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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야기

쓰레봉

물왕저수지를 둘러싸고 있는 운흥산 · 관무산(관모산) · 마산에 이어 쓰레봉에 올랐다

쓰레봉도 낮은 산이기에 영모재 · 고송정을 둘러가기로 했다

 

 

전철 서해선 시흥능곡역 1번출구

시점이다

 

 

 

 

능골전원마을로 들어간다

 

 

 

 

류자신 신도비(시흥시 향토유적 제4호)
류자신 묘역에서 서남 방향으로 약 400m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원래 현 위치에서 동쪽 약 150m 지점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자손의 번영을 위하여 광복 직후에 당시 돈 8만원을 들여 현 위치로 이전하였다
귀부는 화강암을 비신과 이수는 한 장의 백대리석을 사용하여 만들었다
총 높이는 약 410cm · 귀부는 길이 273cm · 높이 87cm · 폭 187cm에 이르며 비신은 높이는 273cm · 폭 114cm · 두께 35cm의 규모이다
귀두는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고 있는데 두꺼운 입술에 송곳니가 드러나 있고 몸집에 비해 머리가 큰 특징이 있다
귀갑을 두른 등 위로는 연화좌대를 마련하여 육중한 비신을 받치고 있으며
이수의 전 · 후면에는 두 마리의 용이 여의주를 다투는 쌍룡쟁주의 형태를 생동감 있데 조각해 넣었다
신도비문은 진원부원근 류근이 짓고 병조참의 오정이 썼으며 지중추부사 김상용이 전을 올렸다
오정은 당대의 명필인 죽남 오준의 종제로 특히 해서에 능하였으며
인조 10년 우의정을 역임한 김상용은 병자호란 때 강화도에서 순절한 인물로 시문과 글씨에 뛰어났다
건립연대는 1617년 11월이다

 

 

 

 

영모재(永慕齋 시흥시 향토유적 제4호)
2008년 능곡지구 개발로 단독주택에 공원이 조성되었고 세월에 따라 쇠락해가던 영모재 안팎을 복원하였다
*
류자신의 묘가 뒷쪽으로 보인다

 

 

 

 

안채
1869년(고종 6)에 지은 시흥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목조가옥으로
초석과 목재를 다듬은 수법 · 대청마루의 희귀한 8각기둥 · 부드러운 추녀 등을 볼 때 서울의 이름난 목수가 건립한 것으로 추정된다
ㄱ자형 안채 · ㄴ자형 문간채로 트인 ㅁ자형 가옥이다

 

 

 

 

영모재(永慕齋 시흥시 향토유적 제4호)
조상의 위패를 모시는 영모재는 가옥의 가장 안쪽에 위치한다
영모재의 전면은 칸마다 2짝씩 세살문을 설치하고 양 측면과 후면은 화방벽 위에 판벽으로 마감하였다
1885년(고종 6)에 지었다

 

 

 

 

영모재
왼쪽부터 영모재 · 안채 · 문간채

 

 

 

 

영모재공원

영모재에서 류자신의 묘로 올라가는 길이다

공원 위쪽에는 문명석 · 조덕준 자선기념비와 낭정호 송덕비가 있다

 

 

 

 

문명석 · 조덕준 자선기념비 · 낭정호 송덕비

능곡동 삼거리 마을 인근에 위치하고 있었던 비석으로

일제강점기 관내 주민들의 삶과 선행 그리고 보은이라는 지역공동체 사람들의 관계를 엿볼 수 있는 자료다

건립한 해는 1921년(자선기념비) · 1932년(송덕비)이며 비문의 내용으로 미루어볼 때 지역의 수혜자들이 자발적으로 건립한 것으로 보인다

 

 

 

 

영모재공원

 

 

 

 

류자신 선생 묘(시흥시 향토유적 제4호)

류자신(柳自新 1541~1612) 선생은 주선 전기 문신으로 자는 지언(止彦) 본관은 문화이다

공조판서 류잠의 장남이며 어머니는 증호조판서 정승렴의 딸이다

이담의 문인으로 명종 19년(1564)에 진사시에 합격하였고 태릉참봉 · 돈령부 직장 · 내자시 주부 등을 거쳐

선조 5년(1572) 호조좌랑에 올랐다가 형조좌랑으로 옮겼으며

선조 8년(1575) 김포현령 · 선조 30년(1597) 한성부 판윤 · 선조 32년(1599) 개성부 유수 등을 역임하였다

1587년 셋째 딸이 광해군 비가 되었고 1608년 광해군이 선조의 뒤를 이어 즉위하자 영돈령부사에 임명되고 문양부원군에 진봉되었다

임진왜란이 발발했을 때 왕을 호종하였으며 평양에서 동궁(광해군)을 배종하였다

그러나 인조반정으로 인해 관직과 봉호가 추탈되었다

 

 

 

 

류자신 묘

묘 앞에는 상석과 향로석 · 묘비가 있으며 좌우에는 문인석과 망주석이 각각 배치되어 있다

묘역 내에 배치되어 있는 석물들은 400여 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거의 마멸되거나 훼손되지 않고 잘 보존되어 있어 훌륭한 문화재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류자신 묘

묘역은 옥녀국부형의 명당으로 정면에 군자봉이 위치하고 있다

묘의 배치는 위로부터 류잠(부친) · 류덕신(돈령부도정 · 둘째 아들) · 류희갱(진사 · 큰 아들) · 류자신 자신의 묘의 순서로 되어있으며

류자신의 묘는부인인 봉원부부인 동래정씨와 합장이다

*

류잠 묘 뒤에서 봤다

 

 

 

 

애기똥풀밭

묘역에서 잠시 오르니 마산갈 때 지났던 곳이다

 

 

 

 

관무산 정상 갈림길

 

 

 

 

군자봉

애기똥풀밭에서 봤다

 

 

 

 

사티골로 가는 길이다

 

 

 

 

사티골 갈림길 안내목

 

 

 

 

늠내길 안내판

 

 

 

 

한적한 숲길이다

 

 

 

 

신현동 갈림길

늠내길과도 작별이다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갔다

 

 

 

 

완풍군파 안소공파 종가 가성(佳城)

완풍대군은 환조대왕의 제1남이요, 태조 고황제의 형님이시다

휘(諱)는 원계(元桂)로 고려 충숙왕 17년 경오년(1330) 10월 10일 탄생하여 홍무(洪武) 무진년(1388) 10월 23일 돌아가셨다

묘소는 함흥부 귀주동 정릉(定陵) 오른쪽 언덕에 모셔져 있다

 

 

 

 

안산 화정영어마을

폐교된 화정동 화정초등학교를 리모델링하여 2006년 개원했다

 

 

 

 

안산 단원산책숲길 9경지도

화정영어마을 정문 옆에 있다

 

 

 

 

꽃우물길을 따라간다

 

 

 

 

화정감리교회

1919년 3월 30일, 안산 비석거리에서 교인 10명이 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는 이유로 약 10여 년간 교회가 폐쇄되었다

1904년 설립된 안산에서 가장 오래된 교회다

 

 

 

 

꽃우물길을 따라간다

 

 

 

 

너비울마을 빗돌

이 마을이 마하산 아래 넓은 골짜기에 자리잡은 마을이라 하여

넓은 골(廣谷)이라고 불렀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변음되어 너비울로 되었다

 

 

 

 

여러분 덕

안산시 된장 · 고추장 홍보 · 판매관

 

 

 

 

오정각(五旌閣)

김문기(金文起)와 그의 아들 김현석에 대한 충신 정문과

손자인 충주(忠柱) · 증손 경남(景南) · 고손 약전(約前)의 효자정문(孝子旌門)을 모신 곳이다

*

고종 7년(1870)에 건립한 정각으로 초익공(初翼工) 양식의 맞배지붕으로 정면3칸 · 측면 2칸이다

 

 

 

 

고송정지로 가는 길이다

 

 

 

 

고송정지로 들어가는 철문이다

 

 

 

 

고송정(枯松亭 경기도 기념물 제101호)

김충주가 망월암에 올라가 영월 쪽을 바라보며 단종과 할아버지 · 아버지를 생각하면서 눈물을 흘리며 일생을 보내어

그곳에 있던 소나무가 말라죽었다 하여 그가 살던 집터에 고송정을 지었다

 

 

 

 

고송정의 빅터

 

 

 

 

炭翁古址(탄옹고지)

풀을 엮어 집을 짓고 숯을 구워 팔며 스스로를 숯 굽는 노인(炭翁 탄옹)이라 했다

 

 

 

 

김충주 초막 터

고송정지에 집을 짓고 살기 전 집터로 마하산 7부 능선에 있다

앞쪽 우묵한 곳이 우물이다

*

16대손 김형찬님의 안내로 찾았다

 

 

 

 

탄옹의 초막 우물

메워져 있었던 우물을 김형찬님 아버님께서 발굴하셨다 한다

 

 

 

 

16대손 김형찬님

초막 터와 菌苑(균원) 바위를 안내해주신 분이다

작은 아버님 묘다

 

 

 

 

菌苑(균원) 바위

김충주의 아들 경남(景南)은 평소 효성이 지극하였다

부친과 산 속에 초막을 짓고 살 때 모친이 버섯이 드시고 싶다 하여 찾아 헤매다 버섯을 발견한 곳으로 후에 글씨를 새겼다 한다

모친은 경남이 따다 드린 버섯을 드시고 오래 사셨다 한다

 

 

 

 

고송정 느티나무 보호수(경기-안산-14 보호수)

나무 높이 18m · 둘레 3.1m · 나이 450년 · 지정일자 1982. 10. 8

 

 

 

 

탄옹 공 김충주(炭翁公 金忠柱) 부부의 묘

 

 

 

 

망월암(望越岩) 입구

밧줄을 따라 100여 미터쯤 올라가면 망월암이 있다

 

 

 

 

망월암(望越岩)

김충주가 망월암에 올라가 영월 쪽을 바라보며 단종과 할아버지 · 아버지를 생각하면서 눈물을 흘리며 일생을 보내어

그곳에 있던 소나무가 말라죽었다는 바위다

*

오랜 세월에 깎이고 흙에 묻혀서인지 바위는 생각보다 작았다

 

 

 

 

마산과 쓰레봉 갈림길로 오르는 길이다

 

 

 

 

육각정자

오른쪽 마산 · 왼쪽 쓰레봉으로 가는 길이다

 

 

 

 

마산 · 쓰레봉 갈림길

마산은 오른쪽 길이다

 

 

 

 

수리산

바위산인 수암봉이 왼쪽으로 보인다

 

 

 

 

바위산이라 돌탑들이 많다

 

 

 

 

수리산

마산 너머로 보인다

 

 

 

 

쓰레봉 정상

누가 다음지도 쓰레봉이라 써놨다

 

 

 

 

쓰레봉 정상에서 빅터

정상 안내목 앞 나무에 리본이 많이 걸려 있다

 

 

 

 

정상을 지난 봉이다

 

 

 

 

쓰레봉 숲을 나오는 빅터

 

 

 

 

목감호반5차더숲 버스정류장

마침점이다

 

 

 

 

물왕저수지

마산 쓰레봉 · 관무산(관모산)이다

운흥산에서 봤다

*

(2015. 07. 11 사진)

 

 

 

 

GPS로 확인하니

걸은 거리 8.3km, 소요시간 5시간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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