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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야기

옥천 육영수 생가

옥천 육영수 생가(충청북도 기념물 제123호)
육영수 여사가 1925년 태여나 1950년 박정희 전 대통령과 결혼하기 전까지 살았으며 흔히 「교동집(校洞宅)」이라 불려졌던 옥천지방의 명문가이다
1600년대부터 삼정승(김 정승 · 송 정승 · 민 정승)이 살았던 집으로 1894년에 전형적인 충청도지역 상류주택 양식으로 축조되었다
그 이후 1918년 육 여사의 아버지 종관 씨가 매입하여 건물의 기단을 높여 개축하였는데
각기 독립된 아랫집 · 큰집, 윗집 · 사당 영역으로 구획하고 담장 · 협문 · 부속건물로 적절히 배치하였다
*
1969년 본래의 모습과 다른 현대식 한옥으로 개축되어 오랫동안 방치하여 퇴락되었고, 1999년 철거되었다
2002년 4월 26일 이 생가터가 충청북도 기념물 제123호로 지정되었고
2004년 12월 안채 복원공사를 시작으로 수차례의 발굴과 자문회의 등 고증을 거쳐
2010년 5월 안채 · 사랑채 · 위채 · 사당 등 건물 13동과 부대시설의 복원공사를 완료하였다

 

아래대문채

 

 

솟을대문
곳간채가 오른쪽에 붙어 있다

 

 

사랑채 · 창고
대문을 들어서 왼쪽 편이다

 

 

연당사랑
연못을 바라보며 풍류를 즐기기 위해 마련된 공간으로 정면 3칸 규모로 전면에 툇마루가 구성되어 있고
내부는 모두 우물마루로 되어 있으며 교동가옥 내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장소로 많은 시간을 보낸 곳이라 전한다
연못에는 희귀한 수종의 나무와 연꽃이 있었다고 하며 겨울에는 가족들이 스케이트를 타기도 하였다고 한다

 

 

중문채
동네사랑으로 20여 명 정도의 사람이 앉을 수 있는 규모의 방이었으며
이 가옥에서 일하던 사람들 및 동네사람들이 모여 담소를 즐기기도 하였고 겨울철에는 새끼를 꼬기도 하던 온돌방이다

 

 

사당 · 위채
왼쪽 아래쪽에 석빙고가 있다

 

 

석빙고
여름에 음식을 보관하기 위하여 광처럼 파고 그 위에 시멘트를 덮어 씌웠던 것으로 일종의 냉장시설이다
입구는 반원 형태로 한 사람이 드나들 정도의 크기이다

 

 

위채
전형적인 "□"자형의 구조로 안채에서 통행할 수 있는 진입로이며 동쪽에는 외부에서 직접 진입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교동가옥의 가장 후면에 위치하고 있으며 공간구성은 안채와 거의 유사하여 정면 2칸의 안방 · 정면 2칸의 안대청이 있고 전면에 툇마루가 설치되어 있다
안방의 서쪽에는 부엌이 있고 부엌의 상부에는 누다락이 구성되어 안방에서 사용하였으며 함실부엌과 연속되는 날개채에는 행랑과 식모방이 있다

 

 

정자로 오르는 계단

 

 

사랑채 뒷편
안채로 가는 협문 옆에서 봤다

 

 

창고
협문을 들어서서 봤다

 

 

안채
육 여사가 태여나 출가하기 전까지 생활하였던 곳으로 안방에는 어머니 이경령 여사
골방에는 육 여사 · 동쪽 날개채 안사랑은 아버지가 주로 거주하였다
안방에 서쪽에 부엌이 있으며 부엌의 상부에는 안방에서 사용하는 커다란 누다락이 있다
안채는 ㄷ자형의 구조로 몸체는 정면 2칸의 안방과 정면 2칸의 대청으로 구성되며 전면에는 툇마루가 있고, 대청마루는 우물마루로 되어 있다
이와 같이 몸채와 날개채를 구분하는 구성은 조선시대 후기 반가의 전형적인 공간구성 양식 중의 하나이다

 

 

연자방아

 

 

아래대문채

 

 

아래채
ㄱ자형 평면으로 툇마루와 후면에는 쪽마루로 구성되어 있다
조선 후기 가옥 중 안채의 평면 유형을 따랐다

 

 

뒤주

 

 

안채
육 여사의 사진이 놓여 있다

 

 

가족사진(청와대)

 

 

약혼식 사진

 

 

결혼식 사진

 

 

어머니 이경령 여사 환갑잔치 사진

 

 

옥천 육영수 생가 안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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