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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이야기

우이령(소귀고개)

우이령(소귀고개)길
서울 성북구 우이동과 경기도 양주군 교현리를 연결하는 길로 북한산과 도봉산의 경계다
1968년 1월 21일 무장공비의 청와대 침투사건으로 민간인 출입이 전면 금지되었다가
2009년 7월 탐방 예약제로 개방된 길이다

우이령 입구 우이천
이곳이 북한산둘레길 1코스 · 21코스 시점이다

 

 

우이동산악문화허브(H·U·B)
히말라야(Himalaya) · 엄홍길(Um Hong Gil) · 북한산(Bukhansan)을 주제로
체험 요소를 구성하여 첫 글자를 모아 이름 붙였다

 

 

산울림
막걸리는 술이 아니라 건강입니다

 

 

김신영기념관

 

 

우이령길 사전예약구간 통제안내판
하절기 3월~10월 입산시간 09:00~16:00 / 동절기 11월~2월 입산시간 09:00~15:00

 

 

우이탐방지원센터
탐방 예약 확인하는 곳이다

 

 

우이령길 안내판
우이탐방지원센터 앞에 있다

 

 

나만의 숲 안내판

 

 

서울경찰청 기동경찰대

 

 

차량 통제 차단기

 

 

교현리 3.5km · 우이동 1.0km 방향안내판

 

 

우이령(소귀고개) 대전차 방어벽
경기 북부에서 수도권을 잇는 지름길이자 농산물과 생필품을 반출 · 반입하는데 사용했던 소로였다
한국전쟁 당시에는 미국 공병대에 의해 작전도로로 사용되었다

 

 

우이령(소귀고개) 작전도로 개통 기념비
이 도로는 36공병단에서 1965년 4월 24일 개통하였다
예전과 달리 출입금지지역이다

 

 

우이령(소귀고개) 대전차 방어벽
한국전쟁 때 양주와 파주 지역에서 피난길로 이용했던 우이령길에는
남북 대치의 상징인 대전차 장애물(고가 낙석)이 설치되어 있다

 

 

바위고개
한국의 슈베르트라 불리는 이흥렬(李興烈 1907~1980)이 작사 작곡한 가곡으로
메조 소프라노 백남옥씨가 불러 만인의 가슴속을 파고 들었던 노래이다
바위고개가 어느 고개이냐는 질문에 이흥렬 선생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상징적인 고개이며, 삼천리 금수강산 우리의 온 국토가 바위고개"라고 말했지만
이 지역에서는 우이령을 지칭한다고 알려져 있다

 

 

오봉전망대

 

 

오봉(五峰 660m)
다섯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어 오봉이라 부른다
한 마을에 다섯 총각이 원님의 어여뿐 외동딸에게 장가들기 위해 오봉과 마주한 상장능선에서
바위를 오봉에 던져올리기 시합을 하여 현재의 기묘한 모습의 봉우리가 만들어 졌다고 전한다
*
비로 오봉이 안보여 예전 사진을 빌려왔다
(2013. 10. 13)

 

 

오봉 안내판

 

 

우이령 사방사업 기념비
우이령 길에 흙이 무너져 내리지 않도록 1966년 6월 2일부터 1967년 10월 31일까지 사방사업을 했다
소요예산 항목에 현금과 양곡이 함께 기재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양곡이 돈과 같이 취급되었던 당시의 시대적 상황을 엿볼 수 있다

 

 

다리가 놓인 계곡을 지난다

 

 

걷기 편한 길이다

 

 

차량통제소

 

 

유격 빗돌
군 훈련장이다

 

 

석굴암으로 가는 다리다

 

 

석굴암 불이문(石窟庵 不二門)
이 곳에 있던 일주문은 본래 서울 봉은사(奉恩寺 1880년) 것이라서
2020년 부처님오신날에 봉은사로 되돌려 주고 똑같은 모양으로 새로 만들었다

 

 

불이문(不二門)
도봉산 오봉이 뒤로 보인다
문 가운데 돌다리가 있다

 

 

석굴암 대웅전(石窟庵 大雄殿)
중부권 제일의 나한기도 도량인 천년 고찰 오봉산 석굴암은 신라시대 의상대사가 창건하였으며
고려시대 나옹왕사와 조선시대 설암선사의 뒤를 이어
근현대에는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한 분인 백용성 선사를 도와 독립운동을 하신 동암선사 등 선지식이 주석했다
6 · 25직후 초안 큰 스님께서 석굴암을 재창건하고 수행하신 청정기도 도량이다
제25교구본사 봉선사 본말사지에 따르면 세종 25년(1443)에 설암관익대사가 중수하고 석굴에 나한님과 지장보살 두 존상을 봉안했다
단종의 왕후 정순왕후가 단종대왕의 명복을 위해 1만 냥을 시주하고 소원을 빌며 원찰로 삼은 도량이다

 

 

양주 석굴암 나한전(羅漢殿) 내부
입구보다 안쪽 천장 높이가 높다

 

 

양주 석굴암 석조나한상(楊州 石窟庵 石造羅漢像) /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62-1호
석굴암 나한전 수미단에 봉안되어 있는 조선 후기의 불상이다
봉선사 본말사지(奉先寺本末寺誌) 고적편(1873)에 한봉창엽(漢峰瑲曄)과 금곡영환(金谷永煥)이 제작하였다고 언급되어 있으며, 높이 60cm의 나한상이다
양주 석굴암 석조나한상은 사적기를 통해 제작연대와 작가를 알 수 없는 작품이다
전국 사찰에 산재한 석조 불상 가운데 19세기 후반에 제작한 기년명 불상으로 보존 상태가 양호하며
조선시대 불교 조각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양주 석굴암 석조나한상(楊州 石窟庵 石造羅漢像) /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62-1호
자세는 오른발을 왼쪽 무릎 위로 올린 길상좌(吉祥坐)이며
수인은 결가부좌(結跏趺坐)한 다리 위에 오른손을 위로 하고, 왼손은 아래로 한 선정인(禪定印)을 하고 있다
얼굴은 둥근 형태로 가는 눈과 뭉뚝한 코를 가지고 있으며, 입술은 꼬리를 살짝 올려 미소를 머금은 듯하다
머리는 승형(僧形)으로 나한상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양주 석굴암 석조나한상(楊州 石窟庵 石造羅漢像) /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62-1호
오봉산 석굴암은 중부 제일의 나한기도 도량의 하나로 그 영험이 뛰어나기로 이름이 높다
우리 나라의 대표적인 나한기도 도량으로는 함경남도 길주군 석왕사 · 경북 청도 운문사 사리암
경북 영천군 거조암 · 전북 완주군 봉서사 · 서울 수유동 삼성암을 꼽을 수 있다

 

 

삼성각(三聖閣)
독성각(獨聖閣) · 산신각 · 칠성각(七星閣)이 있으며, 대개 삼성각에 삼신을 같이 모신다
독성각은 불교에서 말하는 독각을 모신 곳이다
독각은 석가모니처럼 스승 없이 홀로 깨우친 자를 말한다
산신각은 단군이 산신이 되었다는 전설에서 유래하는 산신을 모신 곳이다
칠성각은 북두칠성에 축원하는 도교의 신앙을 받아들여 북두칠성을 불교의 여래로 조화하여 모신 곳이다

 

 

양주 석굴암 석조지장보살좌상(楊州 石窟庵 石造地藏菩薩坐像) /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62호
양주시 석굴암 내 삼성각에 봉안되어 있는 불상으로 조선 후기에 제작되었으며 보존 상태가 양호하다
높이 48cm의 보살상으로 〈봉선사본말사지〉에 1873년 한봉창엽과 금곡영환이 나한상과 같이 제작하였다고 한다
이 불상을 만든 한봉창엽과 금곡영환은 19세기 경기도를 중심으로 활동한 대표적인 불화승이다

 

 

양주 석굴암 석조지장보살좌상(楊州 石窟庵 石造地藏菩薩坐像) /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62호
전국 사찰에 산재한 석조 불상 가운데 19세기 후반 불화승이 제작한 기년명 불상으로
조선 후기 불교 조각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양주 석굴암 석조지장보살좌상(楊州 石窟庵 石造地藏菩薩坐像) /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62호
불석(佛石 · 慶州石)이라 부르는 활석을 쪼아 만든 것으로 머리 위에 두건을 두른 피건형으로 양 어깨에 두건자락이 늘어져 있다

 

 

비로 촉촉히 젖은 숲길이다

 

 

오봉의 유래 안내판

 

 

오봉
오봉의 유래 안내판에서 봤다

 

 

유격교

 

 

교현탐방지원센터

 

 

교현탐방지원센터

 

 

우이령길 개방에 대하여 안내판 등이 있다

 

 

우이령길 개방에 대하여

 

 

양주에서 시작하는 우이독경이야기

 

 

우이독경은 쇠귀에 경읽기란 뜻으로
오랜 세월동안 소통하지 못한 우이령길과 그 의미가 상통한다

 

 

상장능선
교현리 마침점에서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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