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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야기

김제 옛 관아

김제 옛 관아는 조선시대 지방행정 치소(治所)로서
도시의 가장 중심이 되는 곳에 동헌과 내아가 함께 보존되어 있다는 점이 매우 드문 사례이다
현재 김제관아는 동헌과 내아 · 피금각이 남아 있으며 비교적 온전한 모습으로 전해지고 있어
당대의 지방행정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실례가 되고 있다

김제 관아 삼문
김제관아는 1667년(현종 8) 군수 민도가 세웠다고 한다

 

 

김제 관아 삼문
지금은 동헌 · 내아 · 피금각 · 관리사가 남아 있다

 

 

근민헌(近民軒 · 사적 제482호)
김제군 수령의 공무집행 공간이었던 동헌으로 현종 8년(1667년)에 군수 민도(閔燾)가 동헌을 세우고 이를 근민헌이라 칭하였으며
그 후 숙종 25년(1699년)에 군수 이세성(李世晟)이 동헌을 중수함과 아울러 그 명칭을 사칠헌(事七軒)이라 개명했다
1960년대 초까지 읍사무소로 사용하였고, 1984년에 지금의 모습으로 복원하였다

 

 

근민헌(近民軒) 현판
백성에게 가깝게 있는 관청이란 의미로 사적 지정을 기념하여 제작되었다

 

 

근민헌 내부
마루로 되어 있으며 왼편에는 온돌방이 있다

 

 

근민헌 내부 온돌방
1984년 복원했다

 

 

근민헌 온돌방 옆 부분이다

 

 

외삼문
근민헌에서 봤다

 

 

회화나무 보호수
나무 높이 18m · 가슴높이 둘레 400cm · 나이 300년 · 지정일자 1992. 5. 14

 

 

아직 완성되지 않은 건물이다

 

 

연못
새로 만드는 연못 같다

 

 

내아(內衙 ·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61호)
내아는 조선시대에 수령이 가족과 함께 살았던 생활공간이다
김제 내아는 조선 현종 8년(1667)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중앙의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왼쪽에는 2개의 온돌방과 부엌이 있고 오른쪽에는 다락이 딸린 부엌과 1개의 온돌방이 있다
대청마루 앞쪽이 뒤쪽에 비해 낮다
이는 문턱을 낮춰서 내아를 드나드는 사람들이 수시로 편하게 오가도록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내아(內衙 ·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61호)
일반적으로 내아는 관아 입구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 있지만 김제 내아는 동헌 바로 뒤에 있다
원래 여러 부속건물이 함께 있었던 것으로 보이나 지금은 동쪽이 트인 「ㄷ」자형 안채만 남아 있다
이 내아는 동헌과 함께 남아 있어 관아 건축물 연구에 중요한 문화재이다

 

 

근민헌(近民軒) · 피금각(披襟閣)

 

 

내아

 

 

피금각(披襟閣)
1633년(인조 11)에 지어진 피금각은 송강 정철의 아들 정홍명이 김제군수 재임 시
동헌에서 업무를 마친 후 가야금과 바둑 · 서책을 읽으며 휴식하기 위한 공간으로 지어졌다
동헌이 남향하고 있으며, 서쪽에는 피금각이 동향하고 있다

 

 

피금각(披襟閣) 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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