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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이야기

인천둘레길11코스(연탄길)

인천둘레길은 「단절된 녹지축을 살린다」는 취지로 한남정맥 줄기인 계양산을 시작으로

천마산 · 원적산 · 함봉산 · 만월산 · 만수산 · 관모산 · 문학산 · 연경산 · 노적봉 · 청량산으로 이어지는 S녹지축을 연결하는 코스다

일상에서 자연을 벗 삼아 여가생활을 하고 더불어 우리지역의 자연생태환경과 문화를 알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코스다

*

11코스는 도원역에서 인천기독교 사회복지관 · 창영초등학교 · 도국산을 거쳐 동인천역까지로

추억의 달동네 골목길을 걷는 길로 길이 5.2km · 소요시간 2시간으로 나와 있다

 

 

도원역 1번출구

1896년 3월 22일 인천 우각현이란 이름으로 경인철도의 첫 삽을 뜬 곳이다

시점이다

 

 

 

 

한국 철도 최초 기공지 비

1897년 인천부 우각현에서 가진 한국 철도 최초 노선인 「경인선 철도 기공식」을 기념하는 기념비로

1825년 세계 최초로 영국에서 철도를 개통된지 72년 만의 일이다

비록 우리 기술은 아니지만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우리 민족의 아픔을 지켜보면서

서민들의 온갖 사연과 애환을 실어날랐음을 전해주는 철도의 기공지 비다

원래 위치는 지금의 동쪽으로 400여 미터 지점에 있는 석정로삼거리 부근이다

 

 

 

 

옛 전도관(인천예수중심교회)

 

 

 

 

석정로 107번길 들머리

 

 

 

 

석정로107번길

도원역 서희스타힐스크루즈시티아파트가 건설 중이다

 

 

 

 

우각역 (지금의 넥센타이어)

1897년 인천부 우각현에서 가진 한국 철도 최초 노선인 「경인선 철도 기공식」을 한 곳이다

우각역은 주위에 민가가 없었기 때문에 오로지 알렌만을 위한 역이었다

그가 미국으로 돌아가고 선로가 직선화되면서 역은 존재가치가 없어져 1906년 사라진다

 

 

 

 

경인철도 기공식(1897, 3, 22)

우각역(지금 석정로삼거리 넥센타이어 자리)에서 있었던 철도기공식이다

 

 

 

 

새천년로 5번길

새로운 건물들이 포위해 들어오는 듯하다

 

 

 

 

가파른 언덕을 오르며 보니 모두 빈집이다

 

 

 

 

진로아파트 · 극동아파트

석정로를 사이에 두고 있다

 

 

 

 

광해리드빌아파트

 

 

 

 

드라마 보이스 촬영지

장혁 · 이하나가 출연했던 OCN 드라마다

 

 

 

 

우각로문화마을

 

 

 

 

오제건강마음센터

 

 

 

 

입체로 만들어진 나무와  쉼터

 

 

 

 

우각로 문화마을 사무실

행복창작소 문패를 달고 있다

 

 

 

 

진돗개가 더위에 지친 듯하다

 

 

 

 

능소화가 핀 사진가의 집

 

 

 

 

옛 전도관(인천예수중심교회)

1890년에는 선교사이자 의사로서 초대 주한 미국공사를 지낸 알렌의 2층 별장이 자리잡고 있었다

1907년 알렌은 미국으로 귀국했고 그 자리를 이완용의 아들 이명구가 차지했다

1927년에는 이화여전 출신의 이순희 남매가 계명학원을 세웠다

광복 직후에는 서울의 한 대학 분교가 개교하기도 했다

1957년 10월 박태선 장로가 대표로 있던 한국예수교전도관부흥협회가 공사집 · 선교사 집으로 불리던 건물을 헐고 그 자리에 전도관을 세웠다

그후 신발공장과 예루살렘교회가 들어왔었으나 지금은 비어있다

*

코스는 아니나 잠시 들렸다

 

 

 

 

영화 은밀하게 위대하게

옛 전도관 문 앞에 있다

 

 

 

 

포토그래퍼의 집 골목을 따라간다

 

 

 

 

동요가 그려져 있는 골목이다

꼬마눈사람 · 토끼야 · 새나라의 어린이 · 송아지 · 동동 동대문을 열어라~♬ 등의 동요 그림이 있다

 

 

 

 

천도교 인천교구

동요 골목을 나와 다시 천도교 왼쪽 골목으로 간다

 

 

 

 

도원역사거리

지붕이 보이는 도원역 앞에 있다

 

 

 

 

인천둘레길 안내판

천도교 골목에서 안내판을 따라 내려오면 도원교와 인천세무서 사이다

 

 

 

 

창영떡집

6 · 25전쟁 후부터 할머니부터 아버지 · 손자까지 이어온 3대 떡집이다

강화 교동에서 생산된 쌀과 찹쌀로 떡을 만든다

 

 

 

 

인천세무서

1893년 선교기지를 세우기 위해 이 일대의 땅을 매입해서 남자선교사 사택을 지었다

존슨목사는 이곳을 에스베리동산이라 불렀다

 

 

 

 

1905년에 건축된 여선교사 기숙사

1897년 미 북감리회 선교사 존스는 한국 서지방(인천 · 강화 · 남양 · 황해도 연안 등) 선교를 위한 선교기지를 우각리에 세웠다

1895년 600달러를 들여 우각리 38번지와 42번지 일대를 매수하였고

1897년 7월 뉴욕주 감리교 감독인 휴즈 목사의 재정지원을 받아 벽돌조 1층 건물을 건축하고

이 건물의 명칭을 미국 최초로 감리교를 선교한 에스베리 목사처럼 기독교 불모지인 한국 서지방을 선교하고자

에스베리목사관(지금 창영교회 자리)이라 정하고 교세확장에 노력하였으며 1900년에는 한국 최초의 신학 월간지인 「신학월보」를 발간하기도 하였다

또한 1900년 6월에는 제물포교회(지금의 내리교회)의 구 예배당의 건축자재를 재활용해

우각리에 에스베리 예배당을 건축해 제물포교회의 임시예배처로 사용하였으나 1902년 원인모를 화재로 건물이 소실되었다

 

 

 

 

인천기독교 사회복지관(유형문화재 제18호)

그렇지만 그 터전 위에 1904년에는 2층 규모의 아담한 남선교사 숙소(지금의 인천세무서 자리)를 1905년에는 여선교사 기숙사를 건축하여

미국인선교사 숙소뿐만 아니라 인천 · 부평 · 부천 · 강화 등 도서지역의 교회지도자들을 교육하는 장소로

이곳의 성경교육을 통해 각 지역의 선교를 확장시키는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였다

 

 

 

 

동인천예배당

예배당이란 말이 어울리는 듯하다

 

 

 

 

금창동행정복지센터

이곳에서 창영초등학교 방향으로 올라간다

 

 

 

 

창영초등학교(인천지방 유형문화재 제16호)

1907년 4월 보통학교령에 의하여 개교된 인천 최초의 보통학교다

빨간 벽돌의 교사는 당시 교육을 열망하는 조선인 유지들이 모금한 2만 원을 밑걸음으로 1922년 완공했다

류현진의 모교답게 야구 그물과 라이트시설 등이 있다

 

 

 

 

3 · 1독립만세운동 인천지역발상지 기념비

그 당시 인천 유일의 공립보통학교 고학년 학생들이 항일동맹휴학을 일으키고 일부 주동학생들이 거리로 나와 독립만세를 외쳤고

학교와 인천경찰서간의 연락을 차단할 목적으로 전화선을 절단하여 주동학생들이 옥고를 치뤘다

 

 

 

 

배다리역사문화마을 근대역사문화회랑

배다리시장 · 인천양조장 · 조선인촌(주) · 한국철도발원지 등이 있다

*

창영초등학교 담이다

 

 

 

 

배다리시장(해방 직후 모습)

조선인의 삶의 터전 배다리와 배다리시장이다

배다리라는 명칭은 바닷물이 통하여 배가 드나들었던 갯골 주변을 지칭하는 말로 지금의 배다리삼거리와 사거리 일대를 가르킨다

1883년 개항 이후 외국인들이 조계지에 들어서자 거주지를 잃은 조선인들은 이 일대로 터전을 옮겨와 마을을 형성했다

사람들이 모여들자 자연스럽게 상권이 형성되기 시작했고 그에 따라 20세기 초부터 배다리시장이 형성되었다

 

 

 

 

바람 부는 황토 언덕에 나무

이 부근 그림들이 개발로 많이 없어졌다

 

 

 

 

한점으로부터 · 마을사진관 다행 

 

 

 

 

복합문화공간 창영당

 

 

 

 

한 때 산업도로가 난다 했으나 아벨서점과 박의상실의 건의와 스페이스 빔이 이전해 옴으로

도로 개통은 무산되었으나 집을 철거한 곳은 공터로 남았다

암튼 그 자리에 농사를 짓는다

 

 

 

 

개코막걸리 · 지성문구사 · 박의상실 · 동성한의원이 있는 길이다

 

 

 

 

1960년대 인천양조장의 모습

인천양조장은 황해도 출신 상공인 최병두가 세운 공장이다

최병두는 24세 때 인천에 정착하여 정미업을 하다가 1926년 여러 작은 막걸리공장을 합병하여 배다리에 인천양조장을 설립했다

1927년부터 가공하여 인천을 대표하는 향토 막걸리인 소성주를 생산했다

1920년대 인천에는 한국인 소유 양조장이 14개 · 일본인 소유가 7개가 있었다

1926년에 설립한 인천양조장은 인천 최초의 양조장으로 70여 년간 소성주를 빚었으나

1996년 술맛을 좌우하는 이 일대의 지하수 수질 저하로 청천동으로 이전하였다

 

 

 

 

인천문화양조장( 예전 인천 탁주의 발생지 인천양조장)

2003년부터 아벨서점이 전시관으로 활용하다, 2007년부터는 스페이스 빔이 공공미술프로젝트를 운영하면서

이 공간을 활용하여 양조장이었던 구조와 시설 · 흔적들을 살리고 남은 물건들을 모아 별도로 보관하여 방문객들에게 공개하고 있다

최근에는 건물 간판을 인천문화양조장으로 바꾸고 배다리 생태공동체마을 만들기 프로그램과

배다리전통주학교 프로그램 등 주민친화 및 지역공동체 형성을 위한 역활을 해가고 있다

 

 

 

 

배다리 헌책방거리

60년 역사의 배다리 헌책방거리의 한미서점은 TV N 드라마 「도깨비」 촬영지다

헌책방 거리는 6 · 25 전쟁 직후 폐허가 된 거리에 이동식 리어카 책방이 모여들면서 시작되었다

1960년대 서울 청계천에 이어 전국에서 두 번째로 큰 헌책방 거리가 형성되었다

 

 

 

 

대창서림

동인천 「대한서림」 다음으로 오래된 60년 역사의 집현전과 대창서림이다

 

 

 

 

영화 극한직업 촬영지(아울렛 팬시)

배다리 헌책방거리 터줏대감이자 시낭송 공간인 아벨전시관이 있는 「아벨서점」 맞은 편에 있다

 

 

 

 

영화 극한직업 포스터

수원왕갈비 간판을 건 곳이 아울렛 팬시점이다

 

 

 

 

대인상회(大仁商會)

일제강점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데 한 때 쌀을 크게 취급했었다고 전한다

 

 

 

 

토시살 숯불구이

대인상회 건물 1층으로 예약 손님만 받는 곳이다

한 때 토끼고기 등을 팔어 유명했었다

*

바로 옆 골목 경원만두에서 식사를 하려했으나 문을 닫었다

 

 

 

 

길조여인숙 · 성진여인숙 · 진도여인숙

60~70년대 전형적인 여인숙이 있는 골목이다

 

 

 

 

배다리성냥마을박물관

1917년 금곡동 32번지에 일본인에 의해 설립된 조선인촌주식회사는 우리나라 최초의 성냥공장으로

이곳은 한때 남녀직공 4백명이 연간 7만 상자의 성냥을 생산하여 국내 소비량의 20%를 공급할 정도로 호황을 누렸다

*

100년 전, 압록강 상류의 산림에서 벌목된 나무들은 강을 따라 뗏목으로 신의주까지 운송된 후 인천으로 이동되었기에

인천 동구에 성냥공장 · 대성목재 · 똥마당 등이 있는 이유다

 

 

 

 

조선인촌주식회사의 성냥 만드는 여공들

1921년 3월 하루 13시간 동안 1만 개의 성냥개비를 성냥갑에 담아야 하는 살인적인 노동과 저임금에 시달리던 여성노동자들은

민족적 저항의식과 결합하여 동맹파업을 일으키는데 이날의 파업은 인천 최초 여성노동자들에 의한 노동쟁의로 1920년대 노동운동의 도화선이 되었다

조선인촌(주)는 광복 이후에도 성냥 생산은 계속하였지만 시대의 변천에 따라 성냥 사용이 줄어들면서

점차 쇠퇴하였고 결국 1960년대에 접어들면서 폐업을 하게 되었다

그후, 조선인촌(주) 건물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현대식 건물(두손발당)이 들어서자

2019년 3월 동구청에서 그 옆에 있던 동인천우체국을 매입 리모델링하여 배다리성냥마을박물관을 건립하였다

 

 

 

 

수도국산을 관통하는 터널이지만 도로 건설의 무산으로 빈 공간이 되었다

 

 

 

 

송림동행정복지센터로 올라가는 길이다

 

 

 

 

수봉산

수도국산에서 봤다

 

 

 

 

향적사

대웅전 · 불골진신사리오층석탑이 있다

이 탑에는 인천지역 최초로 부처님의 진신사리 4과가 모셔져 있다

2001년 4월 13일 건립됐다

 

 

 

 

서흥초등학교 방향이다

 

 

 

 

유아숲 체험원을 지나 수국이 피어있는 길 앞에 「나무 뿌리가 하는 일」 알림판이 있다

그 중 뿌리는 종이를 물 속에 담그면 종이가 젖는 것처럼 물을 먹는데 1시간에 생수(2L) 20통을 먹는다는 내용이 놀라웠다

 

 

 

 

인라인스케이트장(잔디공원)

예전 배수지였던 곳이다

 

 

 

 

수도국산(송현)배수지 제수변실

배수관의 단수 및 유압조절 기능을 하는 제수 밸브를 보호하는 시설이다

제수변실 출입문 위에 「萬潤百凉(만윤백량)」은 「백 번 흐르면 만번 빛난다」는 뜻이다

 

 

 

 

수도국산(송현)배수지

일제는 인천에 거주하는 자기나라 거류민의 식수 · 군수공장 공업용수 · 인천항에 정박하는 기선에 물을 대기 위해

노량진에서 인천에 이르는 상수도 건설 공사를 약 4년 여의 공사 끝에  1910년 9월 마무리 했다

 

 

 

 

하늘생태공원

아이들이 어머니와 함께 흙을 가지고 놀고 있다

 

 

 

 

수봉공원 방향이다

 

 

 

 

만월산 방향이다

 

 

 

 

말타기 포토존

뒤로 눈이 매력적인 아이와 지게를 진 아이가 있다

 

 

 

 

수도국산 달동네박물관

1904년에 왜병이 전환국(지금 전동) 근처에 주둔하였는데 이 때 이곳 주민들을 강제로 철거시켜 송현동 산언덕에 새로운 주거를 정해 주었다고 한다

또 한국전쟁 이후 피난민과 산업화에 의해 모인 3천여 가구 사람들이 모듬살이를 한 곳으로

2005년 개관한 수도국산달동네박물관이 지난 역사를 대변하고 있다

 

 

 

 

용현엑슬루타워

수도국산 남쪽 방향으로 멀리 보인다

 

 

 

 

어영대장 신정희 동상

신정희(1833년 · 순조33~1895 · 고종32)는 조선 말기의 무신으로 자는 중원 · 호는 향농 · 본관은 평산으로 신헌의 아들이다

무과에 급제하여 1864년 승지 · 1867년 훈련원 도정 · 총융청 중군 · 이듬해 금군별장 · 1869년 부총관 · 1872년 어영청 중군 · 1875년 남병사

1877년 포도대장 · 이듬해 어영대장이 되어 고종황제의 명에 따라 외세의 침범에 대비하기 위해 인천에 포대를 설치하였으며

그 중 하나를 화도진이라 명명하고 서해안 방어를 맡게 해 군사 요충지로 삼았다

*

인천 동구청에서 이를 기리기 위해 매년 5월이면 화도진축제를 개최하고 신정희 어영대장 축성행렬을 하고 있다

 

 

 

 

동구를 빛낸 인물전 / 김찬삼

160여 국을 여행한 우리나라 최초의 배낭족이다

*

그밖에 박경리 · 황정순 · 김명진 · 김동수 등이 있다

 

 

 

 

순대골목

순대국밥집이 마주 보며 늘어서 있었으나 동인천역 북광장 조성사업으로 한쪽이 철거된 상태다

 

 

 

 

중앙시장 전통혼수거리 아치

이불가게와 한복집이 많은 중앙시장은 송현동 개천가에 노점들이 모여들어 밤늦도록 불을 밝히면서 형성된 야시장에

1936년 양철지붕을 얹어 「일용품시장」으로 변모하였는데 이것이 중앙시장의 시작이다

*

동인천역 북광장에 있다

 

 

 

 

동인천역

인천둘레길 마침점이다

인천둘레길 코스 · 지도 안내판이 옆에 있다

 

 

 

 

GPS로 확인하니

걸은거리 9.7km, 소요시간 4시간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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