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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야기

서산 해미면

해미(海美) 1박 2일 걷기여행, 2일째로 해미순교성지를 순례했다

해미순교성지는 2020년 11월 29일, 대림 제1주일에 교황청이 승인한 《국제 성지》다

 

 

성호모텔

시점이다

 

 

 

 

해륙수산청과 · 정성맛집

아침식사를 할 음식점을 찾으며 지난다

 

 

 

 

해미호떡

호떡 1인 3장 한정판매다

 

 

 

 

해미시장

모퉁이분식에서 김밥으로 했다

 

 

 

 

상점 4개가 불탔다

 

 

 

 

3 · 1운동 만세 터 빗돌

1919년 3월 19일, 3월 24일 해미면민들이 3 · 1운동 만세시위를 전개한 곳이다

 

 

 

 

해미성당

해미천 옆에 있다

 

 

 

 

가야산 · 연암산

해미천의 원류인 산수저수지가 있다

 

 

 

 

해미천

조산2교를 건너며 봤다

 

 

 

 

생명의 책

프란치스코 교황(2014. 8. 14~14)이 이곳 해미순교성지에서 이루어진

아시아 주교들과의 만남에서 말씀하신 평화와 사랑의 메시지를 남기기 위한 조형물이다

작품 속 호야나무는 과거 천주교 박해의 아품의 역사를 기억하는 것을 넘어 미래의 가능성을 염원하고자 하였다

재료 스텐레스 스틸 헤어라인 · L 4,000×B 3,000×H 450 · 제작년도 2014

 

 

 

 

프란치스코 교황 상

 

 

 

 

해미순교성지(여숫골) 안내도

 

 

 

 

마르첼리노의 기적(The Miracle of Marcelino)

호세 마리아 산체스 시르바의 전기적인 소설

마르첼리노, 빵과 술에 등장하는 주인공 어린이 마르첼리노가 예수님을 만나는 장면

*​

전후 황폐한 스페인 산촌의 한 수도원에 남자아이가 하나가 버려진다

아이를 길러본 경험이 없는 12명의 수사들은 갓난애를 키워줄 가정을 찾지만 여의치 않자 몸소 그 아이를 키운다

​훌쩍 5년이 흘러 귀여운 악동이 된 마르첼리노는 누구나 엄마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엄마를 그리워하게 된다

 

어린 마르첼리노는 다락방에 있는 십자가에 어떤 아저씨가 못 박혀 괴로워하는 모습을 보고 빵을 가져다주는데

그 때마다 예수님이 그 빵을 드신다

다락방 출입이 잦아진 마르첼리노는 주방 수사 몰래 훔친 빵과 포도주를 가져다주고

예수님은 마르첼리노에게 소원을 하나 들어주겠다고 한다

마르첼리노는 엄마가 보고 싶다고 하고, 예수님은 그러면 잠을 자야 한다며 마르첼리노를 품에 안고 재운다

그런데 마르첼리노를 미행하던 수사가 이 기적적인 장면을 목격하고

다른 수사들에게 알리고, 다른 수사들 역시 이 광경을 목격하게 된다

잠시 후 예수님은 다시 십자가에 못 박히신 모습으로 돌아가고

마르첼리노는 소원대로 하늘에 계신 엄마를 보기위해 잠든 상태에서 엄마를 만나러 천국으로 가며 죽음을 맞이한다

*

해미 순교 성지 대성전 입구에 걸려 있다

 

 

 

 

팔각의 탑

세상 끝날까지 교회와 함께 하시면서 지켜주고 계시는 주님

진복팔단을 말씀하신 주님을 상징하는 팔각 모양의 탑으로 파수대를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교회를 상징하는 대성전과 다리(브리지)로 연결되어 있다

주님은 우리 교회를 지켜주시는 파수꾼

 

 

 

 

해미읍성

팔각의 탑 철문을 열고 들어가면 있다

 

 

 

 

좁은 나무 계단을 돌아 오르며 만들었다

 

 

 

 

와서, 세상 창조 때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된 나라를 차지하여라

1935년 프랑스 발오(Barraux · 범베드로)신부님에 의해 순교자 유해를 찾게 되어

순교자들의 뼈와 치아 · 머리카락을 모신 유해참배실이다

*

발굴된 유해가 상홍리 공소 쪽에 모셔져 있다가 다시 본래의 장소인 생매장 터로 모실 때

김종수 주교의 의견으로 진토된 유해는 순교탑 앞에 모시고

아직 완전히 부식되지 않은 치아와 유골은 직접 뵙고 참배할 수 있도록 투명한 아크릴로 진공 포장해서 따로 모셨다

 

 

 

 

여숫골 빗돌

순교자들이 죽음의 행렬 중에 바쳤던 "예수마리아" 기도소리가 구경을 하던 외인들에게는 "여수머리"로 들렸기에

저들은 이곳을 "여수골"이라 하여 지금도 그렇게 불리고 있다

 

 

 

 

순교 자리개 돌

해미읍성 서문 밖 수구 위에 놓여 있던 돌다리로서 병인박해 때 천주교 신자들을 자리개질로 처형했던 사형도구이다

1956년 3월 오기선(요셉)신부와 서산본당 신균식(도미니코)신부가 찾아내어 서산 동문동성당으로 옮겨 보관하다

1986년 9월 원래 위치로 옮겨 놓았는데 해미도시계획 도시개설로 인하여

2009년 1월 8일 생매장 순교성지(여숫골)로 옮겨 보존하고 있다

 

 

 

 

현감(縣監) ·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 · 군무참의(軍務參議) 등의

애휼선정비(愛恤善政碑) · 애민선정비(愛民善政碑) · 청덕불망비(淸德不望碑) · 충절전망비(忠節不望碑) 등

뒤에 누워 있는 빗돌을 합해 11개의 빗돌이 있다

 

 

 

 

진둠벙(죄인둠벙)

팔을 묶여 끌려오던 신자들을 거꾸로 떨어뜨려서 이 둠벙 속에 쳐박혀 죽게하였다

이 둠벙에 신자들을 빠뜨려 죽였다 하여 마을 사람들 입에 〈죄인 둠벙〉 이라 일컬어지다가

말이 줄어서 〈진둠벙〉이라 불리어진다

유해 발견 당시, 뼈들은 수직으로 서있는 채 발견되었는데 그것은 살아 있는 사람이 묻혔다는 증거다

발견 장소인 진둠벙교 다리 밑과 기념관 옆에는 비석이 세워져 있다

 

 

 

 

야외제대 · 복자상 · 순교탑 · 무명순교자의 묘

 

 

 

 

해미순교탑 · 무명순교자의 묘

조선조 천주교 박해시 목숨을 바쳐 신앙을 증거한 순교 선열들의 유해 일부를

이곳 해미 생매장터에서 발굴하여 1935년 4월 2일 서산 상홍리 공소 뒷산 백씨 문중 묘역에 모셨다가

이제 순교자 유해를 교회적 차원에서 관리하며 성지순례자들의 기도를 돕기 위해 다시 원위치로 옮겨 모셨다

1995년 9월 20일

천주교 대전교구장 주교 경갑룡 요셉

 

 

 

 

인언민(印彦敏 · 마르티노) / 이보현(李步玄 · 프란치스코) / 김진후(金震厚 · 비오)

2014년 8월 16일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시복하신 해미순교자 3위 복자상이다

 

 

 

 

십자가의 길 제14처 무덤에 묻히신 주님

해미읍성을 시점으로 해미읍성 서문 밖을 지나 진둠벙교(유해발굴지)를 지난 곳에서 마친다

 

 

 

 

진둠벙교(유해발굴지)

 

 

 

 

오학산

진둠벙교 너머에 있다

 

 

 

 

해미면

진둠벙교에서 봤다

 

 

 

 

해미성당

해미천 건너로 보인다

 

 

 

 

해미순교성지

해미천 징검다리를 건너 돌아봤다

 

 

 

 

해미시내버스승강장

 

 

 

 

해미(지선) 방면별 시간표

서산 용현리마애여래삼존상 · 개심사 · 황금산 등 서산9경을 대중교통으로 갈 때 필요하다

 

 

 

 

해미면행정복지센터

 

 

 

 

한국농어촌공사

 

 

 

 

해미중학교

 

 

 

 

해미시외버스정류장

마침점이다

 

 

 

 

서산아라메길 탐방로 안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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