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나사 (舍那寺) / 전통사찰 제48호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인 봉선사(奉先寺)의 말사다
「봉은사말지(奉恩本末志)」에 923년 대경(大鏡)이
제자 융천(融闡) 등과 함께 창건하여 삼층석탑을 조성하였다고 하나 확실하지 않다
그 뒤 1367년(공민왕 16)에 보우(普愚)가 중창하였으며
정유재란 때 모두 타버린 것을 1698년(숙종 24)에 덕조(德照)가 소규모의 법당을 재건하였다
1907년에는 의병과 관군의 충돌로 인하여 모두 불탔으나
1909년에 계헌(戒憲)이 대방 15칸을 신축하였고
1937년에 주지 맹현우(孟玄愚)가 법당인 광명전(光明殿) 15칸과 조사전(祖師殿) 5칸을 신축하였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을 비롯하여 산신각 · 함씨각(咸氏閣) · 대방(大房) 등이 있다
문화유산으로는 정도전(鄭道傳)이 글을 짓고 의문(誼聞)이 글씨를 써서
1386년(우왕 12)에 세운 1978년 경기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원증국사탑과
1978년 경기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원증국사석종비
고려 중기에 세운 양평 용천리 삼층석탑이 1983년 경기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다
용천리마을 · 용문산 등산 안내도
사나사 주차장 앞에 있다
용천리마을 안내도
옥천타운펜션
사나사교 건너에 있다
애니타임펜션 · 훼밀리파크
사나사계곡 옆에 있다
사나사계곡
수은가든을 지난 다리에서 봤다
사나사계곡
사나사까지의 길이 포장되어 있다
사나사약수터
사나사계곡
용문산 남서쪽 자락에 있는 계곡으로 물이 깨끗하며 수량이 풍부하다
용문산(가섭봉) 6.9km 방향안내판
용문산 등산지도
방향안내판 옆에 있다
용문산 사나사 일주문(龍門山 舍那寺 一株門)
용문산 사나사(龍門山 舍那寺) 현판
소나무 삼형제
스님들의 수행공간으로 출입금지다
극락전 · 대적광전
사나사의 주불은 비로자나불이다
대적광전은 비로자나불을 주불로 모신다
사나사(遮那寺)라는 절 이름도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에서 왔다
범종각(梵鍾閣)
마당을 사이에 두고 대웅전과 마주 보고 있다
범종각(梵鍾閣) 현판
불상
사나사 원증국사 석종비 · 사나사 원증국사탑 · 양평 용천리 삼층석탑
양평 용천리 삼층석탑(龍川里 三層石塔) / 경기도 문화재자료
석탑은 부처의 사리를 모신 축조물로
실제 사리가 없는 경우에도 상징적으로 부처를 모신 곳으로 여겨진다
양평 용천리 삼층석탑은 고려시대 만들어졌다
기단 위에 올린 덮개돌(갑석) 아랫부분에 턱(갑석부연)을 내지 않았는데
고려시대 강원지역과 경기 일부지역에서 만들어진 석탑의 경우
덮개돌에 턱이 없는 경우가 많다
1층 몸돌의 높이는 2층과 3층에 비해 높게 솟아 있다
석탑 기단 아래의 받침은 윗면이 경사지고 형태가 덮개돌(갑석)과 비슷하여
기단 받침과 바닥돌 사이에 별도의 기단돌이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양평 용천리 삼층 석탑이 세워진 위치가 원래의 위치했는지는 알 수 없다
사나사 원증국사탑 / 경기도 유형문화재
고려 후기 승려인 태고 보우(1301~1382)의 사리를 모신 승탑이다
원증은 보우 스님이 열반하신 뒤 그의 업적과 덕을 칭송하여 붙인 이름(시호)이다
원증국사탑은 종 형태의 몸돌에 연꽃 봉오리 모양의 머리 장식이 얹혀 있다
종 모양(석종형) 부도는 고려말부터 조선시대에 유행하였다
탑에는 누구의 것인지 적혀 있지 않지만
바로 옆에 있는 비석을 통해 탑의 주인이 원증국사임을 알 수 있다
원증국사가 열반하신 뒤
다음 해인 고려 우왕 9년(1383)에 그의 제자 달심(達心)이 이 탑을 세웠다
원증국사는 고려 충목왕 2년(1346)에 중국 원나라에 가서
선불교의 하나인 임제종(臨濟宗)을 배워 이를 본격적으로 고려에 도입하였다
고려 공민왕 · 우왕 때 덕이 높아 왕과 국가의 스승이 될 만한
승려에게 주는 최고의 칭호인 왕사 · 국사가 되었다
원증국사탑 왼쪽에 원증국사의 업적을 적은 「사나사 원증국사 석종비」가 있다
사나사 원증국사 석종비 / 경기도 유형문화재
고려 후기 승려 태고 보우(1301~1382)의 업적과 일생을 기록한 비이다
원증은 보우 스님이 열반하신 뒤 그의 업적과 덕을 칭송하여 붙인 이름(시호)이다
비 옆에 있는 종 모양의 원증국사탑 석종 조성 이후 세워졌다
정도전이 글을 짓고 선사 의문이 글씨를 써서, 고려 우왕 12년(1386)에 비를 세웠다
사나사 원증국사 석종비 / 경기도 유형문화재
사나사 원증국사 석종비에 원증국사와 양근지역(지금 양평)과의 관계에 대해 자세하게 실려 있다
고려 공민왕 때 국사로 임명되자 원증국사 출생지인 익화현을 양근으로 고치고 군으로 높였다
비 뒷면에는 비를 세울 때 도움을 준 후원자 이름이 적혀 있다
원증국사 석종비는 바위에 홈을 파서 몸체(비신)을 놓고
양 옆에 돌기둥을 세워 비를 고정한 후 덮개돌을 얹은 형태이다
이러한 형태는 비슷한 시기 근처 지역에 세워진
여주 신륵사 보제존자 석종비(보물)와 유사하면서도 보다 간략하다
사나사 원증국사 석종비 / 경기도 유형문화재
비 몸체에 뚫려 있는 구멍은 한국 전쟁 때 총에 맞은 상처이다
원증국사는 고려 충목왕 2년(1346)에 중국 원나라에 가서
선불교의 하나인 임제종을 배워 이를 본격적으로 고려에 도입하였다
고려 후기 불교계의 통합을 도모하고 사회 전반을 개혁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석불
전사 대공덕주 영월신씨 송덕비(田寺 大功德主 寧越申氏 頌德碑)
함씨각(咸氏閣)
함씨각(咸氏閣) 현판
함씨각 탱화
삼성각(三聖閣)
삼성각 · 산신각과 같은 의미의 전각으로
독성(獨聖) · 산신(山神) · 칠성(七聖)을 함께 모시는 전각이다
삼성각(三聖閣) 현판
칠성(七聖) 탱화
치성광여래(북극성)와 일광 · 월광보살 · 칠월성군(북두칠성)을 그린 탱화다
산신(山神) 탱화
독성(獨聖) 탱화
조사전(祖師殿)
삼성각이 옆에 있다
조사전(祖師殿)
조사전(祖師殿) 현판
용문산 사나사 조사(龍門山 舍那寺 祖師)
대적광전(大寂光殿)
극락전이 옆에 있다
대적광전(大寂光殿) 현판
비로자나불
사나사(遮那寺)라는 절 이름도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에서 왔다
탱화
탱화
사나사 원증국사 석종비 · 원증국사 탑 · 양평 용천리 삼층석탑
대적광전 앞에서 봤다
원증국사 탑 · 양평 용천리 삼층석탑 · 법종각
극락전(極樂殿)
극락전(極樂殿) 현판
극락전(極樂殿)
아미타불 (阿彌陀佛)을 중심으로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협시보살(脇侍菩薩)로서 봉안되어 있다
주불인 아미타불은 자기의 이상을 실현한 극락정토에서 늘 중생을 위하여 설법하고 있는데
이를 상징하는 극락전을 아미타전 또는 무량수전(無量壽殿)이라고도 한다
관세음보살은 지혜로 중생의 음성을 관하여 그들을 번뇌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며
대세지보살은 지혜의 광명으로 모든 중생을 비추어 끝없는 힘을 얻게 하는 보살이다
극락전(極樂殿)
대적광전(大寂光殿)
1907년 10월 양평의병이 일본군과 격전을 벌인 곳이다
일제가 광무황제를 강제 퇴위시키고 한국군대를 해산시키면서
의병의 대일항전은 더욱 격화되었다
이즈음 양평의병은 사나사를 비롯하여 용문사 · 상원사를 근거지로 삼아 활동하였다
양평의병이 활발하게 항일전을 전개하자
일제는 양평의병을 탄압하기 위해 일본군을 파견하였다
양평의병은 1907년 10월 27일
일본군 보병 제13사단 예하 제51연대 제11중대와 사나사에서 격전을 벌였다
양평의병의 근거지였던 사나사는 이때 일본군에 의해 소실되었으나
그 후 여러 차례에 걸쳐 복원되었다
*
대적광전 앞에 있는 안내판 내용이다
범종각(梵鐘閣)
극락전 · 대적광전
나오며 돌아봤다
템플스테이 건물
사나사 안내판
해우소
주차장으로 가는 길이다
*
2024. 10.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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