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에 살고 싶으면 천국의 마음을 품으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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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암민속마을 가기 위해 지난 주에 이어 다시 아산(온양)을 찾았다
아산시외버스터미널
시점이다
온양온천역
기억 속의 작고 조용했던 역의 흔적은 찾을 수 없다
이충무공기념각(李忠武公記念閣)
이충무공사적비(李忠武公史績碑 ·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230호)는 이순신 장군의 업적을 후세에 전하고자 세운 비다
비각 안에 안치되어 있는 이 비는 거북 받침 위에 비몸을 올린 모습이다
비문에는 임진왜란 당시 나라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바쳐 왜적과 싸운 내용을 정인보가 짓고 김충현이 썼다
1951년 이충무공 기념사업 추진위원회가 국민의 성금을 모아 세워 놓은 비다
온양온천역 족욕체험장
10시부터 18시까지 운영하는데 오일장 다음 날인 5, 10... 등의 날과 우천 · 악천후 때는 휴장이다
동절기인 12월부터 3월까지도 휴장이다
온양온천역
햇살을 즐기는 노인들이 많다
온양온천전통시장
추억속의 온양관광호텔을 시장을 통과해 가기로 했다
온양관광호텔
지하 1층 대온천탕에 노천탕이 있다
온양관광호텔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온천으로 그 역사가 1,300년이 되며 조선 태조대왕 때 행궁인 온천궁궐을 짓고 온천 휴양과 집무를 보던 곳이다
신정비각(神井碑閣)
온천이 있었던 온양에는 조선시대 국왕의 행차가 자주 있었으며
그 때문에 온궁(溫宮)이 건립되기도 하였는데 세종 · 세조 · 현종 · 숙종 · 영조 등이 온천을 다녀갔다
신정비(神井碑 · 충청남도문화재자료 제229호)
세조가 1468년(세조 14)에 충청도를 두루 돌아보고 속리산 복천사를 거쳐 환도하다가 온양에 머물고 있을 때
온천 곁에 있는 냉천(冷泉)을 발견하고 이를 신정이라 칭한 것을 기념하여 성종 7년(1476)에 건립한 비다
비문은 중추원부사 임원준이 지었고 그것을 절충장군 이숙함이 썼으나 대부분 닳아 없어져 현재 상당 부분이 판독할 수 없는 상태이다
비는 장방형의 대리석 위에 화강암으로 세워져 있다
어의정로
온양 풍기동성당
느티나무 보호수
높이 18m · 둘레 120cm · 나이 360년 · 지정일자 1982. 11. 10
설화산 · 광덕산
도로확장 공사중인 외암로 언덕에서 봤다
차마실
흙담에 너와지붕이다
온양향교(溫陽鄕校) 홍살문
하마비(下馬處 · 下馬碑)
신구 하마비가 나란히 있다
온양향교(溫陽鄕校)
당초 아산시 법곡동에 창건되었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던 것을 광해 2년(1610) 봄 현재의 위치로 복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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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양향교유림회관 상량문 · 준공문비와 3기의 공적비가 옆에 있다
아산 읍내동 당간지주(牙山 邑內洞 幢竿支柱 · 보물 제537호))
화강암으로 된 두 개의 돌기둥이 한 쌍을 이루고 있으며, 각각 높이 410cm, 너비 55cm, 두께 39cm이다
기둥 머리는 완만한 곡선을 이루고 있으며, 안쪽에는 네모난 홈을 이루고 있어 당간을 단단히 고정시키는 역할을 했던 것처럼 보인다
돌기둥 안쪽의 표면은 심하게 닳아 있어 다른 조각이 원래 있었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
그러나 기둥 바깥쪽은 두 모서리를 깎아내어 새로운 줄무늬를 새긴 것 같은 효과를 내고 있다
또한 기둥 위아래의 굵기에 큰 차이가 없어 전체적으로 세련미를 보인다
지주가 자리하고 있는 지금의 위치가 본래의 자리로 여겨지며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지만 전체적인 양식으로 보아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온주아문(溫州衙門 · 유형문화재 제16호))
조선시대 온양군 관아 건물의 문 위에 누각으로 만든 문루 건물이다
아문은 고종 8년(1871)에 고쳐지어진 건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누각 건물이다
기초석 위로 1.5m의 주춧돌을 배열하고 그 위에 둥근 기둥을 세워 누마루를 설치하였다
아문 정면에는 '온주아문(溫州衙門)'이라는 현판이 있는데, 이는 663년(신라 문무왕 3년)에 이곳을 온주라고 한데서 유래한 듯하다
읍내동 온주아문 비석군
이곳에 재임하던 군수들과 충청도 관찰사들의 선정을 기념하고 공덕을 칭송하기 위해 세운 송덕비로
흔히 관아의 입구나 도로변에 세워진 것들을 한자리에 옮겨 놓은 것이다
동헌(東軒 · 유형문화재 제16호)
넓은 마당 평상에서 이동식을 했다
동헌(東軒 · 유형문화재 제16호)
동헌은 여러 차례 변형되었으나 아문과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동헌은 정면 6칸, 측면 2칸의 건물로 길게 다듬은 받침돌을 한 벌 쌓아 기단을 마련하고
다듬지 않은 주춧돌을 두고 그 위에 네모난 기둥을 세운 홑처마 팔작지붕이다
조선시대 온양현 동헌으로 쓰였다가 일제 때 주재소, 해방 후에는 파출소, 1986년부터 1988년까지 온양시 온주동사무소로 사용되었다
1993년 수리 · 복원되었다
온양초등학교
배방산
온주곰탕 · 막국수
온양6동주민센터
설화산
LG기지국이 앞에 있다
외암민속마을(중요민속문화재 제236호)
조선 선조 때부터 예안 이씨가 정착하면서 예안이씨 집성촌이 되었고 성리학의 대학자인 외암(巍巖) 이간 선생이 마을에 살면서 더욱 알려졌으며
그의 호인 외암도 마을 이름에서 따온 것으로 전해진다
열녀안동권씨정려각(烈女安東權氏旌閭閣)
열녀 안동권씨는 진사를 지낸 권연(權淵)의 딸로서 어려서부터 온순하고 부모님을 극진한 효성으로 섬기다가
13세의 어린 나이에 예안이씨 이용덕에게 시집으로 가게 되었다
이용덕은 예안이씨 20세손으로 외암 이간의 후손이며, 퇴호거사 참판 이정렬의 아들이었다
그런데 시집간 다음 해, 남편이 15세에 요절하였다
청상과부가 된 안동권씨는 늙은 시어머니를 봉양하면서 죽은 남편을 위해 정성을 다해 제사를 지냈고, 나아가 집안을 화목하게 이끌었다
평생 과부로 지내다가 나이 86세가 되어 조카인 이홍선을 아들로 삼았으나 불행히도 세상을 떠나 이홍선의 동생인 이득선의 아들을 손자로 삼아 가문을 일으켰다
매표소 앞이다
열녀안동권씨정려(烈女安東權氏旌閭) 현판
외암민속마을 주부댁
외암민속마을을 돌아보고 송악면 버스정류장으로 간다
외암 이간신도비(巍巖 李柬神道碑)
有名朝鮮國 經筵官 贈資憲大夫吏曹判書成均祭酒巍巖李先生神道碑
(유명조선국 경연관 증자헌대부이조판서성균좨주외암이선생신도비)
이간(李柬 · 1677~1727)은 1777년(정조 1) 이조참판 · 성균관좨주에 추증되고, 순조 때 이조판서가 증직되었다
온양의 외암서원(巍巖書院)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문정(文正)이다
외암민속마을 입구 삼거리에 있다
백산처사예안이용정선생송덕비(白山處士李用政先生頌德碑)
광덕산 마루금
송악면 환승센터
아산시외버스터미널로 가는 100번 버스가 20분 간격으로 다닌다
소요시간은 약 40분이다
마침점이다
파 양념구이 삼겹살
막걸리와 함께한 뒷풀이 메뉴다
GPS로 확인하니
걸은 거리 13.9km, 소요시간 4시간 3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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