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향교(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25호)
고려말 공민왕 때 창건되었다고 전하나 명확한 기록은 없다
다만, 신숙주의 객관기(客館記)에 1456년(세조 2) 왜구의 침입으로 영광읍 터를 옮긴 기록이 보여
이때 향교도 현 위치에 옮겨왔을 가능성이 크다
향교는 평지배치의 일반적인 형식인 전묘후학의 형태다
외삼문 내 전면에는 대성전, 동 · 서무가 있고
대성전 뒤편 막돌담장을 경계로 하여 명륜당과 동 · 서재가 있다
일설에는 성균관이 1400년(정조 2)에 화재로 소실되자 이를 복원하면서 영광향교의 배치를 참고하였다 한다
이곳에서는 공자, 안자, 자사, 증자, 맹자의 오성(五聖)과
유교 숭상 인물 20명의 위패를 모시고 해마다 봄 · 가을에 제를 지낸다
만화루(萬化樓)
근년에 소실되어 1987년에 복원했다
도동리
만화루에서 봤다
대성문
은행나무 위세가 대단하다
대성문(大成門)
외삼문이다
대성문(大成門) 현판
대성전(大成殿)
5성(五聖), 송조2현(宋朝二賢), 우리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대성전(大成殿) 현판
대성문
문의 크기로 은행나무의 위세를 알 수 있다
대성문
동무(東廡)
동무(東廡) 현판
은행나무 보호수
수령 680년 · 수고 23m · 나무둘레 6.8m · 지정일자 1974. 9. 25
지정일자를 보니 수령이 700년이 넘었다
서무(西廡)
서무(西廡) 현판
은행나무 보호수
수령 680년 · 수고 23m · 나무둘레 7.3m · 지정일자 1974. 9. 25
*
세 가지가 나뉜 곳에서 새로운 줄기가 나오고 있다
전사고(典祀庫)
명륜당으로 들어갈 수 있는 문이 있다
명륜당 · 동재 · 서재
대성전 뒤편 막돌담장 너머로 봤다
명륜당(明倫堂)
3월 14일 전라남도 내 군 단위에서는
최초로 영광에서 독립만세운동이 시작되어 총 10여 차례 7,600명이 참여하였다
1차 독립만세 운동은 3월 14일 영광보통학교(현 향교 명륜당)에서
조철현과 이병연, 학생대표 정헌모, 허봉, 조술현 등이 주도하였다
막돌담장 너머로 봤다
성생문(省牲門)
좌측 계단 위에 대성문이 있다
성생문(省牲門)
우측에 향교 삼문이 있다
성생문(省牲門)
막돌담장과 배수구가 친근감을 준다
성생문(省牲門) 현판
숙정문(肅正門)
영광향교(靈光鄕校) 삼문이다
영광군 3.1운동 발원지
1919년 3월 1일 탑골공원에서 독립만세 함성이 점화된 후
3월 14일 전라남도 내 군 단위에서는
최초로 영광에서 독립만세운동이 시작되어 총 10여 차례 7,600여 명이 참여하였다
1차 독립만세 운동은 3월 14일 영광보통학교(현 향교 명륜당)에서
조철현과 이병연, 학생대표 정헌모, 허봉, 조술현 등이 주도하였으며
2차 독립만세 운동은 3월 15일 영광읍 남천리 박정환의 직포공장에서
김은환, 정인영, 조희방, 박병문, 박정순, 서순빈, 유두화, 김준헌 등이 주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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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정문 앞에 있다
명륜당(明倫堂)
맞배지붕 좌우에 지붕을 덧달아 구조가 특이하다
좌측 제관실 · 우측 임원실, 임원실 옆에 전교실이 있다
제관실(祭官室)
명륜당(明倫堂) 뒤편
측면 우측 방이 전교실이다
서재(西齋)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서재 등 다수의 건물이 손실되었으나
서재는 2000년도에 원형복원하였다
서재(西齋) 현판
동재(東齋)
은행나무 보호수
수령 680년 · 수고 23m · 나무둘레 7.2m · 지정일자 1974. 9. 25
*
정면에 비자나무가 있다
비자나무 보호수
수령 680년 · 수고 15m · 나무둘레 4.2m · 지정일자 1974. 9. 25
전사고 · 창고 · 고직사
거사 이중신 모성비(居士 李中信 慕聖碑) · 영광문묘(靈光文廟) · 영광향교중수비(靈光鄕校重修碑)
영광향교 연혁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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