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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야기

오산 보적사

독산성 동문 안에 있는 사찰로 지어진 때를 알 수 있는 옛 문헌이나 유물은 없다

임진왜란 이후 여러 차례 고쳐 지어졌고, 용주사를 세울 당시 약사여래를 모신 약사전과 요사(寮舍) 3동이 다시 지어졌다고 한다

1831년 편찬된「화성지」에 따르면 보적사는 21칸 반 규모였다고 한다

이후 1902년 약사전을 허물고 새로 지었으며, 1987년에 고쳐 지으면서 대웅전으로 명칭을 바꾸었다

현재는 석가여래와 약사여래 · 지장보살을 모신 대웅전과 요사 2동과 3층 석탑이 있다

*

보적사(寶積寺)는 1978년 세마사(洗馬寺)로 이름을 변경하였다가 1996년 다시 보적사로 비꾸었다

보적사라는 이름에는 전해져 오는 전설이 있다

옛날 삶이 어려운 노부부가 쌀이 2되밖에 남지 않아 굶어 죽을 지경에 이르자 구차하게 사느니

부처님께 공양하기로 마음을 먹고 공양한 후 집에 돌아오니 곳간에 쌀이 가득 차 있었다고 한다

이후 열심히 공양하면 보화가 쌓이는 신통력 있는 사찰이라 하여 보적사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대한불교 조계종 독산성 세마사 석주(大韓佛敎 曹溪宗 禿山城 洗馬寺 石柱)

 

 

 

 

동문(東門)

평거식 성문으로 천장석과 바닥에 성문을 고정시켰던 문확석이 각각 두 개씩 남아 있다

「화성지」의 기록에 따르면 문루와 이름이 없다. 동문은 사람만 다니던 문으로 성문 안쪽에 보적사가 있다

동문은 1982년에 정비하였다

 

 

 

 

보적사(寶積寺)

3층석탑 · 천진동자불손 · 미륵존불상(천진포대화상) 등이 대웅전 앞쪽에 있다

웃음을 짓고 있는 천진포대화상의 귀여운 배 · 천진동자불복손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손을 만지면서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고 한다

*

지금의 대웅전은 1920년 주지였던 주대식스님이 지었다고 전해진다

 

 

 

 

대웅전

약사여래불 · 석가모니불 · 아미타불 등이 있다

 

 

 

 

보적사 삼층석탑

대웅전 앞에서 봤다

 

 

 

 

보적사 삼층석탑

높은 건물들이 즐비한 동탄 일대의 전망을 모두 볼 수 있다

 

 

 

 

보적사 요사채

 母年一百歲(모년일백세) / 어머니 나이 백세라도

常憂八十兒(상우팔십아) / 팔십되는 아들 항상 걱정하시네

欲知恩愛斷(욕지은애단) / 그 은혜와 사랑 끝날 때를 알고 싶은가

命盡始分離(명진시분리) / 목숨이 다해야 비로서 끝난다네

*

요사채 주련에 있는 글이다

 

 

 

 

삼성각(三聖閣)

 

 

 

 

약사여래불

 

 

 

 

석가세존진신사리탑봉안공덕비 · 세마사 사적비(洗馬寺事蹟碑)

보적사의 창건연대에 대해서는 다수의 의견이 있다

이곳 사적기에는 「백제 제17대 아신왕 10년(401년)에 전승기원과 국리민복을 위해 세웠다」라고 전하는데

독산성 복원을 위한 발굴조사와 보적사 증축부지 시발굴조사 결과에 따르면 그 당시 백제의 축조활동과 건축물 존재 여부를 확인하기 어렵다

또한, 1988년에 발행된 「오산시사」에는 고려 초기에 건립한 것으로 추정하지만 뒷받침할 근거자료가 불충분하다

 

 

 

 

양산봉(179.3m)

보적사 지붕 너머로 보인다

 

 

 

 

보적사(寶積寺)

대한불교 조계종 제2교구본사 용주사의 말사이며 구룡사 · 마등사 · 선불사 · 대안정사 · 황덕사 등

오산 내 다수의 사찰 중 유일하게 경기도 전통사찰(제34호 · 1988년 7월 27일 지정)로 지정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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