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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야기

예당저수지 느린호수길

《한국관광공사 야간관광 100선》에 오른 예당호 출렁다리를 시점으로

예당호 중앙생태공원까지 데크길로 이어지는 4.9㎞의 호수산책길인 느린호수길로 걸어

대흥 봉수산 순교성지 · 의좋은 형제 공원 · 대흥동헌 등을 찾았다

*

2019년 10월 오픈한 길이 7㎞의 비순환형 코스로 구성된 느린호수길은

140m 길이의 부잔교와 함께 아름다운 경관을 조성하며

예당호 조각공원과 어우려저 그 웅장함과 아름다움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예당호 관리사무소

국립관광지 버스정류장이 시점이다

 

 

 

 

예당호 출렁다리 포토존

《한국관광공사 야간관광 100선》에 오른 예당호 출렁다리는 국내 최장 길이인 402m이다

 

 

 

 

예당호 출렁다리

출렁다리 전망대로 간다

 

 

 

전망대에서 봤다

 

 

 

 

맞은편이다

 

 

 

 

음악분수

2020년 4월 25일부터 가동한 길이 96m · 폭 16m · 최대 분사 높이 110m에 이르는 부력식 분수이며

면적 1536㎡에 달해 호수에 설치된 가장 넓은 음악분수로 한국기록원 공식 기록에 올랐다

 

 

 

 

예당호 출렁다리(402m)

예당수변야외무대가 있는 전망대에서 봤다

 

 

 

 

예당수변야외무대

 

 

 

 

예당호 느린호수길

중앙생태공원까지 데크길로 이어지는 7㎞의 호수산책길이다

 

 

 

 

으름터널

 

 

 

 

팔각정

공사로 출입을 막아 놓았다

 

 

 

 

육각정

이곳에서 잠시 쉬었다

 

 

 

 

예당호

노동리 방향이다

 

 

 

 

전망대 쉼터

 

 

 

 

예당호 느린호수길

중앙생태공원까지 데크길로 이어지는 7㎞의 호수산책길이다

 

 

 

 

49년 전통 할머니 어죽 전문음식점

 

 

 

 

예당호 느린호수길

 

 

 

 

예당호 수상좌대 낚시터

가뭄으로 호수 가장자리 좌대는 낚시를 할 수 없다

 

 

 

 

예당호 느린호수길

 

 

 

 

예당호 느린호수길

 

 

 

 

출렁다리 3.0km ≪--≫ 1.9km 생태공원 안내판

 

 

 

 

황새(천연기념물 제199호)  야생 번식처

 

 

 

 

느린호수길 황새 인공둥지탑

높이 13m · 지름 직경 2m · 용도 / 황새 야생번식처

황새는 나무가지를 모아 둥지를 짓고 2~3월에 산란하여, 4~6월에 부화된 새끼를 키운다

주요 먹이는 미꾸라지, 붕어, 개구리, 지렁이 등으로 먹이가 풍부한 습지, 논, 하천지류에 터전을 잡고 살고 있으며

어류 자원이 풍부한 예당호는 황새의 주요 서식처이다

 

 

 

 

대흥향교(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36호) 안내판

 

 

 

 

느린호수길

 

 

 

 

느린호수길(출렁다리) 5.4km 방향안내판

 

 

 

 

습지생태공원

 

 

 

 

노란어리연

 

 

 

 

라노스모텔

 

 

 

 

예산사과 형상

이곳에서 의좋은 형제 공원으로 간다

 

 

 

 

의좋은 형제 공원

예산 이성만 · 이순 형제는 지극한 효성으로 이름이 높았다

부모님이 살아 계실 때에는 맛있는 음식으로 받들어 모셨으며

돌아가신 후에는 형이 어머니 묘를 지키고, 아우가 아버지 묘를 지켰다

삼년상을 마친 뒤에는 아침에는 형이 아우 집으로 가고, 저녁에는 아우가 형의 집을 찾았으며

한 가지 음식이 생겨도 서로 만나지 않으면 먹지 않을 정도로 효심과 우애가 깊었다고 한다

*

밤에 몰래 서로의 논에 볏단을 건네줬다는 우애 깊은 이성만 · 이순 형제의 이야기 공원이다

 

 

 

 

묘순이바위 안내판

 

 

 

 

대흥초등학교

 

 

 

 

공덕암

 

 

 

 

공덕암 관음전(觀音殿)

 

 

 

 

대흥 봉수산 순교성지

하느님을 향한 신앙을 나누던 의좋은 순교자

복자 김정득 베드로와 복자 김광옥 안드레아 형제를 기억하고 현양하는 순교성지이다

두 복자는 이존창 루도비코에게서 교리를 배워 입교한 뒤 신앙 생활을 같이 했을 뿐 아니라

대흥인 복자 김정득 베드로와 여사울인 복자 김광옥 안드레아는

공주 무성산에서 잡혀 대흥과 예산에 투옥되었다가 홍주 · 청주 · 포청옥으로 이송되며 긴 옥고를 치루었다

마침내 두 분은 대흥옥과 예산옥에서 각각 마지막 밤을 보내고

1801년 8월 25일 정오에 대흥과 예산 형장에서 참수되어 의좋은 순교자가 되었다

대흥 봉수산 순교성지는 이를 위해 순교자들의 수형생활과 처형과정을 재현하고자 대흥형옥원(刑獄圓)을 조성했다

 

 

 

 

성모마리아 상 받침돌 앞에 참수대(斬首臺) 팻말이 있다

성모님은 순교자들이 죽는 그 순간까지 순교의 동반자임을 형상화 한 것이다

 

 

 

 

대흥옥(大興獄)

십자 형태의 거리 모습으로 조성된 형옥원의 마당에는 조리돌림 · 팔주리 등의 고신과

주리틀기 · 큰칼 등의 형구 그리고 사형에 이르는 과정들이 묘사된 그림과 설명문들이 있다

형벌을 집행하던 의자와 곤장대도 놓여 있다

 

 

 

 

“내일 정오, 천국에서 다시 만나세!”

의좋은 순교자, 김정득 베드로와 김광옥 안드레아 형제는 한양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돌아오던 길에

각자의 처형지인 대흥과 예산으로 갈라지는 갈림길에서 두 사촌 형제는 손을 맞잡고 이렇게 인사했다고 한다

몸을 제대로 가누기도 어려울 정도로 고통스러운 상태였지만, 두 형제의 얼굴은 더없이 즐거운 얼굴이었다고 한다

1801년 8월 25일, 각각 대흥과 예산의 처형지에서 한 날 한 시에 참수로 순교했다

 

 

 

 

느티나무 보호수

이성만 형제 효제비 · 임성아문(任城衙門) 사이에 있다

*

나무 높이 18m · 나무 둘레 4.1m · 나무 나이 218년 · 지정일자 1982. 10. 15

 

 

 

 

이성만 형제 효제비

고려시대 인물인 예산 이성만 · 이순 형제의 효행과 우애를 기리기 위해 1497년(연산군 3)에 세운 비석이다

 

 

 

 

이성만 형제 효제비

효제비는 길쭉한 몸돌 위에 머릿돌을 얹은 모습이며, 밑에 있는 받침돌은 후대에 와서 만든 것이다

몸돌에 새긴 비문에는 왕이 형제를 기려 상을 내린 사실과 후손에 모범이 되도록 명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의좋은 형제 상

밤에 몰래 서로의 논에 볏단을 건네줬다는 우애 깊은 이성만 · 이순 형제의 이야기가

예전 국어교과서 2학년 2학기에 나왔었다

 

 

 

 

예산 대흥동헌 · 아문(禮山 大興東軒 衙門 ·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74호)

조선시대 대흥군의 현청(縣廳)으로서 《여지도서(輿地圖書)》 대흥군 공해조에 의하면

객사(客舍)에는 정청(正廳) 3칸 · 동대청(東大廳) 12칸 · 은사청(恩思廳) 14칸 · 서헌방(西軒房) 16칸

하마대(下馬臺) 4칸이 있었고, 아사(衙舍)에는 구 동헌(舊東軒) 9칸 · 신 동헌(新東軒) 16칸 · 남상방(南上房) 4칸

북상방(北上房) 5칸 · 대청(大廳) 6칸 · 초당(草堂) · 행랑(行廊) 7칸이 있었던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현재는 동헌과 아문만 남아 있다

예산군에 남아 있는 유일한 관아 건물로 역사적 · 건축학적 가치가 있다

 

 

 

 

예산 대흥동헌(禮山 大興東軒 ·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74호)

역대 군수들이 집무를 보던 정청으로 정면 6칸 ·  측면 2칸 · 팔작지붕의 목조 기와집이다

중앙에 정청인 대청이 있고, 좌우에 온돌방이 있다

전면으로 툇마루가 이어져 있고, 북쪽에는 2칸 규모의 대청이 있다

4벌대로 높게 쌓은 장대석 기단 위에 전면에는 방형의 초석을, 후면으로는 덤벙주초석을 혼합하여 놓았다

*

대흥동헌 상량문에 영락(永樂) 5년(1407년)에 지었다는 기록이 있어 조선 태종 7년에 창건되었고

강희(康熙) 42년(1703)에 중수 기록이 있어 조선 숙종 때 대흥이 군으로 승격할 때 중수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1914년 대흥면사무소로 개조하여 사용되다가, 1979년 해체복원 정비되었다

 

 

 

 

산 넘어 남촌에는 드라마 촬영지

작은 연못과 주변 한옥 및 장독대로 여느 시골 한옥에 들어선 것 같은 정겨운 풍경을 그려주어

《산 넘어 남촌에는》에서 종가집으로 촬영되기도 한 곳이다

 

 

 

 

화령옹주 태실(和寧翁主胎室) · 태실비(胎室碑)

태실은 왕세자나 왕손 · 대군 · 공주 · 옹주의 무병장수를 기원하며

명산에 탯줄을 보관했던 곳이며 왕가에서는 이를 법으로 정했다

이 태실은 조선 21대 영조대왕의 11녀 화령옹주의 태실로 화령옹주는 영조와 숙의 문씨 소생으로 

추사 김정희 선생의 증조부인 김한신의 조카 며느리가 된다

정조 즉위 직후 어머니 숙의 문씨의 죄와 연좌되어 대신들이 화령옹주를 한성 밖으로 쫓아내

평민으로 강등시킬 것을 여러 차례 청하였으나 정조는 화령옹주가 너무 어려 죄가 없다고 윤허하지 않았다고 한다

예로부터 태실은 왕가를 상징하는 것으로 태실을 파괴하는 것은 곧 왕가의 상징물을 파괴시킨다는 의미였다

화령옹주 태실은 일제시대 에 이왕직이 친일파를 시켜 파괴시켰으며 안에 있던 도자기는 일본인이 가져갔다

현재 예산군에는 현종 · 헌종 · 화령옹주 · 숙종의 3남 연령군 등 4개의 태봉이 있다

*

癸酉 三月 初二日 戌時 生 翁主 阿只氏 乾隆 十八年 五月 十三日 辰時 葬

(계유 삼월 초이일 술시 생 옹주 아지씨 태실 건융 18년 5월 13일 진시 장)

화령옹주(1752년 · 영조 28 ~ 1821년 · 순조 21)

 

 

 

 

흥선대원군 척화비(斥和碑)

척화비는 두 차례의 양요(병인양요 프랑스 · 신미양요 미국) 이후

당시 왕이었던 고종의 아버지인 흥선대원군이 척화교서를 내려 전국 각지에 세우게 한 비석이다

*

 洋夷侵犯 非戰則和 主和賣國 戒我萬年子孫 丙寅作 辛未立

(양이침범 비전즉화 주화매국 계아만년자손 병인작 신미립)

"서양 오랑캐가 침범했을 때 싸우지 않는 것은 곧 화의하는 것이오

화의를 주장함은 나라를 파는 것이다

내가 이를 자손만대에 경계토록 하기 위해, 병인년에 글을 짓고, 신미년에 비를 세우노라"

*

병인작 신미립이라는 글귀에서 두 차례의 양요가 척화비 건립의 직접적 계기가 되었음을 알 수 있으며

이를 통해 흥선대원군은 서양세력과의 대결에서 자신감을 가지게 되어 본격적인 통상수교 거부정책을 펴게된다

서양 세력과의 통상을 철저히 거부함으로써 외세의 침략을 막고자 하는 의지를 나타낸 척화비 건립은

반외세 자주운동으로 해석되어 민족의 자주권을 지켰다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무조건적인 서양세력과의 통상 거부로 인해 조선이 국제 정세 흐름에 둔감해져서

근대화가 정체되거나 지연되는 결과를 초래하여 외세의 침략을 막지 못했다는 부정적인 측면도 있다

 

 

 

 

달팽이미술관

 

 

 

 

이한직 가옥으로 가는 길이다

 

 

 

 

이한직 가옥(李漢稙 家屋 ·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87호)

심암 조두순(心庵 趙斗淳 · 1796~1870)이 살았던 것으로 알려진 조선시대 양반 가옥이다

조두순은 충청도 홍주 사람으로 장원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라 흥선대원군 시절 영의정까지 지낸 인물이다

이 집은 소유주의 이름을 따 이한직 가옥으로 불리었으나, 지금은 집 주인이 바뀌었다

이한직 가옥이 있는 마을은 조두순의 처가인 대구 서씨의 오랜 집성촌이다

이한직 가옥은 중부지방 양반가 특유의 형태로 ㄱ자형 안채와

ㅡ자형의 고방채 및 행랑채가 안마당을 가운데 두고 네모난 모양을 하고 있다

안방에 부엌이 연결되고, 건너방 옆에도 부엌이 있는 것이 특이하다

낮은 동산을 뒤에 두고 남쪽을 바라보는 고풍스러운 가옥이다

 

 

 

 

예약한 시외버스 시간으로 버스를 타러 나간다

 

 

 

 

동서리경로당

 

 

 

 

 

대흥버스정류장 앞이다

마침점이다

 

 

 

 

대흥버스정류장 버스시간표

예산 방향 12시 10분 버스를 탔다

버스를 여러 번 이용했는데 모두 정확한 시간에 왔다

(2022. 6.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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