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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이야기

월미도

흔히 달꼬리를 닮았다 하여 월미도(月尾島)로 알려져 있으나

실은 얼다(어르다)의 얼과 물(水)을 뜻하는 미가 합쳐져

물이 섞이는(어르는, 휘감아 도는) 섬이라는 얼미도라는 이름이 붙었고, 한자로 음차하면서 월미도가 되었다

*

월미도는 러일전쟁 · 병인양요 · 인천상륙작전의 주 무대로 인천 역사의 중심에 있었으며

1923년 북성지구에서 월미도 사이에 길이 1km인 왕복 2차선 제방둑길을 축조해 육지와 연결한 후

주로 일본인들을 위한 조탕 · 별장 · 해수풀장이 들어서며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유원지로 발전하였다

현재는 섬과 육지 사이가 메워져 월미공원 · 문화의 거리 · 놀이동산 등이 들어서 있다

*

월미도는 조선시대에는 한양을 지키는 군사기지였고 개항 후에는 조선에 들어오기 위해 머무는 첫 기착지였다

한국전쟁시에는 인천상륙작전의 첫 상륙지점이였으며 전쟁 후에는 군부대가 주둔하다 2001년 시민에게 개방되었다

문화유적조사 결과 임금이 국난 등 유사시 사용했던 행궁 · 돈대 · 월미진사(관사) · 예포 등이 있던 것이 확인됐으며

일제 강점기에는 신사 · 공원 · 유원지 등으로 개발돼 행락지로도 각광을 받기도 했다

 

 

인천역

일제가 여주 · 이천 지역의 쌀과 소래 남동 등지의 소금을 인천항을 통해 반출하기 위해

1937년부터 수인선을 운행했다

*

파란 유리 건물이 월미바다열차 출발역인 월미바다역이다

 

 

 

 

중화가(中華街) 패루(牌樓)

인천역 앞에 있는 제1패루다

패루는 마을 입구나 대로를 가로질러 세운 탑 모양의 중국식 전통 대문을 일컫는다

중국 웨이하이(威海)시가 기증한 세 개의 패루 중 하나다

 

 

 

 

월미바다역

인천 월미도 모노레일 출발역이다

 

 

 

 

예전 러시아영사관 · 해무청사 터

러시아는 경성 한국 주재 영사관 내에 부영사관을 병설하고 인천 · 평양 · 진남포 등을 관할케 하고 있었는데

1902년 부영사관을 갑자기 인천에 이전 설치했다

제물포항을 일본이 독점하는 것을 방지하는 동시에 자국의 병참기지화를 위한 것으로 보인다

1974년 철거되었다

*

그 옆에 김중업에 의해 1957년에 세워진 해무청사는 러시아영사관과 나란히 바다를 보고 있었다

1992년경에 사라졌다

*

지금 왼쪽 건물이 있는 자리였고 그 앞은 바다였다

 

 

 

 

인천항 제8부두 출입문

소금 · 원당 등을 취급하는 청정잡화부두다

 

 

 

 

새우젓골목

인천 앞바다에서 잡은 새우를 소금에 절여 보관하던 창고와 가게들이 있었던 곳이다

골목에는 건어물가게도 있었으나 부두가 사라지면서 새우젓도 함께 떠나버리고

빈 창고와 가게는 인근 노동자와 도시 빈민들이 들어와 쪽방촌이 되었다

 

 

 

 

동일아파트

새우젓골목 옆에는 인근 섬과 주안염전에서 들어온 소금이 있었다

소금은 가마니나 포대에 포장돼 전국 각지로 실려 나갔다

소금을 부리던 그 앞에 부두를 사람들은 한염부두라고 불렀다

소금공장이 떠나고 그 자리에 동일아파트가 들어섰다

 

 

 

 

제2차 인천상륙작전 전승비 · 인천상륙작전 상륙지점(적색해안) 빗돌

제2차 인천상륙작전 전승비는 1951. 2. 10~2. 11, 대한민국 해군 · 해병대 단독으로 감행한

제2차 인천상륙작전 승리를 현양하기 위해 상륙지점인 현 위치에 해군이 건립했다

*

이 지점은 1950년 9월 15일 새벽 유엔군 사령관 맥아더원수가

전함 261척과 상륙군 미해병 제1사단, 한국해병 제1연대를 진두 지휘하여

역사적인 인천상륙작전을 성공한 3곳(적색해안 · 청색해안 · 녹색해안) 중 한 곳이다

 

 

 

 

북성포구

인천상륙작전 적색해안 안내석 뒤

 

 

 

 

인천 내항 사일로벽화

제작 기간은 약 1년으로 22명의 도장 · 도색 전문 인력이 투입됐다

높이 48m · 길이 168m · 폭 31.5m 규모의 거대한 곡물 저장고 벽화다

세계 최대 야외 벽화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었다

 

 

 

 

TS대한제당

 

 

 

 

월미공원

안전성 문제로 개통이 연기되었던 모노레일이 지난다

 

 

 

 

월미바다열차 월미공원역

인천 내항 사일로벽화가 뒤에 있다

 

 

 

 

월미문화관 기획전시실

「월미도 군사요충지에서 시민의 품으로」가 기획전시중이다

 

 

 

 

수라상

수라라는 말은 고려 원종 때 전해진 몽골어로 음식을 뜻하는 '슐라'에서 온 것으로 보고 있다

하루에 아침과 저녁 두 차례에 걸쳐 받았으며 아침 수라는 10시경 · 저녁 수라는 오후 5시경에 들었다

 

 

 

 

내명부 품계

조선시대 궁중에서 품계를 받은 여인을 통틀어 이르는 말인데

위로는 왕과 왕비를 보필하고 아래로는 잡역 궁인들을 다스리는 여인을 말한다

 

 

 

 

해군첩보부대 충혼탑

해군첩보부대는 1948년 6월 10일 창설된 이래 수백 회의 대북 비밀공작을 수행하였다

북한의 침략으로 발발된 6 · 25전쟁 중 특히 1950년 9월 15일 감행된 인천상륙작전에 앞서

영흥도 탈환 · 팔미도 등대 확보작전을 성공시킴으로써 인천상륙작전에 큰 공을 세웠다

해군첩보부대는 반세기 동안 이곳 월미도 언덕 위에 주둔하였다

당시 비밀공작에 투입된 해군첩보부대원들의 희생과 공훈은 지대하였으므로 이를 기리고 선양할 필요가 있었다

특수 임무 중에 산화한 350위의 영령들을 기리기 위하여

예비역 대한민국 특수임무 수행자 동지들의 뜻을 모아 2011년 11월에 충혼탑을 세웠다

 

 

 

 

맥아더 UN군 사령관 어록

 

 

 

 

몽금포작전 전승비

몽금포작전은 정부수립 전후 지속된 반란 · 폭동 · 납북 · 침투 등 북한의 도발에 대해

우리 해군이 1949년 8월 17일, 적 항구 몽금포를 기습한 납북선박 구출 및 응징 작전이다

 

 

 

 

해군 제2함대사령부 주둔기념비

월미도는 해군 역사에서 잊혀질 수 없는 한 현장이다

월미도는 한국전쟁 후 처음으로 다수의 북한 해군 정규군과 겨뤄 승전한

「연평해전」의 주역 제2함대사령부가 반세기 동안 주둔했던 곳일 뿐만 아니라

세계 전쟁사에서 높이 평가 받고 있는 인천상륙작전 당시 연합군 주력부대가 상륙했던 곳이기도 하다

 

 

 

 

퇴역 경비정 206함(200t급)

길이 43.3m · 폭 6.3m 규모로 1976년 건조돼 25년간 서해에서 해상경비 · 구난활동을 벌이다 2001년 8월 퇴역했다

전성기 때는 서해 북방한계선(NLL) 인근 해역에서 불법 조업을 하던

중국 어선들을 잇따라 나포 중국 어선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으며

1999년 서해교전에도 참여 어선들을 안전 해역으로 유도하고 해군 고속정을 지원하며 맹활약한 경비정이다

 

 

 

 

치유의 나무 은행나무

월미 평화의 나무 첫 번째 이야기 · 수형이 가장 멋지고 품격이 있어 시민들과 친숙한 나무이다

*

제7 미국 보병사단 상륙 10주년 기념비가 앞에 있다

 

 

 

 

숲속 작은휴게소

 

 

 

 

탄약고 갤러리(화약고쉼터)

예전 효소 · 발효음식 저장고로 사용되었다

 

 

 

 

탄약고 갤러리(화약고쉼터)

나무가 들려주는 인천이야기가 전시 중이다

 

 

 

 

전쟁을 이겨낸 월미도 나무

탄약고 갤러리(화약고쉼터)에서 전시중이다

 

 

 

 

만 그루 기념 식수 비

인천상륙작전의 전적지인 월미산을 아름답게 가꾸고자 정성을 쏟아온 해군장병들이

만 그루 식수에 즈음하여 그 푸르름이 영원하기를 바라고 세운 빗돌이다

1997년 4월 5일 / 해군 제2함대 장병 일동

 

 

 

 

9 · 18추모동산

인천상륙작전 3일 후 9 · 18의거에 성공한 황해도 벽성군 청룡면 용매도의 청년결사대 태극단은

해군 302함의 지원을 얻는데 성공함으로서 도민 3,500여명은 물론

도내 800여 명의 청년들을 모두 자유대한의 품으로 이주시키는 전기를 마련하게 된다

이제 잊혀지기 쉬운 6 · 25전쟁 실화를 캐내고 다듬어 펴내서 후손들에게 알릴 수 있는 터전을

이곳 역사의 현장 월미산 동쪽 기슭에 마련하였다

용매도의 실향민들이 1992년 5월부터 8~9년생 전나무를 심어 조성한 동산이다

 

 

 

 

전망대

 

 

 

 

인천항

전망대에서 봤다

 

 

 

 

평화의 어머니 나무

월미 평화의 나무 세 번째 이야기 · 섬 전체가 무너지듯 진동했다. 폭격이 지나간 자리는 참혹했다

나무 종류 느티나무 · 나무 나이 244년 · 나무 높이 22m · 나무 둘레 220cm · 지정일자 2015년

 

 

 

 

석양정

저녁 노을과 인천항을 오가는 배들이 발길을 머물게 하는 해넘이 언덕이

이민사박물관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다

 

 

 

 

인천의 섬 사진

 

 

 

 

월미돈대 · 월미포대

영종진지도를 보면 월미도 남서쪽 4부 능선쯤에 둥근 원형 모양의 돈대 모습이 보인다

지금은 그 흔적을 찾을 길 없으며

돈대로 추정되는 곳에는 여러 채의 군막사가 설치된 바 있어 진작에 훼손된 것으로 생각된다

월미돈대의 축조연도는 강화에 설치된 돈대가 숙종 때 건립된 것으로 미루어 비슷한 시기에 세워진 것으로 판단된다

외국세력의 접근이 활발하던 조선후기에 월미돈대는

이들로부터 인천과 월미도를 지키는 주요한 군사시설 기능을 담당하였다

 

 

 

 

월미공원 조성과정 연표

 

 

 

 

관제탑 · 월미산 전망대

 

 

 

 

하트 포토존

 

 

 

 

월미공원귀환기념비

 

 

 

 

월미돈대 예포

한국최초 · 인천최고 100선이다

 

 

 

 

월미돈대 예포

고종황제 즉위 4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각국 대사를 맞이하는 포대를 월미도에 설치했다는 기록이 전한다

 

 

 

 

월미산 정상 광장

월미공원귀환기념비 · 연보 빗돌 · 매점 · 물범카를 타는 곳이 있다

 

 

 

 

아타고신사

월미도 산정에 있었던 아타고신사 안내판이 왼쪽에 있다

신사란 일본인들이 신적인 존재로 모시는 황실의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는 시설이다

일본은 식민지로 획득하거나 조차한 지역엔 예외없이 신사를 세우고 이를 숭배하였다

일본인들이 조선에 세운 신사는 주로 한국의 뿌리가 되는 곳이나

한국의 정기를 누를 수 있는 산봉우리에 세워졌는데 월미도도 예외는 아니었다

1889년 강남철부를 비롯한 인천의 일본거류민 유력자 14인의 발기에 의해 착수된

인천대신궁은 1897년 6월 17일 건축공사가 낙성되면서 면모를 갖추었다

이곳엔 일본의 수호신인 천조대신(天照大神, 아마테라스 오미카미)을 모셨다

일본신사의 경외사인 월미도의 아타고 신사는 1908년 세워졌고 1929년 9월에 한 차례 개축하였다

화재를 예방하는 아타고신을 모시는 아타고신사는 쿄토(京都)의 아타고야마에 있는 아타고신사가 총본산이다

월미산의 아타고신사는 해방 후 파괴되고 봉안전에 오르는 계단만 남아있다가 한국전쟁 이후 그나마 사라졌다

아타고신사 입구에는 청일전쟁 때 사망한 일본군을 추모하는 충혼비가 세워지기도 하였다

 

 

 

 

월미산 정상 전망대

산과 바다를 품어라

 

 

 

 

나랑 결혼해줄래 포토존

 

 

 

 

송도신도시 · 인천항

 

 

 

 

인천항

인천항 등대 뒤로 인천대교 · 무의도가 있다

 

 

 

 

인천항 등대

뒤로 인천대교가 있다

 

 

 

 

무의도 · 영종도

인천대교 뒤에 있다

 

 

 

 

영종도

 

 

 

 

작약도

뒤로 영종대교가 있다

 

 

 

 

인천항 곡물 저장고 벽화

북성포구 뒤로 청라국제도시 · 계양산이 있다

 

 

 

 

월미전망대

높이 23m의 전망대로 인천 시가지는 물론 서해 바다와 인천항 · 인천대교 등을 조망할 수 있다

지상 3층 · 지하 1층으로 카페 월미달빛마루와 북 카페도 있다

*

중국에서 날아오는 황사가 최소한으로 앉도록 유리창을 역원추형으로 설계하였다

인천 바다 해넘이를 보기에 좋다

 

 

 

 

인천항 제5부두

부산항 · 원산항에 이어 1883년 국내 세 번째로 개항하였다

1918년 일본이 우리나라 및 중국대륙 침략을 위한 거점 확보를 위해

지금의 제1부두에 4천500톤급 선박 3척 · 2천톤급 선박 4척을 동시 접안할 수 있는

수면적 9만9천174㎡의 제1선거를 축조(선거 입구에 여닫이 쌍문 갑문 설치)하여 사용해 왔다

 

 

 

제2부두

소래산 · 문학산 · 청량산이 뒤에 있다

 

 

 

 

제6부두

 

 

 

 

계양산

 

 

 

 

북성포구

청라국제도시 · 계양산이 뒤에 있다

 

 

 

 

월미공원 놀이동산

영종도가 뒤에 있다

 

 

 

 

무의도

인천해사고등학교가 앞에 있다

 

 

 

 

인천항 갑문

내항으로 배가 들어오는 것을 지켜봤다

 

 

 

 

갑문 안으로 배가 들어간다

 

 

 

 

갑문으로 배가 반쯤 들어갔다

 

 

 

 

갑문으로 배가 들어갔다

 

 

 

 

뒷쪽 갑문이 닫히고 갑문 안에 물이 들어와 내항 물 높이와 맞춘다

 

 

 

 

갑문의 물 높이가 내항과 같아지면 앞쪽 갑문이 열린다

 

 

 

 

배가 내항으로 들어간다

 

 

 

 

도선선이 붙는다

 

 

 

 

2대의 도선선이 내항으로 인도한다

 

 

 

 

1950 그날의 월미도 인천상륙작전

인천상륙작전의 설명과 그 때의 사진들이 있다

마침점은 월미도버스정류장이다

*

(2022. 6. 1)

 

 

 

 

GPS로 확인하니

걸은 거리 8.27km, 소요시간 5시간 3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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