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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야기

여강길 6코스(왕터쌀길)

이포나루터에서 여주시청까지 걷기다

여강길로는 7코스 중반부터 여강길 6코스(왕터쌀길)와 4코스는 중반만 걷는다

 

 

러브하우스모텔

시점이다

 

 

 

 

이포나루 두레촌

금사면 이포리를 지나는 이포로를 따라간다

 

 

 

 

경기슈퍼

 

 

 

 

이포로

새벽아침 · 만나식당 · 돼지슈퍼 등이 있다

 

 

 

 

삼신당(三神堂)공원 빗돌

이곳에서 삼신당공원으로 올랐다

 

 

 

 

삼신당(三神堂) · 천양루(天陽樓)

이포 삼신당은 금사면행정복지센터 맞은편 강애산(150m)에 있다

이 산의 동쪽 벼랑 밑으로는 남한강이 굽이쳐 흐르고 서북쪽으로는 민가가 밀집해 있다

일제시대 때는 이곳에 신사를 짓는 바람에 아직도 일본식 건축 흔적이 남아 있다

 

 

 

 

삼신당(三神堂)

삼신당의 세 신은 마을을 지켜주는 서낭신, 뱃길을 지켜주는 용왕신, 그리고 산신이다

 

 

 

 

침벽루(枕碧樓)

삼신당 뒤편에 있다

 

 

 

 

여강길 · 금사둘레길 리본

 

 

 

 

수문 · 수위측정소

금사근린공원 옆 남한강 둑길이다

 

 

 

 

77호 문희네 참외직판장

 

 

 

 

장명교

계장천을 지나 능북로로 간다

 

 

 

 

남한강대교(광주원주고속도로)

 

 

 

 

계신리마을회관 · 노인회관

 

 

 

 

은행나무 보호수

높이 20m · 둘레 3.5m · 나이 500년 · 지정일자 1982. 10. 15

 

 

 

 

석불암으로 들어가는 길이다

 

 

 

 

석불암 요사체 · 대웅전 · 마애여래입상

언덕 위 대웅전 · 언덕 아래 지붕만 조금 보이는 곳에 마애여래입상이 있다

 

 

 

 

여주 계신리 마애여래입상(麗州桂信里磨崖如來立像 ·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98호)

부처울이라는 마을의 한강변 암벽에 돋을새김으로 있는 불상이다
이 불상이 있어 이 마을은 오래 전부터 불암동(佛岩洞)이라고 불려 왔다
옛날부터 한강 상류인 강원도에서 내려 오는 뗏목꾼들이 이 불상 앞에 와서 안전을 빌고 갔다고 전해지며
이곳 주민들도 가끔 불상 아래 바위에서 강을 향하여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
이 불상은 원만한 표정에 희미한 미소를 띠고 있으며 귀는 어깨에 닿을 듯이 길다
양 어깨에 두른 옷은 양팔을 거쳐 발목까지 이어져 있다. 옷에는 완만한 유(U)자형 주름이 있고, 가슴에는 속옷의 띠 매듭이 있다
오른손은 어깨까지 올려 손바닥을 밖으로 향하게 했고, 왼손은 옆으로 펼쳐 손 모양이 특이하다
발 아래에는 연꽃무늬 대좌가 있고, 머리 뒤편에는 생동감 넘치는 불꽃무늬가 새겨진 광배가 있다
부분적으로 형식적인 면이 보이지만 당당한 불상의 모습, 유려한 옷 주름, 세련된 연꽃무늬 대좌 등에 통일신라 양식이 잘 반영되어 있다
이 불상은 통일신라의 불상 양식을 계승한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포초골 미륵좌불(경기도 유형문화재 제35호)과
도곡리 석불좌상(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60호)과 함께 여주 지역의 불교 조각 양식을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작품이다

 

 

 

남한강

멀리 일자로 뻗은 강이 4대강사업 때 만든 강이고, 앞쪽이 원래 한강이다

마애여래입상에서 본 왼쪽이다

 

 

 

 

능북로 토끼굴이다

 

 

 

 

계신리빗돌 · 석불암 안내판

 

 

 

 

능북로

 

 

 

 

복대사거리

 

 

 

 

상백교

복하천을 건너는 다리다

 

 

 

 

석불암

여주 계산리 마야여래입상이 있는 곳이다

산 오른쪽 강변에 있다

 

 

 

 

조류관찰대

복하천 · 한강 합수 지점이다

 

 

 

 

복하천 · 한강 습지대

오리떼들이 습지 건너로 가고 있다

 

 

 

 

상백교 · 상백리선착장 방향안내판

 

 

 

 

상백리선착장으로 가는 갈대밭길이다

 

 

 

 

파고라쉼터

낚시 오신 분에게 커피를 얻어 마셨다

 

 

 

 

남한강대교(광주원주고속도로)

 

 

 

 

백운봉 · 용문산 · 중원산 · 원적산 · 개군산 · 파사산

백운봉(왼쪽 뾰쪽한 봉) · 그 옆으로 용문산 · 중원산 · 개군산(앞쪽 왼쪽 낮은 산) · 원적산(오른쪽 높은 산)

파사산(다시 앞쪽에 제일 낮게 보이는 산이다)

 

 

 

 

상백리선착장

 

 

 

 

한국농어촌공사 백신1양수장

 

 

 

 

상백2리마을회관

 

 

 

 

이야기바위 / 칼바위 · 고래바위 · 붕어바위

옛날에 장구배기라는 곳에 험상궃은 얼굴과 덩치가 크고 말수가 적은 착한 장수가 있었다

장수는 큰 덩치와 험상궃은 얼굴 때문인지 마을 사람들과는 잘 어울리지 못했고 늘 혼자 지내야만 했다

마을에서 멀리 떨어져 지내는 장수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마을을 내려다보며 외로움을 달래야만 했다

해질녘 장수는 여느 때와 같이 마을을 내려다보며 사람들을 그리워하고 있던 중 높은 산에서 큰 바위들이 내려오기 시작했다

장수는 마을로 떨어져 내려오는 바위들을 몸으로 막기도 하고 하나둘씩 옮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너무나 많은 바위들이 내려오면서 장수는 크고 무거운 바위들에 힘을 잃고 그 자리에 묻히고 말았다

그 모습을 지켜본 동네 사람들은 한동안 아무런 말을 하지 못했다

그 후로 동네 사람들은 장수가 묻힌 바위를 보며 그리워 하기 시작했고 장수처럼 크다하여 고래바위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홍수로 물에 찼던 이야기바위 앞이다

 

 

 

 

양촌리 오토캠핑장

남한강 건너에 있다

 

 

 

 

야자매트가 깔린 강변길이다

 

 

 

 

상백2리마을회관 · 청보리밭 방향안내판

 

 

 

 

부들

 

 

 

 

청보리밭

 

 

 

 

가선대부동지중추부사 하동정공규장효자비각

(嘉義大夫同知中樞府事河東鄭公奎章孝子碑閣)

 

 

 

 

양화천교

청보리밭 · 양화나루터 방향안내판이 앞에 있다

 

 

 

 

양화천

양화천교 왼편이다

 

 

 

 

양화천

양화천교 오른편 흥서교 방향이다

 

 

 

 

용문산 · 원적산 · 개군산 · 파사산

양화천 다목적광장 갈대밭 너머로 보인다

 

 

 

 

강변칠우 사건 현장 안내판

이곳은 조선 광해 5년(1613)에 광해군을 지지하는 대북파가 영창대군과 반대 세력을 제거하기 위해 일으킨 계축옥사의 시발점이 된 곳이다

'칠우(七友)'란 고위 관료의 서자로 관직에 진출하지 못하는 처지를 한탄하던 박응서, 서양갑, 심우영, 이경준, 박치인, 박치의, 김평손 일곱 사람을 말한다

이들은 춘천 소양강가에 '무륜(無倫)'이라는 정자를 짓고 시와 술로 세월을 보내며 죽림칠현(竹林七賢)을 모방해 스스로 '칠우'라고 불렀다

이들은 광해군 집권 초기에는 여주 양화강(현 양화천)에 모여 살며 식량이 없으면 도적질도 했다

그러다가 박응서 등이 광해 5년에 새재(조령)에서 은(銀) 상인을 죽이고 수백 냥의 은을 강탈했다가 모두 붙잡혔다

이때 박응서 등은 목숨을 살려 주겠다는 대북파 이이첨(李爾瞻) 등의 꾐에 빠져

‘영창대군을 왕으로 모시기 위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선조의 장인 김제남이 시켜서 한 일’이라고 허위로 자백했다

결국 김제남(金悌男)은 역모죄로 사형을 당하고 영창대군(永昌大君)은 강화로 유배되어 죽임을 당하였다

전해오는 말에 따르면, 칠우가 모여 시가를 벗 삼으며 적자와 서자가 평등한 세상을 갈구하던 이곳 양화천 언덕에

후세 사람들이 당집을 짓고 해마다 장승제를 올렸다고 한다

무당이 원귀를 달래는 넋두리와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굿판은 인근 사람들의 큰 구경거리였다는 이야기도 전해 온다

 

 

 

 

여강길 리본

 

 

 

 

한강 하구로부터 120km 안내봉

 

 

 

 

윤광선영세불망비 · 김흥복영세불망비 · 양화나루터 빗돌

조선 고종 15년(1878) 소작인들이 대지주 윤광선의 공덕을 잊지 않기 위해 세운 비다

*

조선 숙종 22년(1696. 10) 여주목사로 부임한 김홍복(1649~1698)의 선정을 잊지 않기 위해 세운 비다

*

남한강가에 있는 교통의 요지로 여주읍까지 20리, 이천읍까지 30리 거리에 있어, 6 · 25 전만해도 50집 남짓의 마을을 이루고 있었으며

팔당둑이 이룩되기 전까지 강원도에서 띄어 내리던 뗏목으로 사람이 머무르기도 했던 뱃길의 요충지였다

 

 

 

 

여강길 스탬프함

 

 

 

 

남한강 송어횟집

 

 

 

 

카페 아베

이곳에서 스콘과 아이스커피를 했다

 

 

 

 

유명산 · 용문산 · 원적산 · 개군산 · 파사산

 

 

 

 

골재장

 

 

 

 

군벙커

 

 

 

 

야외무대

 

 

 

 

능서1양수장

 

 

 

 

백석교 아래 걷기길이다

 

 

 

 

여주보 전망타워 · 관리동 · 문화관

여주보 홍보를 위한 물 문화관과 전망대(높이 40m)가 있다

 

 

 

 

여주보

총 연간 발전량은 2,970만 kwh(1,650kw 발전기 3대)의 시설용량을 가지고 있는 소수력발전소가 있으며

발전소 외벽에는 세종대왕이 창제한 훈민정음이 새겨져 있다

보의 상부에 설치된 공도교는 일반보행과 자전거 통행만 가능하며, 야간조명을 설치하여 관광명소로도 역할을 하고 있다

*

여주보 전망타워에서 봤다

 

 

 

 

논에 벼로 그린 세종대왕

여주보 전망타워에서 봤다

 

 

 

 

여주보

 

 

 

 

팔당대교 · 충주댐 방향안내판

 

 

 

 

여주 입암(驪州 笠巖 · 여주시 향토유적)

옛 〈여주팔경〉 중 하나로 해동지도 · 광여도 등에 제6경 「입암층암(笠巖層巖)」으로 기록되어 있다

상세지도인 1872년 지방도에는 「입암(笠巖)」으로 표기되어 있으며, 일명 삿갓바위라 칭하는 입암이 층층이 쌓여있는 형태로 묘사되어 있다

 

 

 

 

여주 입암(驪州 笠巖 · 여주시 향토유적)

입암이 시작되는 면이 바른 바위면 중앙에 입암(笠巖)이라 각자(刻字)되어 있고

당시 여주목사였던 이인응(李寅應), 당시 세력가인 민영목(閔泳穆) 등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또한 이복영(李福永), 이사영(李社永) 등의 이름이 보이는데 이복영은 1865년(고종 2) 영릉 참봉에 제수된 인물이다

그리고 바위면 각자의 감독관인 간역(看役)으로 정해조(鄭海朝), 권복규(權復圭)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경오막추각(庚午莫秋刻)이라 새겨져 있어 경오년(1870) 늦은 가을에 글씨를 새긴 것임을 알 수 있다

 

 

 

 

양섬

 

 

 

 

세종대교

양섬으로 들어가는 왕대리교가 밑에 있다

 

 

 

 

소양천

한강과 양섬 앞에서 합류한다

하리보도교를 건너며 봤다

 

 

 

 

여주시청으로 가는 강변길이다

 

 

 

 

여주고려병원

 

 

 

 

여주역

여주시관광센터가 앞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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