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숭산 정기를 이은 천년의 사찰로
창건에 대한 뚜렷한 기록이 없어 창건설화가 분분하나
사기(寺記)에는 백제 말에 숭제법사(崇濟法師)에 의하여 창건되었다고 하며
제30대 무왕 때 혜현(惠現)이 법화경을 강론하였고
고려 제31대 공민왕 때 나옹(懶翁)이 중수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일설에는 599년(법왕 1)에 지명법사(知命法師)가 창건하였고 원효(元曉)가 중수하였다고 한다
창건 이후의 상세한 역사는 전하지 않지만
한말에 경허(鏡虛)가 이곳에 머물면서 선풍(禪風)을 크게 일으켰고
1898년(광무 2)에 경허의 제자 만공(滿空)이 중창한 뒤 이 절에 머물면서 많은 후학들을 배출하였다
우리나라 4대 총림(叢林)의 하나인 덕숭총림(德崇叢林)이 있으며, 많은 수도승이 정진하고 있다
덕숭산 수덕사 일주문(德崇山 修德寺 一柱門)
예전 매표소 자리에 커피숍이 있다
덕숭산 수덕사 (德崇山 修德寺) 현판 / 소전 손재형(素荃 孫在馨 1903~1981)
「임인청추 소전 손재형(壬寅淸秋 素筌 孫在馨)」 관지가 있다
손재형은 전남 진도 출생으로 이 글씨는 1962년에 쓴 것으로 보인다
동방제일선원(東方第一仙院) 현판 / 소전 손재형(素荃 孫在馨)
세로 9개의 쪽판을 연결한 현판으로 가장자리를 청색 · 액판을 흰색으로 칠했는데
조선시대의 현판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현판의 글씨는 그가 즐겨 썼던 회화성이 강한 전서로 금문(金文)의 결구를 차용하여 쓴 것이다
*
현판 안쪽에 있다
덕숭산 수덕사사적비(德崇山 修德寺事蹟碑)
금강문(金剛門)
사찰 내부를 청정도량으로 지켜주는 금강역사가 있다
금강문(金剛門) 현판 / 송원 설정(松原 雪靖)
수덕사 주지를 지내신 송원 설정 스님의 초서체 글씨로
금강역사의 강건하면서 우락부락한 모습을 형상화하였다
꽃무릇
거의 시들고 조금 남아 있다
사천왕문(四天王門)
불법을 수호하는 사천왕을 모시는 곳으로
이 문 안에는 조상(彫像)한 사천왕이 봉안되어 있다
사천왕문(四天王門) 현판
만공기념관
만공선사(滿空 1871~1946) 항일정신 빗돌
조선총독부 어전회의에서 총독에게 일할(一喝)하다
1937년 3월 11일 마곡사 주지 당시, 전국 31본사 주지와 전국 13개 도지사가 모인
조선총독부 어전회의에서 교화의 방편이 여법하거늘
일본 불교와 합하여야 할 필요가 없으며 정부에서 종교를 건섭하지 말라
진흥책은 정부에서 간섭하지 않는 것 만이 유일한 진흥책이다
이에 스님이 분연히 자리를 차고 일어나 등단하여 크게 호령하여 이르되
「청정(淸靜)이 본연커늘 어찌하여 산하대지(山河大地)가 나왔는가?」 "하고 좌중에게 물었다
이에 좌중은 물을 끼얹은 듯 조용하였다
스님이 큰 소리를 떨쳐 한번 할(喝)을 하니, 그 소리의 위엄이 장내에 넘쳤다
이 일이 있은 후 8년 뒤 광복을 맞이하게 되어
그 기념으로 1945년 광복과 더불어 떨어진 무궁화 꽃으로 세계일화(世界一花)를 남겨
세계 평화를 상징하는 휘호는 지금까지 수덕사에 보존되어 있다
말년에 덕숭산 산정에 한 칸 띳집(日間茅屋)을 지어 전월사(轉月舍)라 이름하고
홀로 달을 굴리다가 어느 날 목욕단좌 한 후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고 「자네와 내가 이제 이별할 인연이 다 되었네그려」하고
껄껄 웃고 문득 입적(入寂) 하시니 때는 병술년(1946년 음 10월 20일) 일이었다
2016. 음 3. 7. 수덕사 ... 만공 어록 중에서
칠층석탑
1931년 만공 대선사께서 건립한 석탑으로 기단부 없이 바로 탑신과 옥개석으로 되어있다
기단 면석 밖으로 두드러지게 우주(隅柱)를 표현하였고
면석(面石)에는 두께 10cm 정도의 사각 테두리가 돌려져 있다
탑신부의 옥신(屋身)은 없는데, 옥신 대신에 4개의 정사면체 석재를 주춧돌처럼 놓아
1층 지붕을 받치고 있다
*
예전 대웅전 앞에 있던 탑이다
수덕사 코끼리석등
불을 밝히는 석등의 역할보다는 경전의 의미를 담고 있다
비슷한 의미로 속리산 법주사에 쌍사자 석등이 있다
인곡당 법장대종사 조계종 제21대 총무원장 역임기념석
(仁谷堂 法長大宗師 曹溪宗 第21代 總務院長 歷任記念石)
포대화상
본명은 「계차 契此」로 항상 포대자루를 들고 다녔기 때문에 포대(布袋)라는 속칭이 붙었고
배가 나오고 대머리인 것이 특징이다
*
포대화상의 배꼽을 만지는 모습이 흥미롭다
황하정루(黃河精樓)
원담대선사가 지은 이름으로 부처님의 정신이 강물처럼 흐른다는 의미다
정면 7칸 · 측면 3칸 규모의 2층 누각으로 1992년에 법장 스님이 개축하였다
*
대해탈장(大解脫場) 각자
황하정루로 오르는 돌계단에 음각글씨로 새겨져 있다
해탈의 장인 대웅전으로 오르는 계단이다
선지종찰수덕사(禪之宗刹修德寺) 현판 / 원담 진성(圜潭 眞性 1926~2008)
덕숭총림(德崇叢林) 현판 / 원담 진성(圜潭 眞性)
덕숭총림은 대한불교 조계종의 8대 총림인
조계총림 송광사 · 영축총림 통도사 · 가야총림 해인사 · 덕숭총림 수덕사
고블총림 백양사 · 금정총림 범어사 · 팔공총림 동화사 · 쌍계총림 쌍계사 중 하나이며
선 수행의 풍토를 조성한 경허선사와 수덕사 · 정혜사(비구선원) · 견성암(비구니선원)을 중창하였다
황하정루(黃河精樓) 현판 / 원담 진성(圜潭 眞性)
예산 수덕사
「죽기 전에 가봐야 할 사찰」 불교신문 기사다
백련당
대웅전 오른쪽에 있다
백련당(白蓮堂) 현판 / 만공 월면(滿空 月面 · 1871~1946)
수덕사 대웅전(修德寺 大雄殿) / 국보 제49호
백제시대 사찰인 수덕사의 창건에 관한 정확한 문헌기록은 현재 남아있지 않으나
학계에서는 대체적으로 백제 위덕왕(威德王 554~597) 재위 시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석가 · 아미타 · 약사 삼존불을 모신 이 대웅전은
1937년 수리공사 때 발견된 묵서의 내용으로 보아 1308년(충렬왕 34)에 건립되었다
건축은 고려시대에 유행된 주심포 양식이고 정면 3칸 · 측면 4칸 규모의 맞배지붕이다
바른 돌쌓기 형식의 기단에 사각형의 자연석으로
기둥 놓을 자리를 북돋게 조각한 주춧돌을 놓았고 그 위에 배흘림 기둥을 세웠다
정면의 각 칸에는 섬세한 빗살 3분 합문이 있고, 측면에는 맨 앞쪽에 출입문을 설치하였다
뒷면에는 각 칸에 문을 장식하고 있지만 중앙 칸에만 문을 달았다
외부에 노출된 가구는 나무가 간직하고 있는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며
측면 맞배지붕의 선과 노출된 목부재의 구도는 아름다움의 극치라고 할 수 있다
한국 목조 건축사에서 매우 중요한 건물이다
수덕사 대웅전(修德寺 大雄殿) 현판 / 원담(圜潭)
1937년 수덕사 해체수리 시
지대원년무갑사월십칠일입주(至大元年武甲四月十七日立柱 1308 고려 충렬왕) 묵서가 발견됨에 따라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목조건축물 중 확실히 건립연대가 밝혀진 가장 오래된 목조건축물이다
헛첨차와 우미량이라는 새로운 부재가 등장하여 이전 시기와는 다른 건축적 구조미를 보여줌으로써
한국 목조건축에 있어 선후관계를 고찰할 수 있는 기준점이 되고 있다
목조삼존불좌상 / 보물 제1381호
인조 17년(1639년)에 남원의 풍국사에서 조성하였는데
후에 남원의 귀정사(歸淨寺) 로 이운되었고
1938년 수덕사 대웅전의 해체수리 작업이 끝나면서 만공(滿空 1871~1946) 스님이
수덕사로 다시 이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목조삼존불좌상 / 보물 제1381호
1938년 만공선사께서 남원 귀정사에서 이운한
가운데 석가모니불 · 오른쪽(좌협시) 약사불 · 왼쪽(우협시) 아미타불과
부처님의 불복장 · 중앙 석가모니불의 연화대좌 · 육각수미단과 함께 지정되있다
범종각(梵鍾閣)
대웅전 마당 왼편에는 범종각이 있다
*
무이당(無二堂)이 뒤에 있다
범종각(梵鍾閣)
1973년에 조성된 무게 6,500근의 종이다
조인정사(祖印精舍)
무이당(無二堂) 현판이다
조인선원(祖印禪院) / 원담(圜潭)
무이당 현판이다
매점
범종각 옆에 있다
청련당(靑蓮堂) · 법고각(法鼓閣)
종무소가 법고각 뒤에 있다
대웅전(大雄殿) / 국보 제49호
축대를 겸한 기단 위에 초석을 놓고 배흘림 기둥을 세웠다
앞면 3칸에는 모두 3짝 빗살문을 달았다
*
삼층석탑이 앞에 있다
청련당(靑蓮堂)
삼층석탑 옆에 있다
수덕사 삼층석탑 / 충청남도 유형문화유산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돌탑이다
흔히 불가에서의 탑은 부처님의 사리를 모신 조형물로 일종의 무덤이다
석가모니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자신의 사리를 탑 속에 보관하라는 말을 남긴 뒤부터
승탑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에 나무로 만든 목탑을 세웠으나
삼국시대 말부터 석탑을 만들기 시작했다
수덕사 삼층석탑 / 충청남도 유형문화유산
수덕사 삼층석탑은 바닥돌부(기단부)가 2층으로 되어 있는데
위 · 아래층 바닥돌 양쪽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양을 새겼다
몸돌부(탑신부)는 3층인데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의 하나의 돌로 되어 있으며
몸돌의 양쪽 모서리에 기둥 모양을 새겨 넣었다
지붕돌은 처마가 수평을 이루다가 끝부분이 살짝 들려져 있으며
지붕돌 받침은 4단으로 되어 있다
꼭대기(상륜부)에는 머리 장식을 받치는 네모난 받침돌 위에 구슬장식이 올려져 있다
수덕사삼층석탑 / 충청남도 유형문화유산
수덕사 삼층석탑은 통일신라시대인 665년(문무왕 5)에 세워진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석탑의 전체적인 양식과 조각방법 등을 볼 때
통일신라시대의 양식을 따르면서도 고려시대 석탑의 특징이 잘 나타나므로
고려 초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청련당(靑蓮堂)
청련당(靑蓮堂) 현판 / 만공 월면(滿空 月面 · 1871~1946)
관음전(觀音殿)
관세음보살 좌우로 석등이 있다
관세음보살
석등
명부전(冥府殿)
지장보살(地藏菩薩)이 모셔져 있다
명부전(冥府殿) 현판 / 원담(圜潭)
명부전(冥府殿)
머리에 초록색 두건을 쓴채 육환장(六環杖)을 들고
지옥중생을 모두 구제하기 전에는 결코 성불하지 않겠다는 원력을 세운
지장보살(地藏菩薩)이 모셔져 있다
후면 벽에는 묵각후불탱이 있다
산령각(山靈閣)
삼성각 · 산신각과 같은 의미의 전각으로
독성(獨聖) · 산신(山神) · 칠성(七聖)을 함께 모시는 전각이다
칠성(七聖) 탱화
치성광여래(북극성)와 일광 · 월광보살 · 칠월성군(북두칠성)을 그린 탱화다
산신(山神) 탱화
독성(獨聖) 탱화
법고각(法鼓閣)
매점이 옆에 있다
청련당(靑蓮堂)
세계일화(世界一花) 현판이 옆에 붙어 있다
세계일화(世界一花) 현판
만공 스님이 간월암에서 천일기도 후
조국이 광복되자 길가의 무궁화 꽃잎을 따다가 「세계일화(世界一花)」
세계는 한 송이 꽃 · 너와 나는 둘이 아니고 이 나라 저 나라가 둘이 아니다라는
네 글자를 쓰고 낙관 대신 「근화필(槿花筆)」이라고 썼다고 한다
세계 평화를 상징하는 세계일화(世界一花) 휘호는 수덕사에 보존되어 있다
*
청련당 옆에 붙어 있다
법고각(法鼓閣)
오른편 범종각과 비슷한 규모의 건물로 범종각과 마주보고 있다
종무소
수덕사 현판이 걸려 있다
수덕사(修德寺) 현판
종무소에 걸려 있다
심우당(尋牛堂)
심연당
템플스테이를 하는 곳이다
해우소
템플스테이 건물
신축중이다
공덕주 청신녀명원 김선정비
(功德主 淸信女茗園 金宣正碑)
삼일 동안 닦은 마음은 천 년의 보배요
백년의 탐물은 하루 아침 이슬과 같다네
수덕사 근역성보관(槿域聖寶館)
만공이 고종의 둘째 아들인 의친왕 이강으로부터 받은 거문고가 소장되어 있다
이 거문고에는 이조묵(李祖默)이 새긴 공민왕금(恭愍王琴)이라는 글씨와 함께 만공의 시가 새겨져 있다
수덕사 근역성보관(槿域聖寶館)
수덕사 안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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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0.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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