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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야기

춘천향교

춘천향교(강원도 유형문화재 제98호)는 조선 초기에 건립되었으나,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다
유몽인의 〈어우집〉에 따르면 1520년(중종 15)에 부사 이만손이 다시 세웠다는 기록이 있다
이후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594년(선조 27)에 부사 서인원이 고쳐 지었다
한국전쟁으로 대성전이 파손되었으나 1960년에 복구하였고 여러 차례 보수를 거쳐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대성전에는 중앙에 공자를 비롯하여 안자 · 증자 · 자사 · 맹자 등 5성과
좌우편에는 우리나라 18현 · 송나라 2현 등 25위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고 대성전 앞 좌우에는 동무와 서무가 있다
또한 명륜당과 유생들이 기숙하던 동재와 서재가 있다
조선시대에는 교수 1명이 유생 70명의 교육을 담당하였고
향교에서 교육을 이수하면 진사 자격으로 다시 성균관에 입교하여 소정의 교육을 거쳐 과거에 응시하였다
1895년 갑오개혁 이후 과거제도가 폐지되면서 향교는 옛 성현의 제사만 담당하게 되었다
현재는 매년 음력 2월과 8월 상정일(上丁日)에 석전제(釋奠祭)를 봉행하고 있다

홍살문
하마비(下馬碑)가 오른쪽에 있다

 

 

장수루(藏修樓) · 홍살문

 

 

장수루(藏修樓)
중층 누각형 건물이다

 

 

장수루(藏修樓) 현판

 

 

명륜당(明倫堂)

 

 

명륜당(明倫堂) 편액
신안주희서(新案朱憙書)라 왼쪽에 써있다
신안 사람 주희가 썼다는 뜻으로, 흔히 주자(朱子)로 불리는 주희의 글씨를 집자한 편액이다

 

 

교궁중수기(校宮重修記)
명륜당 왼쪽 문 위에 있다

 

 

명륜당중수기(明倫堂重修記)
명륜당 왼쪽 문 위에 있다

 

 

동재(東齋)
편액 없이 명륜당을 등지고 있다

 

 

동재(東齋)

 

 

서재(西齋)

 

 

내삼문
대성전으로 드는 문이다

 

 

대성전(大成殿)
공자를 비롯하여 안자 · 증자 · 자사 · 맹자 등 5성(聖)과
좌우편에는 우리나라 18현(賢) · 송나라 2현(賢) 등 25위의 위패(位牌)가 봉안되어 있다

 

 

동무(東廡)

 

 

서무(西廡)

 

 

명륜당(明倫堂) · 동재(東齋) · 장수루(藏修樓)

 

 

장수루(藏修樓)

 

 

서재(西齋)
역시 편액 없이 명륜당을 등지고 있다

 

 

은행나무 보호수
나무 높이 17m · 둘레(가슴 높이) 260cm · 나이 120년 · 1982. 11. 13

 

 

공부자묘정비 · 엄황흥학비 · 지계사호성비 · 장헌근모성비 · 하마비

 

 

공부자묘정비
공자는 하늘과 땅 같이 넓고 · 해와 달 같이 밝으며 · 강과 바다 같이 포용하는 위대함을 지녔으며
이러한 공자는 황제 중의 성인인 요임금 · 왕 중의 성인인 우임금과 함께 성인이라 부를 만하니
공자의 덕을 널리 받들어야 한다는 내용의 묘정비이다

 

 

엄황흥학비
1646~1648년까지 춘천부사로 재임하며 춘천의 종합지리지인 〈춘주지〉를 편찬하고
학문을 진흥시킨 엄황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다

 

 

지계사호성비
지계사는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춘천향교에 모신 성현의 위패를 대룡산의 바위굴로 옮겨 안전하게 보관하였다
이후 전쟁이 끝나고 춘천향교로 위패를 옮겨 다시 봉안하였다
지계사는 성현을 보호한다는 뜻의 「호성공」이라고도 불렸으며 지계사호성비는 지계사의 이러한 공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이다

 

 

장헌근모성비
일제강점기인 1929~1932년에 춘천군수로 재직하며
사당을 높이고 유학을 발전시켜, 향교 발전에 공헌한 장헌근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비이다

 

 

하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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