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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야기

서울 종로구 청운동 · 효자동

종로구 청운동은 이곳에 원래 있던 마을인 청풍계와 백운동의 〈청〉자와 〈운〉자에서 유래되었고

종로구 효자동은 조선 선조 때 문신 조원(趙瑗)에게 효성이 지극한 네 아들이 있었는데

임진왜란 때 희정과 희철 형제가 모친을 구하려다 적봉(賊鋒)에 목숨을 잃자 이를 기리기 위해 나라에서 두 개의 효자문을 세웠고

사람들은 이곳을 「효자골」이라 하니 지금의 효자동은 여기서 기인한 것이다

 

 

경복궁역 1번출구

시점이다 

 

 

 

 

사직단(사적 121호)

조선시대 토지의 신인 사(社)와 곡식의 신인 직(稷)에게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전통사회에서 사직은 종묘와 함께 국가의 근본을 상징했다

태조는 도읍을 한양으로 옮기면서 1395년 경복궁 동쪽에는 종묘 · 서쪽에는 사직단을 설치했다

일제는 우리나라의 사직을 끊고 우리의 얼을 짓밟으려는 획책 가운데 하나로 사직단을 공원으로 격하시켰다

 

 

 

 

단군성전(檀君聖殿)

청운동과 효자동 외곽을 걷다 보니 사직단 · 단군성전이 있는 사직동부터 만나게 된다

 

 

 

 

단군성전(檀君聖殿)

우리 겨레의 시조(始祖) 되시는 단군 할아버님을 모신 성역이다

그 이름을 단군성전 또는 백악전(白堊殿)이라고 부른다

일제가 절을 지었던 곳인데 1968년 사직단을 재단장하며 단군성전으로 바꿨다

 

 

 

 

단군성전(檀君聖殿) 현액

여초 김응현(如初 金膺顯)의 광개토대왕 비문 서체이다

 

 

 

 

시조 단군 상(始祖 檀君像)

천제(天帝)인 환인의 손자이며 환웅의 아들로 기원전 2333년경 조선(朝鮮) 즉 단국(檀國)을 건국했다

음력 3월15일은 단군 한배검께서 한얼님의 나라 한울로 승천하시어 신선이 되신날로 「어천절대제전」이 열린다

 

 

 

 

서울시립종로도서관

1920년 개관한 서울 최초의 근대도서관이다

 

 

 

 

종로 어린이도서관

어렸을 때 벗 삼은 책 · 꿈을 키운 평생 친구

1979년 설립된 우리나라 최초의 어린이 전용 도서관이다

아이들을 태우고 온 차인지 주차장이 가득차 차들이 정문에서 시동을 켠채 줄지어 기다리고 있다

 

 

 

 

너는 어떤 씨앗이니?

너는 어떤 꽃을 피울래?

 

 

 

 

필운대(弼雲臺 · 서울문화재자료 제9호) · 귤산 이유원 시(橘山 李裕元 詩)

필운이란 이름은 우필운용(右弼雲龍 · 임금을 우측에서 보필한다)에서 왔다

중종 32년(1537) 명나라 사신 공용경이 황태자의 탄생을 알리려고 한양에 들어오자 중종은 경회루에서 잔치를 베푼 후

그 자리에서 최고의 예우로 산 이름을 지어달라고 청하자 북악산은 공복산 · 인왕산은 필운산으로 지어 올렸다

선인들도 「필운(弼雲)」이라는 이름은 마음에 들었는지 산 아래 계곡 이름으로 명맥을 유지하였다 

 

 

 

 

필운대(弼雲臺 · 서울문화재자료 제9호)

이곳에 살던 이항복이 이를 자신의 별호(別號)로 정하고 집 뒤에 있던 바위에 필운대라 직접 써놓았다고 한다

 

 

 

 

이항복의 후손으로 고종 때 영의정을 지낸 귤산 이유원(橘山 李裕元)의 시구(詩句)다

我祖舊居後裔尋(아조구거휴예심) / 조상님 예전 사시던 곳에 후손이 찾아오니

蒼松石壁白雲深(창송석백백운심) / 푸른 소나무와 바위벽에 흰 구름만 깊었구나

遺風不盡百年久(유풍부진백년구) / 백년의 오랜 세월이 흘렀건만 유풍(遺風)은 가시지 않아

父老衣冠古亦今(부토의관고역금) / 조상들의 차림새는 예나 지금이나 같아라

*

癸酉月城李裕元題 白沙先生弼雲臺(계유월성이유원제 백사선생필운대)

 

 

 

 

귤산 이유원의 시구 오른쪽으로 계유감동(癸酉 監董) 동추 박효관(同樞 朴孝寬) 등 9명의 이름을 열거한 명문이 있다

*

감동은 조선 시대, 국가 토목 공사 등 특별한 사업을 감독하고 관리하기 위하여 임명하는 임시직 벼슬이고 동추는 조선시대 중추부 종이품 벼슬이다

 

 

 

 

배화여고 본관

1926년 캠벨기념관으로 건립했다

배화여고는 1898년 미국 남감리교 여 선교사 조세핀 필 캠벨여사가 최초의 여 선교사로 제물포에 상륙 내한하여

고간동(지금 내자동)에서 캐롤라이나 학당을 창설 개교(당시 학생수 여학생 2명 · 남학생 3명)했다

 

 

 

 

배화여고 본관

누하동 교사에서 유치원 · 보통과 · 고등과가 합동으로 사용하다가 고등과가 신교사로 이전 1944년 7월에는 일본부대 통신부대가 점유했으며

6 · 25전쟁 때는 건물이 반파된 것을 개축하여 초기에는 4층을 강당으로 사용하다가 지금은 도서관으로 사용 중이다

 

 

 

 

조세핀 필 캠벨 여사 상

내한 100주년 기념비 ·  배화학원 창립 110주년 대학개교 30주년 기념비가 있다

배화여고 생활관 건물이 뒤에 있다

 

 

 

 

배화여고 생활관

학교가 지금의 자리로 이전해 온 1916년에 선교사를 위한 주택으로 지어졌다

1971년부터는 생활관 및 동창회관 · 1997년부터는 동창회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배화여고 생활관 뒷면

건물의 전체적인 외관은 서양식 붉은 벽돌과 서양식 기둥을 사용하였지만 지붕은 한옥의 기와지붕을 사용하여 독특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상의 집

실제 이상이 살았던 집이다

 

 

 

 

대오서점

서점으로는 운영이 어려워 2012년부터 따님이 카페로 바꿔 운영한다

 

 

 

 

통인시장

1941년 공설시장으로 출발하여 세월의 흐름에 따라 현재의 작은 골목형 시장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약 200m 길이의 도로 양편에 80여 개의 점포가 형성되어 있으며

2010년에는 서울형 문화시장으로 선정, 문화와 예술이 함께하는 전통시장으로 조성되어 지역주민과 관광객의 사랑을 받는 명소로 거듭나고 있다

 

 

 

 

송석원 터(松石園址) 빗돌

정조 때 평민 시인이었던 천수경이 집을 지어 송석원이라 하였고

1914년에는 경술팔국적(庚戌八國賊)의 하나인 윤덕영도 프랑스풍 저택을 짓고 역시 송석원이라 하였다

 

 

 

 

자수궁 터(慈壽宮址)

광해군이 인왕산의 왕기를 누르고자 지은 궁궐 중 하나로 지금의 옥인동 일대다

자수궁(慈壽宮)은 태조와 계비 신덕왕후의 아들 무안대군 방번이 살던 곳이다

무안군은 동생 방석에게 세자 자리를 빼앗기고, 제1차 왕자의 난 때 죽임을 당했다

그 후 자수궁엔 세종의 후궁들이 모여 살았다. 이때부터 왕이 죽으면 후궁들을 거처하게 하고 자수궁이라고 했다

이곳은 후궁들이 비구니가 되어 한때 여승방이 되기도 했으며 효종 때에는 청나라에서 온 궁녀 굴씨(屈氏)도 살았었다

 

 

 

 

우당기념관

중국으로 망명하여 나라의 독립을 위해 싸운 우당 이회영 선생 및 형제(건영 · 석영 · 철영 · 시영 · 호영)

그리고 그들과 뜻을 같이한 애국열사 동지들을 기념하는 곳이다

이석영은 자손이 없는 필운대 시구 이유원의 양자다

 

 

 

 

국립 서울 농 · 맹학교 소망 타일벽화

아이들의 마음을 수화타일로 만들어 벽화를 만들어 놓았다

 

 

 

 

사랑해

가장 보고 싶은 말(手話)입니다

 

 

 

 

국립서울농학교 개교 100주년 기념비

 

 

 

 

선희궁(宣禧宮 · 서울시 유형문화제 제32호)

1765년(영조 41)에 영조의 후궁이며 사도세자의 생모 영빈 이씨를 제사하기 위해 세운 사당이다

고종 때 신위를 육상궁으로 옮긴 관계로 지금은 빈 사당만 남아 있다

영조의 생모 숙빈 최씨를 모신 사당을 육상궁이라 하는데

근대에 들어 조선 역대 왕들의 친어머니지만 후궁 신분이었던 6인의 사묘를 합쳐 지금은 칠궁(七宮 · 사적 제149호)이라 한다

 

 

 

 

윤백원선생한글지문자창안기념비

호는 국운(菊雲). 서울 한남동 출신으로 경성사범학교를 졸업한 후 경성효창공립보통학교(지금 서울 효창초등학교)에 근무하였고

1939년 제생원(지금 서울 농 · 맹학교 전신) 훈도로 부임하여 농(청각장애) 학생들을 지도하면서 한글지문자를 창안하였다

 

 

 

 

은행나무 보호수

나무 높이 20m · 둘레 693cm · 나이 260년 · 지정일자 1989. 10. 24

 

 

 

 

송강 정철(松江 鄭澈) 작품비 안내판

정철(1536~1593)의 본관은 영일(迎日) · 자는 계함(季涵) · 호는 송강(松江) · 시호는 문청(文淸)이다

명종 16년(1561) 진사시에 장원급제 하였고 이듬해 27세로 별시 문과에 장원급제한 후

강원도 · 전라도 · 함경도 관찰사와 예조판서 · 우이정 · 좌의정 등의 관직을 두루 거쳤다

 

 

 

 

산사야음(山寺夜吟)

관동별곡 · 성산별곡 · 사미인곡 · 훈민가 등이 옆에 있다

 

 

 

 

백세청풍(百世淸風)

이곳은 병자호란 때 강화도가 함락되자 장렬히 순절한 우의정 김상용(金尙容)의 옛집 자리다

김상용은 형세가 급박해지자 성의 남문루에 올라가 앞에 화약을 장치한 뒤

좌우를 물러가게 하고 불 속에 뛰어들어 타죽었는데 그의 손자 한 명과 노복 한 명이 따라 죽었다

 

 

 

 

종로구 아름다운 나무(지정번호 종로구 2013-79)

반송 높이 12m · 둘레 95cm · 나이 약 90년 · 소재지 경기상업고등학교

 

 

 

 

본관동 입구

 

 

 

 

청송당(聽松堂)

본관동 뒷쪽 후관동 옆에 있는데 학교 공사로 출입통제다

대신 안내판에 있는 그림을 올린다

 

 

 

 

운강대(雲江臺)

효자동 지명의 유래인 조원을 기리기 위해 손자가 할아버지의 호를 바위에 새긴 것이라 한다

 

 

 

 

경복고등학교 본관

 

 

 

 

화성 겸재 정선의 집터

 

 

 

 

경복고 느티나무 보호수

높이 16.5m · 둘레 380cm · 나이 565년 · 지정일자 1981. 10. 27

 

 

 

 

청음 김상헌(淸陰金尙憲 1570~1652) 집터

이 일대는 병자호란 당시 화의를 반대했던 김상헌의 집이 있던 곳으로 그 후 안동 김씨 가의 세거지가 되었다

 

 

 

 

북악산

청와대 본관이 오른쪽으로 살짝 보인다

 

 

 

 

통의동 백송

높이 16m · 흉고둘레 5m로 우리나라 백송중에 가장 크고 아름다워 1962년 12월 4일 천연기념물 제4호로 지정되었으나

1990년 7월 17일 태풍으로 넘어져 고사됨으로써 문화재 지정이 해제되었다

 

 

 

 

백송이 있는 곳은 추사 김정희 선생의 집터이자 영조의 잠저로 영조가 연잉군 시절에 살던 창의궁(彰義宮) 자리다

그런데 두 표지석이 없어졌다고 누군가 올려놓은 사진이다

 

 

 

 

세종대왕 나신 곳 빗돌

태조 6년(1397) 세종대왕이 태종의 셋째 아드님으로 태여나신 곳이다

 

 

 

 

세종마을 음식문화거리

 

 

 

 

세종마을 명소 안내판

마침점인 경복궁역 안에 있다

 

 

 

 

GPS로 확인하니

걸은 거리 12.1km, 소요시간 4시간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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