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길이야기

안흥지 애련정

애련정(愛蓮亭 이천시 향토유적 제15호)

이천읍지에 의하면 객사 남쪽에 정자가 언제 창건되었는지 모르나 세종 10년(1428)에 중건하고 세조 12년(1456) 이천부사가 다시 중건하였으며

정자 옆 습지에 안흥지를 파서 그 한가운데 연꽃을 심고 영의정 신숙주에게 애련정이란 명칭을 얻게되었다 한다

 

 

애련정

중종 23년(1528) · 숙종 14년(1688) · 정조 3년(1779)의 기록에는

역대 임금님들이 영릉 행차길에 이천행궁에 머무르며 의례 붉은 연꽃이 어우러진 애련정을 돌아보았다

 

 

 

 

애련정

순종황제 원년(1907) 벌떼처럼 일어났던 정미의병 때

일본군이 이를 진압하고자 이천읍내 483가구를 불태운 충화사건(衝火事件)이 있었으니 이때 없어진 것으로 본다

 

 

 

 

애련정으로 건너는 다리다

 

 

 

 

애련정(愛蓮亭 이천시 향토유적 제15호)

이천시는 지방자치시대를 맞이하여 18만 이천시민의 의견을 모아

1998년 복원하였다

 

 

 

 

애련정(愛蓮亭)

 

 

 

 

애련정(愛蓮亭) 현판

이천 출신 농학자 류달영박사 글씨다

 

 

 

 

애련정(愛蓮亭)

이천9경 제7경이다

 

 

 

 

퇴어 김진상(退漁 金鎭商) 시문

글씨에 뛰어나 많은 비문(碑文)을 썼고 문집으로 「퇴어당유고」가 있다

애련정 내부에는 애련정의 아름다운 시들이 있다

 

 

 

 

매계 조위(梅溪 曺偉) 시문

1498년(연산군 4)에 성절사(聖節使)로 명나라에 다녀오던 중 무오사화가 일어나

김종직(金宗直)의 시고(詩稿)를 수찬한 장본인이라 하여 오랫동안 의주에 유배되었다

유배 중에도 저술을 계속하여 「매계총화」를 정리하다가 죽었다

작품으로 조계문묘비(曺繼門墓碑)가 있고 저서로 매계집(梅溪集)이 있다

 

 

 

 

사가 서거정(四佳 徐居正) 시문

당대 석학으로 여섯 왕을 모시며 대제학을 역임하고 45년간 조정에 머물렀다

 

 

 

 

애련정 중건기 / 이천시장 유승우

 

 

 

 

풍월정 월산대군(風月亭 月山大君)의 시문

조선 성종(9대)의 형이자 당대 뛰어난 시문으로 중국에까지 알려졌다

 

 

 

 

초당 강경서(草堂 姜景敍) 시문

남효은 · 권경유 등과 더불어 사장(詞章) · 정사(政事) · 절의 · 효행 등으로 이름이 높았다

예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시호는 효열(孝烈)이다

저서로는 「초당집(草堂集)」이 있다

 

 

 

 

선정비군(善政碑群)

애련정에서 봤다

 

 

 

 

애련정(愛蓮亭)

 

 

 

 

안흥지 잉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