰 가운데 하나다

1711년(숙종37) 북한산성을 쌓을 때 전국에서 승병이 동원되었는데 이때 승병이 머물 사찰 11곳과 암자 2곳을 새로 짓거나 다시 지었다

이 승영사찰의 승병은 산성이 완성된 후에 삼군문(훈련도감 · 어영청 · 금위영)의 군사시설을 보조하여 산성의 수비를 맡았다

 

 

 

 

부왕사 석축

부왕사는 임금이 행차하였을 때 머무는 행궁(行宮)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고

부왕(扶王) 즉 임금을 받든다는 의미로 추정할 수 있듯이 유사시에 행궁의 수비를 담당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은 무너진 석축 일부만이 확인될 뿐이다

 

 

 

 

북한산 선정비군

이곳의 비석은 북한산성 관리의 최고 책임자가 재임할 당시의 선정과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선정비로 현재 26기 정도 남아 있다

이들 선정비의 건립 시기는 모두 19세기이다

이곳이 부왕사지 권역이다

 

 

 

 

북한승도절목(北漢僧徒節目)

이 암각문은 1855년(철종 6)에 새겨진 북한승도절목으로 모두 325자이다

명문에는 승병대장인 총섭을 임명할 때 예상되는 폐단을 없애기 위한 규칙 3가지를 제시해 놓았다

이를 통해 승영사찰이 피폐하여 승도가 흩어지고 있었던 사실과 그 원인이 총섭의 부적절한 임명에서 비롯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이때를 전후하여 산성 밖의 승려가 총섭에 임용되기 시작한 것과 불공정한 임용을 막기 위하여 다수결 비밀투표를 요구했던 사실도 파악할 수 있다

*

아랫쪽 사각 틀이다

 

 

 

 

산영루(山映樓)

태고사 계곡과 중흥사 계곡이 만나 합수되는 지점의 연못가에 있으며, 산그림자가 수면 위에 비치는 곳이라 하여 산영루(山映樓)라 이름붙였다

산영루의 시초는 고려시대 때 중흥사와 연관된 누각으로 추정된다

 

 

 

 

산영루에서 / 다산 정약용

巖蹊纔斷見危欄(암혜재단견위란) / 험한 돌길 끊어지자 높은 난간 나타나니

雙腋泠泠欲羽翰(쌍액영령욕우한) / 겨드랑이에 날개 돋쳐 날아갈 것 같구나

十院疎鍾秋色暮(십원소종추색모) / 십여 곳 절간 종소리 가을 빛 저물어가고

萬山黃葉水聲寒(만산황엽수성한) / 온산의 누런 잎에 물소리 차가워라

林中繫馬談諧作(임중계마담해작) / 숲속에 말 매어두고 얘기꽃 피우는데

雲裏逢僧禮貌寬(운리봉승예모관) / 구름속에 만난 스님 예절도 너그럽다

日落煙霏鎖蒼翠(일락연비쇄창취) / 해지자 흐릿한 구름 산빛을 가뒀는데

行廚已報進杯盤(행주이보진배반) / 행주에선 술상을 올린다고 알려오네

 

 

 

 

노적사(예전 진국사 鎭國寺)

1712년(숙종 38) 당시 팔도도총섭이었던 계파성능(桂坡聖能) 스님이 창건한 사찰이다

당시 북한산성에는 산성을 축조하고 관리하는 많은 승군들이 머무르고 있었는데

성능스님은 중요시되는 요충지에 11개의 사찰을 창건하고 승군이 머물게 하였다

진국사는 이 때 창건된 11개의 사찰 가운데 하나이다

그 후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소실되어 빈터만 남게 되었는데

1960년 무위(無爲)스님과 창암 유흥억거사 · 박금륜행 · 김진공성 불자 등이 복원하여 노적사라 이름하였다

 

 

 

 

중성문(中城門)

북한산 노적봉과 증취봉 사이 협곡에 쌓은 중성(重城)에 설치된 성문이다

대서문에서 이곳에 이르는 지역은 지형이 비교적 평탄해 적의 공격에 취약한 구역이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이곳에 적의 공격을 이중으로 방어할 수 있는 차단성(遮斷城)인 중성을 쌓았다

 

 

 

 

암문(暗門 시구문)

중성문 옆의 암반에 폭 2.1m · 높이 1.8m 규모의 작은 암문이 숨겨져 있다

이 암문은 원래 이름이 없었으나 성 안에서 생긴 시신이 중성문을 통과하지 못하고 이 문을 통해 나간다고 시구문(屍口門)아라 불렀다

바로 옆 계곡에는 수문이 설치돼 있었으나 지금은 남아있지 않다

 

 

 

 

북한동역사관

과거 북한산성 안에서 가장 큰 창고인 하창이 있었던 곳이다

 

 

 

 

북한동역사관 내부

북한산국립공원 · 북한산성의 역사 · 북한산성의 구조 등이 전시되어 있다

 

 

 

 

북한동역사관에서 잠시 내려오면 대서문 · 아미타사(덕암사) 갈림길이 있는데

그 갈림길에서 원효교를 지나 아미타사로 가는 길이다

 

 

 

 

아미타사에 도착하니 해가 고봉산을 넘는다

지도에는 아미타사 · 사찰 안내문에는 덕암사로 표기되어 있다

 

 

 

 

덕암사

1966년 「거북이 바위굴」이라 불리는 오래된 석굴을 보수해 대웅전으로 삼아 창건했다

석굴을 보수하기 전에 석굴 안에 석불 3구가 모셔져 있었던 사실로 미루어 덕암사 중건 이전에 사찰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원효대사가 이곳 석굴에서 좌선하며 삼국통일을 기원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서암문(시구문)

북한산성 서북쪽에 있는 서암문을 기점으로 아래쪽에 수문과 대서문이 있으며, 위쪽에 북문이 자리하고 있다

덕암사를 지나 산길을 돌 때 해는 이미 넘어갔다

*

용출봉의 바람과 산영루 물소리가 이 문을 따라나선다

 

 

 

 

GPS로 확인하니

걸은 거리 5.7km, 소요시간 6시간 39분

*

걷기를 마치고 GPS를 보니 전원이 부족해 멈춰있었다

집으로 돌아와 확인해 보니 GPS는 부왕사를 지나 태고사 삼거리 갈림길에서 멈쳤다

용출봉을 오를 때부터 불어온 매서운 바람에 GPS를 노출시키고 다닌 때문이다

그래도 마침점엔 반가운 빨간 원이 그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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