궐리사(闕里祠 경기도 기념물 제147호)는 공자의 영정을 모신 사당을 말하는데
오산의 궐리사는 노성의 궐리사와 함께 우리나라 2개 뿐인 궐리사 중 하나로
조선 중종 때 문신이자 공자의 64대 손인 공서린 선생이 서재를 세우고 후학을 가르치던 곳이다
1793년(정조 17)에 대왕이 옛 터에 사당을 세우게 하고 공자가 살던 곳의 이름대로 지명을 궐리로 고쳤다
지금은 공자님의 탄신일과 기신일을 기하여 석전의 예를 올리고 있는 서원적 사당이다
외삼문
신성한 구역을 알려주는 홍살문과 하마비가 있다
성묘(聖廟) 외삼문
성묘(聖廟) / 경기도기념물 제147호 내삼문
공자님의 영정과 위패를 봉안하고 있는 성묘 본당은 들어갈 수 없다
성균관 유도회 화성 궐리사지부
화성 궐리사 사무처 건물이기도 하다
행단(杏檀)
행단은 공자가 은행나무 아래에서 제자를 가르친 것에서 유래한 것이다
공자문화전시관 · 성상전 내삼문
성상전(聖像殿) 내삼문
이곳 궐리사에 보관되어 있는 성적도 목판은 공자의 76세 손인 한국인 공재헌이
조병식 · 송병신 등과 힘을 합쳐 1904년 중국 산동성에 있는 성적도를 가져와 다시 새긴 것이다
성적도 목판은 피나무로 만들어졌고, 모두 60장으로 한 장의 크기는 세로 32cm · 가로 70cm · 두께 1,5~2cm 정도다
이 목판으로 책을 찍어낸 것으로 보이는데 그 간행 이유를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해 사료적 가치를 평가할 수는 없다
하지만 현재까지 우리나라에 있는 유일한 공자의 성적도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공자문화전시관
궐리사성적도(闕里祠聖蹟圖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62호)가 보관되어 있다
성적도는 공자의 생애를 그림으로 나타낸 것으로 이곳 궐리사에 보관되어 있는 성적도 목판은
공자의 76대 손인 한국인 공재헌이 조병식 · 송병선 등과 힘을 합쳐 1904년 산동성에 있는 성적도를 가져와 다시 새긴 것이다
은행나무 보호수
중종 2년(1507) 문과에 급제하고 공조참의 · 대사헌 등을 지낸 공서린 선생이 후학을 지도할 때
은행나무에 북을 달아 놓고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도록 깨우쳤는데, 그가 죽자 은행나무도 말라죽었다고 전한다
그 뒤 정조가 화산에서 바라보니 많은 새들이 슬피 울며 은행나무 곁으로 모여들었고
이를 괴이하게 여긴 임금이 가까이 가서 보니 죽은 은행나무에서 새싹이 돋고 있었다고 한다
나무 높이 17m · 둘레 4.8m · 나이 500년 · 지정일자 1982. 10. 15
양현제(養賢齋)
공서린(孔瑞麟 1483∼1541) 선생 유허비
공서린 선생 시비 · 성역기
공서린 선생 시비
공적비
궐리사 홍살문 옆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