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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야기

옥천 구읍

옥천 구읍은 옥천 9경 중 제 9경으로 경부선 철도(옥천역)가 현재 위치에 생기기 전
장터가 열리고 각종 문화행사가 열리던 옥촌의 옛 시가지로
정지용 생가 · 육영수 생가 · 옥천향교 · 옥주사마소 등 옛 중요 건축물이 있다
*
옥천군의 관광 거점으로 거듭나고 있어
커피숍은 물론 도토리묵밥 · 쌉밥 · 전통 한식 · 곤드레밥 · 생선국수 등 맛집도 많다

 

정지용문학관 · 지용생가 포토존

 

 

정지용 생가
오른쪽은 1자형 창고다

 

 

오른쪽 방
정지용 시인 사진 · 시 「호수」가 있고
한약을 보관하는 장은 아버지가 한약방을 하였음을 알려준다

 

 

얼룩백이 황소는 아니지만 생가 마당에 있다

 

 

정지용문학관
시인 정지용 상이 있다

 

 

향수
전시실 왼쪽에 있다

 

 

정지용 시인의 삶과 문학 · 시대적 상황
1902년 5월 15일 충북 옥천군 옥천면(지금 옥천읍) 하계리에서 부친 정태국과 모친 정미하의 장남으로 출생, 1913년 12살의 나이로 결혼하였다
옥천공립보통학교와 휘문고보를 거쳐 도시샤(同志社)대학 영문과를 졸업했다
휘문고보 다닐 때부터 습작 활동을 시작하여 1922년 「풍랑몽」을 쓰면서 시인의 길로 들어섰다
「시문학」 · 「구인회」 등의 문학 동인과 「가톨릭 청년」 · 「문장」 등의 편집위원으로 활동하였다
그리고 휘문고보 교원을 거쳐 해방후에는 이화여전 교수 · 경향신문 주간 · 조선문학가동맹 중앙집행위원 등을 역임하였다

 

 

전시실
정지용은 섬세하고 독특한 언어를 통해 대상을 선명히 묘사하여 한국 현대시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시인이다
주요 시집으로 정지용 시집 · 백록담 · 산문집으로 문학독본 · 신문 등이 있다

 

 

옥천전통문화체험관
다양한 전통문화체험 프로그램과 한옥 숙박 등 풍성한 즐길거리와 한옥의 멋이 가득하다

 

 

옥천 교동리 비석군
구읍 지역은 조선시대 옥천군 관아가 있던 곳으로
1917년 경부선 철도가 통과하는 옥천읍 삼양리로 군청을 이전하면서 구읍이 되었다
*
조선시대 옥천군을 다시렸던 군수 및 관찰사 등의 선정을 기리기 위해 세운 선정비로 16기가 있다

 

 

느티나무 보호수
나무 높이 16m · 둘레 5.2m · 나이 370년 · 지정일자 1982. 11. 19
*
춘기에 잎이 많이 피면 풍년이 들고 적게 피면 가뭄이 든다고 전해지며
매년 풍년을 기원하는 대보름제를 올리고 있다

 

 

대청호오백리길 안내판
정자에 붙어 있다

 

 

옥천향교(충청북도 유형문화제 제97호) 명륜당
향교 건물의 배치는 전학후묘로 하여 앞에는 유교교육을 위한 강당인 명륜당과 동재 · 서재가 있다
*
옥천향교는 조선 태조 7년(1398)에 처음 지었다
명륜당은 세종 22년(1440)에 지었으며, 임진왜란 때 불탄 후 다시 세웠다
그후 여러 차례 수리하여 오다 오늘의 모습을 갖추었다
부속 건물로 기숙사인 홍도당과 관리인의 거처인 고직사 등이 있다

 

 

대성전
뒤편에는 내삼문과 문묘인 대성전과 동무 · 서무가 있어 공자를 비롯한 성현들의 위패를 모시고 봄 · 가을로 제사를 지낸다
그러나 갑오개혁으로 근대교육이 실시되자 점차 교육 기능은 없어지고 문묘의 제사만 남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연밭
육영수 생가 앞에 있다

 

 

연꽃

 

 

옥천 육영수 생가(충청북도 기념물 제123호)
육영수 여사가 1925년 태여나 1950년 박정희 전 대통령과 결혼하기 전까지 살았으며 흔히 「교동집(校洞宅)」이라 불려졌던 옥천지방의 명문가이다
1600년대부터 삼정승(김 정승 · 송 정승 · 민 정승)이 살았던 집으로 1894년에 전형적인 충청도지역 상류주택 양식으로 축조되었다
그 이후 1918년 육 여사의 아버지 종관 씨가 매입하여 건물의 기단을 높여 개축하였는데
각기 독립된 아랫집 · 큰집, 윗집 · 사당 영역으로 구획하고 담장 · 협문 · 부속건물로 적절히 배치하였다
*
1969년 본래의 모습과 다른 현대식 한옥으로 개축되어 오랫동안 방치하여 퇴락되었고, 1999년 철거되었다
2002년 4월 26일 이 생가터가 충청북도 기념물 제123호로 지정되었고
2004년 12월 안채 복원공사를 시작으로 수차례의 발굴과 자문회의 등 고증을 거쳐
2010년 5월 안채 · 사랑채 · 위채 · 사당 등 건물 13동과 부대시설의 복원공사를 완료하였다

 

 

연당사랑
연못을 바라보며 풍류를 즐기기 위해 마련된 공간으로 정면 3칸 규모로 전면에 툇마루가 구성되어 있고
내부는 모두 우물마루로 되어 있으며 교동가옥 내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장소로 많은 시간을 보낸 곳이라 전한다
연못에는 희귀한 수종의 나무와 연꽃이 있었다고 하며 겨울에는 가족들이 스케이트를 타기도 하였다고 한다

 

 

사당 · 위채
왼쪽 아래쪽에 석빙고가 있다

 

 

안채
육 여사가 태여나 출가하기 전까지 생활하였던 곳으로 안방에는 어머니 이경령 여사
골방에는 육 여사 · 동쪽 날개채 안사랑은 아버지가 주로 거주하였다
안방에 서쪽에 부엌이 있으며 부엌의 상부에는 안방에서 사용하는 커다란 누다락이 있다
안채는 ㄷ자형의 구조로 몸체는 정면 2칸의 안방과 정면 2칸의 대청으로 구성되며 전면에는 툇마루가 있고, 대청마루는 우물마루로 되어 있다
이와 같이 몸채와 날개채를 구분하는 구성은 조선시대 후기 반가의 전형적인 공간구성 양식 중의 하나이다

 

 

약혼식 사진

 

 

결혼식 사진

 

 

어머니 이경령 여사 환갑잔치 사진

 

 

옥천 옥주사마소(沃川 沃州司馬所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57호)
사마소는 조선 중기 이후 지방의 고을마다 생원과 진사들이 모여 친목과 학문 · 정치 · 지방 행정의 자문 등을 논하던 곳이다

 

 

옥천 옥주사마소(沃川 沃州司馬所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57호)
그러나 점차 압력단체로 발전하여 폐단이 컸으므로 선조 36년(1603)에 없앴으나 지방에 따라 그 폐단이 지속되기도 하였다
옥주사마소는 효종 5년(1654)에 의창을 뜯어다가 지었다
당 안에는 관성사마안 · 향약계안 ·  옥천군향약계규약 등 지방 문인들의 활동상을 알려주는 고문서들이 여러 편 있다

 

 

옥천 옥주사마소(沃川 沃州司馬所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57호)
정면 5칸 · 측면 2칸의 홑처마 및 맞배지붕 건물로 4칸의 툇마루를 두고
그 뒤로는 오른쪽 마루 왼쪽에 온돌방 · 부엌을 두었다

 

 

옥주사마소(沃州司馬所) 현판

 

 

옥천 옥주사마소 앞 벽화거리다

 

 

GPS로 확인하니
걸은 거리 3.6km, 소요시간 1시간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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