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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야기

호원

호원(虎園)은 파평윤씨 서파공파 하호종회로
윤개(尹漑) 자는 여옥(汝沃) 호는 회재(晦齋)이시고 또 한가지 호는 서파(西坡)이시고
벼슬은 대광보국 승록대부 의정부 좌의정이셨다

호원(虎園)

 

 

호원(虎園) 정문
파평윤씨 서파공파 종회 알림판이 옆에 있다

 

 

호원(虎園) 현판

 

 

호원(虎園) 내부

 

 

호원(虎園) 안채

 

 

호원(虎園) 사랑채

 

 

회재사(晦齋祠)
파평윤씨 서파공파 사당이다

 

 

현정문(顯靖門) 현판
회재사(晦齋祠) 정문 현판이다

 

 

회재사(晦齋祠)

 

 

예성문(禮成門)
숭모재(崇慕齋) 정문이다

 

 

예성문(禮成門) 현판

 

 

숭모재(崇慕齋)
회재사(晦齋祠)가 뒤에 보인다

 

 

숭모재(崇慕齋)

 

 

숭모재(崇慕齋) 현판

 

 

새로운 건물을 건축중이다

 

 

좌의정 서파공 신도비
공의 휘는 개(漑) 자는 여옥(汝沃) 호는 회재(晦齋)이시고 또 한가지 호는 서파(西坡)이시니 벼슬은 대광보국 승록대부 의정부 좌의정이시다
윤씨는 파평에서 나왔으니 고려의 삼한 통합 벽상공신으로 벼슬이 태사이신 휘 신달(莘達)이 시조가 되신다
공은 1494년(성종 25) 4월 4일 삼형제 중 가운데 분으로 태여나시다
아버지의 휘는 이손(李孫) 벼슬은 군수로 증 영의정이시고 어머니는 증 정경부인은 무송윤씨 현감백연의 따님이시다
공이 태여나실 때 모재 김안국 선생의 시골집 백애동 가까운 향리에 시직공은 벼슬을 놓고 천영 조장동에 살고 계실 때
모재 선생이 달밤에 조장동 쪽을 바라보니 서기 일 점이 빙둘러 비추어 기이하여 사람을 시켜 가서보고 오게하니 이밤에 윤시직이 득손했다 하여
모재선생은 쌀과 미역을 부조하였고 또 이웃에 최씨 성을 가진이가 살었는데 밤 꿈속에 상서로운 밝은 달빛이
윤시직의 초가에서 빛을 발하여 이상스러워 바라보니 생시에 꿈속에서와 똑같아 먼동이 틀 무렵 처로 하여금 가서 문의하니
무송 윤 부인이 아기를 분만하였다 하여 쌀과 미역을 준비해서 산모의 밥과 미역국을 끓여 드렸다 한다
중종 11년 병자년에 공 23세로 대과에 합격하여 홍문관 저작과 승정원 주서를 제수 받으셨고
26세인 기묘년에 정6품관인 사간원 정언을 제수받고 다음해 이조 좌랑의 첩지를 받으시고
32세 을유년에 정4품관인 시강원 필선의 교지를 받으시고 39세 임진년에 당상관인 통정대부의 교신으로 이조 참의에 부임하셨다
종2품관(大監) 가선대부의 고신을 받아 충청도 감사로 부임하셨고 47세 경자년에 예조 참판을 제수받고 갑진년에 한성부 좌윤으로 옮기시고
52세 인종 원년(1544)에 정2품 자헌대부 고신으로 예조 판서가 되시고 다음해 명종원년에 영평군에 봉해 지셨다
경술년에 호조 판서로 옮기시고 58세 명종 6년 신해년에 승록 대부고신으로 우이정이 되시고
갑인년에 겸해서 영 경연사가 되고 65세인 무오년에 좌의정에 승차하고 겸해서 사옹원(대궐의 음식부) 도제조가 되고 영평부원군에 진봉되셨다
삼대(중종 · 인종 · 명종)의 임금을 모셔서 대광승록대부 좌의정겸 영 경연사 영 춘추관사이고 세자 시강원 사부이고
기로사에 드셔서 범장을 하사 받으셨으니 훌륭한 업적이 찬연하여 휘황한 빛이 발해서
빛의 흐름이 온나라에 가득하고 한강물이 마르지 않듯이 영원히 후세에 밝히리라
공께서는 73세 나이로 1566년 명종 21년 3월 12일이 기일이시다
유언의 말씀으로 시호를 정하지말고 간소하게 장사를 지내라 하시어 자손들은 부군의 명을 받들어
일반 사서인의 규모로 하호리 선영하에 장사를 지냈고 공의 산소와 정경부인의 산소는 같은 건원이나 봉분은 각각으로 쌍분이다
정경부인은 전주이씨 영춘군 휘 인(仁)의 따님으로 할아버님은 영해군 휘 당(塘)이고 증조의 휘는 도(淘)이니 세종대왕이시다
아드님 휘 비(斐)는 증 승정원 좌승지겸 경연참찬관 춘추관 수찬관으로 아드님 세 분과 따님 두 분을 두셨다
오호라 공의 존영이 400여 년만에 전남 광산에서 나타나시니 이는 기로사 잔치에 오씨 문중의 선조가
화공으로 하여금 노재상 여섯 분의 초상을 그리게 하여 그중에 영평부원군이 계신 것이니
우리 문중은 종손 익상과 유사 태인, 완용으로 하여금 거기가서 보고 영정을 본떠서 1966년 4월 20일 산소 아래에 영당에 세워 봉안하고
매년 3월 15일(음)에 후손들과 유림들이 모여 제향을 올리고 5년 후 무오년에 묘갈에 비석을 세웠다
지금은 밝은 덕을 밝히고 홀로 깨끗한 심정으로 오직 도가 오래도록 지속되기만을 걱정하신 공의 행장을
앞으로 태어나는 후손들로 하여금 사표와 귀감을 삼고자 정일품 대광승록대부의 품위를 갖추어 신도비를 세운다

 

 

파평윤씨 서파공파 세장지

 

 

GPS로 확인하니
걸은 거리 0.35km, 소요시간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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