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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야기

정난종주택~정난정 묘~갈치저수지

군포 동래정씨 동래군파 종택(경기도 문화재자료 제95호) · 정난종 재실(경기도문화재 제115호)

정난종 일가 묘역(경기도 기념물 제115호)을 둘러보고 갈치저수지를 한 바퀴 돌았다

 

 

군포 동래정씨 동래군파 종택(경기도 문화재자료 제95호)

동래부원군 정난종의 사당이 있었던 종갓집이다

조선 전기 문신 정난종의 손자 정사룡(1494~1570)이 할아버지 무덤이 있는 곳으로 이주하면서 후손들이 이 마을에 대대로 살고 있다

이 종택은 중앙에 ㄱ자로 안채를 배치하고 주변에 큰사랑채와 작은사랑채를 두었으며 남쪽으로 곳간인 광채를 배치하였다

북쪽에 신주를 모시는 사당이 있고, 남쪽에는 마굿간인 마방채를 두었다

사람의 생활공간을 중심에 두고 주변에 제례를 준비하거나 손님의 이동을 맞이하는 공간을 배치하여 기능성이 엿보인다

동래군파 종택의 안채는 상량문에 의하면 정조 7년(1783)에 세워지고 사랑채는 고종14년(1877)에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

큰사랑채 좌우로 마방채 · 작은사랑채가 있다

 

 

 

 

안채

오른쪽 큰사랑채 굴뚝에서 연기가 나온다

 

 

 

 

사당

 

 

 

 

군포 동래정씨 동래군파 종택

뒷담에서 봤다

 

 

 

 

정난종 재실(경기도문화재 제115호)

종택에서 정난종 일가 묘역으로 가는 길에 있다

 

 

 

 

정난종 재실 삼문

 

 

 

 

성달재(省達齋)

세조 2년(1456)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승문원부정자를 거쳐

검열 · 대교 · 감찰 · 이조좌랑을 지낸 정난종과 아들 정광필의 혼백을 모신 재실이다

*

재실 지킴이가 없어 들어갈 수 없다

 

 

 

 

속달동

군포 동래정씨 동래군파 종택이 있는 마을이다

재실 앞에서 봤다

 

 

 

 

속달약수터

 

 

 

 

정난종 일가 묘역(경기도기념물 제115호)은 조선 전기의 문신인 정난종과 그 후손의 무덤이다

정난종 부부의 무덤은 하단에 위치하고, 장남인 정광보의 무덤이 있으며, 차남인 정광필의 무덤이 상단에 있다. 그 외 여러 후손의 무덤이 남아 있다

정난종(鄭蘭宗 1433~1489)은 세조와 성종 연간에 활동한 훈구파의 중요 인물이며, 황해도 관찰사로 있을 때 이시애의 난을 평정하였다

서예에도 뛰어나 금속활자인 을유자의 바탕글씨를 썼다

그의 아들 정광보(鄭光輔 1457~1524)는 연산군에게 간언하였다가 길주에 유배되었고, 중종 때 창원부사에 임명되었다

정광보의 아우 정광필(鄭光弼 1462~1538)은 중종 연간에 활약한 인물로 1519년 기묘사화 때

조광조를 구하려다 좌천된 후 중종반정 이후 영의정까지 올랐다

정난종 · 정광보와 정광필은 조선 전기 문신이자 대표적인 재상 일가로 무덤의 인물을 알려주는 신도비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정난종의 신도비는 상단의 용무늬(螭首)가 화려하게 조각되어 있으며, 정광필의 신도비는 이황이 비문의 글씨를 써 그 위상을 드러낸다

각 무덤에는 장명등과 묘표 · 문인석 등을 배치하여 조선 전기 사대부 무덤의 특징을 살펴 볼 수 있다

 

 

 

 

정난종 일가 묘역 신도비각

아래부터 정난종(동래군) · 정광보(창원군) · 정광필(문익공) 신도비각이다

 

 

 

 

정난종 신도비각(鄭蘭宗 神道碑閣)

상단의 용무늬(螭首)가 화려하게 조각되어 있으며, 정광필의 신도비는 이황이 비문의 글씨를 써 그 위상을 드러낸다

정난종이 북방 오랑캐를 슬기롭게 물리치고 북방을 잘 지킨 내용이 적혀 있다

비문(碑文)은 남곤(南袞 1471~1527)이 찬(讚)하고 강징(姜徵 1466~1536)이 썼다

위쪽의 이수는 두 마리의 용이 여의주를 놓고 싸우는 모양이며 그 밑으로 운문이 장식되어 있다

 

 

 

 

봉해군 정진원(蓬海君 鄭震遠 동래정씨 19세 봉산군의 장자) 부부 묘

 

 

 

 

동래군 정난종(東萊君 鄭蘭宗) · 정부인 완산이씨(完山李氏) 묘

조선 초기 문신으로 이조 · 공조판서 등의 관직을 거친 훈구파(勳舊派)의 거두다

특히 초서와 예서를 잘 썼으며, 자는 국형(國馨) · 호는 허백당(虛白堂) · 본관은 동래(東萊) · 시호는 익혜(翼惠)다

묘역에는 석등과 두 쌍의 문인석이 있다

보통은 한 쌍의 문인석만 있는데 두 쌍인 것은 성종 17년(1486)에 사망한 부인 묘에 문인석을 세웠다가

성종 20년(1489)에 선생이 돌아가시자 좀 더 큰 크기의 문인석을 세운 것이라 추측 된다

묘비에 익혜공(翼惠公)의 시호는 돌아가신 후 임금께 받은 것이다

묘(墓)는 부인과 쌍분(雙墳)으로, 1486년(성종17)과 1489년에 각각 조성하였다

 

 

 

 

정광보의 묘 뒤에서 봤다

멀리 갈치저수지가 보인다

이곳 묘역은 우리나라 100대 명당 중 한 곳이다

 

 

 

 

갈치저수지로 가는 길이다

 

 

 

 

정난종 재실 앞이다

 

 

 

 

갈치저수지 수문교

 

 

 

 

갈치저수지 둑을 걷는 빅터

 

 

 

 

수리산

군부대가 있는 봉이다

 

 

 

 

수리산

조금 가까이 봤다

 

 

 

 

갈치저수지

왼쪽 수리산 · 오른쪽 속달동 음식점이 있는 곳이다

 

 

 

 

원앙 한 쌍이 가까이 지난다

 

 

 

 

수제 피자점 이백을 지난 곳이다

 

 

 

 

쉼터

수리산임도로 가는 길이 왼쪽에 있다

 

 

 

 

갈치저수지

피자집 이백이 있는 곳이다

 

 

 

 

갈치저수지

둑 반대편에서 봤다

 

 

 

 

GPS로 확인하니

걸은 거리 3.4km, 소요시간 3시간 14분

(2021, 0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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