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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야기

송산리 고분전시관

 

송산리고분군전시관은 무령왕릉 및 5 · 6호분을 실물과 동일한 크기의 모형으로 재현한 곳이다
무령왕 체험 · 송산리 고분군 발굴과정 등을 볼 수 있으며 융성했던 백제문화의 위상을 확인할 수 있다

공주 송산리고분군 · 백제역사유적지구 안내판

 

 

송산리고분군전시관

 

 

매지권(買地券)
능묘를 만들기 위해 토지를 매입한 매지권

 

 

매지권(買地券)
출토지 / 공주 송산리 고분군 무령왕릉
크기 / 가로 41.5cm · 세로 35.2cm · 두께 4.7cm

 

 

정지원명 금동삼존불입상 / 부여 부소산성
정지원이 세상을 떠난 아내 조사를 위하여 공경스럽게 금으로 불상을 만들며 삼도(의 고통)로부터 빨리 벗어나길 바란다

 

 

「숙세결업(宿世結業)」명 목간
전생에 맺은 인연으로 말미암아 같은 장소에서 태어났다
(이에) 옳고 그름을 서로 물어서 예를 갖추고 (그 내용을) 밝힌다

 

 

방격규구신수문경(方格規矩神獸文鏡) / 공주 송산리고분군 무령왕릉
상방에서 만든 거울은 참으로 좋아서 옛날 신선들이 늙지 않았고
목이 마르면 옥천(玉泉)의 물을 마시고 배가 고프면 대추를 먹으며 쇠나 돌 같이 긴 생명을 누렸다

 

 

세계유산 공주 송산리고분군

 

 

송산리고분군과 백제고분

 

 

송산리 1~4호 돌방무덤 조사 현황

 

 

무령왕릉 발굴조사 준비 작업 전경
1971년 7월 5일 고분군 배수로 공사 중 무령왕릉 입구 발견했다

 

 

송산리고분군의 발견

 

 

송산리고분군 세계유산 추진과정

 

 

송산리고분군의 현황

 

 

백제연표

 

 

송산리 5 · 6호분과 백제인의 무덤

 

 

송산리 5호분과 굴식돌방무덤

 

 

송산리 5호분 입구

 

 

송산리 5호분 내부

 

 

한국 · 일본 · 중국의 고분문화

 

 

한국(삼국의 굴식돌방무덤)
굴식돌방무덤은(횡혈식석실묘)은 지하에 묘광(무덤 구덩이)을 파고 돌을 쌓아 무덤방을 만든 후
한 쪽 측면에 출입구를 내어 여러 차례 추가로 매장을 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춘 무덤이다
출입구를 통하여 무덤방에 추가장이 가능하기 때문에 부부를 비롯하여 가족합장이 가능하다

 

 

금동관과 은제관식 출토 백제무덤 · 일본 속에 남은 백제의 고분문화

 

 

한성기 가락동 · 방이동 고분군 · 석촌동 4호분

 

 

웅진기 송산리 5호분 · 무령왕릉

 

 

사비기 익산 쌍릉 · 능산리 동하총

 

 

사비기 익산 쌍릉
전라북도 익산에 있는 무덤으로 남북으로 2기의 무덤이 나란히 자리잡고 있어 쌍릉이라 부른다
무덤의 구조는 백제 후기 굴식돌방무덤으로 봉분의 크기가 큰 북쪽의 것을 대왕묘 · 남쪽의 작은 것을 소왕묘라 부른다
최근 21m에 이르는 묘도 확인되고, 백제 인골이 출토되어 주목된다

 

 

무령왕릉 축조과정
무덤축조 · 무덤터 닦기 · 껴묻거리 제작 · 벽돌제작

 

 

송산리 6호분과 전축분

 

 

무덤의 주인을 지키는 사신도
송산리 6호분에는 네 벽면에 사신도가 그려져 있는데 이는 중국 고대사상에서 발생한 방위도로 음양오행설에서 나왔다
사신은 동서남북 4방향과 사계절 · 하늘 시방의 28별자리와 관련있는 상상의 동물로 방위신이자 우주의 질서를 수호하는 신이다

 

 

백호 · 서쪽 / 현무 · 북쪽
그림이 그려진 널방의 벽면에 고운 진흙을 바르고 풍화된 조개껍질을 빻아 만든 호분으로 벽화를 그렸다
송산리 6호분은 벽돌이라는 재료와 구조 면에서 중국의 무덤을 채용하였으나 토벽을 만들고 그 위에 사신을 직접 그렸고
4벽면을 사신도로만 채운 예는 중국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고구려에서는 무용총 · 쌍영총 · 약수리벽화고분 · 강서대묘 · 통구사신총 등에서 사신도가 보인다
송산리 6호분과 능산리 동하총의 2기가 유일하다

 

 

무령왕릉의 발견
1971년 7월 충청남도 공주 송산리고분군 · 이곳은 예로부터 백제왕릉이 있다고 알려진 곳으로
당시 모두 6기의 크고 작은 돌방무덤(1~5호분)과 전축분(6호분)이 송산(松山) 구릉상의 남쪽 사면에 조성되어 있었다
그중 5호분과 6호분은 여름철 같은 우기에 무덤 안에 물기가 새거나 습기가 차 무덤의 손상이 심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1971년 6월 말부터 6호분 봉토 북쪽으로 배수 시설공사를 시작하였다
이 작업은 공주박물관 관장을 비롯해 문화재관리국(현 문화재청), 공주시 직원이 현장에 입회하에 진행하였다
배수구를 만들기 위해 봉토의 일부를 파 들어가던 7월 5일, 배수구 한 쪽에서 작업하던 인부의 삽자루 끝에 봉토와 다른 딱딱한 물체가 닿았다
조심스레 그 쪽을 파내려 가던 중 6호분과 비슷하게 가지런히 쌓은 벽돌들이 나타나자
인부들은 현장에 나와 있던 문화재관리국 직원과 공주박물관장에게 알렸고 이것은 새로운 무덤의 발견을 알리는 것이었다

 

 

고대 동아시아 교류사의 빛, 무령왕릉
무엇보다 지석의 발견으로 무덤의 주인이 백제 제25대 무령왕이라는 사실을 확인하므로써
삼국시대 무덤 중 유일하게 무덤 주인이 확인된 무덤으로 사망일자 · 매장일자 등 확실한 연대 확인을 통해
한국고대사 나아가 동아시아의 역사를 올바르게 기술하는데 유용한 지표가 되었다
더불어 삼국사기, 기록의 정확성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어 백제사는 물론 삼국시대 연구 활성화에 기여하였다

 

 

왕의 안식처가 열리다

 

 

되살아난 백제문화
무덤의 주인공은 백제 사마왕, 즉 제25대 무령왕과 왕비라는 것과 이것을 적은 묘지석이 존재하며, 도굴되지 않고 온전히 보존된 무덤이었다
다음날 아침까지 이어진 조사를 통해 묘지석을 포함해 4,600여 점에 이르는 화려한 유물들이 수습되었다

 

 

무령왕릉의 출토유물 / 껴묻거리 부장품(副葬品)
108종 4,600여 점의 유물이 부장되어 있었는데
이러한 유물들은 껴묻거리로 무덤시설과 의례, 사후세계 안식을 위한 것과 생존시 사용했거나 사망시 장작했던 물건들이다
무령왕릉 출토 유물은 그 가운데 17점이 국보로 지정될 만큼 뛰어난 것으로 무덤 주인의 지위와 죽은 자를 보내는 백제인의 의식세계를 담고 있다
또한 당시 동아시아 문물교류를 통한 정제되고 세련된 백제의 문화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

 

 

무령왕릉의 진묘수 역할을 하는 석수 / 국보 제162호

 

 

무령왕릉의 출토유물 / 껴묻거리 부장품(副葬品)
왕과 왕비의 목관 내부에서는 베개 · 발받침 · 관꾸미개 · 금동신발 · 귀걸이 · 목걸이 · 각종 옥 등의 장신구가
공통적으로 보이는데 무덤의 주인의 권위를 상징하는 것들이다
왕은 청동거울 · 용봉무늬둥근고리큰칼 · 허리띠 · 뒤꽂이 등이 왕비는 동탁은잔 · 다리미 · 팔찌 등이 확인되어 남녀에 따른 다른 껴묻거리를 볼 수 있다
껴묻거리 중 홍옥 장식 · 유리동자상은 나쁜 기운을 물리치는 벽사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

 

 

금동신발

 

 

백제 금속세공술의 정수 · 왕과 왕비의 금제관장식

 

 

왕과 왕비의 금제관장식 · 금귀걸이

 

 

무령왕 금제관식 · 금제뒤꽂이

 

 

무령왕 금귀걸이

 

 

무령왕비 금제관식

 

 

무령왕비 금귀걸이

 

 

둥근고리칼 · 무령왕 베개 · 무령왕비 베개

 

 

최고의 지배자를 상징하는 둥근고리큰칼
무령왕릉 출토 둥근고리큰칼은 왕의 허리부분에서 발견되었는데 둥근고리에는 두 마리의 용이 엇갈려 감겨 있고, 그 안에 용이 표현되어 있다

 

 

정교하게 설계된 무령왕릉

 

 

무령왕릉 입구

 

 

무령왕릉 현실 내부
묘실 전체를 벽돌로 만든 벽돌무덤으로 널방은 남북 4.2m · 동서 2.72m · 높이 3.1m의 남북으로 긴 장방형 평면으로
남북의 짧은 벽은 수직으로 동서의 긴벽은 상단에서 점차 오므려 쌓아 터널형 천정을 구성하고
남쪽 중앙엔 널길이 조성되어 凸자형 단실 구조를 갖고 있다

 

 

동감
문양벽돌로 쌓아 만든 묘실 내부에 등잔을 놓을 동감 시설을 갖추었다

 

 

무령왕릉

 

 

송산리고분군전시관 출구
*
(2021.10.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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