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바다이야기

월미도

달의 꼬리를 닮아 이름 붙여진 월미도는 러일전쟁 및 병인양요 · 인천상륙작전의 주 무대로 인천 역사의 중심에 있었으며

1923년 1km의 제방을 쌓아 육지와 연결한 후 주로 일본인들을 위한 조탕 · 별장 · 해수풀장이 들어서며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유원지로 발전하였다

지금은 섬과 육지 사이가 메워져 월미공원 · 문화의 거리 · 놀이동산 등이 들어서 있다

 

 

인천역

파란 유리 건물이 월미바다열차 출발역인 월미바다역이다

월미바다열차는 코로나19 감염 차단을 위해 임시휴업 중이다

 

 

 

 

인천역

스캔한 사진(1995. 4. 23)

 

 

 

 

밴댕이골목

인천역사거리에서 짜장면박물관으로 올라가는 길로

예전 인천역 뒤가 바다였기에 아직 밴댕이 식당이 많이 남아있다

 

 

 

 

해망대산(海望臺山 지금의 올림포스호텔)

산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언덕이다 하지만 바다에 접했기 때문에 봉화대가 있었고 바다를 향한 대완구(대포)가 있었다

개화기에는 한때 영국영사관이 설치되었고 이후 인천상륙작전 때 함포로 폐허가 되기도 했다

*

올림포스호텔은 1965년 12월 객실 43개로 개업했다

인천에서 최초로 엘리베이터가 설치된 이 호텔은 중국식 광동요리의 나이트클럽 · 24시간 지하 바와

한국 명기(名技)가 특대하는 한국요리집과 기생관 등이 있었다

1967년 8월 1일 외국인 전용 카지노가 들어섰고 2003년 카지노의 대부 전낙원이 호텔을 인수하고 자신의 이름을 따 파라다이스호텔로 바꿨었다

 

 

 

 

한국 최초의 연초공장 빗돌 / 해밀턴의 제물포연초회사 표지석

인천의 담배 즉 권련의 역사는 1901년 그리스인 밴들러스가 중구 사동에 동양연초회사를 설립했다는 기록이 바로 최초의 연초공장이 되는 셈이다

이 회사는 1903년 수입 담배에 밀려 문을 닫는데 지배인이었던 미국인 해밀턴이 맥을 이어 다시 연초회사를 설립한다

이 회사는 홍도패 · 산호 · 뽀삐 등의 이름이 붙은 담배를 하루 30만 갑씩 생산했다

1910년대 담배 생산액은 정미업 다음으로 인천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컸다

하지만 1921년 조선총독부가 연초전매법을 시행하면서 인천산 담배는 자취를 감췄다

광복 후 중산학교 기숙사로 사용하기도 했다

 

 

 

 

해밀턴의 제물포연초회사 표지석

 

 

 

 

만국 야생화정원

인천역에서 우회고가사거리 밑을 지나 길 건너에 있다

 

 

 

 

동일아파트

새우젓골목 옆에는 인근 섬과 주안염전에서 들어온 소금이 있었다

소금은 가마니나 포대에 포장돼 전국 각지로 실려 나갔다

소금을 부리던 그 앞에 부두를 사람들은 한염부두라고 불렀다

소금공장이 떠나고 그 자리에 동일아파트가 들어섰다

 

 

 

 

새우젓골목

인천 앞바다에서 잡은 새우를 소금에 절여 보관하던 창고와 가게들이 있었던 곳이다

골목에는 건어물가게도 있었으나 부두가 사라지면서 새우젓도 함께 떠나버리고

빈 창고와 가게는 인근 노동자와 도시 빈민들이 들어와 쪽방촌이 되었다

 

 

 

 

북성포구 아치

인천상륙작전 적색해안 안내석 바로 옆이다

 

 

 

 

북성포구

인천상륙작전 적색해안 안내석 뒷쪽이다

 

 

 

 

인천상륙작전 상륙지점(적색해안) 빗돌

이 지점은 1950년 9월 15일 새벽 유엔군 사령관 맥아더원수가 전함 261척과 상륙군 미해병 제1사단 · 한국해병 제1연대를 진두 지휘하여

역사적인 인천상륙작전을 성공한 3곳(적색해안 · 청색해안 · 녹색해안) 중 한 곳이다

 

 

 

 

제2차 인천상륙작전 전승비

1951. 2. 10~2. 11 대한민국 해군 · 해병대 단독으로 감행한 제2차 인천상륙작전 승리를 현양하기 위해 상륙지점인 현 위치에 해군이 건립했다

 

 

 

 

월미도 관광특구 아치

왼쪽 고가가 월미바다열차 레일이다

 

 

 

 

월미공원 한국전통정원

조선시대 옛 정원양식을 정(庭)과 원(園)으로 구분하여 재현하였다

정은 궁궐정원 · 별서정원 · 민가정원으로 구분 조성하였고 원은 구곡으로 표현하였다

 

 

 

 

그날을 기억하는 나무 / 월미 평화의 나무 두 번째 이야기

월미산에 함포사격으로 포탄이 우박처럼 쏟아지던 그날을 기억하는 나무이다

은행나무 보호수 · 높이 20m · 굵기 124cm · 나이 103년 · 지정일자 2015년



 

 

목련

 

 

 

 

월미산으로 오르는 길이다

 

 

 

 

인천 임해학교 안내판이 옆에 있다

 

 

 

 

월미돈대 · 월미포대

영종진지도를 보면 월미도 남서쪽 4부 능선쯤에 둥근 원형 모양의 돈대 모습이 보인다

지금은 그 흔적을 찾을 길 없으며 돈대로 추정되는 곳에는 여러 채의 군막사가 설치된 바 있어 진작에 훼손된 것으로 생각된다

월미돈대의 축조 연도는 강화에 설치된 돈대가 숙종 때 건립된 것으로 미루어, 비슷한 시기에 세워진 것으로 판단된다

외국세력의 접근이 활발하던 조선 후기에 월미돈대는 이들로부터 인천과 월미도를 지키는 주요한 군사시설 기능을 담당하였다

 

 

 

 

하트 포토존

매직펜과 리본이 있어 소망글을 써서 펜스에 매달 수 있다

 

 

 

 

월미산 정상광장

월미공원귀환기념비 · 월미도 연보 빗돌 · 매점 · 물범카를 타는 곳이 있다

 

 

 

 

월미공원귀환기념비 · 월미도 연보 빗돌

 

 

 

 

월미산 정상전망대로 오르는 길이다

니가 젤좋아 · 지금처럼만 · 사랑해 · 스치면 인연 · 변치말자 · 고마워 등의 글이 있다

 

 

 

 

월미산 정상전망대

월미산 정상에는 일제강점기 때 아타고신사와 충혼비가 있었다

신사란 일본인들이 신적인 존재로 모시는 황실의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는 시설이다

일본은 식민지로 획득하거나 조차한 지역엔 예외없이 신사를 세우고 이를 숭배하였다

일본인들이 조선에 세운 신사는 주로 한국의 뿌리가 되는 곳이나 한국의 정기를 누를 수 있는 산봉우리에 세워졌는데 월미도도 예외는 아니었다

1889년 강남철부를 비롯한 인천의 일본거류민 유력자 14인의 발기에 의해 착수된 인천대신궁은 1897년 6월 17일 건축공사가 낙성되면서 면모를 갖추었다

이곳엔 일본의 수호신인 천조대신(天照大神 아마테라스 오미카미)을 모셨다

일본신사의 경외사인 월미도의 아타고신사는 1908년 세워졌고 1929년 9월에 한 차례 개축하였다

화재를 예방하는 아타고신을 모시는 아타고신사는 쿄토(京都)의 아타고야마에 있는 아타고신사가 총본산이라고 한다

월미산의 아타고신사는 해방 후 파괴되고 봉안전에 오르는 계단만 남아있다가 한국전쟁 이후 그나마 사라졌다

아타고신사 입구에는 청일전쟁 때 사망한 일본군을 추모하는 충혼비가 세워지기도 하였다

 

 

 

 

무의도

인천항 등대와 인천대교 너머에 있다

 

 

 

 

영종도

 

 

 

 

작약도

영종도 옆이다

 

 

 

 

작약도

영종대교가 옆에 있다

 

 

 

 

북성포구 방향

가운데 빌딩 밀집 지역이 청라국제도시 · 계양산이 오른쪽에 있다

 

 

 

 

인천항 곡물 저장고 벽화

기네스북에 오른 세계 최대 야외벽화로 제작 기간은 약 1년으로 22명의 도장 · 도색 전문 인력이 투입됐다

 

 

 

 

예포

한국최초 · 인천최고 100선 중 하나다

고종황제 즉위 4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각국 대사를 맞이하는 포대를 월미도에 설치했다는 기록이 전한다

 

 

 

 

월미전망대

중국에서 날아오는 황사가 최소한으로 앉도록 유리창을 역원추형으로 설계하였다

인천 바다 해넘이를 보기에 좋다

 

 

 

 

청량산

 

 

 

 

수봉산

 

 

 

 

월미전망대

지상 3층 · 지하 1층 · 23m의 전망대로 인천 시가지는 물론 서해 바다와 인천항 · 인천대교 등을 조망할 수 있다

카페 월미달빛마루와 북 카페도 있다

*

코로나19로 휴관이다

 

 

 

 

어을미마을 안내판

역사관 · 홍보관 · 테마관 · 카페 모두 휴관이다

 

 

 

 

인천항

월미바다열차가 옆으로 지난다

 

 

 

 

인천항

부산항 · 원산항에 이어 1883년 국내 세 번째로 개항하였다

1918년 일본이 우리나라 및 중국대륙 침략을 위한 거점 확보를 위해 지금의 제1부두에 4천500톤급 선박 3척 · 2천톤급 선박 4척을 동시 접안할 수 있는

수면적 9만9천174㎡의 제1선거를 축조(선거 입구에 여닫이 쌍문 갑문 설치)하여 사용해 왔다

*

철재잡화부두인 제6부두다

 

 

 

 

예전 군 벙커

 

 

 

 

평화의 어머니 나무 / 월미 평화의 나무 세 번째 이야기

섬 전체가 무너지듯 진동했다. 폭격이 지나간 자리는 참혹했다

느티나무 · 높이 22m · 굵기 220cm · 나이 244년 · 지정일자 2015년

 

 

 

 

해넘이 언덕의 석양정

저녁노을과 인천항을 오가는 배들이 발길을 머물게 하는 언덕이다

 

 

 

 

월미구장

월미바다열차 월미박물관역이 옆에 있다

 

 

 

 

월미박물관

 

 

 

 

1950 그날의 월미도 인천상륙작전

인천상륙작전의 설명과 그 때의 사진들이 있다

 

 

 

 

인천상륙작전

공중에서 본 월미도 · 월미도 전경

 

 

 

 

인천상륙작전 때의 사진

 

 

 

 

인천상륙작전 때의 사진

 

 

 

 

월미문화의 거리 상가

 

 

 

 

예전 월미문화의 거리 상점들

스캔한 사진(1993. 8. 20)

 

 

 

 

인천항 검조소

지금은 볼 수 없는 곳이다

스캔한 사진(1995. 5. 1)

 

 

 

 

월미도 등대길

탁 트인 바다와 환상적인 낙조를 감상할 수 있으며 근현대부터 현재까지 인천 중구의 역사와 문화유산이야기를 알아볼 수 있다

 

 

 

 

월미도등대길

 

 

 

 

인천항 내항으로 들어가는 갑문이 보인다

 

 

 

 

인천항 갑문

스캔한 사진(1995. 5. 5)

 

 

 

 

인천대교

무의도가 뒤에 있다

 

 

 

 

월미산

 

 

 

 

놀이동산

월미바다열차가 앞으로 지난다

 

 

 

 

야외무대

 

 

 

 

예전 야외무대

스캔한 사진(1993. 8. 20)

 

 

 

 

원형전망대

 

 

 

 

인천마스코트 · 시계탑

 

 

 

 

영종도

 

 

 

 

영종도 · 작약도

 

 

 

 

야외무대

 

 

 

 

JCI 빗돌

 

 

 

 

JCI 빗돌

스캔한 사진(1993. 7. 12)

 

 

 

 

철학원 · 초상화

 

 

 

 

지휘자 · 드럼 · 첼로 · 올갠 등의 조형물이 있는 쉼터다

 

 

 

 

선착장

 

 

 

 

예전 선착장 사진이다

 

 

 

 

월미맨숀

마침점인 월미도 버스정류장 앞이다

 

 

 

 

GPS로 확인하니

걸은거리 10.8km, 소요시간 5시간 9분

'바다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태안 만대항  (0) 2020.06.19
소래포구  (0) 2020.04.05
소래포구~월곶포구~오이도  (0) 2020.02.21
오이도~소래포구  (0) 2019.09.28
시흥 오이도  (0) 2019.09.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