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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야기

황치신 묘 · 황사경 묘

황치신 묘 · 신도비(黃致身 · 神道碑 / 고양시 향토문화재 제43호)

황치신(1397~1484)은 황희 정승의 장자로 본관은 장수이며 태종 때 공안부 부승으로 관직을 시작하여 42세인 세종 20년(1438)에 경기도 관찰사가 되었고

백성들이 세금으로 어려움을 겪자 이를 해소하고자 그 지방에서 나는 생산품으로 세금을 낼 수 있도록 하였다

이후 여러 관직을 거쳐 51세인 세종 27년(1447)에 오늘날의 서울시장인 판한성부사가 되었다

58세인 단종 2년(1454)에 성절사로 명나라에 가서 송나라의 역사책인 「송사」를 구해온 공을 수양대군으로부터 인정받아 세조 대까지 중용되었다

83세인 성종 10년(1479) 판중추부사까지 올랐으며, 돌아가신 후 우의정으로 추증되었다

 

 

여견재(如見齋)

장수황씨 호안공(胡安公) 재실이다

 

 

 

 

여견재(如見齋)

 

 

 

 

여견재(如見齋) 편액

 

 

 

 

호안황공묘(胡安黃公之墓) / 고양시 향토문화재 제43호 안내문

공의 휘는 치신(致身) · 시호(諡號)는 호안(胡安) · 본관은 장수(長水)이다

조선조 명상 방촌 황희의 장자로 1397년에 태어나 1484년 졸하시기까지 88세의 수를 누리시면서 건국 초기 문무제도 정립에 헌신하셨다

젊을 때에 태종대왕께서 공의 자질을 높이 보시고 한나라 대학자 동중서(董仲舒)의 제자답다 하여 이름을 동(董)으로 지어주시고 중용하신 이래

성종대왕까지 일곱 임금을 모시면서 숭록대부 판중추부사를 지냈으며 돌아가신 후 우의정에 추증되었다

 

 

 

 

신도비각 · 황치신 묘(黃致身墓)

 

 

 

 

신도비각 · 황윤길 묘(黃允吉墓)

 

 

 

 

황치신 신도비(黃致身神道碑) / 고양시 향토문화재 제43호

대좌와 비신은 일반적으로 흔한 구조이나 용두로 보이는 이수는 그 조각수법과 화려함이 매우 큰 문화재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

발가락이 삼족(三足)인 이수는 2마리가 서로 마주보며 용주(龍珠)를 삼킬 듯한데 그 생동감이 매우 뛰어나고 역동적이다

신도비에는 황치신의 생애와 장수황씨 가문의 내력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비문은 당대의 석학 김종직(金宗直)이 짓고, 안침(安琛)의 글씨로 성종 19년(1488)에 세워졌다

규모는 높이 150cm · 너비 86cm · 두께 21cm이며, 오랜 세월에 비문이 훼손되어 1996년 새 신도비를 세웠다

예전 신도비는 위치나 방향을 바꾸지 않았고, 새로 세운 비는 오늘날의 관행에 따라 남향으로 세웠다

 

 

 

 

황윤길 묘(黃允吉墓)

조선 초 명상 황희의 4대손으로 1536년 황징의 아들로 태어났다

조선 선조 때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만난 후 일본의 침략을 예견하고 보고한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자는 길재 · 호는 우송당이며 명종 16년 식년문과에 급제한 뒤 정언 · 지평 · 황주목사 등을 역임했다

선조 23년 통신사의 정사로 선임돼 일본으로 건너가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만났는데

이때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태도가 불량하고 거만한 것을 보고 귀국해 선조에게 장차 일본이 침략할 것이라고 보고했다

하지만 함께 갔던 부사 김성일이 상반된 주장을 펼치며 민심을 동요시킨다고 모함해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후 임진왜란이 일어났다

*

군부대 안에 있어 들어갈 수 없다

 

 

 

 

황치신 묘(黃致身墓) / 고양시 향토문화재 제43호

조선조 전기의 문신 황치신과 정경부인 황씨의 무덤이다

묘가 있는 지축동 중고개 마을 일대에는 장수황씨 호안공파의 선산이 있어 주변에 여러 묘소가 위치해 있다

묘소는 옥녀봉 아래 동남향에 자리해 있으며 봉분은 단봉으로 이루어져 있다

묘소에는 사각의 장명등과 비두가 뚜렸한 묘비 그리고 조선조 전기의 투박한 특징을 간직하고 있는 문인석이 배치되어 있다

봉분 정면에는 상석 · 향로석이 있다

 

 

 

 

황치신 묘(黃致身墓) · 묘비

묘비가 신도비처럼 묘 정면이 아니라 옆으로 서있다

그 이유는 비의 앞에 위치한 북한산이 뒤에 산보다 더 높기 때문에 예부터 내려온 전통을 지키기 위함이다

 

 

 

 

황치신 묘비

묘를 바라보는 방향에서 오른쪽에는 네모난 기단 위에 묘비가 있는데

다른 묘비와는 달리 지붕돌에 봉오리가 있는 꽃 모양이 새겨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문인석

조선조 전기의 투박한 특징을 간직한 문인석 2기가 놓여 있다

 

 

 

 

문인석

묘를 바라보는 방향에서 왼쪽 문인석이다

 

 

 

 

장명등

묘역에 불을 밝혀 사악한 기운을 쫓는다

장명등은 1품 이상의 묘역에만 둘수 있어 무덤 주인의 지위를 보여준다

 

 

 

 

신도비각

북한산이 멀리 보이는 풍광이 멋진 곳이다

 

 

 

 

고양 백자음각 통정대부 행창평현령 황사경 묘지(高陽 白磁陰刻 通政大夫 行昌平縣令 黃事敬 墓誌) 안내판

고양 백자음각 황사경 묘지석은 황희 정승의 손자인  황사경 선생 묘소에서 발견된 조선 초기의 유물이다

본 지석은 황사경의 일생을 16세기 전반, 성균관사예(成均館司藝)로 있던 채세영(蔡世英 1490~1568)이 쓴 글을 총 4점의 백자에 음각 기록한 것이다

묘지석은 15세기 후반, 창평현령을 지낸 황사경이 돌아간 뒤 그의 일생을 상세히 적어 무덤 안에 매장한 것이다

무덤 주인의 본관 · 이름 · 조상의 계보와 관직 · 출생일과 사망일 · 관직생활 및 평생의 행적 · 가족관계 · 묘소의 위치와 좌향 등을 상세히 기록되었다

이러한 점에서 황사경 선생의 묘지석은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알 수 있는 동시에

조선시대의 도자사 · 서예사 · 미술사 등을 연구하는 중요한 사료 · 문화유산적 가치가 매우 높게 평가되어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70호로 보호받고 있다

 

 

 

 

황사경 묘(黃事敬墓 1452~1531)

황희 정승의 손자 · 황치신의 아들인  황사경 선생과 숙부인 광주안씨의 묘소다

 

 

 

 

보사원종공신황공묘사적비(保社原從功臣黃公墓事蹟碑)

 

 

 

 

황사경 묘(黃事敬墓 1452~1531)

상석 · 향로석 · 문인석 · 비석이 있다

 

 

 

 

황사경 선생 · 숙부인 광주안씨의 비석

 

 

 

 

문인석

묘를 보는 방향에서 오른쪽 문인석이다

 

 

 

 

문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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