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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횡단이야기

마북리석불입상

마북리석불입상(용인시 향토유적 제52호)

이 미륵석상은 조형상 장승이나 묘지의 문인석을 방불케하는 유물로서

보는 견해에 따라서는 장승의 일종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으나

이 석상이 있는 터에 석탑재가 남아있고 예부터 이곳을 용화전이라고 지칭해 온 것으로 미루어볼 때

비록 생긴 모양은 장승을 담긴 했으나 미륵으로 섬겨온 것임을 알 수 있다

경기도문화재총람에는 이 석상의 조성 시기를 조선시대 후기라고 기록하고 있는데

그보다는 좀더 이른 시기의 것으로 보는 것이 옳을 것 같다

왜냐하면 조선조 후기에 이런 불상을 조성한 예가 드문 반면

외사면 가창리 미륵상에서와 같이 크기나 치졸성에 있어서 비슷한 점이 있고

높은 이마나 어깨까지 내려앉은 귀의 모양 등에서 유사점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석인상, 장승 등 불상이 아닌 조각상을 미륵으로 예배 치성하는 경향은 임진왜란 이후 전국적으로 유행하였다

불상은 직육면체의 몸통에 높은 관을 쓰고 있고 얼굴은 장방형으로 턱 부분을 둥글게 처리하였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이후 널리 유행했던 마을 민간신앙의 일종으로

민간에게 치병, 기자, 마을의 수호, 기복 등의 역할을 하던 불상으로 여겨진다

상의 전체 높이 211.5cm, 머리높이 71.5cm, 어깨폭 51cm, 최대 측면 두께는 52cm이다

 

 

느티나무 보호수

나무 높이 10m · 나무 둘레 4m · 나무 나이 약 450년 · 지정일자 1988. 10. 15

그 옆으로 마북리석불입상이 봉안되어 있는 용화전과 석탑 그리고 선정비들이 있다

 

 

 

 

용화전(龍華殿)

석불입상이 봉안되어 있는 용화전 앞에 2열로 선정비들이 있다

 

 

 

 

용화전(龍華殿) · 마북리석탑(麻北里石搭 · 용인시 향토유적 제52호)

마북리석탑은 파탑(破塔)이 되어 쓰러져 있던 것을 수습하여 세운 것으로

쌓아놓은 석재 중에 다른 석재가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

양련이 조각된 1층 옥개석 위에 얹어져 있는 방형 석재는 대좌형 기단의 상대석으로 보이는데

상대석의 뒷면에 치석(治石)된 옥신괴임 폭이 1층 옥신의 폭보다 좁아 같은 석조물의 부재가 아닌 것으로 추정된다

 

 

 

 

마북리석탑(麻北里石搭 · 용인시 향토유적 제52호)

파탑(破塔)이 되어 쓰러져 있던 것을 수습하여 세운 것으로 쌓아놓은 석재 중에 다른 석재가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

양련이 조각된 1층 옥개석 위에 얹어져 있는 방형 석재는 대좌형 기단의 상대석으로 보이는데

상대석의 뒷면에 치석(治石)된 옥신괴임 폭이 1층 옥신의 폭보다 좁아 같은 석조물의 부재가 아닌 것으로 추정된다

 

 

 

 

용화전(龍華殿)

이곳은 현의 치소가 있던 마을의 어구이며 터가 드센 곳이여서 터의 기를 누르기 위해 축귀장신의 일종이었던 것을

후대 사람들이 이를 미륵으로 신앙하며 당집을 지었다고 한다

 

 

 

 

마북리석불입상(麻北里石佛立像 · 용인시 향토유적 제52호)

직육면체의 몸통에 높은 관을 쓰고 있고 얼굴은 장방형으로 턱 부분을 둥글게 처리하였다

눈은 크게 치켜뜨고 있으며, 코는 크고 오뚝하게 부각시켰으며, 입은 꼭 다물고 있다

얼굴에는 볼륨감이 전혀 없고 석인상의 엄격성과 근엄성이 강조되고 있다

수인은 복부 부근에서 두 손을 모아 보주 내지 홀(笏)을 잡은 계인의 형태이며 가슴에는 ‘만(卍)’자가 양각되어 있다

불의가 아닌 관복을 착용하고 있으며 의습선은 손과 배 아래 부분에만 몇 가닥의 선으로 간략히 표현하고 있다

어깨는 상당히 움츠려 있는데, 묘주(墓主)를 공경하는 자세에서 비롯된 듯하다

 

 

 

 

용화전 뒷쪽에서 본 마북리석탑과 선정비들

 

 

 

 

용화전 주변에 있는 석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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