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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야기

북한산(백운산장)

한국 최초의 산장인 북한산 백운산장을 다녀왔다

"1924년 이해문(1代)이 터를 잡으며 시작된 백운산장은 1933년 이남수(2代)가 건축허가를 받아 석조산장을 신축했고, 1942년 우물을 팠으며

1947년 한국산악회에 의해 증축되었으나, 6 · 25전쟁으로 일부 파손되었다

1960년 서울산악회와 산악인들의 주도로 단층 석조건물로 확장 재건축된 이후

1992년 지붕이 화재로 불타자 이영구(3代)와 산악인들이 힘을 모아 2층 통나무로 증축해 오늘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

그러나 화재 이후 증축 과정에서 국립공원관리공단은 이씨에게 20년 유예를 조건으로 기부채납 약정을 요구했고

그 20년의 유예기간이 올해 5월로 만료되어 산장을 국가시설로 귀속하겠다고 통보하고 이씨에게는 퇴거를 요구했다

 

 

만경대 · 백운대 · 인수봉

북한산의 이 세 봉우리가 삼각(三角)처럼 보여 삼각산(三角山)으로도 불려진다

우이동 만남의 광장에서 봤

 

 

 

 

예전 우이동에서 도선사로 오르는 길은 조금 넓은 산길이었는데

고 박정희 대통령의 영부인 고 육영수 여사가 도선사를 자주 찾아 도로를 건설하였고

그후 산객들이 많아지자 좁은 차도에 인도가 없어 이를 보완하기 위해 나무데크길을 만들었다

 

 

 

 

소귀천 갈림길

백운산장은 오른쪽 데크길로 올라야 한다

 

 

 

 

북한산 붙임바위

우이동에서 도선사를 오르는 도로 중간 쯤에 있는 이 바위는 돌을 붙이고 소원을 빌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내력을 간직하고 있다

지금은 바위가 도로 확장과 포장으로 반 쯤 뭍혀버렸지만

예전엔 산길에서 조금 떨어져 있어 한 발은 길에 다른 발은 바위에 지탱하고 돌을 들고 바위에 돌을 문지렀던 기억이 있다

 

 

 

 

도선사광장

광장 윗쪽에 있는 백운대탐방지원센터 옆이 들머리다

도선사와 용암문으로 가려면 왼쪽 길로 가야 한다

 

 

 

 

돌탑

나무 밑둥을 저렇게 돌로 둘러쌓으면 나무에게 안좋다고 한다

 

 

 

 

옛 우이산장 터

1970년대 초반 전국 35개의 산장과 함께 세워져 각종 등산학교를 열고 산악회 행사를 하던 곳인데 2008년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영혼의 쉼터 하나가 없어졌다

 

 

 

 

하루재로 오르는 길이다

 

 

 

 

하루재

앞에 보이는 길이 영봉으로 가는 길이다

 

 

 

 

인수봉

하루재 옆에서 봤

 

 

 

 

북한산 인수대피소 · 경찰산악구조대

 

 

 

 

인수암

북한산 인수대피소를 지나면 있다

 

 

 

 

인수봉

백제의 시조인 온조왕이 형 비류와 함께 올라 도읍을 정했다고 전해지고 있는 이곳은

산 전체의 형상이 마치 어린아이를 업은 듯하다 하여 부아산(負兒山) 또는 부아악(負兒岳)으로 불리운다

특히 대포알을 세워 놓은 듯한 약 200여 미터의 화강암 봉우리는 전문 산악인들의 암벽훈련 등반장으로 인기가 많다

 

 

 

 

백운산장으로 오르는 계단이다

계단 밑에는 바위를 쪼고, 쇠봉을 박고, 돌을 쌓아 만든 예전 계단이 있다

백운산장의 힘과 시간이 만든 계단이다

 

 

 

 

백운(白雲)의 혼(魂)

1950년 6월 28일 백운암을 거쳐 후퇴하던 장교 1명과 사병 1명이

이곳에 남아 사태를 지켜보던 중 서울이 함락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2명 모두 자결하였다

이에 두 용사의 우국충정을 길이 빛내기 위해 이 비를 건립하였다

백운산장 옆에 있다

 

 

 

 

백운산장

백운대 · 인수봉 · 만경대 세 봉우리의 삼각점 중앙 약 650m 지점에 자리 잡고 있다

지난 90여 년간 한국의 등산역사와 희로애락을 같이한 곳이다

 

 

 

 

백운산장(白雲山莊) 편액

손기정(孫基禎) 옹의 글씨다

 

 

 

 

3대 산장지기 이영구 · 김금자 부부

이영구 할아버지가 15세 되던 1946년부터 살았고, 1957년 김금자 할머니와의 결혼식도 이곳 백운산장에서 올렸다

*

사진을 다시 만들었다

 

 

 

 

백운산장 내부

「백운산장을 문화재로」가 붙어있다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당초 철거하고 자연복원하려는 방침은 자연생태계 보존과 역사적 관점을 충분히 고려해서 향후 관리방안을 결정할 계획이라지만

산악인들은 93년 역사의 백운산장이 인수산장이나 우이산장처럼 철거되지 않도록 등록문화재나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해 관리해 줄 것으로 바라고 있다

 

 

 

 

산장 내부

얼마 전 인천시 중구가 옛 「애경사」 건물을 철거하자 인천지역 시민단체들이 구를 강하게 규탄하고 있는 가운데

오히려 주변 지역주민들은 시민단체와 반대되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 이유는 건물의 방치로 쓰레기 더미만 쌓이는 곳이였기 때문이다. 사람이 찾지 않아 생긴 일이다

 

 

 

 

결국 모든 건축물엔 사람이 살아야 한다. 그래야 따스함과 그리움이 스민다

 

 

 

 

국가 귀속 반대 서명서

그런 한 사람 한 사람의 뜻이 모인 서명서다

 

 

 

 

김금자 여사

산과 산장의 지난 이야기를 오래 했다

역시 산객에겐 대피소보다 산장이 정겹다

 

 

 

 

백운봉 암문

북한산의 주봉인 백운대와 만경대 사이에 위치한 성문으로 북한산성의 성문 중 가장 높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

숙종37년(1711) 북한산성 성곽을 축조하면서 설치한 8개 암문 중 하나인데 일제강점기부터 위문(衛門)으로 불려왔다

 

 

 

 

백운대로 오르는 계단이다

 

 

 

 

오리바위

백운봉 암문에서 백운대로 오르다 왼쪽에 있다

 

 

 

 

만경대 족두리봉 · 노적봉

멀리 보현봉 · 문수봉이 희미하게 보인다

 

 

 

 

돌을 쪼아 만든 계단을 오른다

 

 

 

 

백운대(836m)

북한산의 정상이다

 

 

 

 

북한산 백운대(北漢山 白雲臺) 836m

 

 

 

 

3 · 1운동 암각문

「경천애인」이란 네 글자와 함께

"독립선언문은 기미년 2월 10일 최남선이 작성하였으며 3월 1일 탑동공원에서 자신이 독립선언 만세를 도창했다"라는 내용을 새겼다

이 암각문을 새긴 정재용은 1896년 해주에서 출생한 독립운동가로 1919년 2월 19일 해주에서 상경해 3 · 1운동의 불을 당겼던 장본인이다

*

3 · 1운동의 역사적 사실을 새긴 기록문으로 글을 새긴 시기는 3 · 1운동 이후로 추정된다

 

 

 

 

뜀바위

예전엔 이 뜀바위를 뛰어 건너가 쉬곤했는데 그게 위험하다고 철다리를 놓았다가 자연훼손이라고 철거하였고

그 후론 뜀바위를 건너는 사람이 거의 없다

 

 

 

 

뜀바위

철제다리를 놓았던 흔적이 보인다

이곳에서 이동식을 했다

 

 

 

 

북한산 백운대 · 인수봉

북한산의 유래는 서울의 옛 이름인 한산(漢山)에서 유래한 것이며, 한산의 북쪽을 가리키는 이름이다

 

 

 

 

인수봉

인수봉 비둘기 코스로 하강하는 모습을 보는지 오래 앉아 있는다

이제 내려간다

 

 

 

 

인수봉(810.5m) 남면

예로부터 백운대 · 만경대와 더불어 삼각산(三角山)이다

 

 

 

 

노적봉(716m)

명칭은 봉우리 모양이 노적가리를 쌓아놓은 것처럼 보인다 하여 붙여졌다

 

 

 

 

염초봉 · 원효봉

 

 

 

 

용암문

대동문 북쪽에 있는 암문으로 산성이 축조된 숙종37년(1711)에 세워졌다

용암봉 아래에 있어 용암봉 암문이라고도 부르며 우이동으로 통하는 관문이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 산꾼들 사이에선 일명 북한산 냉장고로 불린다

북한산대피소를 들려 다시 이곳으로 왔다

 

 

 

 

용암사지 석탑 · 북한산대피소

용암사 터의 석탑은 남아있는 부재의 형태와 크기로 미루어 높이 6m 정도의 삼층석탑으로 추정된다

현재 탑신이 놓였던 기단부의 갑석과 석탑의 중심부였던 탑신 및 지붕에 해당되는 옥개석 일부만 남아있다

이 용암사지 석탑을 복원하면 9세기에 만들어진 경주 남산 용장사곡삼층석탑(보물 제186호)이나

창녕 퇴전삼층석탑(경남 유형문화재 제10호)와 유사할 것으로 본다

 

 

 

 

용암사지 석탑

북한산장지기 부부와 30여 년 전 사진이다

 

 

 

 

북한산대피소

예전 1970년대 공화산악회와 대한산악연맹이 전국에 35개의 산장을 세울 때 세워진 산장이다

그 후 국립공원관리공단이 세워지면서 유인 산장에서 무인 대피소로 바뀌었다

 

 

 

 

지금은 대피소이지만 예전 북한산장이었을 때 내부다

역시 30여 년 전 사진이다

 

 

 

 

김상궁 정광화 사리탑

金尙宮淨光花之舍利塔(김상궁정광화지사리탑)

동치계유시월일입(同治癸酉十月日立)

동치(청나라 목종 동치제의 연호로 1862부터 1874년까지 쓰였다)

계유년은 동치 12년으로 고종 10년(1873년)이다

 

 

 

 

도선사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본사인 조계사 말사다

862년(경문왕 2) 도선이 창건했으며, 1863년(철종 14) 김좌근의 시주로 중수하고 칠성각을 신축했다

1887년(고종 24) 임준이 5층석탑을 세우고 그 안에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봉안했다

1903년 혜명이 고종의 명을 받아 대웅전을 중건했으며, 1904년 국가기원도량으로 지정받았다

 

 

 

 

도봉산

우이동 만남의 광장에서 봤다

 

 

 

 

GPS로 확인하니

걸은 거리 13.1km, 소요시간 6시간 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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