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평동은 1895년 인천부 부내면 평동이었으나 그 후 1914년 화촌면과 함께 화평리로 통합되었고
1936년 인천부 화평면으로 개칭되었다가 1946년 경기도 인천시 화평동으로 개칭되었다
동인천역 4번출구
시점이다
화평철교
1899년 당초 철로는 동인천역 앞 대한서림 쪽으로 휘어져 있었는데 1900년도 일본철도운송조합에서 직선화하여 이 철교가 생겼다고 한다
경인선 개통 당시 약 7.5m로 차량이 교차하기 쉽지 않은 철교를
1964년 11월, 20m(차도 14m · 인도 6m)로 확장하고 이후 약간의 확장공사를 통해 지금에 이른다
화평철교를 사이에 두고 인천 중구 · 동구가 나뉜다
평안수채화의 집
수채화가 박정희(1923~2014) 할머니가 거주하며 이웃에게 그림을 가르쳤던 집이다
한글 점자 훈민정음을 만든 송암 박두성의 따님으로 송암과 함께 율목동에 살다가 결혼해서 1949년부터 이곳에 살기 시작했다
건물 외벽에는 평안의원의 모습과 의사 가운을 입은 남편 유영호 박사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아저씨 냉면
지금은 경인선 복복선 공사로 헐리고 없어진 길 건너편 솜틀집 옆 작은 가게에서 1976년부터 냉면집을 시작했다
화평동냉면 원조 집이다
원조화평냉면 · 일미화평동냉면
지금은 경인선 복복선 공사로 헐리고 없어졌지만 건너편에는 양복점 양화점 등 가게가 즐비했다
인천에서 가장 오래된 솜틀집인 「은률면업사」도 이곳 냉면집 맞은 편에 있었다
할머니냉면 · 왔다냉면
화평동 냉면거리다
황인의원
이북에서 내려와 1958년에 문을 연 인천에서 오래된 병원이다
간판에 'Since 1958'이 붙어있다
화평 운교(雲橋)
경인철도가 개통되던 즈음에 7m 정도의 높이로 설치됐다
그 때는 나무다리라 썩지 말라고 검은 염료를 발랐는데 일본인들은 흔히 「흑교」라 불렀다
해마다 가을이면 인천여상에 있던 신사에서 출발한 일본인 축제행렬이 이곳을 지나갔다
이 광경을 보기 위해 구경꾼들이 구름다리 위에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한다
대한성냥공장(지금 화수자유시장)
대한성냥공장이 이전한 후 40여 년 전부터 시장이 형성되었다
화수라는 이름은 붙었지만 옛 인천극장 바로 앞이라 화평동 생활권 시장이다
장면 박사 생가(운석의 터)
제2공화국 국무총리를 역임하고 부통령을 지낸 장면 박사가 인천에서 태여나 유년시절과 학창시절을 보낸 생가 터다
운석(雲石)의 터
장면 박사의 생가 표석이 붙어 있다
화도진로
화평사거리로 내려가는 길이다
화도진그린빌주공아파트
정호이발관
화평동 냉면거리 뒷골목이다
함세덕 생가(咸世德 生家 1915~1950 / 지금 목포손칼국수)
극작가 함세덕은 1936년 조선문학에 희곡 「산허구리」로 등단하였고 「동승」으로 극연좌상을 받았으며 「해연」으로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입선하였다
그 후 계급투쟁의 관점에서 「고목」이라는 장막희곡을 쓰고 월북하여 남한사회를 부정적으로 묘사한 사회주의 리얼리즘극을 몇 편 쓴바 있는데
그 대표작이 이승만과 그 주변 정치가들을 매도한 「대통령」이라는 작품이다
6 · 25전쟁 때 북한 종군기자로 참전하여 서울로 들어오다 수류탄 사고로 죽었다
월북했다는 이유로 그의 작품과 활동이 거의 사장되었다가 1980년대 초 해금되었다
송현교(松峴橋) 엄지기둥
화평치안센터 사거리 양편에 두 개의 엄지기둥이 남아있다
예전에 다리가 있었던 흔적이다
수문통로
송현교 표지석이 있는 화평치안센터에서 송현치안센터까지 약 200m 거리에는 수문통이라 불린 갯골 수로가 있었다
삼화목욕탕
1950년대 후반에서 1960년대 초에 개장한 목욕탕으로 그동안 주인은 몇 번 바뀌었지만
한 장소에서 계속 영업을 한 목욕탕으로 인천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목욕탕이다
삼화목욕탕
굴뚝이 보이는 뒷골목에서 보았다
신진여인숙
역시 오래된 여인숙이다
이경성 선생 생가터
1919년 석남 이경성(石南 李慶成) 선생이 태어난 곳이다
이경성 선생은 인천시립박물관 초대 관장이자 국립현대미술관장을 역임했다
인천시립박물관 시절, 6 · 25전쟁 때 박물관 아래 시장관사 방공호에 문화재급 유물 19점과
중앙국립박물관에서 빌려온 55점 등 유물 200여 점을 포장해 옮겨 놓아 지켜냈다
오래된 집이라 사진을 만들었는데 지금은 빈집 같다
인천극장(지금 화수할인마트)
1955년 3월 1일 이민씨와 김태훈씨가 연극 전문극장으로 개관했다. 이듬해인 1956년 4월 24일 화재로 전소하였다
1960년대 시민극장에서 인천극장으로 이름을 바꾸고 영업을 해 오다 2001년 9월 문을 닫었다
주로 동시상영을 했던 인천 삼류극장이었다
예전 인천극장 뒷모습이다
일명 세숫대야냉면
화평동을 걷고 다시 화평동냉면의 원조인 아저씨 냉면에서 점심을 했다
냉면 그릇의 크기를 짐작하게 하려고 젓가락을 넣어 보았다
경인선 복선 시대 개막(1965. 9. 18 개통)
마침점인 동인천역 화단에 있는 사진이다
GPS로 확인하니
걸은 거리 5km, 소요시간 3시간 1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