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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야기

길상사

1960년대 말부터 80년대 초까지 삼청각 · 청운각과 더불어 3대 요리집 중 하나였던 대원각을

주인 김영한(법명 길상화)씨가 1987년 무소유의 법정 스님께 시주하면서 요정 대원각은 길상사로 바뀌었다

길상사는 그녀의 법명인 길상화를 본따서 지었다

 

 

삼각산 길상사(三角山 吉祥寺)

 

 

 

 

극락전과 설법당으로 가는 갈림길이다

 

 

 

 

극락전(極樂殿)

시주 길상화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는 의미로 대웅전이라 하지 않고 극락전이라 하였다

 

 

 

 

극락전(極樂殿) 편액

 

 

 

 

느티나무 보호수

나무 높이 12m · 둘레 3.2m · 나이 265년 · 지정일자 1981. 10. 27

 

 

 

 

시주 길상화(吉祥華 · 본명 金英韓 1916~1999) 공덕비 · 사당(祠堂)

1916년 민족사의 암흑기에 태여나 16세의 나이로 뜻한 바 있어 금하(琴下) 하일규 문하에서 진향(眞香)이란 이름을 받아 기생으로 입문하였다

1937년 천재 시인 백석으로부터 자야(子夜)라는 아명(雅名)으로 불리었던 그녀는

1953년 중앙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고 생전에 「선가 하일규 선생 약전」 등의 저술을 남겼다

1955년 바위 사이 골짜기 맑은 물이 흐르는 성북동 배밭골을 사들여 대원각이란 한식당을 운영하던 그녀는

1987년 법정 스님의 「무소유」를 읽고 감명받아 생애 가장 아름다운 회향을 생각하고

7천여 평의 대원각 터와 40여 동의 건물을 절로 만들어주기를 청하였다

 

 

 

 

시주 길상화 공덕비 · 사당(祠堂)

1997년 12월 14일 대원각이 「맑고 향기롭게 근본도량 길상사」로 창건되는 아름다운 법석에서

김영한은 법정 스님으로부터 염주 한 벌과 길상화(吉祥華)라는 불명(佛名)을 받았다

길상화 보살이 된 그녀는 "나 죽으면 화장해서 눈이 많이 내리는 날 길상헌 뒤뜰에 뿌려주시오"라는 유언을 남기고 1999년 11월 14일 육신의 옷을 벗었다

다비 후 그녀의 유골은 49재를 지내고 첫눈이 온 도량을 순백으로 장엄하던 날 길상헌 뒤쪽 언덕바지에 뿌려졌으며

무주상보시의 귀한 뜻을 오래도록 기리고자 2001년 11월 21일 이 자리에 공덕비를 세웠다

*

자야(子夜)는 월북시인 백석을 지독히 사랑했다 한다. 백석도 그녀를 위해 많은 연애시를 썼다고 한다

대원각을 법정스님께 시주하고 수중 현금 2억 원은 백석문학상 기금으로 내놓았다

그리고 〈내 사랑 백석〉과 〈내 가슴속에 지워지지 않는 이름〉을 출간했다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 / 백석 · 1938

백석이 영생고보 선생들과의 회식 자리에서 만난 ‘자야(子夜 · 김영한)’에게 준 시다

*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오늘밤은 푹푹 눈이나린다

 

나타샤를 사랑은 하고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燒酒)를 마신다

소주(燒酒)를 마시며 생각한다

나타샤와 나는

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

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

 

눈은 푹푹 날리고

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

나타샤가 아니 올 리 없다

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

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

 

눈은 푹푹 나리고

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

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계곡 옆에 지어진 스님 거처다

 

 

 

 

계곡 옆에 지어진 스님 거처다

 

 

 

 

진영각(眞影閣)

법정 스님의 사진과 유품들이 있는 내부는 촬영 금지다

 

 

 

 

진영각(眞影閣) 편액

 

 

 

 

법정 스님 유골 모신 곳

법정 스님(比丘 法頂 1932~2010) 전라남도 해남 출생으로 한국전쟁의 비극을 경험하고

인간의 선의지(善意志)와 진리의 길을 찾아 1956년 효봉 학눌(曉峰學訥)의 문하로 출가하여 수행자의 기초를 다진 후

해인사 전문강원에서 대교과를 졸업하고 쌍계사, 해인사, 송광사 등 선원에서 수선안거(修禪安居)했다

1960년부터 1970년대 초까지 불교사전 편찬 · 불교경전 역경에 헌신하였으며 1975년 송광사 뒷산에 불일암(佛日庵)을 짓고 수행했다

하지만 세상에 명성이 알려지자 1992년 아무도 거처를 모르는 강원도 산골 오두막에서 홀로 청빈과 무소유(無所有)의 삶을 실천하였다

1994년 시민모임 「맑고 향기롭게」를 창립하여 이끌어주었고

무소유 사상에 감동한 김영한 여사가 성북동의 대원각(大苑閣)을 무주상보시하여 1997년 길상사를 창건하였다

2010년 3월 11일 법랍 55세 · 세수 78세로 길상사 행지실에서 입적하였다

저서 및 역서로는 무소유 · 버리거 떠나기 · 물소리 바람소리 · 화엄경 · 숫타니파타 등이 있다

 

 

 

 

적묵당(寂默堂)

 

 

 

 

적묵당(寂默堂) 편액

 

 

 

 

시주 길상화 공덕비 · 사당(祠堂)

석등 옆 다리 건너에 있다

 

 

 

 

설법전(說法殿)

템플스테이 하는 곳인데 하루 8시간 이상 참선을 한다

 

 

 

 

범종각(梵鐘閣)

전에는 여인들이 옷을 갈아 입는 곳이었다

 

 

 

 

관세음보살상

천주교 신자인 조각가 최종태가 만들어 봉안한 석상으로 종교간 화해의 염원이 담긴 관세음보살상이다

"길상사의 뜻과 만든이의 예술혼이 시절 인연을 만나 이 도량에서 이루어 진 것이다"

 

 

 

 

길상7층보탑(吉祥七層寶塔)

조선 중기(1600~1650)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지혜와 용맹을 상징하는 네 마리의 암수 사자가 기둥 역할을 하며

입을 연 두 마리는 교(敎)를 상징하고, 입을 다문 두 마리는 선(禪)을 상징한다

4마리 가운데 모셔진 석가모니 부처님의 수인(手印)은 정면에서 시계방향으로

선정인(禪定印) ·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 · 통인(通印) · 전법륜인(轉法輪印)을 하고 있다

이 탑은 영안모자 백성학 회장님이 법정 스님과 길상화 보살님의 고귀한 뜻을 기리고 종교화합의 의미를 전하고자 무상으로 기증하였으며

2012년 11월 11일 기단부에 오장경 · 금강저 · 오불(五佛) · 108침향염주 · 다라니 등을 봉안하였다

이후 시절 인연으로 미안마의 제1보궁 우뚜리와 완사 큰스님이 1,600년 전 고탑(古塔) 해체 과정에서 직접 출토하신

부처님의 오색정골사리 · 구강사리 · 응혈사리와 제자인 목건련존자 · 마하가섭존자 · 라훌라존자 등의 사리를 2013년 8월 25일 탑신부에 봉안하였다

 

 

 

 

극락전 느티나무 보호수 / 나이 90년 · 지정일자 2015년

 

 

 

 

느티나무 보호수

나무 높이 12m · 둘레 2.5m · 나이 165년 · 지정일자 1981. 10. 27

 

 

 

 

길상사(吉祥寺) 안내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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