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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야기

남양성모성지

한국 천주교회의 역사는 박해의 역사다
특히 병인년 대박해 때에는 1만 명을 헤아리는 순교자가 났는데
당시 교우의 총 수가 2만3천여 명이었음을 감안해 볼 때 얼마나 잔학한 박해였는지를 알 수 있다
박해 당시 남양 포교들이 잡아들인 천주교인들 중 양반들은 한양이나 공주로 이첩되어 재판을 받고 처형되었지만
신분이 낮은 사람들은 남양부사 재량에 맡겨졌다
남양부사는 모진 매질로 배교를 강요하다가 이에 응하지 않는 신자들을 지금의 남양성모성지 자리에서 목매달아 죽였다

 

 

성모자상
남양성모성지 정문 옆에 있는데 마치 이집트 피라미드 느낌이 난다

 

 

 

 

야외성전
정문에서 봤다

 

 

 

 

야외성전

정문이 멀리 보인다

 

 

 

 

초 봉헌실

 

 

 

 

초 봉헌실
초를 봉헌하고 유리창 밖 성모님께 기도 드린다
성모님, 저는 기도할 줄 모릅니다
이 초를 성모님께 바칩니다
저와 가족들을 위해 빌어주소서

 

 

 

 

성모님
저는 당신께 속하기를 원합니다~!

 

 

 

 

성모님

 

 

 

 

손에 못자국 난 예수님
초 봉헌실에서 성체조배실로 가는 광장이다

 

 

 

 

성체조배실

 

 

 

 

성모님
성체조배실 입구에 있다

 

 

 

 

성체조배실
도저히 감당해 낼 수 없다고 하소연 하십시요
그리고 누워 쉬십시오

 

 

 

 

가난한 이들의 동정녀여
은총의 샘이신 아들 예수님께로 저희를 이끌어주소서

 

 

 

 

남양성모성지
남양성모성지 묵주기도 길에 나타난 「블라디미르의 성모(자비의 성모)」 이콘 모습
세 차례(1991 · 1993 · 1997년)의 대대적인 토목공사와 여러 번의 크고 작은 공사들을 거쳐 만들어졌다 
아무런 설계도면 없이 그때 그때 상황에 따라 야산을 파내고 나무와 잔디를 심어 만든 것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길이 「블라디미르의 성모(자비의 성모)」 이콘 모습과 너무도 닮았다
특히 무덤 주인이 땅을 팔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무덤만 남기고 주변을 빙 둘러 나무를 심었던 것인데
성모님과 얼굴을 맞대고 있는 아기 예수님의 머리부분처럼 보여 더욱 놀랍다

 

 

 

 

순교자와 항아리
순교자들은 박해를 피해 산속으로 들어가 항아리를 구워 팔며 살았다
조선시대에는 항아리를 굽는 사람을 〈점놈〉이라 부르며 아주 천하게 여겼다
「점놈이 양반집에 들어가면 개조차 짖지 않았다」는 말이 전해져 오는 것으로도 짐작할 수 있다
또 어떤 작은 항아리 하나엔 십자가 표시를 해 구워 마을로 팔러 돌아다니며
'항아리 사세요'를 외칠 때 십자가 표시가 되어 있는 항아리 밑부분을 두드리며 소리쳤다
그것은 저는 천주교 신자입니다 혹시 교우 아니십니까 라는 표시였다
만일 상대편이 교우이면  항아리를 흥정하는체 하면서 소식을 주고 받았다
이렇게 순교자들이 구웠던 항아리는 생계수단이면서 교우들끼리 소식을 주고받는 정보의 수단이었다
여기에 모아 놓은 항아리들은 그들이 항아리를 만들었던 남양 · 비봉 · 마도 지역에서 수집한 것들이다

 

 

 

 

박지환(요한) 신부님
1982년 잊혀져 있던 이곳 병인박해 순교지를 발굴하시어 남양순교지로 개발하시다가 1985년 3월 29일 선종하셨다

 

 

 

 

남양 성모님 상
고(故) 김남수 안젤로 주교님께서 지난 1991년 남양순교지를 성모님께 봉헌하시면서
"앞으로 남양하면 성모님을 기억하며 성모님께 기도하기 위해 찾아오기 바랍니다"라고 말씀하셨다

 

 

 

 

남양 성모자 상
남양성모성지를 대표할 수 있는 독특한 성모상이다
한국인의 심성에 다가갈 수 있는 푸근한 이미지의 한국적인 성모상
모든 사람들이 「우리 엄마다!」 라고 느낄 수 있을 만큼 친근감이 느껴지는 보편적인 어머니상으로 만들었다

 

 

 

 

남양 성모자 상
화강암으로 조각되었으며 높이가 3.5m이다
성모님의 두 팔은 자신에게 다가오는 모든 이들을 기쁘게 맞이하시려는 듯 열려 있으며
아기 예수님께서 성모님의 옷자락을 꼭 붙들고 성모님께 매달려 계시는 모습이다

 

 

 

 

십자가

 

 

 

 

형틀

 

 

 

 

묵주기도의 길

 

 

 

 

성모상
잔디밭 쉼터에 있다

 

 

 

 

성모상
묵주기도의 길에 있다

 

 

 

 

돌 묵주알
광장의 둘레를 수놓고 야산으로 이어져 길이 약 1km 정도의 20단 묵주기도 길이 조성되어 있다

 

 

 

 

돌 묵주알
화강암 재질로 지름 0.7m 정도의 구(球)로 어른 허리 높이에 맞춰 약 4.5m 간격으로 놓여있어
성지를 순례하는 신자들은 이 묵주알을 한 알 한 알 짚어가며 묵주의 기도를 바칠 수 있다

 

 

 

 

예수님
묵주기도의 길에 계신다

 

 

 

 

본인,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한국천주교회의 남양성모성지와 이 성지를 순례하는 모든 이에게 사도적 축복을 내립니다
모두가 성모마리아를 사랑하며 평화를 위한 묵주의 기도를 지속적으로 바치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 탄생 2002년 5월 성모 성월에
바티칸에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성모님
묵주기도의 길에 계신다

 

 

 

 

교황 요한 바오로2세

 

 

 

 

남양 성모님
남양성모성지를 돌며 「남양성모님」을 세 번 만났는데 볼수록 아름답고 친근감이 든다

 

 

 

 

남양 성모님

몇 년전 이곳을 방문하여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는 얘기를 하시며 기도하자고 하신다

 

 

 

 

캘커타의 복녀 마더 데레사 수녀님
1910년 마케도니아(현 유고슬라비아)의 수도 스코페에서 태여나
18세에 수녀가 되기로 마음 먹고 1931년 로레토 성모 수녀회에서 수녀가 되었다

 

 

 

 

마더 데레사 수녀님

사랑은 탁월하거나 특별하지 않아도 됩니다
지치지 않고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입니다

 

 

 

 

오상의 성 비오 신부님 / 1887. 5. 25~1968. 8. 23
1918년 10월 20일 받으신 오상을 50년 동안 몸에 지닌채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바치셨다
교회사에서 최초로 「오상」을 받으신 비오 신부님은 고해소에서 수많은 회개를 일구어 내셨고 죽는 날까지 영혼들을 위하여 기도하셨다
그 분은 손가락에 묵주가 뿌리를 내리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고 말할 정도로 묵주기도를 사랑하셨으므로
그 분을 걸어다니는 묵주 · 움직이는 묵주라 부르기도 했다

 

 

 

 

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신부님 / 1894. 1. 7~1941. 8. 14
폴란드에서 태여난 콜베는 신앙심이 깊은 부모에게서 엄격한 신앙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1911년 콘벤뚜알 프란치스코회에 입회 · 1912년 로마로 유학, 거기서 1917년 동료 수사 6명과 「원죄 없으신 성모의 기사회」를 창설한다
1922년에는 잡지 「원죄 없으신 성모기사」를 창간하고 그 잡지를 통해 성모기사회의 운동을 추진해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100만 부에 이르는 잡지 발행자로서 폴란드 국민에게 커다란 영향력과 권위를 지녔다는 이유로 1941년 나치경찰에 체포된다

 

 

 

 

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신부님 / 1894. 1. 7~1941. 8. 14

콜베신부가 갇혀 있던 어느 날 한 사람이 탈출했다
그러자 수용소장은 다른 사람의 탈출을 막으려고 남아 있는 사람 중 10명을 뽑아 아사감방에 보내 죽게 하였다
그 때 가족들이 보고 싶다고 울부짖는 사람을 대신해 죽겠다고 나선 사람이 콜베 신부님이였다
그는 함께 죽어가는 아홉 사람에게 우리뿐 아니라 적을 위해서도 기도하자고 간곡하게 타일러 미움을 사랑으로, 모욕을 용서로, 저주는 기도로 바꾸었다
1979년 아우슈비츠를 방문한 교황 요한 바오로2세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는 믿음을 부정하고자 세워진 이곳에서 믿음과 사랑으로 승리를 일궈 냈습니다」

 

 

 

 

성요셉 상

우리를 위하여 빌으소서

 

 

 

 

아기 예수 탄생하셨네

 

 

 

 

구유 옆에 있는 천사

 

 

 

 

구유 옆에 있는 천사

 

 

 

 

십자가의 예수님
구유 앞에 계신다
삶과 죽음

 

 

 

 

가시관의 예수님

 

 

 

 

사무실

 

 

 

 

식당
잔치국수 2천5백 원이다

 

 

 

 

GPS로 확인하니
걸은 거리 3.6km, 소요시간 2시간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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