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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야기

강화나들길 2-A코스(호국돈대길)

강화나들길은 우리나라 역사의 집약체이며 생생한 역사의 현장인 이 땅에
선조가 심어놓은 학문과 역사의 지혜를 마음으로 새기고 몸으로 느끼며 걷는 도보여행길이다
*
「호국돈대길」로 불리는 강화나들길2코스는 외국과의 충돌에 대비하기 위해 만든 돈대와
조선 말 병인양요 · 신미양요에 이르는 민족의 자긍심과 국난극복의 의지가 서린 강화도 전적지를 살펴보는 길이다
코스는 A · B · C코스로 나누어 놓았는데  총거리 17km · 소요시간 5시간 50분이다

현대아파트버스정류장
시점이다

 

 

느티나무 보호수
나무 높이 40m · 둘레 4.5m · 나이 323년 · 지정일자 1982. 10. 15

 

 

갑곶돈대 안내판
강화나들길 2코스(호국돈대길) 시점인 갑곶돈대로 가는 길이다
죽산 조봉암 선생 추모비가 왼쪽에 있다

 

 

죽산 조봉암 선생 추모비(竹山 曺奉岩 先生 追慕碑)
죽산은 1899년 9월 25일 경기도 강화군의 빈농 집안에서 태어났다
일제시기 사회주의 항일운동을 하였으나, 광복 후 대한민국 건국에 참여하였고 초대 농림부장관과 국회부의장을 역임하였다
1958년 1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체포되어 1959년 7월 사형이 집행되었으나  2011년 1월 대법원의 무죄판결로 복권되었다

 

 

강계포수전첩기념비(丙寅洋搖江界砲手戰捷紀念碑)
조선 고종(高宗) 대 대원군의 천주교 박해로 자기나라 신부 九명이 참형된데 대한 응징을 구실로
불란서는 군함 7척으로 편성된 대함대로 우리나라를 침공 먼저 강화도에 상륙 공격하여 왔다
이곳 정족산성(鼎足山城)에 포진하고 있던 순무사 천총(巡撫使 千聰) 양헌수(梁憲洙) 휘하의 정예부대 강계포수(江界砲手) 5백 명은
밀려드는 불란서군을 맞아 일기당천의 기세로 신명을 바쳐 분전하니 적은 대패하여 황망히 물러갔다
때는 1866년 10월 19일이다
이렇게 위급한 국난을 물리친 강계포수의 철석같은 충절과 불같은 용맹
그리고 혁혁한 공훈을 만세(萬世)에 현양하고 이를 영세토록 기리고자 그들의 후손인 강계군민들이 마음을 모아 여기 이 비를 세운다

 

 

연기우(延基羽 미상~1914) 의병장 공적비
연기우는 일명 민우, 경기도 양주군 구리면 인창리에서 성장하였다
약관에 큰 뜻을 품고 국가의 간성(干城)이 되고자 군에 들어가 강화 진위대 부교로 있다가 1907년 8월 한국군이 일제에 의해 강제 해산 당하자
같은 진위대의 부교인 지흥윤 · 유명규 · 이동휘 · 김동수 등과 강화 전등사에 모여 의병 모집을 밀회하고 의병을 일으켜
강화도에서 여러 차례 일본군을 격파하였으나 증원 받은 일본군 공격에 격퇴 당하고 말았다
그 후 다시 의병을 모아 동한 창의대장이 되어 경기도 연천 · 적성 · 삭녕 · 마전 · 장단 등지에 출몰하여
양주 · 포천 지역의 강기동과 연합하여 일본군 수비대와 경찰을 끊임없이 공격하였다
1907년 12월 결성된 13도 창의대진소에 들어가 서울 진공 작전에 참가하였고
그 후 창의한북대장이 되어 다시 의병을 이끌고 고양 · 연천 · 마전 · 삭녕 · 강화 교동 방면에서 일본군과 치열하게 싸웠고
1910년 구월산 · 지리산 등지에서 유격전을 전개하여 큰 전과를 올렸다
1914년 일본군의 끈질긴 추적으로 체포되어 장렬히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1962년 건국훈장 복장을 추서했으며 동작동 국립현충원 애국지사 묘역 위패실과 서대문 독립공원 독립관에 영현이 모셔져 있다

 

 

강화나들길 2코스 호국돈대길 안내판
2코스 시점인 갑곶돈대 앞에 있다

 

 

강화나들길 2-A 시점 아치
2-A코스는 갑곶돈대부터 화도돈대까지 6km의 길이다

 

 

갑곶돈대
동락천 갑곶교를 건너며 봤다

 

 

강화 나들길 제2코스
갑곶돈대부터 초지진까지 염하강을 끼고 걷는 길이다

 

 

더리미포구로 가는 길
진달래꽃도 지고 벚꽃도 떨어진 길이다

 

 

순국(殉國) 터
1907년 8월, 일제에 의해 한국군대(강화진위대) 강제해산으로 강화의병이 일어나자
일본군은 주모자로 잠두교회(현 강화중앙교회) 교인 김동수 권사 · 동생 영구 성도와 그의 4촌 김남구 권사를 주모자로 몰아 체포하였다
그런데 일본군이 김동수 권사 3형제 재판을 위해 포승줄로 꽁꽁 묶은 채 서울로 압송하는 도중
이곳 더리미 해변에서 뒤에서 긴칼로 후려 쳐 즉결 처형하였다

 

 

생선요리점
강화 더리미장어마을 앞이다

 

 

문수산
강화대교 너머에 있다

 

 

억새와 갈대 특징 안내판

 

 

염하강 건너 포내리 방향이다

 

 

도래미마을 안내판
강화군 선원면에 위치한 도래미마을은 대몽항쟁 당시 팔만대장경의 판각을 맡았던 선원, 군사요충지로서
중요한 역할을 한 용진진 · 화도돈대 · 용당돈대 그리고 장어요리로 유명한 더리미장어마을 등 문화 · 역사 · 자연이 한데 어우러진 농촌마을이다
도래미마을의 명칭은 島(섬 도) · 來(올 래) · 美(아름다울 미) 자로 다시오고 싶은 아름다운 섬이라는 뜻을 지닌 마을 명칭이다

 

 

더리미마을을 지난다

 

 

문수산 왼쪽 방향이다

 

 

문수산 오른쪽 방향이다

 

 

용진진 참경루 · 좌강돈대
용진진 관할 하에 있던 돈대로 용진진과 성벽으로 연결되어 있다
효종 7년(1655)에 쌓았으며 중앙우부좌사의 중앙초소로 돈대 면석이 1~2단 남아 있던 것을 1999년 용진진과 함께 복원 정비하였다
서쪽으로 출입문이 만들어져 있고 동쪽으로 포문이 배치되어 있다

 

 

용진진 참경루(龍津鎭 斬鯨樓)
가리산돈대 · 좌강돈대 · 용당돈대 등 3개 돈대를 관리하던 곳으로 홍예 2개만 남아 있던 문루를 1999년 복원하여 참경루라는 편액을 달었다

 

 

좌강돈대
이곳에서 이동식을 했다

 

 

문수산
좌강돈대에서 봤다

 

 

평화누리길(DMZ길)
염하강 건너 평화누리길 1코스가 보인다

 

 

2코스 숲길
갑곶돈대에서 4km를 지난 지점이다

 

 

강화나들길
함민복 시인의 감성글판이 자주 나온다

 

 

용당돈대
조선 숙종 5년(1679) 강화도 해안방어를 목적으로 쌓은 49개 돈대 중 하나로 가리산돈대 · 좌강돈대와 함께 용진진에 소속되어 있다
평면형태는 타원형이며 북서와 남동방향은 강화외성과 연결되어 있다
이 돈대는 4개 포좌가 설치되어 있으며 내부에는 건물지가 남아 있다

 

 

용당돈대에서 바닷가로 나가는 길이다

 

 

김포씨사이드CC 방향이다

 

 

평탄한 둑길을 걷는 빅터

 

 

타래붓꽃 안내판
마침점까지 11.9km 안내목이 옆에 있다

 

 

김포 고양리
염하강 건너로 보인다

 

 

평탄하고 한가한 둑길이다

 

 

화도돈대(花島墩臺 인천광역시 문화재자료 제17호)
병자호란 후 강화도 해안지역의 방어를 튼튼히 하기 위하여 해안선을 따라 축조한 강화 53돈대 중 하나로
1679년(숙종 5)에 강화유수 윤이제가  어영군 2천여 명과 경기 · 충청 · 전라 3도 승군(僧軍) 8천여 명을 동원하여 쌓았다
강화도의 돈대는 53개 중 49개가 병자호란 43년 후인 숙종 5년에 만들어졌다

 

 

화도돈대

 

 

화도돈대
강화나들길 2-A코스 마침점이자 2-B코스 시점이다
*
2-B코스를 이어 걸었다

 

 

GPS로 확인하니
걸은 거리 19.2km, 소요시간 7시간 31분
*
2-A · B · C코스를 이어 걸었기에 GPS 사진이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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