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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야기

대흥 봉수산 순교성지

충청남도 예산군 대흥면은 예로부터 ‘의좋은 형제’로 유명한 마을이다

밤에 몰래 서로의 논에 볏단을 건네줬다는 우애 깊은 이성만 · 이순 형제의 이야기가 담긴

의좋은형제길을 따라 올라가다보면 또 다른 의좋은 형제를 만날 수 있는 성지가 나온다

바로 하느님을 향한 신앙을 나누던 의좋은 순교자

복자 김정득 베드로와 복자 김광옥 안드레아 형제를 기억하고 현양하는 대흥 봉수산 순교성지이다

두 복자는 이존창 루도비코에게서 교리를 배워 입교한 뒤 신앙 생활을 같이 했을 뿐 아니라

대흥인 복자 김정득 베드로와 여사울인 복자 김광옥 안드레아는

공주 무성산에서 잡혀 대흥과 예산에 투옥되었다가 홍주 · 청주 · 포청옥으로 이송되며 긴 옥고를 치루었다

마침내 두 분은 대흥옥과 예산옥에서 각각 마지막 밤을 보내고

1801년 8월 25일 정오에 대흥과 예산 형장에서 참수되어 의좋은 순교자가 되었다

대흥 봉수산 순교성지는 이를 위해 순교자들의 수형생활과 처형과정을 재현하고자 대흥형옥원(刑獄圓)을 조성했다

 

 

대흥형옥원(大興形獄圓)

형옥원은 죄인들을 가두는 옥, 고신(拷訊)과 형벌을 가하는 환토(圜土)를 가르킨다

조선시대에 대흥군 중심인 동서리에 행정시설, 상중리에 병사 · 옥사 · 제사시설, 교촌리에 교육시설이 있었다

원래 옥(獄)은 상중리 296번지 일원 옥담거리, 처형장은 예당호 내천변, 저잣거리는 동서리 173번지 일원에 있었다

이 같은 형옥시설은 조선시대 대흥군의 위상과 역사 · 문화 그리고 한국 초기 천주교를 이해하는데 중요하므로

대흥 봉수산 순교성지인 이곳 상중리 367번지에 재현하였다

 

 

 

 

십자가문

대흥옥(大興獄)이 있는 순교성지로 들어가는 문이다

 

 

 

 

성모마리아 상

 

 

 

 

성모마리아 상 받침돌 앞에 참수대(斬首臺) 팻말이 있다

성모님은 순교자들이 죽는 그 순간까지 순교의 동반자임을 형상화 한 것이다

 

 

 

 

대흥옥(大興獄)

십자 형태의 거리의 모습으로 조성된 형옥원의 마당에는 조리돌림 · 팔주리 등의 고신과

주리틀기 · 큰칼 등의 형구 그리고 사형에 이르는 과정들이 묘사된 그림과 설명문들이 있다

형벌을 집행하던 의자와 곤장대도 놓여 있다

 

 

 

 

조리돌림

조선시대에 사회적 규범을 위배한 사람을 조리돌림하는 장면이다

마을의 동리회의에서 죄인의 처벌이 결정되면 마을 사람들을 모은 뒤에 죄를 지은 사람의 등에

북을 달아매고 죄상을 적어 붙인 다음, 마을을 몇 바퀴 돌아서 그 죄를 마을사람들에게 알린다

 

 

 

 

주리틀기

죄인의 양 발목과 무릎을 묶은 뒤 몽둥이 두 개를 정강이 사이에 끼워

양끝을 가위 벌리듯이 엇갈리게 틀어 고통을 주는 고문이다

 

 

 

 

큰칼

무거운 죄를 지은 사람의 목에 씌우던 형구의 하나로 길이는 135cm 정도다

 

 

 

 

팔주리

 

 

 

 

십자가상

 

 

 

 

대흥옥(大興獄)

죄인들을 가두고 형벌을 가하던 감옥으로 옥사에는 3개의 방이 있고

그 안에는 목에 차는 칼과 곤장을 칠 때 사용했을 형구들이 있다

 

 

 

 

내일 정오, 천국에서 다시 만나세!

의좋은 순교자 복자 김정득 베드로 · 복자 김광옥 안드레아

 

 

 

 

아르스의 본당 신부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 사제의 사랑의 기도

 

 

 

 

순교복자 김정득 베드로

“내일 정오, 천국에서 다시 만나세!”

의좋은 순교자, 김정득 베드로와 김광옥 안드레아 형제는 한양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돌아오던 길에

각자의 처형지인 대흥과 예산으로 갈라지는 갈림길에서 두 사촌 형제는 손을 맞잡고 이렇게 인사했다고 한다

몸을 제대로 가누기도 어려울 정도로 고통스러운 상태였지만, 두 형제의 얼굴은 더없이 즐거운 얼굴이었다고 한다

1801년 8월 25일, 각각 대흥과 예산의 처형지에서 한 날 한 시에 참수로 순교했다

 

 

 

 

 

순교 복자 김광옥 안드레아

김광옥은 들것에 실려 형장에 가면서도 큰 소리로 묵주기도를 바쳤다고 한다

처형장에 이르러서도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말하고 무릎을 꿇은 채 큰 소리로 끝까지 기도를 바친 후에야 

참수대에 스스로 머리를 뉘었다고 한다

인근 고을인 예산에서 면장을 맡던 김광옥은 예산과 청주에서 문초와 형벌을 당하고

한양에서 사형선고를 받아 예산의 처형장에서 순교했다

대춘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던 김정득 베드로은 복자 김광옥 안드레아에게 교리를 배워 입교했다

두 형제는1801년 신유박해가 일어나자 공주 무성산으로 들어갔다

두 형제가 피신하면서 가져간 것은 다른 무엇도 아닌 교회 서적과 성물이었다

두 형제는 오로지 교리를 실천하기 위해 숨었다. 그러나 두 형제의 피신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이름이 이미 널리 알려져 있어 더 빨리 발각됐던 것이다

김정득은 홍주 · 김광옥은 예산으로 끌려가 문초를 받고 이후 함께 청주에 수감돼 형벌을 받았다

 

 

 

 

대흥면에서도 봉수산자락에 자리하고 있어 대흥봉수산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성지는

두 형제뿐 아니라 대흥 고을 출신의 여러 순교자도 현양하고 있다

뮈텔(Mutel, 閔德孝) 주교가 순교자들에 대한 자료를 수집해 작성한 「치명일기(致命日記)」에는

복자 김정득 베드로 외에도 황 베드로(46세), 백청여(50세 가량), 원지우 안드레아, 이 루도비코(43세)

이 아우구스티노(38세), 원 요셉(55세) 등 대흥 고을 출신 순교자 7위가 기록되어 있다

 

 

 

 

대흥옥(大興獄)

김정신(스테파노 · 단국대 건축학과) 교수가 설계했다

 

 

 

 

십자가의 길

 대흥 봉수산 순교성지는 순교자들이 신앙을 증거하다 처형된 장소의 특성을 살려

토지면적 4628㎡ · 임시 성당 330㎡ · 형옥원 2314㎡을 갖추었다

형옥원에는 박해시대 순교자를 가두었던 형옥 시설인 옥사 · 저잣거리 · 처형대가 재현되었고

그 둘레에 십자가의 길 14처가 설치되었다

 

 

 

 

주문모(周文謨 · 1752~1801 · 야고보 · 중국인)신부 · 김대건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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