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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야기

종묘

조선시대 역대 왕과 왕비의 신주(神主)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국가 최고의 사당이다

왕실의 제사를 지내는 곳이기에 반드시 국가의 도읍지에 세워야 했고 그 위치나 형식 등도 따로 규정한 제도에 의거해 정해야 했다

지금 서울에 있는 종묘는 1395년 조선의 태조가 한양을 새나라의 도읍으로 정한 후에 지었다

궁궐의 왼쪽에는 종묘 · 오른쪽에 사직단을 두어야 한다는 주례에 따라 경복궁 왼쪽에 자리를 잡았다

지금의 종묘는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어 1608년에 중건한 것이다

건립 후 모시는 신주의 수가 늘어남에 따라 수차례 건물 규모를 늘려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되었다

*

친구들과의 점심 약속 전에 잠깐 들렸다

 

 

시점인 종로3가 11번출구에서 종묘로 가는 길이다

 

 

 

 

종묘전교(宗廟前橋)

종묘로 들어가는 하천인 회동 제생동천(灰洞 濟生洞川)에 축조된 다리로 대동지지에서 이 다리를 종묘전교라 하였다

종묘전교는 처음에 나무다리였던 것을 세종 3년(1421) 돌다리로 개축하였고 이후 현종 4년(1663)에 개수한 바 있었다

역대 왕들이 종묘에서 행하는 종묘대제를 비롯한 각종 주요 행사 때에 이용하였다

이 다리는 널다리(平橋) 형식으로 정면 3칸 · 측면 2칸(폭 9.6m · 길이 6.9m) 규모인데

다리의 바닥(廳板) 한가운데가 좌우보다 한단 높은 어도(御道) 형식이고

다리가 설치된 가장자리 네 모서리에는 해태상을 새긴 화표주(華表柱)가 마련되어 있다

 

 

 

 

외삼문

종묘엔 조선 태조부터 순종에 이르기까지 27대 519년을 이끌었던 왕과 왕비들의 신주가 모셔져 있는데

그 중 묘호를 받지 못한 연산군과 광해군 두 명의 왕은 신주가 없다

종묘의 정문이다

 

 

 

 

신로(神路)

외대문을 들어서면 거칠고 울퉁불퉁한 박석이 세가닥 길로 깔려있다

가운데 길은 혼령이 다니는 신로와 향 · 축문 · 폐백 등 제사 예물이 오가는 향로가 합쳐진 「신향로(神香路)」이고

외대문에서 볼 때 동측(오른쪽)은 왕이 다니는 「어로(御路)」 서쪽(왼쪽)은 왕세자가 다니는 「세자로(世子路)」이다

바닥에 거친 돌을 사용한 것은 경박스럽게 움직이지 말고 고개를 숙이고 진중하게 걸으라는 뜻이다

 

 

 

 

망묘루(望廟樓)

종묘를 관리하던 관원들이 업무를 보던 곳이다

망묘루는 종묘의 정전을 바라보며 선왕과 종묘사직을 생각한다는 뜻이다

 

 

 

 

공민왕 신당

고려 31대 공민왕과 왕비인 노국대장공주의 영정을 모신 사당이다

종묘에 고려왕을 모셨다는 점이 특이하지만  그 이유는 정확히 알수는 없다

역성혁명의 정통성을 부여하기 위한 의도와 종묘를 창건할 때 공민왕 영정이 바람에 실려 종묘 경내에 떨어졌는데

조정에서 회의 끝에 그 영정을 봉안하기로 하여 공민왕 신당이 건립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망묘루 옆에 붙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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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31대 공민왕과 왕비인 노국대장공주의 영정

영정 왼쪽으로 공민왕이 친히 그렸다는 말 그림이 있다

 

 

 

 

향대청(香大廳)

제례에 사용할 향과 축문 · 폐백과 같은 제사 예물을 보관하는 장소이자 제향에 나갈 제관들이 제복으로 갈아입고 기다리던 곳이다

 

 

 

 

재궁(濟宮) 어재실

재궁은 왕이 머물면서 세자와 함께 제사를 올릴 준비를 하던 곳으로 어재실 · 세자재실 · 어목욕청으로 구성되어 있다

마당을 중심으로 북쪽에 있다

 

 

 

 

어재실 내부

십이장복병풍 · 모란병풍이 있다

 

 

 

 

어목욕청

왕과 세자는 재궁 정문으로 들어와 머물면서 목욕 재계하고 의관을 정제하여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한 후

서협문으로 나와서 정전과 영녕전의 동문으로 들어가 제례를 올렸다

 

 

 

 

세자재실

동쪽에 세자가 머물렀던 곳이다

 

 

 

 

남문

정전 마당으로 들어가는 문은 세 곳에 있다

남문은 신문(神門)으로 혼백이 드나드는 문이다

동문으로는 제례 때 제관이 출입하고 서문으로는 악공 · 춤을 추는 일무원 · 종사원이 출입한다

 

 

 

 

정전(국보 제227호)

왕과 왕비의 승하 후 궁궐에서 삼년상을 치른 다음에 그 신주를 옮겨 와 모시는 건물로 종묘에서 가장 중심이 된다

정전에는 조선을 건국한 태조 · 재위 중인 왕의 4대 조상 · 역대 왕 중에서 특히 공덕이 큰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셨다

정전은 내부에 모실 신주의 수가 증가함에 따라 몇 차례에 걸쳐 옆으로 증축하여 늘렸다

건물 앞에 있는 가로 109m · 세로 69m나 되는 넓은 월대는 정전의 품위와 장중함을 잘 나타낸다

월대 가운데에는 신문에서 신실로 통하는 긴 신로가 남북으로 나있다

제관과 집례관들은 월대에 도열하여 제례를 행한다. 신실의 양쪽에는 창고와 부속실을 마련했다

 

 

 

 

정전(국보 제227호)

길게 펼쳐진 1층짜리 건축물로 검은색 지붕과 붉은색 기둥이 늘어선 모습은 전체적으로 엄숙하고 신성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으나

한편으로는 무척이나 소박하고 간결하게 꾸며져 있다

 

 

 

 

공신당(功臣堂)

정전 월대 아래 동쪽에 있다

정전에 모신 역대 왕들의 공신들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창건할 때는 5칸에 불과하였으나 정전에 모시는 왕의 신주가 늘어남에 따라 배향 공신들의 위패도 늘어나

지금과 같이 83위를 모신 16칸의 긴 건물이 되었다

이 중 이황과 이이는 공신당 · 성균관 · 자손 3곳에서 신주를 모시는 트리플 크라운이다

 

 

 

 

칠사당(七祀堂)

토속신앙과 유교 사상이 합쳐진 사당이다

왕실과 궁궐의 모든 일과 만백성의 생활이 아무 탈없이 잘 풀리도록 봄 · 여름 · 가을 · 겨울의 운행과 관계되는 신들에게 제사를 지낸다

칠사는 봄의 사명과 사호 · 여름의 사조와 중류 · 가을의 국문과 공리 · 겨울의 국행을 이르는 말이다

 

 

 

 

 악공청(樂工廳)

종묘 제례악을 연주하는 악공들이 악기를 준비하고 기다리며 연습도 하던 건물이다

 

 

 

 

 영녕전(永寧展) 삼문

 

 

 

 

영녕전(永寧展)

세종 3년(1421) 정종의 신주를 정전에 모시며 정전의 신실이 부족하자 정전에 모시고 있던 신주를 다른 곳에 옮겨 모시기 위해 새로 지은 별묘다

그 이름은 「왕실의 조상과 자손이 함께 길이 평안하라」는 뜻을 담고 있다

영녕전은 신주를 정전에서 옮겨왔다는 뜻에서 「조묘(祧廟)」라고도 한다

시설과 공간 형식은 정전 일원과 유사하지만 정전보다 규모가 작고 좀 더 친근감 있게 지어졌다

 

 

 

 

영녕전(永寧展)

정전 일원과 마찬가지로 이중으로 된 월대 주위에 담장을 두루고 동 · 남 · 서쪽 세 곳에 문을 두었다

가운데 네 칸은 태조의 4대 조상인 목조 · 익조 · 도조 · 환조와 비를 모신 곳으로 다른 협실보다 지붕이 높다

좌우 협실 각각 6칸에는 정전에서 옮겨 온 왕과 왕비 및 추존한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시고 있다

영녕전은 정전과 같이 세면을 벽으로 감쌌으며 내부 공간은 트여 있으나 가운데 4칸과 좌우 협실 사이는 벽을 두어 구분하였다

총 16칸으로 이루어진 영녕전은 정전에 비해 규모도 작고 모셔진 신주도 34위로 적다

 

 

 

 

영녕전(永寧展)

창경궁과의 구름다리가 있던 곳으로 간다

 

 

 

 

종묘 · 창경궁 녹지축 연결 공사가림막

종묘와 창경궁은 본래 하나처럼 연결된 궁이었는데 1931년 일제가 그 사이에 도로를 내면서 두 개로 갈리게 되었다

 해방 이후 작은 구름다리를 설치함으로써 연결은 되었다

암튼 종묘 · 창경궁 녹지축 연결 공사장 가림막이다

 

 

 

 

전사청(典祀廳)

제사를 치를 때 음식을 마련하는 곳으로 평소에는 제사에 사용하는 집기들을 보관하였다

1395년(태조 4년)에 종묘를 지을 때 함께 지었는데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1608년에 재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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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쪽에 찬막단과 성상위가 있다

찬막단(왼쪽)은 제사에 바칠 음식을 미리 검사하는 단이다

종묘제례에는 날음식을 올렸으므로 특별히 주의해야 했기 때문에 천막을 치고 휘장을 둘러 청결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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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상위(오른쪽)는 제물인 소 · 양 · 돼지를 검사하는 곳으로 제물로 써도 좋다는 판정이 난 후에야 잡아서 썼다

 

 

 

 

수복방

정전 동문 옆의 수복방은 종묘를 지키는 수복들이 사용하던 곳이다

 

 

 

 

제정(祭井)

전사청 동쪽에는 제사에 쓰는 우물이다

 

 

 

 

GPS로 확인하니

걸은 거리 3.6km, 소요시간 1시간 35분

(2020. 10.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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