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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야기

이성규 삼부자 효자문

이성규 삼부자 효자문(李聖規三父子孝子門)은

조선 후기 효자 이성규(李聖規)와 그의 아들 이희천(李喜天) · 이희창(李喜昌)의 효자 정려이다

이성규는 어려서부터 늘 부모 곁에서 식사를 했는데 항상 먼저 맛보고 음식을 드렸으며

때때로 이웃 마을에 가서 과일과 고기를 따뜻한 가슴에 품고 돌아와 부모님께 드렸다고 한다

아버지가 중풍으로 위독하자 손가락을 잘라 피를 먹여 더 살게 했다

집이 매우 가난해서 손수 농사를 지어 부모를 봉양했고 옷은 모두 손수 지어서 입었으며, 어버이 공경에만 즐거움을 느끼면서 살았다고 한다

이성규가 사망하자 지방 유림이 이성규의 효행을 관찰사에 보고하여 조정에서 동몽교관이라는 벼슬을 내렸다

이성규의 아들인 이희천과 이희창 또한 아버지가 위독하자 두 번이나 손가락을 잘라 피를 내어 약으로 썼으며, 대변을 맛보아 병의 차도를 살폈다고 한다

1875년(고종 12)에 조정에서 이들 형제에게도 동몽교관의 벼슬을 내리고 삼부자의 정문을 당진시 순성면 옥호리에 세우도록 했다

 

 

이성규 삼부자 효자정려각(李聖規三父子孝子旌閭閣)

조선 후기 효자 이성규와 그의 아들 이희천 · 이희창의 효자 정려각이다

정려각 안에는 중앙 상단에 행상이 걸려 있고 뒤쪽 및 좌우 벽 중방 위에는 각각 현판이 걸려 있다

 

 

 

 

효자증동몽교관조봉대부이성규지문(孝子贈童蒙敎官朝奉大夫李聖規之門)

효자증동몽교관조봉대부이공행장(孝子贈童蒙敎官朝奉大夫李公行狀)이 앞쪽에 걸려 있다

이성규(李聖規)는 전주 사람으로 효령대군 이보(李補)의 후손이며 삼백당(三栢堂) 이승당(李承當)의 7대손이다

 

 

 

 

효자증동몽교관조봉대부이희천지문(孝子贈童蒙敎官朝奉大夫李喜天之門)

이희천은 이성규의 아들이며 가정의 효도를 이어받았다

부모의 병이 위중해지자 직접 대변을 맛보며 손가락을 끊어 피를 먹였다

상을 당해서는 너무 슬퍼 몸이 망가질 정도였으며, 묘지 옆에 움막을 지어 3년을 거처했다

*

정려각 왼편이다

 

 

 

 

효자증동몽교관조봉대부이희창지문(孝子贈童蒙敎官朝奉大夫李喜昌之門)

이희창은 이희천의 아우로 형제가 모두 효성이 지극하고 우애가 깊어 사람들이 모두 감탄했다

부모가 병이 들어 위독해지자 손가락을 찢어 입에 피를 흘려 넣어 생명을 연장했다

*

정려각 오른편이다

 

 

 

 

이성규 삼부자 효자정려각(李聖規三父子孝子旌閭閣)

정려각은 정면과 측면 각 1간으로 초익공식 가구에 맞배지붕으로 겹처마 건물로 박공 밑에는 방풍판을 달았다

사면에 홍살을 돌리고 하방 아래는 시멘트로 고막이를 하였다

기둥 위에는 창방을 놓았는데 1간마다 소로 7개를 놓고 소로 위에 3개의 망새가 올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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